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인조까지 논의됐던 소녀시대
‘여자단체팀’. 그룹 소녀시대의 데뷔 전 ‘태명’이다. SM엔터테인먼트(SM)에서 소녀시대의 데뷔 과정을 지켜본 가요 관계자는 “많은 여성 연습생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데뷔를 준비해 사내에서 만들어진 별명”이라며 “줄여서 ‘여단팀’으로 불렀다”고 옛일을 떠올렸다.
윤아와 태연 등이 연습생 신분으로 가수 준비를 하며 연습실 유리창을 직접 닦던 2000년 초중반 일이다.
태릉선수촌에서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도 아니고, 걸그룹 별명으로 ‘여단팀’이라니. SM은 소녀시대 멤버를 13명까지 구상했다. 결국 9명으로 데뷔 팀을 꾸렸지만 ‘아이돌의 산실’인 SM에서도 ‘소녀시대 프로젝트’는 크고, 이례적이었다. 일제 강점기인 1939년 5인조 그룹 저고리 씨스터즈가 등장한 이후 6명 이상이 팀을 꾸려 춤을 추고 노래하는 걸그룹은 가요계에 한 팀도 없었기 때문이다.
‘SM의 인해전술’ 비판 속 ‘오톡’으로 팀워크 유지
2007년 8월 노래 ‘다시 만난 세계’(‘다만세’)를 낸 소녀시대가 이달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가요사에서 해체 없이 10년 동안 활동을 이어온 걸그룹으론 소녀시대가 유일하다. 경쟁그룹이었던 원더걸스와 카라 뿐 아니라 2NE1도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소녀시대는 데뷔 초 매일 손을 잡고 5분씩 이야기를 주고 받는 ‘오톡(5분 토크)’을 하며 팀워크를 유지했다.
걸그룹의 역사를 쓴 소녀시대도 데뷔 초엔 가시밭길을 걸었다. 9명이란 멤버수로 ‘SM의 인해 전술’이란 폄하의 말이 쏟아졌다. 소녀시대가 데뷔한 2007년은 ‘원더걸스 세상’이었다. 소녀시대는 ’텔미’ 열풍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다.
악재는 겹쳤다. 소녀시대는 다른 아이돌 팬들에게 ‘보이콧’까지 당했다. 2008년 잠실올림픽경기장에서 열린 드림콘서트에서 수 만 명의 관객은 소녀시대가 무대에 오르자 10분 동안 침묵시위를 벌였고, 중국에서 열린 ‘SM 콘서트’에 참여한 관객들도 소녀시대가 등장하자 형광봉으로 ‘X’자를 만들어 야유를 보냈다. 소녀시대 일부 남성 팬과 다른 아이돌을 좋아하는 여성 팬들 사이 불거진 갈등으로 촉발된 일이었다. 팬덤이 변화하던 과도기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던 소녀시대는 설 자리를 잃었다.
3년 만에 ‘지’로 스타덤… ‘삼촌팬’으로 팬덤 확장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던 소녀시대는 2009년부터 빛을 보기 시작했다. 데뷔 3년차에 접어들어 낸 두 곡이 연달아 성공하면서다. 소녀시대는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게다리춤’을 선보이며 댄스곡 ‘지’로 단숨에 ‘국민 걸그룹’ 반열에 올랐다. 6개월 뒤 낸 ‘소원을 말해봐’로 연타석 흥행 홈런을 치며 입지를 넓혔다.
소녀시대는 원더걸스, 카라와 ‘2세대 걸그룹’ 시대를 열며 아이돌 팬덤을 확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회적 규범에서 자유로운 90년대 학번 ‘X세대’를 아이돌 시장에 끌어들여 ‘삼촌팬’을 등장시켰기 때문”(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다. 소녀시대는 일본 시장에 진출해 한류 열풍을 이끌기도 했다. 2010년 싱글 ‘지니’로 일본에서 데뷔한 뒤 국내 걸그룹 최초로 오리콘 주간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고, 도쿄돔 단독 공연까지 해냈다.
안팎으로 승승장구하는 데는 안정적인 가창력과 자로 잰 듯한 ‘집단 칼군무’의 덕이 컸다. 평균 5년이란 연습생 기간을 거치며 춤과 노래의 기본기를 단단하게 다져온 덕이다.
청순함과 강인한 이미지를 다양하게 보여준 점도 인기에 주효했다. 소녀시대는 한국에선 청순 콘셉트로 주목받았지만, 일본에선 ‘걸크러쉬’(여성에게 동경의 대상인 여성)로 소비됐다. 소녀시대는 데뷔 후 3,4년은 귀여움(‘지’, ‘오’)을 내세우다, 활동 5년차를 넘어서는 당당한 여성성(‘런 데블 런’, ‘아이 갓 어 보이’)으로 주로 어필했다. 팬층도 남성에서 여성으로 이동했다. “팀의 장수를 위해선 단단한 여성 팬층이 필요한데, 소녀시대는 음악적 서사를 자연스럽게 바꿔 장수의 토대를 마련”(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소장)했다. 소녀시대는 지난달 미국 유명 음악 전문지 빌보드에서 꼽은 ‘10년 간 최고의 K팝 걸그룹 10’에서 1위를 차지했다. 소녀시대는 걸그룹계의 ‘무한도전’이었다. 소녀시대 활동은 후배 그룹 애프터스쿨과 여자친구의 음악적 모티프가 되기도 했다.
이대ㆍ촛불집회서 울려퍼진 ‘다만세’... 소녀시대의 재조명
국내 최장수 걸그룹이 된 소녀시대는 지난 1년 사이 사회적으로 조명 받기도 했다. 학내 본관 점거 시위를 하던 이화여대생들이 경찰에 맞설 때, 청춘들이 국정농단 비판 촛불집회에 나섰을 때 ‘다만세’를 부르면서다. “‘다만세’의 재조명은 마니아 문화로 여겨졌던 아이돌 음악이 일반 사람들의 삶에 충분히 녹아들 수 있다”(김윤하 음악평론가)는 걸 보여줬다. “‘다만세’는 이제 막 시작하는 그룹으로서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와도 피하지 말고 헤쳐나가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만든 노래”(김정배 작사가)였다.
2014년 제시카의 탈퇴로 위기를 맞기도 한 소녀시대는 7일 발매한 6집 ‘홀리데이 나이트’의 동명 타이틀곡에서 “이제야 완벽해졌어”라고 노래한다. 효연은 SM을 통해 “멤버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소녀시대가 발전해갔다”고 밝혔다. 그렇게 10년을 쌓아 만든 6집을 윤아는 “1집 같다”고 했다. 소녀시대의 ‘다만세’는 다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