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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킹 타계에 지구촌 애도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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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18. 3. 14.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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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우주로 떠났다" 호킹 타계에 지구촌 애도 물결


연합뉴스 2018.03.14 


"아인슈타인 이후 대중을 사로잡은 과학자"
과학계 이어 정치·경영인들 SNS 추모 봇물터지듯
우주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스티븐 호킹 박사[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14일 타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전 세계 과학자들과 지도자들은 곧바로 애도를 쏟아냈다. 미국의 유명 우주론학자이자 이론 물리학자인 로렌스 크라우스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서 "별 하나가 막 우주로 떠났다"며 "우리는 경이로운 인간과 작별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저명한 천문학자이자 카네기 연구소의 웬디 프리드먼 박사도 "그의 공헌은 아인슈타인 이후 아마도 존재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점"이라고 평가했다.

프리드먼 박사는 이어 "그는 일반 사람들을 뛰어넘는 정신의 아이콘이 됐다"며 "사람들은 그가 말한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의 탁월함은 알고 있다"고 했다. 미국 시카고대 우주론자인 마이클 터너 박사 역시 자신의 SNS에 "그는 우리가 질문하려고 애써 왔던 가장 큰 의문에 화두를 던지려고 노력해 왔다"며 그 예로 우주의 탄생과 블랙홀, 시간의 방향 등을 거론했다. 미국의 물리학자인 닐 디그래스 타이슨은 호킹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그가 남긴 발자취 때문에 그의 타계로 지적인 공백이 남았지만 공허하지 않다"고 썼다. 타이슨은 "그 공백은 측정할 수 없는 시공간 구조에 파고드는 일종의 공백의 에너지라고 생각한다"며 "명복을 빕니다. 스티븐 호킹 1942∼2018"이라고 덧붙였다.

호주 왕립천체물리학·슈퍼컴퓨터연구센터의 앨런 더피 박사도 이날 호킹의 업적은 "전설적"이라고 적었다. 그는 이어 "그의 연구 서적들은 많은 과학자에게 영감을 주었고 최신의 과학과 우주적 관점으로 수백만 명을 더욱 풍요롭게 했다"고 설명했다. 세계 각국의 지도자와 경영인, 우주 관련 기구도 각자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애도를 표시하기도 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호킹 교수의 선구적인 업적은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었으며 그의 투지와 강인함은 세계인에게 영감을 줬다"면서 그의 명복을 비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사티야 나델라 CEO도 "우리는 오늘 위대한 사람을 잃었다"고 적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도 이날 트위터에서 "그의 이론들은 우리와 전 세계가 연구하고 있는 우주의 가능성에 관한 빗장을 풀었다"고 그의 공헌을 높이 평가했다. 나사는 "2014년 우주정거장에서 우주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미소중력(무중력)에서 슈퍼맨처럼 계속 날아다니길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호킹의 자녀들은 이날 성명을 통해 부친의 별세 사실을 알리고 "그는 위대한 과학자이자 비범한 인물이었고 그의 업적과 유산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별세…향년 76세[EPA=연합뉴스 자료사진]

'55년간 시한부 인생' 호킹은 죽음·장애 극복의 아이콘

걸출한 우주탄생 이론 넘어 현대의학사에도 보석
"언제 죽을지 몰라 내겐 시간이 소중해" 왕성한 집필·강연


별세한 세계적 이론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는 죽음의 공포와 장애를 극복한 아이콘으로도 기억된다. 14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무려 55년 동안이나 시한부 인상을 살면서 누구보다 찬란한 연구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호킹 박사는 1963년 당시 21세의 나이로 전신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이른바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의료진은 그가 몇 년 뒤에는 숨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호킹 박사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암담한 말을 비웃듯 올해 1월 8일 76번째 생일까지 55년을 생존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이상하게도 호킹 박사의 학문적 성과는 일취월장이었고 곧 지구촌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그는 1965년 케임브리지대 대학원에 진학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연구원과 교수를 거치며 뛰어난 연구성과를 쏟아냈고 1979년부터 2009년까지 영국 케임브리지대 수학 석좌교수를 지냈다.  이 보직은 1663년 전설적인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이 맡은 적이 있는 만큼 호킹 박사는 전설의 계보를 잇는 걸물로 거론됐다.

스티븐 호킹 박사의 업적을 다룬 1976년 신문 [케임브리지 이브닝 뉴스 캡처]

호킹 박사는 눈부신 학문적 성취를 써가는 중에 건강 악화에 신음하기도 했다. 케임브리지대가 2009년 "호킹 박사의 건강이 매우 좋지 않다"며 "병원에서 검사받고 있다"고 밝히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많은 이들이 호킹 박사가 이제는 생을 마무리할 때가 됐다고 마음의 준비를 했으나 그는 이 위기도 극복해냈다.  호킹 박사가 거의 온몸이 굳어버린 심각한 장애를 안고도 극복과 성취를 되풀이할 수 있었던 데는 보조공학의 역할이 컸다.  그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안면에 부착된 센서로 컴퓨터에 문자를 입력하고 이를 목소리로 바꾸는 방식으로 대화했다.  이런 기술이 점점 발전하면서 연구를 수행하고 글을 쓰며 강연을 할 수 있었다.

보조공학의 도움받아 집필.강연에 나설 수 있었던 호킹 박사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호킹 박사는 케임브리지대 응용수학·이론물리학 연구소장을 맡아왔다.  그는 곧 죽을 것 같아 더 열심히 살았노라고 2006년 자신의 질환과 장애에 대한 의견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호킹 박사는 "나는 일찍 죽을 것이라는 예상 속에 내 인생의 대부분을 살았다"면서 "그래서 시간은 나에게 언제나 귀중하다"고 말했다. 그는 "하고 싶은 게 많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지론도 밝혔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저는 시간이 더 소중합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런 신념에 걸맞게 호킹 박사는 최근까지도 노령에도 부지런한 일상을 보냈다. 지난해 존립이 위태로운 자선버스 서비스를 유지하는 지역 캠페인에 참여했고 슈퍼컴퓨터로 우주의 기원을 찾는 COSMOS 연구진도 도왔다. 영국 국민건강보험(NHS)의 민영화를 막기 위해 제러미 헌트 영국 보건장관을 상대로 법적인 조치를 하겠다고 밝히는 등 사회에도 왕성히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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