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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빵소녀' 조작방송 그 후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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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18. 9. 1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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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빵소녀’ 조작방송, 그 후 10년

한국 언론관련 판결 사상 최고 손해배상액, 재판부조차 “악의적인 프로그램”이라 명명했던 희대의 사건을 다시 추적하다

     
미디어오늘  2018년 09월 16일 

정확히 10년 전 오늘, SBS ‘긴급출동SOS24’ 찐빵소녀편 조작방송이 전국에 전파됐다. SBS는 한 소녀가 휴게소에서 임금착취·상습폭행·감금 속에 찐빵을 팔며 고통 받고 있다는 취지의 방송을 내보냈다. 파장은 컸다. 가해자로 지목된 휴게소 여주인은 구속됐고, SBS는 ‘찐빵소녀’를 구출해낸 영웅이 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해당방송을 조작으로 판단했다. 그렇게 한국 언론관련 판결 사상, 3억 원이라는 손해배상 최고액 판결이 나왔다.

이 같은 희대의 사건을 끈질기게 기억해야 언론보도 피해자를 줄일 수 있고 언론계도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방송 10년이 되는 2018년 9월16일에 맞춰 사건을 다시 들춰냈다. 10년 전 방송제작 과정부터 방송이후 소송까지 주요한 사건만 정리했음에도 원고지 60매를 넘겼다. 2018년 언론중재위원회가 발간한 ‘언론관련 판결 분석보고서’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 SBS '긴급출동 SOS24' 찐빵소녀편의 한 장면.
▲ SBS '긴급출동 SOS24' 찐빵소녀편의 한 장면.
사건의 시작

강원도 국도변에 있는 휴게소를 운영하던 윤씨와 그의 아내 김씨 부부는 2004년 5월부터 당시 고1이었던 변아무개씨를 아르바이트로 고용했다. 잔심부름과 허드렛일을 시켰다. 휴게소 근처에 변씨의 이모할머니 집이 있었고, 할머니와 아버지가 있는 집에선 차로 30분 거리였다. 변씨는 처음에 출퇴근하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2007년 8월부터 휴게소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변씨는 여러 차례 휴게소 물품을 절도하며 부부에게 혼이 났고, 가족들에게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그런데 2008년 4월27일 경찰서로 신고가 들어왔다. 여종업원이 학대를 받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이 출동했다. 변씨는 폭행피해 사실을 부인했다. 6월1일에도 신고가 들어왔다. 앵벌이가 의심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특이사항이 없어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SBS ‘긴급출동 SOS24’제작진은 2008년 1월부터 6월까지 총 4건의 제보를 받았다. △찐빵 파는 20대 여자를 봤는데 얼굴에 멍이 있었고 휴게소 주인의 눈치를 봤다 △휴게소에서 호객 행위 하는 20대 여자가 있는데 얼굴에 멍이 있고 몸에 늘 상처가 있다 △휴게소에 찐빵 파는 소녀가 있는데 말이 이상하고 얼굴이 멍투성이다 △휴게소에 찐빵과 감자를 파는 여자가 있는데 얼굴의 반 이상이 멍이 들어있다는 내용이었다. 제작진이 ‘출동’했다. 휴게소 손님으로 가장해 휴게소를 몰래 촬영했다. 2008년 6월25일, 눈의 상처를 물어봤다. 변씨는 “눈이요, 넘어져 다쳤는데, 피가 눈알로 들어가 치료는 받고 있는데, 아직 피가 안 빠져서 그런 거예요”라고 말했다. “여기 멍든 건?” 변씨가 답했다. “술 취한 손님이 오셔서 찐빵이 쉬었다고 시비 걸면서 막 그러다가, 손님 말리다가 손님한테 맞았어요.”  

6월26일. 휴게소 길 건너편에 차량을 주차하고 휴게소 1층 내부를 촬영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부부가 경찰에 신고했고, 제작진은 “촬영 경위를 설명하겠다”며 순찰차량을 따라 파출소로 향하던 중 서울로 도주했다.  

7월3일, 또 다시 휴게소에 손님으로 찾아간 제작진은 부부에게 발각되었고 이후 면담을 진행했다. 부부는 “변씨 눈이 충혈된 건 넘어져서 그런 걸로 들었고, 목에 난 상처는 변씨가 자해를 한 것이며, 나머지 상처는 찐빵을 팔다가 승용차 문에 끼어 난 상처”라고 밝혔다. 그리고 변씨가 휴게소 2층 거실에서 잠을 잔다고 덧붙였다. 변씨 또한 “멍이나 상처는 부부로부터 맞아서 생긴 게 아니다. 목 부분 흉터는 자해로 생긴 상처고 눈 상처는 넘어져 발생했고 얼굴에 난 멍의 일부는 손님과 실랑이를 벌이다 맞아서 생긴 것이며, 가끔 자동차에 부딪히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 당시 제작진은 변씨의 옷에 몰래 녹음기를 설치했고, 이 녹음기로 부부와 변씨 사이의 대화를 녹음했다. 이날 제작진과 동행했던 시민단체 관계자는 “학대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제작진은 7월8일에도 휴게소를 방문했다. 이날은 경찰도 동행했다. 부부가 촬영을 거절하며 항의했지만 촬영은 이어졌다. 당시 경찰은 이날 동행수사와 관련해 “변씨가 지적장애인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보이며, 휴게소 부부가 변씨의 퇴직을 종용했으나 변씨가 거부했다”는 수사보고서를 작성했다.

변씨는 제작진을 향해 “나는 도움을 원치 않는다. 맞은 것도 아니고 장애도 없다. 왜 장애인이라고 하냐”고 따지며 더 이상 자신을 찾아오지 말라고 말했고 심리상담도 거절했다. 하지만 변씨는 7월29일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정신병원 

제작진은 먼저 정신병원을 섭외한 뒤, 변씨의 언니를 찾아가 그때까지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며 “변씨를 휴게소 부부로부터 격리시키면 피해사실을 진술할 것 같다. 병원을 섭외했으니 입원 동의를 해달라”고 말했다. 할머니나 아버지 동의는 받지 않았다. 이후 제작진은 경찰서로 찾아가 129 구급대원에게 언니가 동의했고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제작진은 이어 “휴게소 부부나 변씨에게는 방송국이 개입되어 있다는 말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으며 변씨가 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물리적 방법을 이용해서라도 입원시키려 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129 구급대원은 “제작진이 요구하는 사항은 90년대식처럼 그냥 잡아가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는 납치식이다”라고 항의했다.  

그러나 결국 변씨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선 변씨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했을 뿐, 정신 장애인으로 진단하지 않았다. 제작진은 정신병원을 보낸 지 일주일이 지난 8월4일 변호사, 사회복지사, 정신과 전문의 등을 모아놓고 솔루션 위원회 회의를 열었고, 그곳에서 변씨의 치료가 필요하다고 결론 냈다. 병원에 가둬놓은 뒤 병원에 보내야 한다는 회의를 한 셈이었다.  변씨는 병원 입원 뒤에도 “나는 학대당하지 않았고 멍은 손님이 폭행해 생긴 것이며 다른 상처는 찐빵이 팔리지 않아 자해한 것”이라며 학대사실을 부인하다 8월21일 경 병원 의사에게 “휴게소에서 일하는 동안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했다”는 취지의 편지를 보냈다. 진술은 이 시점부터 변경됐다. 변씨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지 20여일이 지난 뒤였다. 대개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의 ‘제1목표’는 정신병원을 나오는 것이다.

이후 제작진은 9월3일 변씨의 변경된 진술내용을 취재했다. 7일에는 변씨를 정신병원에서 외출시켜 남이섬에서 닭갈비 먹는 장면, 화장품 가게에서 화장품 사고 화장하는 장면 등을 촬영했다. 이후 변씨는 9월9일 강원지방경찰청에 2007년 4월 경 김씨가 휴게소에서 주방용 칼이나 숟가락으로 가슴과 머리를 찌르고 때리는 등 수십 차례 폭력을 행사했고 부부가 그해 8월 자신을 협박해 600만 원짜리 변제각서를 작성 받는 등 임금을 착취했다는 내용의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에 경찰은 9월11일 휴게소를 압수수색해 재킷과 식칼을 압수하고 제작진은 이 과정까지 촬영했다.  


▲ SBS '긴급출동SOS24' 찐빵소녀편의 한 장면.
▲ SBS '긴급출동SOS24' 찐빵소녀편의 한 장면.
그렇게 9월16일 ‘찐빵 파는 소녀 1부’가 30분 분량으로 나갔다. 변씨가 학대를 받고 있어 구제조치를 취했고, 몸에 난 상처는 부부의 가해행위로 인한 것이란 취지였다. 9월30일엔 40분 분량의 2부가 나갔다. 부부가 흉기를 사용해 상습적으로 변씨에게 상해를 가했다는 내용과 함께 병원입원 후 진술변경과 경찰 수사과정을 담았다. 방송의 파장은 컸다. 휴게소 부부 중 아내 김씨는 그해 10월7일 80여 차례 이상 상습폭행 등 혐의로 구속됐다. 제작진은 구속영장 집행 장면도 촬영했다. 그 후 제작진은 10월14일 15분 분량의 3부를 내보내고 김씨 구속과정 및 변씨가 자유로워진 모습을 담았다. 방송에서 변씨는 ‘이세희’란 가명으로 등장했다.


탐정의 등장

방송 이후 이 사건에 개입한 사람이 원린수씨다. 2018년 9월13일 인천에서 원린수씨를 만났다. 원씨는 10년 전 일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원씨는 “담당 검사를 찾아가 관련 증거를 줬으나 검사들은 찐빵소녀에게 성금을 전달했고 내가 찾아낸 증거는 땅 속에 묻혔다. MBC ‘PD수첩’과 KBS ‘추적60분’에 제보했는데 방송도 나가지 않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 무렵 원씨는 ‘그것이 알고 싶다-셜록홈즈를 원하는 사람들’ 편(2008년 10월4일자)에서 능력 있는 ‘사설탐정’으로 소개된 인물이었다. 10월12일, 10월4일자 방송을 시청했던 가족들이 원린수씨를 찾아와 억울함을 호소하며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달라고 의뢰했다. 이에 원씨는 11월22일까지 조사활동을 벌였다.  

모든 여론은 원씨와 휴게소 부부에게 불리했다. 방송 이후 휴게소 부부는 ‘휴게소에서 지적장애가 있는 소녀를 4년간 감금한 채 임금도 주지 않고 막일을 시키며 찐빵을 팔게 한 뒤, 찐빵을 못 팔면 칼과 흉기로 온몸을 찔러 상해를 입히고 외부사람들이 상처를 물으면 자해했다고 대답하도록 교육을 시킨’ 파렴치범이 됐다. 제작진은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해 진실을 이야기하게끔 도와주고 휴게소 주인을 고발해 구속시키고 소녀를 평온한 가정으로 돌려보낸’ 정의의 파수꾼이 되었다.  

휴게소가 있던 지역의 군청은 변씨에게 불우이웃돕기 성금 일부를 전달했고, 춘천지검은 변씨에게 생계비 221만원과 치료비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당시 방송 이후 ‘찐빵소녀 사연 네티즌 뿔났다’(2008년 9월20일자 강원도민일보), ‘SOS 멍투성이 찐빵소녀 학대사실 끝까지 부정한 주인가족 시청자들 분노폭발’(2008년 10월1일자 뉴스엔)과 같은 제목을 보면 당시 여론을 짐작할 수 있다.  


▲ 2008년 9월20일자 강원도민일보.
▲ 2008년 9월20일자 강원도민일보.
▲ 2008년 11월26일자 경향신문.
▲ 2008년 11월26일자 경향신문.

경향신문은 그해 11월26일자 기사에서 “고교 재학시절 ‘독서 많이 하기’ 금상을 차지할 정도로 학구열이 높던 이씨의 불행은 2005년 김씨가 운영하던 휴게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시작됐다”며 “가출한 어머니 대신 할머니와 함께 간경화로 투병 중인 아버지와 동생 2명을 돌보던 이씨가 진학자금 등을 마련키 위해 일자리를 찾은 게 화근이었다”고 보도했다.

원씨의 조사는 순탄치 않았다. 그럼에도 변씨가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해 있을 당시 자해했던 사실을 기록한 간호일지를 확보했다. 원씨는 당시 휴게소에서 일했던 사람, 변씨와 같은 학교를 다녔던 학생들을 찾아다녔다. 정신병원 간호사들로부터도 중요한 증언을 받아냈다. 이 무렵 10월29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휴게소에서 채취했던 혈흔이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감정결과를 강원지방경찰청에 알렸다. 원씨는 자신이 수집한 관련 증거를 검찰이 무시했다고 판단하며 기자회견을 결정했다.


기자회견  

2008년 12월12일 프레스센터에서 SBS 방송이 조작되었다는 취지의 기자회견 전날, SBS PD가 원린수씨를 찾아왔다. 그는 4시간 동안 ‘기자회견을 하지 말라’며 원씨를 회유했다. 방송사와 싸워서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는 내용이었다. 만약 이 순간 원씨가 SBS PD 말을 듣고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어쩌면 표창원보다 유명한 ‘스타 탐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린수씨는 기자회견에 나섰다. SBS제작진과 변씨는 기자회견 전날이던 11일 인천지방검찰청에 원씨를 공무원자격사칭, 변호사법 위반, 협박, 비밀침해,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고발했다. 원씨는 “기자회견을 막기 위해 기자회견 전날 나를 고소했던 것”이라 말했다. 원씨는 “민사소송에서 이기기전까지 방송사만이 진실이었다. 방송의 힘은 엄청났고, 나는 파렴치한 사기범으로 몰렸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2012년 MBC에 출연한 원린수씨.
2012년 MBC에 출연한 원린수씨.
당시 원씨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조사 결론은 이러했다.

①찐빵소녀는 4년 이상 도벽이 있다가 2007년 8월24일 처음 발각되어 확인서를 작성했고, 이후에도 절도행위는 끊이지 않았다. 이는 수개월 간의 통화기록, 찐빵소녀 및 그 할머니가 자필로 작성한 월급 영수증, 함께 아르바이트를 했던 관련자 및 친구의 진술 등에 의해 확인됐다.  

②찐빵소녀 형부의 수사기관 진술에 의하면 찐빵소녀의 잦은 외박 사실을 알 수 있고, 찐빵소녀의 남자친구, 인근 야식집 주인에 의하면 찐빵소녀는 월급을 주로 유흥비 등으로 소비하였는바, 이에 비추어 그 품행은 물론 휴게소에서 4년간 임금을 받지 못했다는 주장은 믿을 수 없다.  

③찐빵소녀가 방송에서 언급한 가출 역시 2007년 4월30일 경 동네에서 빌린 돈으로 망신을 당한 후 집에서 통장과 도장을 훔쳐 남자친구에게 갔다가 트러블이 생기자 휴게소 부부에게 도움을 청해 다시 돌아온 것으로, 찐빵소녀를 감금했다는 것 역시 조작됐다.

④평소 도벽과 거짓말이 능숙해 가족도 외면했던 변씨를 SBS방송이 머리가 모자라는 지적장애자인 것처럼 만들어 마치 세상물정 모르는 지적장애자가 파렴치한 사람에게 4년간 임금착취와 갖은 학대를 당한 것처럼 방송을 조작해 시청자로부터 높은 인기를 얻어냈고 변씨의 도벽과 거짓말을 3년이나 속고 뒤늦게 알아 이를 고쳐주려 했던 부부를 파렴치한 범인으로 만들어 구속시킨 게 이 사건이다.  

원씨의 기자회견을 인용 보도한 언론사는 많지 않았다. 2008년 12월16일 SBS는 원씨를 가리켜 “일방적이고 근거 없는 휴게소 부부의 허위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며 방송 조작설을 유포하고 있다”는 내용의 게시 글을 프로그램 홈페이지 시청자게시판에 올렸다. 이 글은 2010년 12월26일까지 게재되어 있었다. 변씨는 기자회견 당일이던 12월12일 병원에서 퇴원했다.  


벌금 100만원  

모두가 ‘찐빵소녀’편을 잊고 있던 2009년 9월18일, 휴게소 주인 김씨에 대한 형사사건을 심리한 춘천지방법원은 변씨의 일부 폭행사실만 인정해 벌금 100만원의 유죄판결을 선고했다. 인정된 일부 폭행사실은 김씨의 자백 진술에 따른 결과였다. 상습상해, 상습흉기휴대상해 등 나머지 공소사실에 대해선 무죄 판결을 받았다. 앞서 검찰은 김씨에게 징역 5년형을 구형했다. 김씨는 이 판결을 받기까지 6개월 넘게 감옥에 갇혀 있었다. 김씨는 벌금 100만원에 해당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방송과 여론은 김씨에게 ‘사회적 사형’선고를 내렸다.  

“사건의 직접 증거인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 주요 공소사실이 무죄로 판결난 이유다. 예컨대 2008년 3월 경 변씨가 폭행을 못 이겨 휴게소를 빠져나와 집으로 도망쳤다는 진술을 두고 재판부는 “변씨가 그 무렵 280만원을 훔쳐 가족과 갈등을 빚고 있었을 가능성에 비추어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했다. 진술 내용 중 방송 취재 이후에도 변씨가 피를 흘릴 정도로 (김씨가) 폭행했다는 부분 역시 상식적으로 믿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상처 발생 경위 진술은 증거가 부족했다.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진술은 일관성이 부족했다. 현금보관증 등 각종 확인서를 협박에 의해 억지로 작성했다는 진술의 경우 작성 당시 변씨 가족이 참석한 경우도 있었고 대부분의 서면이 변씨가 잘못을 시인하는 가운데 작성된 것으로 보여 믿기 어렵다. 피해자가 휴게소에 감금되어 있었다는 진술 역시 휴게소의 위치, 개방성, 바로 인근에 이모할머니가 살았던 점 등에 비추어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서울고등법원은 2010년 5월14일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고, 판결은 확정됐다. 이 같은 판결내용을 보도한 언론사는 거의 없었다.  


제보전화  

2010년 어느 여름날, 편집국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본지 기자가 넘겨받은 전화 내용은 쉽게 믿기 어려운 단어로 가득했다. 조작방송, 무죄, 정신병원, 혈흔, 국과수, 찐빵소녀, 구속…. 제보자는 “MBC KBS 한겨레 경향신문 아무 곳도 기사를 써주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처음에는 ‘잘못 걸렸다’ 싶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한다고 판단하기에는 구체적이었고 수화기 너머로 억울함과 간절함이 느껴졌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내용이 뒤죽박죽이었다. 만나자고 했다. 지금 사는 곳이 경상도 어디라고 했다. 못 온다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기자가 지정한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로 정확히 찾아와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휴게소 가족과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본지 기자는 아직도 김씨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김씨의 눈은 붉게 충혈 되어 있었고 분노와 불신으로 가득해보였다. 김씨는 이 사건으로 감옥에 갇혀있었다. 180일 넘게. 만약 내가 180일 넘게 억울한 옥살이를 했더라면 나 역시 김씨의 눈빛과 다르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그들은 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들은 SBS 방송 이후 부모와 지인에게조차 외면 받으며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듯 떠나야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다.  


▲ 2010년 취재수첩 일부.
▲ 2010년 취재수첩 일부.
▲ 2010년 취재수첩 일부.
▲ 2010년 취재수첩 일부.
▲ 2010년 취재수첩 일부.
▲ 2010년 취재수첩 일부.
취재를 시작했다. 당시 SBS ‘긴급출동SOS’ 허아무개 제작팀장은 휴게소 가족의 주장에 대해 “가해자들의 정도를 벗어난 흠집내기”라고 주장했다. 허 팀장은 “촬영팀은 경찰의 수사과정을 따라간 것뿐”이라며 “팩트에 대한 방송을 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방송에서 감금이나 가해자란 표현을 안 썼고, 양쪽 주장을 같이 실었다”면서 “(김씨가) 피해를 당했다면 언론중재위원회나 법적 절차를 통해 대응하라”고 밝혔다.

‘찐빵소녀’편을 연출했던 이아무개 PD는 “비록 판결은 났지만 폭력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며 “폭력이 있었음에도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악의적인 편집은 없었으며 사실 그대로 보도했다”고 강조했다. 이 PD는 윤씨와 김씨의 사과 요구에 대해 “이렇게 집요한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변씨와도 통화했다. 변씨는 통화가 이어지자 울며 말했다. “제가 잘못한 거라곤 못 도망친 것, 주변사람에게 알리지 못한 거예요. 집이 잘 살아서 재판에 매달렸다면 결과가 달랐을 거예요.” 통화를 오래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기자는 양쪽의 주장을 담아 2010년 6월15일 이 사건을 기사화했다. 그해 7월1일, 휴게소 가족이 SBS를 형사 고소한 내용도 기사화했다. 그 후 기자는 부끄럽게도 이 사건을 잊고 살았다.


암흑의 핵심  

휴게소 부부는 2010년 11월10일 SBS를 상대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시작했다. 그리고 1심 법원은 2012년 2월23일 선고에서 “이 사건 방송내용은 허위사실일 뿐만 아니라, 제작진이 이미 자신들만의 사실과 결론을 도출하고 줄거리를 구상한 다음 이에 맞추어 취재 및 촬영을 진행하고 줄거리에 맞게 편집해 제작한 악의적인 프로그램”이라고 결론 냈다. 많은 언론이 이 같은 대목을 인용 보도했다. 그러나 이 대목만으로는 이 방송의 문제점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재판부가 판단한 SBS ‘찐빵소녀’편의 ‘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은 이러했다.

①제보 동영상 부분=제작진이 휴대전화로 몰래 촬영한 영상을 마치 제3자의 믿을 만한 동영상 제보인 양 둔갑.

②손님 인터뷰 부분=허위 인터뷰 대상자를 내새워 변씨의 피해상황을 직접 목격한 것처럼 작출.  

③변씨가 몸에 난 상처에 대한 질문을 회피한 채 자리를 피하는 장면=휴게소 주차장에서 손님에게 아이스커피를 갖다 주고 돌아가는 장면을 촬영한 것으로서, 왜곡 편집.

④변씨 얼굴에 난 멍에 대한 김씨의 답변 부분=다른 일시, 다른 내용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임의로 편집해 마치 허위진술하거나 하지도 않은 말을 한 것처럼 작출.

⑤변씨가 김씨 앞에서 연신 굽신대는 장면=실제로는 변씨가 한번 구부린 장면을 연속 재생하는 방식으로 작출해 노예처럼 쉴 틈 없이 일만 한다는 인상을 줌.

⑥김씨가 변씨의 답변내용을 사전에 구체적으로 지시했다는 부분=김씨가 변씨에게 ‘지적장애인으로 몰리지 않으려면 잘 행동하라’고 충고한 대화내용을 왜곡 편집.

⑦선생님 인터뷰 장면=교장선생님 인터뷰를 담임선생님 인터뷰로 왜곡해 김씨가 가해자인 것처럼 몰기 위한 의도로 편집.  

⑧변씨 할머니의 진술 부분=할머니가 인터뷰하면서 변씨를 가리켜 ‘거짓말을 잘하고 집에서도 물건을 훔친다’고 진술했고, 가출 부분도 휴게소 부부측 주장에 부합했지만 인터뷰 내용을 왜곡해 자신들의 주장에 부합하는 부분만 일부 발췌.

⑨정신병원 입원과 솔루션위원회 구제조치=시간순서를 반대로 편집해 신빙성을 높이려 한 악의적 편집.  

⑩정신병원 입원과정=언니의 자발적 요청으로 (변씨가) 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조치했다는 등 실제 사실관계와 다르게 구성.  

⑪변씨의 부위 상처=대상포진으로 인한 상처라고 알렸음에도 김씨와 무관한 상처장면과 변씨의 진술을 동시에 방영해 시청자로 하여금 마치 이 부분 방송 장면의 상처가 김씨의 가혹행위로 인한 것으로 오인할 수 있도록 교묘하게 조작.

⑫대질신문 회피 장면=김씨는 경찰로부터 대질신문을 통보받은 다음날 대질신문에 응했고 제작진 역시 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방송에서는 ‘아직도 대질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으로 허위사실 공표.  

⑬상당기간 감금했다는 내용=제작진은 취재를 통해 변씨의 근무형태, 숙식기간, 외출 여부 등을 모두 확인했음에도 별다른 설명 없이 변씨 등의 진술을 그대로 방영해 상당 기간 감금당했음을 암시하는 화면 연출.  

재판부가 밝힌 변씨의 진술변경 경위는 이러했다.  

①제작진은 실정법인 정신보건법을 위반하며 직계혈족 동의 없이 변씨를 약 4개월 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켰다. 변씨는 정상적인 성인여성이었다. 입원 후에도 변씨 외출은 불가능했다.  

②형부는 면회과정에서 변씨에게 “사실대로 말해주면 좋겠다. 제작진이 도와준다고 한다”고 말해 변씨가 진술을 번복하게 된다.  

③의사가 변씨와 면담하면서 “방송국이 도움을 줄 수 있다. 경제적 도움도 받고 (몸이 아픈) 아버지가 입원하는데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피해사실을 진술할 필요가 있다. 방송에 출연해도 얼굴은 나오지 않고 목소리도 바뀌어서 나간다”며 변씨를 회유했다.

④해당 정신병원은 외부와 단절된 병원이고 병원규칙을 위반할 경우 사지가 묶이는 징계를 받는 곳인데, 실제로 변씨는 병원규칙을 위반해 위와 같은 징계를 수차례 받았다. 이는 위 정신병원이 정상인인 변씨가 지내기 어려운 환경이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⑤변씨는 진술을 변경하기 전까지 정신병원에 갇혀 지내다가 진술을 변경한 이후 2008년 9월8일에서야 제작진과 함께 외출을 나갈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충격적 결론을 내렸다. 

“SBS제작진이 변씨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것은 그 치유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변씨를 압박해 자신들의 의도에 부합하는 진술을 받아내기 위함이었다.”

방송을 위해 한 사람을 정신병원에 보냈다는 이야기다. 변씨도 피해자였다.


사건의 결말  

SBS는 휴게소 가족과 민사소송 과정에서 방송의 공익성, 진실성, 상당성을 주장했으나 모두 배척됐다. 재판부는 SBS가 이 방송으로 약 3억 원 정도의 광고 수익을 올린 점을 고려해 휴게소 가족에게 지급할 위자료 액수를 3억 원으로 산정해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가족이 요구했던 위자료는 10억이었다. 이 사건 판결은 2013년 2월2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긴급출동SOS24’ 프로그램은 2011년 4월 폐지됐다.

▲ 2013년 SBS '긴급출동SOS24' 관련 KBS보도화면 갈무리.
▲ 2013년 SBS '긴급출동SOS24' 관련 KBS보도화면 갈무리.
2010년 6월. 휴게소 가족은 국가와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 3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서울중앙지법은 2011년 12월 휴게소 가족에게 42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SBS로부터 고소를 당했던 원린수씨도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다. 원씨는 SBS시청자게시판을 통해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 SBS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SBS를 가리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원씨를 우리나라 제도상으로는 아직까지 생소한 탐정으로 치켜세우면서 긍정적 면을 부각시켰지만, 원씨의 예리한 칼날이 자신(SBS)을 향하게 되자 이번에는 원씨의 활동을 불법탐정, 공무원자격 사칭 등의 표현을 동원해 비방하는 등 방송의 허위조작 실태를 은폐하고 원씨가 정당하게 제기한 조작설의 유포를 차단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SBS가 이 사건에서 원씨에게 배상한 위자료는 4000만원이었다.  

사건의 결말은 이러했으나 어느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이들은 거의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기자는 8년 만에 다시 잊고 있던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긴급출동SOS24’ 제작팀장이었던 허아무개PD는 최근까지 TV조선 ‘시그널’에서 연출을 맡았다. ‘시그널’은 ‘긴급출동SOS24’와 비슷한 류의 고발프로그램이다. 그는 법원판결에 대한 입장을 묻자 “다음에 통화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찐빵소녀’편 담당PD였던 이아무개PD에게 법원 판결 이후 개인적으로 사과를 했는지 물었다. 그는 “SBS측과 이야기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당시 변씨를 담당했던 정신병원 의사는 “더 이상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제는 성인이 된 변씨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이 사건과 관련해 할 말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부탁했다. 연락은 오지 않았다. 변씨는 2008년 9월9일자 허위 고소장에 따른 무고 혐의로 2011년 9월23일 징역1년 집행유예 2년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혹시, 그래도 법원 판결 이후에 누군가는, 그래도 한 명 정도는 도의적으로 비공식적으로 개인적으로 사과하지 않았을까. 또 다시 아픈 기억을 요구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머뭇거리다 8년 만에 휴게소 주인 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씨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SBS로부터 공식 사과는 전혀 없었어요. 여태껏 가해자 어느 누구 하나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어요.” 돌아온 답변은 절망적이었다. “이 사건을 아는 사람과는 거의 만나지 않아요. TV도 안 봐요. 이제 TV에 나오는 내용을 믿을 수가 없어요….” 조작방송 피해자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아마 여기까지 다 읽은 독자 중에도 여전히 이 방송이 조작됐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방송사가 가진 ‘권력’이다.



원문보기: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4534#csidxad75bbf9917dfd1a0e7b581387ab5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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