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도련님 부자만들기 마술쇼
12년 만에 재산을 1000배 불린 비밀…
‘편법 증여’ 아닌 회사 재산 싼값에 빼돌리는 ‘불법 횡령'
<한겨레>
이재용(39) 삼성전자 전무가 아버지인 이건희(65) 삼성 회장에게서 60억8천만원을 물려받은 건 1995년 12월이다. 그의 나이 27살 때였으며,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 회장직에 오른 지 10년째 되는 해이기도 했다. 이 전무는 증여받은 돈 가운데 16억원을 세금으로 냈다. 실제로 물려받은 돈은 44억8천만원이었던 셈이다.
연봉은 많아야 100억, 벌인 사업들은 실패…
그로부터 12년 만인 2007년 11월 현재 그의 재산은 수조원대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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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4월 발간된 월간 경제전문지 <포브스 코리아>와 지분변동 정보 제공업체인 ‘에스앤제이’(옛 에퀴터블)의 자료를 보면, 올 1월20일 현재 이재용 전무의 주식 평가액(비상장회사 지분가액 포함)은 1조7286억원으로 국내 주식 부자 5위였다. 하지만 이는 주식의 시가평가액만 따진 것이다. 삼성에버랜드(이재용씨의 지분 25.1%)를 통해 그룹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그의 입지로 보아 이미 대한민국의 최고 부자는 이 전무라는 데 별 이견이 없다. 그의 실제 재산 가치는 4조원 안팎, 많게는 10조원에 이른다는 얘기도 있다.
이 전무의 재산을 중간선인 4조원 정도로 볼 때 아버지에게서 재산을 물려받은 지 12년 만에 재산을 1천 배로 불리는 ‘놀라운’ 재테크 실력을 보여줬다. 12년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스스로 벌어 그 많은 재산을 축적한 것일까, 아니면 경이적인 사업 수완을 발휘한 것일까.
이재용 전무가 삼성전자 총무그룹에 입사한 것은 23살 때인 1991년이다. 2002년 이사, 2003년 상무, 올해 1월 전무 자리에 올랐다. 여기에 S-LCD(삼성전자와 일본 소니의 합작사인) 이사직을 맡고 있다는 걸 감안해도 그가 연봉으로 모을 수 있는 재산은 100억원도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월급 받는 자리 외에 사업을 벌인 일이 있긴 했다. 하지만 실패를 맛봤다. 인터넷 지주회사인 e삼성, e삼성인터내셔널, 시큐아이닷컴, 가치네트 등 주식을 사들여 경영에 나섰다가 인터넷 거품 붕괴 와중인 2001년 3월 삼성 계열사들에 지분을 떠넘기고 손을 털었다.
회사에 입사해 연봉으로 받은 돈은 아무리 높게 쳐도 100억원 정도로 보이는데다 사업 실패까지 경험한 그가 조 단위의 재산을 축적한 ‘마술쇼’의 실마리는 1995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의 ‘양심 고백’으로 불거진 ‘삼성 문제’(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씨로 이어지는 불법·변칙 승계 의혹)의 핵심이다.
이재용씨의 거대한 재산 형성 과정의 출발점은 1995년 말 에스원 주식 12만1800주를 23억원에 매입한 일이었다. 같은 시기에 삼성엔지니어링 주식 47만 주를 19억원에 사들였다. ‘희한한 일’은 당시 이재용씨는 일본 게이오의숙대학원 경영관리 연구 석사로 외국에 머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국외에 머물던 그가 계열사 주식들을 사들였다는 점은 ‘그룹 차원의 기획’이었음을 뒷받침한다. 희한한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재용씨가 사들인 두 회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곧바로 주식시장에 상장됐고, 그는 막대한 시세차익(1997년 초까지 563억원)을 거뒀다.
외국에서 돌아와보니 부자가 돼 있었네
마술쇼는 1996년 12월 정점에 이른다. 이재용씨는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삼성에버랜드 사모 전환사채(CB·일정 기간 뒤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 96억2천만원어치를 사들인다. 이재용씨는 얼마 뒤 삼성에버랜드 CB를 주식으로 전환해 51%의 지분을 장악했다. 삼성그룹의 ‘실제 주인’이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씨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상한 점은 이때에도 이재용씨는 국외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재용 전무가 외국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니까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가 돼 있었다”는 김용철 변호사의 발언은 이 대목을 가리키고 있다.
더욱 문제가 된 건 당시 이재용씨가 인수한 CB의 전환 가격이 7700원이었다는 점이다. 나중에 삼성에버랜드 사건 재판 때 법원에서 인정됐듯 당시 세법상 가치는 12만7750원이었다. 삼성에버랜드 경영진이 회사 주식을 총수 아들에게 17분의 1밖에 안 되는 ‘헐값’에 넘겨준 것이다. 물론, 이재용씨는 막대한 이득을 입었지만, 그 외 삼성에버랜드 주주들은 그만큼 큰 손실을 입었다. 이 사건은 2000년 전국 법학교수들의 문제 제기로 법정에 올라 삼성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이 1·2심에서 유죄(배임)판결을 받았다. 이재용씨가 ‘아버지 재산’을 물려받아 거액의 재산과 삼성의 지배권을 일군 게 아니라 ‘회사 재산’을 빼돌리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다는 게 법원에서 인정된 것이다. 삼성 쪽의 주장대로 그룹 차원의 공모가 아니었다면,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으로 2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중대한 범죄자인 허태학 전 사장, 박노빈 전 전무를 각각 삼성종합석유화학 사장, 삼성에버랜드 사장으로 여전히 기용하고 있는 걸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궁금하다.
이재용씨에 얽힌 불법 횡령 혐의는 삼성에버랜드에 그치지 않았다. 삼성에버랜드 CB를 턱없이 낮은 헐값에 사들인 비슷한 시기에 제일기획 사모 CB, 삼성전자 사모 CB,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매입한다. 기기묘묘한 금융기법들이 동원되긴 했어도 일관된 한 가지 특징은 ‘회사의 재산을 싼값에 빼돌리는 수법’이었다는 점이다. 이때 역시 이재용씨는 국외에 머물고 있었다. 10여 년 사이에 재산을 1천 배로 불리는 마술쇼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숨어 있다.
<한겨레21>이 확보한 삼성 내부 자료인 4쪽짜리 ‘JY 유가증권 취득 일자별 현황’도 ‘그룹 차원의 기획’에 따라 이재용(JY)씨의 재산을 불려준 사실을 보여준다. 이 자료를 보면, 최광해(현 삼성 전략기획실 부사장) 등이 설립한 서울통신기술 CB를 1996년 11월 이재용, 박명경(이건희 회장 비서)에게 넘기는 것을 비롯한 세부 일정이 기록돼 있다. 당시 이재용씨가 인수한 CB의 전환 가격은 5천원으로 주당 순자산가치(1만5천원)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그 뒤 서울통신은 삼성전자의 물량 몰아주기, 홈네트워크 사업권 양도 등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삼성에버랜드 사건을 ‘편법 증여’로 부르는 것은 잘못이며 ‘불법 배임’으로 불러야 마땅하다”고 했다. “아버지 재산을 아들에게 줬는데, 세금을 제대로 안 냈다면 편법 증여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씨에게 44억8천만원을 증여한 뒤 벌어진 일은 다른 주주, 즉 남의 돈을 훔친 배임이자 횡령이다. 편법 상속의 문제가 아니다. 남의 돈을 뺏은 것이다. ” 김 소장은 “이 모든 과정이 이건희 회장과 삼성 전략기획실의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사장의 기획에 의해 집행된 사건이란 게 김용철 변호사 양심 선언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삼성을 둘러싼 온갖 의혹은 여기서 빚어진다는 게 김 소장의 분석이다. “불법 횡령 문제를 틀어막으려다 보니 특수부 출신 검사들을 영입하고, 광범위한 로비로 재정경제부, 국세청, 금융감독위원회·금융감독원을 관리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빠진다. ” 불합리한 시스템을 영속화하고 세습시키기 위해 국법 질서나 사회 기능과 부딪칠 때 국가기관들을 삼성의 우군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비자금 조성 같은 음습한 왜곡 현상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모두들 하는 일, 왜 나만 문제를 삼느냐”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문제를 앞장서 제기해온 곽노현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법학)는 계간지 <민주법학> 35호(12월1일 발간 예정)에 실을 ‘배임 특권의 법과 정치’에서 이런 현상을 ‘특권층의 침묵과 특권의 위계’로 해석한다. “정치권, 관계, 법조, 언론을 장악한 이 땅의 ‘중소 특권층들’은 ‘삼성 성골집단’의 ‘집안 스캔들’에 철저히 눈을 감았다. 크고 작은 권력자와 특권층은 서로 비슷한 속성으로 뭉쳐져 있으며 서로 의존하는 존재들이다. 이 집단의 구성원들은 더 높은 곳의 특권을 선망하고 지향할 뿐, 더 높은 곳의 특권을 문제 삼지 않았다. ”
자신의 권력 토대가 불법 배임, 횡령의 터전 위에 서 있다는 외부 비판에 당사자인 이재용 전무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재용씨는 기자간담회 같은 공식석상에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은둔의 경영자’라는 별칭을 얻고 있는 이건희 회장만큼이나 베일에 싸여 있다. 전무 승진 직전인 올 1월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발리하이리조트에서 열린 삼성전자 기자간담회장에 모습을 드러낸 게 공개석상에 모습을 보인 거의 유일한 사례였다. 따라서 그의 기업관이나 사회관을 자세히 알기는 어렵다.
<한겨레21>은 김 변호사를 만난 자리에서 이재용씨의 개인적 성향을 엿볼 수 있는 두 가지 단서를 전해들었다. 하나는 돈에 대한 개념이 일반인들과 너무 다르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주변 사람들의 경조사 때 부조를 얼마나 해야 하는지 전혀 감을 못 잡는다고 한다. 이는 대중의 정서에서 저 멀리 벗어나 있는 재벌 2·3세들에게는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이보다 중요한 두 번째 단서는 비자금 조성이나 불법·변칙 증여 의혹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이재용씨는 “모두들 하는 일인데 왜 자신에 대해서만 문제를 삼느냐”는 식으로 불만을 털어놓곤 한단다. 국내 1위 기업을 이끌어갈 사람의 생각이라고는 믿기 어려우며, 불법·변칙 행위에 대한 자기 교정은 기대난망으로 여겨진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고백 뒤 삼성그룹의 태도에서도 자정 능력은 엿보이지 않는다. 11월5, 6일 잇따라 내놓은 반박문에서 삼성은 비자금 의혹이나 삼성에버랜드 사건 증인·증언 조작 의혹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김 변호사 개인의 도덕성 문제를 거론하거나 ‘경제 위기론’을 들었다. 국내 최대 기업의 지배권이 불법의 토대 위에 서 있다는 핵심 관계자의 충격적인 증언과 정황증거를 확인하고 검증하는 일이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분쟁에, 기업의 발목 잡기”라는 인식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발렌베리에게 제대로 배워라
이건희 삼성 회장은 2003년 여름 스웨덴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발렌베리(Wallenberg)가를 전격 방문한 바 있다. 각 언론들이 발렌베리를 ‘삼성의 미래모델’로 집중 조명한 게 그즈음이었다. 이 회장이나 삼성으로선 가족 기업에다 금융과 산업자본을 아우르는 발렌베리의 모델을 근거로 가문 중심의 족벌 체제를 옹호하고 금산분리 원칙을 돌파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캄프라드(Kamprad)나 라우싱(Rausing) 가문이 무거운 세금을 피해 스위스로 도망치듯 터전을 옮긴 반면, 발렌베리는 스웨덴에 남아 막대한 부를 공익재단에 기부하는 길을 선택해 ‘사회적 책임’을 진 사실은 애써 외면하고 싶었을 것이고…. 발렌베리 가문의 창립자인 앙드레는 스웨덴의 근대적 개혁에 대한 열렬한 옹호자로, 미터법의 도입에서 여성해방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개혁 문제를 앞장서 제기하며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졌다. 발렌베리 가문에 대한 스웨덴 국민들의 존경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었다. 삼성 가문에서 나타난 그간의 행적과, 지금의 행태는 사회적인 존경의 길에서 자꾸 멀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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