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기도의 오묘한 道, 게슈탈트적 지각
게슈탈트(Gestalt)는 우리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지각할 때 떠오르는 어떤 형태(모양)를 말한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현재에는 독자적인 학문으로 연구되고 있진 않으나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친 중요한 발견이었고 독창적인 연구 분야였다. 게슈탈트 심리학의 가장 기초적인 단계의 논의 중 이른바 ‘착시’ 라고 불리는 현상들이 있다. 검정 바탕의 회색은 흰색 바탕의 회색보다 밝아 보이고, 루빈의 컵은 마주보는 사람의 얼굴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거의 모든 인쇄물이 그러하듯,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웹사이트의 모습도 확대해 보면 형상을 알아보기 어려운 수많은 픽셀들의 조합이고, 우리가 보는 영화도 착시 효과에 기댄 수많은 정지 장면의 연속이다. 우리는 사물을 서로 다르게, 혹은 사실과 다르게 보는 것일까? 식탁 위의 접시가 완전한 원으로 보이는 경우는 없는데 어떻게 원으로 지각할까? 왜 흰종이는 그 위에 붉은빛을 비추더라도 하얀색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게슈탈트가 사람마다 다른 방법으로 지각되기 때문이다.
게슈탈트라는 말은 형태나 모양을 의미하는 독일어에서 유래했다. 영상 인식의 게슈탈트 이론의 주창자인 독일의 심리학자 막스베르트하이머(Max Wertheimer)는 기차의 불투명한 벽과 창문 프레임이 부분적으로 자신의 시야를 가리고 있는데도 바깥 경치를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눈이 단순하게 모든 영상 자극을 받아들이고 뇌는 이러한 감각을 일관된 이미지로 정리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예컨대 여성의 얼굴은 달빛 아래서 가장 예뻐보인다. 희미하게 보이면서 단점이 가려지기 때문이다. 챙이 큰 모자를 쓰면 모자가 햇빛을 차단하고 얼굴이 역광선을 받아 예뻐 보인다. 그리고 40m 정도 거리를 두고 보면 0.3 정도의 시력밖에 되지 않아 나쁜점이 좋은 모습에 가려져 예뻐보인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게슈탈트 법칙'이라고 한다.
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는 원래 한국을 배경으로 해서 만들어졌다. 법주사 팔상전을 모델로 해서 7층탑의 꼭대기에 있는 보물을 얻기 위해 각 층마다 있는 무술 고수들을 꺾어나간다는 내용이었다. 이소룡이 한국의 추운 날씨에 적응하지 못해 40분가량만 촬영한 채 철수해버리고, 이후 돌연사를 당해 대역 짜깁기 <사망유희>만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만약 지금 이소룡이 되살아나 한국의 무술 고수들과 대결을 펼친다면 어떻게 될까? 7층은 턱도 없고, 63빌딩 정도의 규모는 갖춰야 할 것 같다. ‘화상고’ ‘북두신권’ ‘따귀맨’ 등 황당무계한 무도인들이 너나할 것 없이 도전장을 던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싸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안 될 것 같기도 한’ 무술이 있다. 바로 <개그 콘서트>의 ‘같기도’다.
“우리 같기도는 말이여. 춤을 이용한 절대 무공이여. 그렇지만 춤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같기도여.” 터무니없는 동작으로 등장한 ‘같기도’의 사부 김준호와 두 제자 홍인규, 이상구는 얼토당토않은 무술로 교묘한 몸 장난과 말장난을 이어간다. 그들에게 삶은 항상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지점에 있다.
무도인은 언제나 방심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옷을 갈아입을 때는 어떻게 하나? 같기도로 하면 된다. “이건 벗은 것도 아니고, 입은 것도 아니여. 애매하지.” 인생은 언제나 행복과 불행을 함께 안겨다준다. 같기도는 일상생활에서도 활용도가 높다. “이건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니야.” 입은 웃는 듯 벌리고 눈은 우는 듯 찡그린다. 당연히 제자들의 태도는 “예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싸가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 제자들에 대해 스승은 “칭찬하는 것도 아니고 때리는 것도 아니”다.
'같기도'는 '짝퉁의 억압'이라는 배경에서 나오는 웃음이다. 이미 온라인상에서는 이와 관련된 유머가 많이 나왔다. 푸마, 임마, 파마…. '같기도'의 웃음은 또, 애매한 것이 통하는 집단과 확실한 것을 요구하는 집단사이에서의 갈등이라는 배경에서 나오는 웃음이다. 산업화시대에도 그런 갈등이 있었겠지만 정보화시대에 들어서는 산업화 시대와는 한차원 높은 갈등이 생겼다. 확실한 것이 곧 애매한 것이 되었으니. 같기도도 그렇고 마빡이도 그렇고, 왜 웃기는지, 왜 인기를 끄는지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들의 합리적 사고 패턴은 언제나 ○냐 ×냐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도 아니고 ×도 아닌 교묘한 중간치로 약삭빠르게 빠져나가는 이 지점이 뇌신경을 흔들며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개그에는 논리적인 예측을 벗어나가는 아이러니의 트릭이 뼈대를 이루고 있지만, 확실한 태도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비굴하지만 영리하게 빠져나가는 소시민 정서의 공감대도 잘 어우러져 있다.
시청자들은 이 코너를 볼 때마다 어정쩡한 상황에 배꼽을 잡아쥔다. 처음엔 두루뭉술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몰랐던 시청자들은 연속적인 ‘같기도’ 상황에 결국 웃음보를 터뜨리고 마는 것이다. 이는 ‘예’와 ‘아니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길들여진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생활에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하나의 해법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청자의 공감대를 얻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실제 상황에선 써먹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말함으로써 박쥐처럼 비난받더라도 오래 살아남기를 바라는 직장인과 소시민의 심리적 정서를 이 코너가 은연중에 대변하고 있다. ‘같기도’ 는 결국 인간관계에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담보하는 용어인 셈 이다.
정치권에서도 ‘같기도’를 이용해 상대방을 은근히 공략하고 있다. 원색적인 ‘비난’보다 은유적인 ‘비꼼’으로 상대 공략과 자기 방어를 동시에 구현하는 전략을 모색하는 것이다. 한나라당 의원은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발의와 관련해 “대통령이 임기내 개헌하자는 것 같기도 하고, 안 하자는 것 같기도 하다. 또 대선 후보들은 차기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하자는 것 같기도 하고, 안 하자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해 상대의 원칙없는 발언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발언 무게를 최소화하는 전술을 사용했다.
‘같기도’ 코너는 최근 동작(무술)을 이용한 상황 연출에 이어 비슷한 노래를 잇는 ‘같기송’을 선보이고 있다. 가령 ‘전국노래자랑’의 같기송은 이렇다. ‘빠빠빠 빠빠 빠바∼’(오프닝곡)로 시작하다 바로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기는 왜 울어’(‘캔디’ 주제곡)로 변주된다. 가만히 듣다 보면 재치 넘치는 아이디어의 산물인 것 같기도 하고, 대중음악계에 만연한 표절 시비에 대한 경종 같기도 하다.
‘같기도’에 대한 인기는 원칙없는 사회, 신뢰없는 인간 관계, 소신없는 지도자의 모습이 우리 생활에 투영되면 될수록 덩달아 치솟을 듯하다. “이건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진지한 것도 아니여.”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도를 도라고 하면 이미 도가 아니오. 이름을 이름이라고 하면 이미 이름이 아니다)이라고나 할까? 그런고로 같기도의 道는 게슈탈트다. 심리학적으로도 게슈탈트적 지각과 매우 관련있어 보인다. 직감적으로 혹은 직관적으로는 알 수 있는데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참 힘들다. 일단은 게슈탈트 이론으로 설명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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