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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신 공무도하가

힘들고지칠때------/영화또보기♣

by 자청비 2014. 12. 30.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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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울려퍼지는 ‘공무도하가’
-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대한 단상

 

 

公無渡河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시오
公竟渡河 임은 끝내 물을 건너가시네
墮河而死 물에 빠져 죽으니
當奈公何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우리나라 상고시대 문학의 대표적 작품중 하나인 ‘공무도하가’이다. 이 작품과 관련해서 국문학계에서는 님의 정체는 무엇이며, 님이 왜 자진해서 물에 들어갔는가 등에 대해 갖가지 학설이 있다. 하지만 이 시가(詩歌)에 따른 부대설화를 보면 ‘공무도하가’의 의미는 ‘인간의 죽음’에 관한 여러 가지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이를테면, 사람은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라는 것, 그 죽음에는 여러 가지 사연이 개입된다는 것, 죽음은 남은 가족들이 죽음에 이를 만큼 비탄과 애통함을 수반한다는 것, 죽음을 애도하는 어떤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한 일반 사람의 반응은 그 죽음에 동조하여 동정과 비통함을 함께 나눈다는 것 등이다. ‘죽음’이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겪게 되는 통과의례이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사에 있어서 불변의 법칙이며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다.


진모영 감독의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이하 ‘님아’)가 독립영화사상 최단기간 관객 10만명 돌파,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사상 최초로 관객 300만명 돌파 등의 기록을 세우며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가 대중들에게 높은 관심을 갖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님아’는 76년이라는 세월을 함께한 노부부의 애틋한 정, 그리고 가슴 뭉클한 이별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이 영화의 무엇이 특별하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없다. 다른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형식미가 뛰어난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3년전쯤 모 TV 프로그램에도 소개됐던 터라 신선한 소재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만남과 헤어짐을 쉽게 하는 요즘 세태를 비웃듯이 노부부의 천진무구한 사랑의 모습은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노부부가 예쁜 한복으로 짝꿍차림하고 손을 꼭잡고 다니는 모습에서 팔순의 나이에도 소년·소녀같은 감성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 부럽다.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다가 돌을 던져 물보라를 일으키고, 낙엽을 쓸다가 낙엽을 할머니에게 내던지고, 겨울에 눈을 치우다가 서로 눈장난을 하는 모습을 보며 이 노부부만이 지니는 감성과 서로를 위해주는 애틋함에 더욱 탄복한다.

영화는 또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모처럼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여동생이 큰 오빠에게 아버지를 돌보지 않는다고 힐난하다가 형제간 싸움으로 번지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심정의 표정이 노부부의 얼굴에 드러날 때는 쓴웃음을 지었다. 할아버지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을 때 큰 아들이 울면서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잘 할게요”라고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그 큰 아들은 나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노부부는 또 일상 속 수많은 순간들 중 하나처럼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한다. 노부부에게는 제대로 커보지도 못하고 가슴에 묻은 자녀에 대한 깊은 슬픔이 평생 한으로 남아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이 입는 내복을 한 보따리 사와 둘 중 누가 먼저 가든 상관없이 그 옛날 일찍 떠나보낸 자식들을 만나거든 생전 입혀보지 못한 이 내복을 입혀주자고 다짐한다.

 

할아버지가 아끼던 강아지 ‘꼬마’는 비록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지만, 할아버지의 병세가 깊어진 와중에도 다른 강아지 ‘공순이’가 새끼를 순산하면서 또 다른 삶의 재미를 안겨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여섯 마리의 새끼를 낳은 공순이와 그 새끼들을 뿌듯하게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마치 이별이 있는 어딘가에는 새로운 만남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듯하다.

예감하는 이별이지만 역시 이별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할머니는 언젠간 건너가야 할 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이 조금이라도 유예돼 함께 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받아들여야만 하는 세상의 순리이기에 할머니는 할아버지와의 이별을 차분히 준비한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옷을 고이 입히고 떠나보낸 후에야, 애써 눌러왔던 슬픔과 애처로움을 드러낸다. 이처럼 영화는 평범한 노부부의 일상을 통해 ‘인간의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진모영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1년 반의 촬영기간중 할아버지가 노환으로 세상과 이별하게 되면서 영화는 ‘진정한 사랑’에 그치지 않고 세상과의 만남과 이별 즉 ‘인간의 삶’이라는 화두로 승화된 듯 하다.


그리고 영화감독은 70여년의 세월을 사랑했던 한 부부가 남자의 죽음으로써 영원한 이별을 맞게 된 것을 고대 시가인 ‘공무도하가’의 타이틀로 표현해냈다. 님은 늙어 병든 남편이고 물을 건넌다는 것은 곧 레테의 강을 건너는 것이니, 유한한 생명체인 님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떠나보낸 뒤에 차오르는 안타까움, 애처로움 그리고 슬픔을 끝끝내 억누르지 못하고 흐느껴 울고 있는 것이다. 영화 ‘님아’에서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할머니의 슬픔은 수 천년전 공무도하가를 불렀던 백수광부의 처가 느꼈던 슬픔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그러고 보면 오래전부터 사람에게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처럼 떠나보내는 자들의 슬픔은 수천 년이 흘러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이 영화 이전에 다큐멘터리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작은 이충렬 감독의 2009년작 ‘워낭소리’이다.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노(老)부부와 늙은 소의 일상을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현대사회에서 뒷자리로 밀려나 잊혀져 가는 우리 아버지와 그의 평생지기인 소와의 교감을 보여줌으로써 현대인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다규멘터리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이후 5년여만에 다시 등장한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도 노부부간의 교감이라는 측면에서는 워낭소리와 같지만 ‘인간과 인간’이라는 측면에서 ‘인간과 소’ 사이의 교감이었던 ‘워낭소리’에 비해 훨씬 더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이같은 교감이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그만큼 교감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문명의 발전에 따라 물질적으로는 날로 풍요해지고 있는 만큼 정서적으로는 황폐해져가면서 교감해야 할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술작품은 예술가의 손을 떠나면 그 가치는 온전히 감상자의 몫으로 남는다고 한다. 영화 ‘님아’는 태어남과 만남, 그리고 이별이라는 삶 속에 담겨진 인간의 영원한 테마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2014.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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