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말로 해부한 ‘불안한 사회상’
<경향신문>
“영영 백수되는 거 아닌지 불안합니다.” “언제 잘릴지 몰라 불안할 따름입니다.” ‘불안’의 시대. 10대부터 40~50대까지, 한가지 불안을 넘으면 또다른 불안이 밀려온다. 전체 취업 인구의 절반 이상은 비정규직이며 상시해고 위협에 시달린다. 20대는 취직을 못해 ‘알바’로 살아간다. 밥줄의 위협 속에서 ‘불안’은 이 시대를 점령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에 모인 사람들이 ‘불안’을 키워드로 단어를 새롭게 정의한 ‘불안사전(辭典)’을 펴냈다. 인터넷에서다. ‘비정규직’과 ‘불안’을 함께 읽자는 취지로 개최된 ‘시민지식네트워크를 위한 독서프로젝트’의 참가자들과 온·오프라인을 오가던 시민들이 동참했다. 국어사전은 불안한 시대를 대변하기에는 너무 낡았기 때문이다.
불안사전에서의 정의는 기존 사전적 정의와는 응당 다르다.
국어사전은 ‘잡담(雜談)’이라는 단어를 ‘쓸데없이 지껄이는 말’이라고만 간단하게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짧은 단어도 불안사전에서는 ‘사소하고 무익한 담화라고 생각되지만 경우에 따라 밥줄을 자를 수도 있는 불온한 담화’로 새롭게 정의된다. ‘용례’는 너무도 사실적이다. ‘차장 만났는데 A4 한장짜리 팩스가 들어 오는 거를 보여주더라고. 15명이 같이 잘렸는데 이름이랑 사유가 써 있어. 종희하고 나하고 사유가 뭐냐면 ‘잡담’이더라고. (<부서진 미래> 237p)’
‘시험’이라는 단어도 다양하게 정의된다. ‘중간고사’는 “정기불안고문”이고, ‘기말고사’는 “하나의 불안에서 다음 불안으로 넘어가는 문턱”이다.
사회가 언어에 녹아들어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단어는 ‘까칠’해졌다. 그러나 참가자들의 재치있는 정의는 불안을 벗어날 희망 역시 엿보이게 한다. ‘휴대폰’은 “~인간이 자신을 혼자 둘 경우 인간에게 불안감을 유발시키는 능력을 지닌 존재”이기도 하지만 “때때로 약자들의 소중한 무기로 변신”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자유’는 “억압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언제라도 억압에 저항할 수 있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연구원 이수영씨는 “사물을 다시 바라보니 기발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시대상을 반영한 새로운 정의들이 모여들었다”고 말했다.
현재 불안사전의 수록 단어는 99개다. 그러나 ‘위키피디아’처럼 온라인(http://jisiknet.com)에서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