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 겐테가 본 신선한 나라 조선, 1901
지그프리트 겐테 지음
권영경 옮김
도서출판 책과 함께
지그프리트 겐테는 1870년 베를린 태생으로 지리학 박사이며 쾰른신문사 기자였다. 1898년 첫 발령지 워싱턴을 시작으로 사모아, 모로코, 중국 등 당시 유럽 열강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분쟁지역을 주무대로 왕성하게 취재활동을 했다. 1900년 가을 중국에 파견된 그는 북청사변 현장을 취재하고 1901년 6월 조선에 들어왔다. 그의 조선 여행기는 1901년 10월부터 1902년 11월까지 쾰른 신문에 연재됐다.
지그프리트 겐테는 제주와도 각별한 인연을 지닌다. 그가 백인으로는 최초로 한라산을 등정했고 한라산의 높이를 1,950m로 측정했기 때문이다. 조선 여행에 나선 그는 어렵게 제주에 와 한라산에 오른 뒤 한라산 높이를 처음 확인했다.
이전에 조선을 다녀갔던 여행가들이 기독교적 시각에서, 혹은 극히 피상적인 경험으로 조선인을 야만인으로 취급하면서 여행기를 썼다면 겐테는 동서양의 문화차이를 인정하고 조선을 '신선한-조용한 이 아니라-아침의 나라'로 묘사하면서 조선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따뜻한 시각으로 그려냈다. 일부 한중일간의 관계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 부분은 당시 중국과 일본이 일찍 개방돼 중국·일본 중심의 역사가 널리 퍼져 있던 관계로 이해할 수 있다.
그가 제주에 들어와 뗏목으로 옮겨 타면서 짐꾼을 보고 느낀 첫 인상이다. "여기서 처음 흰옷을 안 입은 조선사람을 보았다. 한결같이 검은 색이나 붉은 갈색의 삼베옷을 입고 있어 인상이 유난히 섬뜩하고 무뚝뚝해보였다" 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당시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한라산 등정에 나섰다.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원시림을 이루고 있고 길도 전혀 나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온갖 어려움을 뚫고 마침내 한라산 정상에 섰다. 그 순간을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사방으로 웅장하고 환상적인 장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섬을 지나 저 멀리 바다너머로 끝없이 펼쳐지는 파노라마였다"
그는 갖고 있던 두개의 아네로이드 기압계로 신중하게 측정해본 결과 분화구 맨 가장자리 높이는 해발 1,950m을 확인했다.
그는 또 이렇게 기록했다. "250년전 난파된 네덜란드인들(제주에 표류했던 하멜 일행을 말함 : 필자주)이 처음 보았던 이 산을 이제 너는 온갖 인내와 끈기로 그 정상에 올랐다. 몇몇 유럽인들이 지나가면서 들렀던 섬, 너 이전에 아무도 오른 적이 없는, 여기 넓은 바다 위의 신기한 화산을 너는 스케치하고 사진으로 남기며, 또한 고도를 측량하지 않았는가"라며 자화자찬하고 있다.
겐테가 제주성의 서문을 나와 한라산에 올랐던 길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오백장군'을 지났고, 가파른 암벽을 타고 정상에 올랐다고 기록돼 있는 것을 보면 지금의 영실 쪽으로 올라가 백록담 서북벽을 타고 정상애 올랐던 것으로 유추된다. 한라산 정상후 겐테는 약속했던 증기선이 돌아오지 않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제주에 더 머물면서 이런저런 풍습을 체험했다. 겐테는 3주동안 제주에 머물다가 폭풍우 속에 출항했다가 1주일만에 어렵사리 목포항에 도착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겐테의 조선여행기는 중국 서해안을 거쳐 제물포로 들어온 뒤 강원도 내륙과 금강산을 횡단하고 서울에 머물렀다가 제주 여행에 나서는 일정으로 돼 있다. 그는 이 여행에서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서구인에게 잘못 알려진 조선에 대한 선입견을 경험과 연구를 통해 수정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도적 혹은 백인우월주의적 시각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부정적 편견을 배제하고 구체적 자료를 토대로 명확하고 객관적으로 조선을 이해하려 하고 있다.
겐테가 제주도로 향한 시기는 제주에서 천주교인과 주민들 간의 충돌로 많은 사람들이 학살됐던 '이재수의 난'이 일어난 직후여서 민심이 혼란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한라산 등정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무한한 모험심과 작가 특유의 타문화를 이해하려는 열린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겐테가 그의 여정과 생각을 차근차근 따뜻하고 열린 마음으로 적어내려간 이 책을 통해 100여년전 제물포에서 시작해 한라산에 이르기 까지 시간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조선여행을 마친 그는 분쟁지역인 모로코에 특파됐다가 실종된다. 1903년 쾰른신문에는 겐테박사가 3월 8일 평소 다니던 길에서 돌아오진 않다라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고, 1년후인 1904년 3월 8일 실종장소에서 멀지 않은 페스 강변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이후 대학 친구이자 쾰른신문 동료 기자였던 게오르크 베게너에 의해 겐테의 여행기와 저서가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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