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대학 캠퍼스에 광고를 내고 36명의 여성을 실험에 참가하게 했다. ‘당신의 인생을 로맨틱하기 만들어줄 약’이라고 사전에 홍보하고 상용화된 ‘사랑의 묘약’인 페로몬이 들어 있는 액체를 나눠준 뒤 각자 뿌리게 했다. 그리고 3주 뒤에 이 페로몬으로 인해 이성교제에 변화가 있었는지를 추적 관찰했다.
이 경우 과학적인 검증을 위해 36명의 피험자 가운데 절반에게는 플라세보, 즉 페로몬이 들어 있지 않은 위약을 나눠줬다. 만일 ‘이 약은 분명히 효과가 있다’는 기대심리가 작용해 성적 활동이 늘어났다면, 이 위약을 받은 여성들이나 페로몬이 들어 있는 액체를 받은 여성들이나 만족도가 비슷할 것이다. 정말 페로몬에 효과가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이런 플라세보 실험은 필수 코스!
이 실험에 사용된 ‘사랑의 묘약’인 인간 페로몬은 젊은 여성의 겨드랑이에서 분비되는 물질을 솜에 묻혀서 모은 것이다. 겨드랑이에서 모았으니 이상한 냄새가 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페로몬은 원래 무취다. 이 분비물에 들어 있는 화학물질들의 주성분을 분석해 알아낸 뒤 그것을 한 종류씩 합성해서 만든 약을 상용화한 것인데, 이 약을 실험에 사용한 것이다. 이 약을 만든 사람은 미국의 생물학자 위니프레드 커틀러 박사. 그는 이 인간 페로몬의 제조법에 대해 특허 신청을 해놓은 상태라 아무도 그 구체적인 성분을 알지 못한다.
그 브랜드 자체는 구입할 수 있다. 미국 펜실베니아주 체스터 스프링스의 ‘아테나 연구소’(Athena Institute)에서 인간 페로몬 포뮬러 ‘아테나 페로몬 10:13’이란 상표로 이미 팔고 있다. 27달러(2만5천원)에서부터 100달러(9만원)까지 가격도 다양하다. 남성용·여성용 등 성별에 따라 페로몬 제품이 따로 나와 있으며, 그중 ‘ALter Ego’라는 제품은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3주 뒤 결과는 어땠을까? 그들은 상용화된 페로몬을 뿌린 3주 동안, 애인과의 애무, 키스, 애인과의 섹스, 미리 약속한 데이트, 갑작스런 데이트, 남성의 접근, 자위 행위에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다. 갑작스런 데이트는 늘어나지 않았고, 남성이 접근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자위 행위에 몰두하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애인과의 애무와 키스, 섹스 그리고 미리 약속한 데이트는 현저히 늘어났다. 다시 말해 상용화된 페로몬 제품을 뿌리면 낯선 남성들이 줄줄이 따라오는 효과는 없었지만, 이미 사귀고 있던 남성이 있다면 그와의 관계는 한층 더 깊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와 오빠 냄새는 싫어 인간의 페로몬은 오랫동안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으며 그 존재조차 확신하지 않는 분위기였지만, 최근 꾸준히 관심이 깊어지고 있으며 이제는 그 존재를 증명할 만한 증거도 꽤 쌓인 편이다. 일본의 저명한 행동유전학자인 야마모토 다이스케가 쓴 <남자와 여자는 왜 끌리는가>에 따르면, 페로몬(pheromone)이란 ‘흥분을 옮기는 것’이란 뜻으로, 그 존재는 누에나방 암컷이 수컷을 유혹할 때 봄비콜(Bombykol)이란 물질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밝혀낸 <네이처>에 발표한 것이 세계 최초였다고 한다.
현재 아테나 연구소에서 팔고 있는 남성용 페로몬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을 암퇘지에게 뿌리면 곧바로 교미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페로몬을 이용한 유명한 실험이 하나 있는데, 치과 대기실 의자에 남성용 페로몬을 뿌려두고 남성과 여성 내방객들의 반응을 관찰한 보고가 바로 그것이다. 연구 결과 여성 내방객들이 남성용 페로몬을 뿌리지 않은 의자보다 페로몬을 뿌린 의자에 훨씬 더 많이 앉더라는 것이다. 실제로 냄새는 거의 없는데도 말이다. 다시 말해 남성의 겨드랑이에서 추출한 남성용 페로몬은 남성에게는 잘 인지되지 않지만, 여성들에게는 이를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들 사이의 사랑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페로몬의 진정한 역할은 무엇일까? 아직 그에 관한 연구는 미약하기 짝이 없지만, 1995년 베른대학의 클라우스 웨더킨트 박사가 했던 독특한 실험은 우리에게 이 문제에 대해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는 44명의 남자에게 면 티셔츠를 이틀 동안 입게 했다가 벗긴 뒤에, 얼굴을 모르는 49명의 여성들에게 44벌의 티셔츠 냄새를 맡게 했다. 그리고 호감이 가는 냄새를 조사했다. 이 엽기적인 실험은 실험 자체로 과학계에서 단번에 유명해졌는데, 그 결과는 더욱 흥미롭다. 여성들은 자신과 유전자형이 다른 남자의 땀 냄새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한결같이 “내가 좋아하는 이 셔츠의 냄새는 지금의 내 남자친구 (혹은 예전의 남자친구)를 생각나게 한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관심이 없는 티셔츠에 대해서는 아버지나 오빠의 냄새가 났다고 했다.
그들은 이 실험 결과를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설명한다. 서로 다른 유전자가 섞여야 유전적인 결함이 줄어들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더 강한 후손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인간들은 이런 물질을 땀을 통해 배출함으로써 자신의 유전자를 상대에게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성은 자신과 유전자형이 다른 이성에게 끌리게 되고 이로 인해 유전자 교배가 활발해지고 유전적 결함도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인상’이 화학물질의 결과?사람들 중에는 크게 예쁘거나 잘생기지 않아도 왠지 호감이 가고 성적으로 끌리는 사람이 있다. ‘러브 포션’과 같은 인간의 페로몬을 연구하는 ‘어떤’ 과학자들은 이런 ‘좋은 인상’이 화학물질의 교류에 의한 생물학적인 반응일 것이라고 믿는다. 과연 사람이 만나고 사랑에 빠지는 일에 이들 페로몬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페로몬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남 몰래 흐르는 눈물>로 유명한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약장수가 여자 주인공인 아디나에게 말하길 “그를 사랑하게 되었군! 당신도 내 약을 사시구려”. 그러자 그는 “저에게는 그 약이 필요치 않아요. 제 환한 미소와 웃음이 바로 사랑의 묘약이랍니다”. 과학자는 그녀의 웃음 뒤에 화학물질이 숨어 있다고 믿는 듯싶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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