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신 공문을 정리해 보면, 첫째, 관련법령 도시철도건설규칙에 '스크린도어'로 정의되어 이 말을 사용하고 있다. 둘째, ‘안전문’은 한자말이고 ‘스크린도어’에 대한 의미전달이 부적합하다. 셋째, 상위기관에서 법령을 바꾸기 전까지 ‘스크린도어’와 함께 ‘승강장 안전출입문’, ‘승강장 안전덧문’ 등의 한국어 사용을 구상 중이라고 한다.
짧은 회신은 우리의 현실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선 서울도시철도공사가 근거로 내놓은 건설교통부령 제412호 ‘도시철도건설규칙’을 보면 제30조의2 (승강장의 안전시설) ①승강장에는 승객의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하여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안전시설을 설치하여야 한다.
1. 안전펜스
2. 전동차 출입문과 연동되어 개폐되는 승하차용 출입문 설비(이하 “스크린도어”라 한다)
[본조 신설 2004.12.4] [시행일 2005.3.4] 라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이 법령을 살펴보면 법령에 버젓이 ‘스크린도어’라는 말뿐만 아니라 ‘울타리’라는 뜻을 포함하는 ‘펜스’라는 외국어도 올라가 있는 것이 보인다. 뜻하지 않게 법령을 읽다 보니 ‘스크린도어’를 ‘안전문’으로 바꿔달라는 요청이 기름으로 얼룩지는 강에서 기름 한 바가지 걷어내는 모습이 아닌가 싶어 서글퍼졌다.
법제처는 지난해 법령의 어려운 한자어, 일본어 투의 용어나 표현, 복잡한 문장이 간결하고 바르게 다듬고 있었는데 또 다른 쪽에서는 어려운 외국어를 법령에 넣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국제시대에 외국의 문화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다 보면 새로운 말도 들어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같은 말을 쓰기 전에 우리는 첫째, 같거나 비슷한 뜻이 있는 우리말은 없는지 찾아보고 둘째 새롭게 만들어 쓸 수는 없는지 알아봐야 한다. 그래도 마땅한 말이 없으면 받아들여 쓰는 게 맞다고 본다.
특히, 사람과 기관의 움직임에 기준이 되는 법령을 만들 때는 더더욱 조심했어야 하는데 이를 게을리하여 만들고 관련 기관은 이를 근거로 ‘당당하게?’ 쓰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문득 지난해 만났던 지방 공무원의 넋두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어려운 한자말을 우리말로 바꾸면 뭐합니까? 위에서 내려오는 문서를 보면 정책, 사업에 뜻 모를 외국어가 넘치는데. 아마 법령도 외국어를 쓸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말은 현실이 되어 있었고 이제 합법적으로 우리말을 짓누르고 있다. 어디 멀쩡한 우리말을 뒤로하고 외국어로 쓰인 법령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이와 함께 ‘안전문’은 한자말이고 ‘스크린도어’의 의미를 전달하기에 부적합하다고 하는데, 그동안 시민에게 ‘스크린도어’라는 말로 무슨 의미를 전달했단 말인가? 또한 ‘스크린도어’은 영어라서 되고 ‘안전문’은 한자말이라 부적합하단 말인가? 아니면 외국인 위해? 외국인은 얼마 되지도 않을 뿐더러 제대로 하려면 문장을 영어로 해야 옳다. 그리고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려면 ‘Platform Screen Door’라는 말을 써야 한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공공기관에서 이런 태도를 보이는데는 국립국어원도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크린도어’를 ‘안전문’으로 바꾸자는 결정은 ‘한글문화연대’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아니라 국립국어원에서 2004년 7월 27일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www.malteo.net)에서 두 번째 순화대상으로 ‘스크린 도어’를 뽑아 우리말 6개(‘살피문’ ‘차단문’ ‘울타리문’ ‘안전문’ ‘안전담’ ‘안전울’)를 놓고 투표(21~26일)하여 39%(183명)를 얻은 '안전문'이 순화 용어로 뽑은 말이다.
물론 ‘우리말 다듬기’는 짧은 기간에 적은 사람들이 뽑은 말이라는 지적이 있으나 국립국어원은 결정하여 발표까지 했으니 널리 쓰이도록 힘써야 마땅했다.
전철을 탈 때마다 들리는 이 말을 국립국어원 직원도 들었을 텐데 시민단체인 ‘한글문화연대’가 듣다못해 이제야 공문을 보내고 이러한 회신을 받고 있으니 이 또한 답답할 노릇이다.
이외에도 상위기관에서 법령을 바꾸기 전까지 ‘스크린도어’와 함께 ‘승강장 안전출입문’, ‘승강장 안전덧문’ 등의 한국어 사용을 구상 중이다 라는 말과 관련해 ‘계획’이 아니고 ‘구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뜻은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안전덧문’이라는 말이 눈에 띄어 국립국어원 누리집(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표준국어사전에서 ‘덧문’을 찾아봤다. ( http://www.korean.go.kr/06_new/dic/search_input.jsp )
덧-문 (-門)
[ 던-]
「명」「1」문짝 바깥쪽에 덧다는 문. ¶덧문을 닫다/아무리 한여름이라 해도 과년한 처자가 있는 방의 덧문은 밤에 활짝 열어 놓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최명희, 혼불≫§ 「2」=겉창.
‘덧문’은 쓰임새로 보아 ‘Platform Screen Door’을 대신 할 수 있는 좋은 우리말이다. 국립국어원도 ‘우리말 다듬기’에 바꿀 말을 투표에 부치기 전에 충분히 찾아보고 의미를 달아줬다면 ‘서울도시철도공사’의 ‘항변'(?)에 시원스럽게 말해줬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와 관련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널리 쓰이는 외국어를 하나하나 찾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오기 전에 다듬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말과 글은 공기와 물과 같다. 즉 말은 공기와 같아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늘 함께 있고 글은 물과 같아서 눈에 보이며 지식의 바탕으로 흐른다. 물과 공기가 우리 육체의 바탕이라면 말과 글은 정신의 바탕이다.
이제 말 공장, 글 공장에 정화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하고 잘 지키면 상을 주고 기준을 어기면 벌을 주어야 한다. 그런 뜻으로 만든 ‘국어기본법’이 있지만 아는 이도 많지 않고 꼼꼼하지도 못하며 잘못해도 벌을 주지도 못한다.
신문, 방송, 공공기관에도 관련 조직이 있으나 한쪽으로 떼놓아 일을 담당하기에 버거워하고 있다. 하루속히 ‘국어기본법’을 강화하고 정부기관, 공공기관, 언론사, 방송사, 출판사, 포털사이트, 일반기업 등의 조직마다 말글을 다듬는 조직을 만들고 이들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아울러 정보화시대 맞게 매연저감장치 같은 우리말 다듬는 시스템을 개발하도록 한글 정보화에도 관심을 둬야 한다.
이와 함께 정부, 공공, 언론, 방송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우리말 지킴이로 세워야 한다. 말과 글을 이끄는 정부, 언론, 방송,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우리 문화의 우수성, 말과 글의 중요성을 바르게 알게 하고 이들이 책임감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그들의 외래어 남용실태, 그로 말미암아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영어 오남용을 통해 문화와 경제에서 얻는 것은 무엇이고 잃는 것은 무엇인지 알도록 해야 한다. 그들이 깨어나지 않으면 밀려오는 외국어 바람 속에 우리말 지키기 운동은 버겁기만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말 지킴이들이 쉽게 외국어를 다듬어 쓸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즉 새로운 말이나 외국어를 우리말로 쓰고 싶을 때 누구라도 연락하면 많은 전문가와 우리말 지킴이들이 조직적으로 참여하여 처리해주는 ‘우리말 상담소’가 있어야 한다.
지금도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우리말 다듬기’, ‘국어상담소’, ‘가나다 전화’가 있으나 이들의 지원하는 제도적인 뒷받침은 턱없이 부족하다.
외국어와 한자를 뒤로하자는 말이 아니다. 당연히 배워 그들과 이야기하고 문화를 받아들이고 전해야 한다. 그리고 역사도 알고 이를 바르게 세워야 한다. 하지만, 우리 문화의 바탕인 우리 말과 글도 사랑하자.
훗날 말과 글 다듬는데 상상하기 어려운 돈과 시간을 들이기 전에…. 환경정책과 출산정책을 통해 우리는 배울 만큼 배웠잖는가? 우리말과 글, 더 망가지기 전에 챙겨야 한다. <국정넷포터 김영석 (20160418@Par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