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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탐구는 파의 껍질을 벗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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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05. 11. 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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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글을 읽다보면 그가 매우 어렵고 힘든 고통 속에 살면서도 전혀 굴하지 않고 경전연구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가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공자(孔子)나 맹자(孟子)에 의하여 이룩된 경(經)을 주자(朱子)에 이르러 재해석하여 이른바 성리학 체계의 경학(經學)으로 집대성(集大成) 하였습니다. 주자의 성리학을 세상에서는 실학(實學)이라 일컬었으나, 다산 시대에 이르면 성리학을 실학적인 이론이라 여기지 않고 정말로 새로운 이론인 실사구시적이고 실용적인 이론으로 경전을 다시 해석하는 대업을 이룩해냅니다. 사서육경(四書六經)에 대한 232권의 방대한 경학연구서가 바로 그런 학문이었습니다.

경학연구에 임하던 다산의 학문태도를 보면 어떤 경우 경건할 정도로 정밀하고 치밀하게, 때로는 엄숙하게 접근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예(禮)에 관한 경전연구를 귀양살이의 굴욕과 쓰라림 속에서도 하루도 거른 적이 없다. 의리(義理)의 정밀하고 오묘함은 마치 파의 껍질을 하나하나 벗기며 알아낸 것과 같다(吾禮書之工 雖在幽辱困苦之中 未嘗一日間斷 義理精微 如剝蔥皮).”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이 글에서 보이듯, 파의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 안으로 들어가면서 진리를 찾아내는 연구를 거듭했다니, 얼마나 치밀하게 접근했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만 한스러운 것은 내가 깨달은 명언(名言)이나 지극한 의미를 입을 열어 이야기해 줄 곳이 없는 것이지만 다시 어떻게 하겠느냐?”라는 대목에 이르면 그가 얼마나 대화할 상대도 없이 외롭고 쓸쓸하게 고군분투하면서 연구에 몰두했었나를 짐작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연구가 얼마나 큰 의미를 지녔나도 분명히 밝혔습니다. “중국의 진(秦)나라 한(漢)나라 이후 수천년이 지난 지금 수천리 떨어진 요동만 동쪽에 위치한 조선에서 공맹(孔孟)시대의 옛 예(禮)를 다시 파악해본다는 것은 역시 작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했듯이 새로운 철학의 수립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파의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 알맹이를 찾아내려던 다산의 경학공부, 학문은 그렇게 연구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다산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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