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 많은 요리 방법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으로 나누면 딱 아홉 가지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무침, 볶음, 튀김, 조림, 곰, 구이, 찜, 절임, 국이나 탕 등. 그래도 그것들을 발전시키고 변형시켜서 무려 마흔 여덟 가지를 만들어냈으니 대단한 사람들인 것만은 분명하다.
아무튼 음식 만드는 것은 그렇게 우리가 뒤지는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가 훨씬 앞서는 게 있다. 그건 음식을 맛보고서 할 때 쓰는 말들이다.
우리에겐 '꼴까닥' '꿀꺽' '꿀꺼덕'이라든지 '후루룩' '후르르' '홀짝'이란 말이 있다. 그건 국수나 국물 같은 것을 들이마실 때 하는 말들이다. 또 무언가를 가볍게 씹을 때 하는 말로는 '자근자근' '지근지근'이라는 말이 있다. 과일이나 채소 같은 것을 씹을 때는 '아삭' '아삭아삭' '어석어석'이라고 하고, 또 단단하고 질긴 것을 씹을 때는 '옴질옴질' '움질움질' '오독오독' '우둑우욱' '불겅불겅'이란 말들을 곧잘 하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맛깔스런 음식을 맛보고서는 또 어떻게 말하는가. 그저 '맛있다' '좋다'라고 단 두 가지 말만 하는가. 그렇지 않다. '개운하다' '산뜻하다' '구수하다' '시원하다'는 등 여러 가지 말을 한다. 또 밥 하나만을 두고서도 '고슬고슬하다' '구슬구슬하다' '고들고들하다' '꼬들꼬들하다'는 등 여러 가지 말을 쓰지 않는가. 이 얼마나 자랑스런 말들인가.
그런데 그것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2003년에 '우리말글작가상'을 수상한 장승욱 씨가 펴낸 <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하늘연못·2004)라는 책을 보면 훤히 알 수 있다.
▲ 책의 겉그림 | |
ⓒ2004 yes24 |
한자말 낙과(落果)가 바로 우리말로 '도사리'이다. 꽉 차지는 않았으나 나름대로 덜 떨어진 것 같으면서도 제 멋과 맛을 담고 있는 말들, 그것을 일컬어 '도사리'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런 말들을 찾아 장승욱씨가 지방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뒤지고 묻고 옮겨 적어 사전 이것저것들과 비교해 가며 썼으니 얼마나 보람되고 값진 일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여기에는 '생활' 속 도사리들을 비롯해 '세상'과 '자연'과 '사람' 그리고 '언어' 속에 널브러져 있는 도사리들을 맘껏 맛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맛도 맨송맨송하거나 노리끼리한 구린내 나는 게 아니라 배가 꼬르륵 꼬르륵 출출할 정도로 허천나게 맛난 것들이 널려 있으니, 잘근잘근 와드득와드득 후루룩 쩝쩝 맛보지 않으면 머지 않아 배를 쥐어잡고 몹시 후회하지 않을까 싶다.
그 도사리들 가운데서 무지 재미있고 새로운 것들 몇 가지만 소개해 본다. 우선 '집들이'와 '집알이'가 있다고 한다. '집들이'는 흔히 알고 있는 대로 새 집에 이사했을 때 찾아가서 축하해 주고 맛깔스런 음식들을 먹는 게 '집들이'이고, '집알이'는 찾아가는 사람들 입장에서 집 구경 겸 인사로 가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또 '배낭'을 우리말로 뭐라고 하면 좋을까. 그건 우리말로 '멜가방'이라고 한단다. 그리고 그 가방에는 '끌가방'도 있고 '들가방'도 있다고 하는데, 외국 여행 갈 때 많이 쓰는 바퀴 달린 트렁크를 앞으로는 '끌가방'이라고 부르면 좋을 것 같다.
'길섶'이란 말은 다 알 것 같다. 길가를 그렇게 부르기 때문이다. 그럼 '강섶'은 강기슭이나 강줄기 옆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강변의 고수부지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그에 대해 장승욱씨는 '둔치'보다는 '강턱'이 더 걸맞은 말일 것 같다고 한다.
또 '어릿광대'와 '정작광대'가 있다고 한다. 어릿광대는 모두 아는 말 같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진짜 광대가 나오기 전에 한 판 멋지게 어우르는 역할을 맡은 광대가 '어릿광대'다. 그렇다면 '정작광대'는 무엇일까. 그건 어릿광대가 한 판 지나고 나서 진짜 재미나고 웃기는 판을 벌이는 광대를 일컫는 말이다. 텔레비전에 빗대본다면 어릿광대는 예고편이고 정작광대는 본 방송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무지 궁금했던 것이 있었는데, 이 책에서 그 답을 속시원하게 풀어 준 게 있다. 그건 '홀아비'와 '홀어미'의 반대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걸 장승욱 씨는 '핫아비'와 '핫어미'라고 하고 있다. 앞가지(接頭語) '핫-'에는 핫바지나 핫저고리에서처럼 '솜을 두어 만든 것'이란 뜻도 있지만 '배우자를 갖추고 있다'는 뜻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핫아비'와 '핫어미'라고 한단다. 알고 나니 속이 확 풀린 기분이었다.
또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 사이를 일컫는 말로는 '팍내' '한솔' '가시버시' 같은 도사리들이 있다고 한다는데, 장승욱씨는 '한솔'이란 도사리만큼은 꼭 기억해 둘 만한 도사리라고 꼬집고 있다.
그런데 장승욱씨는 사전마다 다르게 표기하고 있는 말 하나가 있어서 무척 씁쓸하다고 한다. 그건 '한낮부터 해질 녘까지를 둘로 나눈 그 앞부분의 동안'을 일컫는 '낮곁'과 '사람이 별로 가지 않는 외진 곳'을 일컫는 '도린곁'이란 말이 그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전에는 '낮곁'이 '낮결'로 또 '도린곁'이 '도린꼍'이나 '도린결'로 나와 있다고 한다. 그러니 어느 사전을 따라야 할지, 장승욱씨도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다고 한다.
"참고로 북한에서 나온 사전들, 과학원출판사의 『조선말사전』이나 사회과학원언어학연구소의 <현대조선말사전>은 모두 '낮곁'과 '도린곁'을 바른 표기로 삼고 있다."(419쪽)
아무튼 '간행물윤리위원회 선정 청소년 권장도서'이기도 하고, 겨레얼 4793가지나 담겨 있는 우리 토박이 도사리 말들이 담겨 있는 <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 겨울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이때 모두들 이 책 한 권쯤 책꽂이에 꽂아두고 곶감을 먹듯 야금야금 냠냠이대면 어떨까 싶다. 그럼 무지 좋은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냠냠한다'는 아이들이 쓰는 말로 무엇을 먹고 난 뒤에 부족해서 입맛을 다시며 더 먹고 싶어한다는 뜻이다. 냠냠은 맛난 음식, 냠냠이는 먹고 싶은 음식을 가리키며, '냠냠이댄다'는 말은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는 뜻으로 쓰인다."(62쪽)
우리말속 외래어 (0) | 2008.01.14 |
---|---|
나라말 지키기 서명운동 (0) | 2008.01.11 |
국어 잘하는 신입사원이 일도 잘한다? (0) | 2007.11.06 |
‘마이동풍’ 국립국어원 (0) | 2007.11.06 |
한자고유명사 표기 논란 (0) | 2007.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