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외환위기와 삼성, 그리고 10년후
[CBS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
97년 IMF 외환위기 사태를 돌이켜 보면 대기업, 특히 무리한 자동차 사업 진출을 꽤했던 삼성은 그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삼성은 외형적으로는 엄청난 성장을 했고 대한민국의 핵심적인 경제권력이 되었지만 최근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서 보듯 불법 비자금 조성과 로비의혹을 받고 있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한성대 경영학과 교수)은 IMF 10년이 되는 21일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 출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삼성의 비자금 조성과 불법로비문제를 되짚어본다면 그 핵심에는 각종 불법과 무리수를 동원한 이재용 씨로의 경영권승계 과정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과정에는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을 비롯해 7개 계열사들의 주식이 28차례나 거래되었는데 이것은 삼성그룹 차원의 특히 구조조정본부를 중심으로 한 기업의 조직적 개입이 있었다는 것이 김 소장의 주장이다.
김 교수는 삼성 스스로 변하는 의지를 보이는 게 중요하다며 '구조본의 핵심인사인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은 형사처벌과는 별개로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남으로서 삼성의 의사결정구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밝혔다.
( 이하 인터뷰 내용 )
▶ 진행 : 신율 (명지대 교수/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 출연 :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 (한성대 교수)
- IMF 사태와 삼성이 관계가 있나?
10년 전 IMF 사태를 초래하는 데 재벌들의 황제경영이나 문어발식 확장이나 과다차입 같은 것들, 즉 재벌의 문제가 중요한 위기의 원인이었던 만큼 삼성의 책임이 없었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예를 들면 90년대 중반에 삼성이 여러 가지 로비를 통해 자동차산업 진출에 성공했는데, 그것이 결국 현대차나 기아차 같은 기존업체들의 경쟁적인 과잉투자를 유발하게 한 것이 위기의 중요한 원인이었다. 그 외에도 삼성종합화학 등 다른 분야에서도 과잉투자가 있었고, 97년에 위기가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삼성생명이 기업들에게 빌려줬던 자금을 급격하게 회수하는 과정이 금융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삼성에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의 삼성은 우리 사회 전부를 지배하는 절대적인 권력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절대적이진 않았다. 5대 재벌 중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25%에 불과했다. 즉 5대 재벌 중 하나였는데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이제는 누구도 경쟁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경제권력이 된 비밀이 무엇이냐를 살펴보는 것이 오늘날 삼성 문제나 한국사회의 미래를 전망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 10년 전과 비교해서 삼성이 변했다고 보나?
삼성에 변화가 없었던 건 아니다. 사회의 전 영역에서 괄목상대할 만한 변화가 있었던 만큼 삼성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삼성그룹의 계열사들이 비즈니스와 관련된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서는 매우 조직적인 유연성을 확보하게 됐고, 의사결정을 위한 정보의 흐름이 상하로 매우 유연하게 흐르는 조직적인 유연성이 매우 높아졌다. 그것이 오늘날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삼성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런 비즈니스와 관련된 의사결정이 아니라 총수일가의 문제라든가 그룹 지배와 관련된 의사결정에선 오히려 10년 전보다 훨씬 더 경직된 모습을 보이고 있고, 수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쪽으로 가는 게 아니라 계속 무리수를 둠으로서 더욱 꼬이게 만들고, 이것을 한국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산시키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 삼성 비자금 의혹 문제가 삼성의 지배구조와 관련이 있나?
비자금 문제에 관해 삼성은 끝까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최근 이용철 전 청와대비서관의 폭로를 통해 비자금 조성이 사실일 것 같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왔다. 이용철 전 비서관에게 전달된 돈다발을 묶은 띠가 서울은행 지점 것으로 돼있는데, 서울은행은 2002년 12월에 지금의 하나은행으로 흡수합병됐다. 따라서 2002년 말에 없어진 은행인데 이용철 전 비서관에게 돈이 전달된 시점은 2004년 1월이다. 그러니까 1년 이상의 시간적인 격차가 있는 건데, 개인이 이렇게 수많은 돈을 현금으로 찾아다가 집에 1년 이상 보관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이 돈은 이경훈 변호사라는 전달자가 만든 것이 아니라 삼성전자 또는 삼성그룹 전체적으로 조성됐던 비자금이라는 강력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것처럼 삼성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삼성 비자금 문제는 사실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럼 왜 삼성이 비자금을 조성하고 불법로비를 하는가를 되짚어본다면 결국 이재용 씨로의 경영권 승계라는 지배구조에 있어서 불법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거기서 나오는 법률적인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검사나 판사나 퇴직관료들을 스카우트하고, 그 사람들을 통해 현직의 정관계인사들에게 로비를 하고, 그 로비를 하기 위해 비자금을 조성운영하는 무리한 과정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삼성그룹의 내부구조를 본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자정능력을 상실한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은 여러 가지 훌륭한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오류를 수정할 수 없는 임계점에 다다랐다, 그것이 양심고백을 하게 된 중요한 배경'이라는 말을 했는데, 나는 그것이 진실에 가까운 고백이라고 생각한다.
- 그 과정에서 금산법 위반이 있다고 하는데?
경제개혁연대가 어제 발표한 내용이다. 지금까지는 이재용 씨의 재산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전환사채 등을 통해 헐값으로 돈을 불려왔다는 것만 알려졌다. 그런데 헐값으로 주식을 인수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현금이 되는 건 아니다. 팔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제일기획 같은 데는 이재용 씨가 20%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였는데, 이번에 사제단이 공개한 문건을 보면 이것을 3일에 걸쳐 다 매각했다. 20% 지분의 최대주주가 3일 동안 자기지분을 전부 시장에 내다팔았다면 주가가 폭락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이재용 씨가 판 주식을 떠안았다는 얘기가 된다. 바로 이런 의문점을 풀기 위해 우리가 여러 가지 자료를 조사해본 결과, 고객의 돈으로 운영되는 삼성화재라는 계열금융기관이 이재용 씨가 매각한 주식을 떠안아줬다는 걸 확인했다. 이것도 배임의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고객의 돈을 관리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는 금융기관이 특수관계인의 이익을 위해 그 주식을 떠안았다는 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심각한 범죄행위다. 만약 선진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그 금융기관은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 그에 대해 삼성에서는 뭐라고 말하나?
삼성화재가 이것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금산법 24조가 정한 5% 한도를 넘어서 9%까지 보유했기 때문에 금산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더니 삼성그룹측에서는 '당시에는 금산법의 처벌조항이나 제재조항이 없었기 때문에 실무자들이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법 위반인지 몰랐다'고 변명하고 있다. 이건 전혀 설득력이 없는 해명이다. 국민의 소중한 재산을 관리하는 금융기관으로서 이런 식의 해명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개탄을 금치 못했다. 이용철 전 비서관도 기자회견을 하면서 '삼성이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인만큼 해명도 그 품위에 맞게 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 재벌기업이 금융기관을 소유하게 됐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를 미리 본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차명계좌를 관리하는 건 굳이 계열금융기관을 통하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데, 계열금융기관을 통하면 훨씬 쉽게 할 수 있다. 차명계좌가 있었던 우리은행은 삼성그룹의 계열사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차명계좌가 개설될 당시의 행장이 바로 황영기 회장이라고 삼성생명과 삼성증권을 거쳤던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삼성그룹이 우리은행을 통해 차명계좌를 보다 쉽게 만들고 관리할 수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재벌이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을 소유하게 됐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이번 사태를 통해 재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금산분리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우리가 먼 미래를 내다보고 한국사회의 선진화를 생각한다면 금산분리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원리라고 할 수 있다.
- 삼성 관련 의혹이 그룹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이뤄졌다고 보나?
개인 돈이었다거나 개인적인 차원에서 전달한 돈이었다고 해명하는 건 너무나 설득력이 떨어진다. 94년부터 지금까지 이재용 씨의 총수 만들기를 위해 그룹 전체 차원의 조직적 공모를 통해 진행되어온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단적인 예로 사제단이 공개한 문건을 보면 4년 반 동안 이재용 씨가 7개 계열사의 주식을 28번 거래한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당시 이재용 씨는 유학생이었다. 그 7개 회사 중에서 삼성전자를 뺀 나머지 6개 회사는 비상장회사였는데 어떻게 국내에 있지도 않은 이재용 씨가 비상장회사를 중심으로 한 주식을 체계적으로 28번이나 관리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계열사들이 전혀 그 사실에 대해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는지, 정말 설득력이 없다. 결국 이건 그룹 차원의, 특히 구조본을 중심으로 한 기업의 조직적 작품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 만약 비자금 의혹이 사실이라면 어느 정도 범위까지라고 보나?
삼성그룹이 정관계, 언론, 시민단체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방위에 걸쳐 로비를 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더구나 권력의 중심부인 청와대까지 로비를 시도했던 게 아닌가 의심되고 있다. 이런 사회 전반에 걸친 삼성의 불법로비 시도에 관해 기존 검찰이 얼마만큼 엄정하게 수사할 수 있겠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최근 검찰총장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났던 것처럼 검찰의 최상위부에 관해서도 삼성이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만큼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삼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검을 통해 환부를 도려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 각 정당들과 청와대의 특검에 대한 입장은?
삼성 문제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제인데,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각 정당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대통령과 청와대가 공수처라는 전혀 성격이 다른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이것을 동시에 처리하지 않으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식의 뉘앙스를 보이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이런 부분에 대해 진실을 명확하게 규명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국민의 마음속에 있는 의혹, 즉 청와대조차 삼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혹을 점점 부추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청와대에서는 이 논란에 대해 조금은 떨어져있는 게 옳다. 23일이면 정기국회 본회의가 마지막이기 때문에 그 이전에 각 정당들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특검법을 조속히 만들어야 한다.
- 이번 특검에서 밝혀야 할 문제를 정리해달라.
특검의 수사대상으로 몇 가지가 열거되고 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건 이재용 씨로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그룹에서 저질렀던 불법행위 및 그것과 관련된 로비 시도를 해명하는 것이다. 특히 이재용 씨 관련된 사건은 대부분 공소시효가 지났다. 지금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회사가 3개(삼성 에버랜드, 삼성 SDS, e삼성)인데, 이 3개 회사의 경우 반드시 특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런 문제를 감추기 위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그것을 가지고 불법로비를 시도한 부분에 대해서도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 비자금의 사용용도 중에 정치권의 문제, 특히 2002년 대선 당선 축하금과 관련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비자금의 사용용도와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에 그 부분도 포함되어야 하고, 그것을 가지고 한나라당이 특검법 제정에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
- 삼성의 자정능력에 대해 어떻게 보나?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형사처벌이 능사는 아니다. 결국 스스로 변하는 의지를 보이는 게 중요하다. 이 모든 문제가 결국 삼성의 구조본이라는, 권한과 책임이 완전히 불일치하는 조직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른 데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구조본의 핵심인사인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이 형사처벌의 문제와는 별개로 이 모든 사태에 대해 책임지고 물러남으로서 삼성그룹의 의사결정권자를 바꾸고, 그럼으로써 국민에게 삼성이 변하려 한다는 신뢰를 보여주면서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모든 변화는 사람의 변화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구조본 핵심인사들의 변화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변화의 단초다.
-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 국민 모두가 정치권과 삼성에 대해 변화의 열의를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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