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빈민을 돕지 못한다면 희망마저 잃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금 전 세계 지도자들은 가난한 나라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 24일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
‘세계화 전도사의 집결체’로 불려온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 포럼)에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지난 23일 개막한 포럼에서는 지난 수년간 외쳐왔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목소리가 잦아들면서 기아와의 전쟁 등 ‘함께하는 세계’가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오는 27일까지 열리는 올해 다보스 포럼의 공식 주제는 ‘협력적 혁신의 힘’이다. 그러나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인한 세계경제 침체의 불안 심리 등이 확산되면서 논의의 초점을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옮겨놨다.
자연스레 포럼은 세계 금융시스템이 취약점을 드러낼 것으로는 예측하지 못했다는 자성으로부터 출발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첫날 토론회에서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경제관리에 따른 예상 가능한 결과”라고 진단했고, 영국 타임스지의 온라인 사이트도 “세계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참석자들은 이제 ‘세계화’와 결별해야 할 때라는 의견도 제시했다. 레브 레비브 아프리카 이스라엘 투자 회장은 포럼에서 “2008년은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라면서 “이제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이를 진정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파스칼 레미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과의 인터뷰에서 “2008년은 보호주의의 덫에 빠지지 않으면서 자유무역의 이념을 수정해야 하는 중요한 해”라고 말했다.
포럼의 자숙 분위기는 미국 경제가 불러온 세계경제의 위기감과 맞물려 있다. 1990년 이후 빠르게 지구촌 곳곳에 스며든 세계화의 물결은 미국이 주도해왔다. 하지만 최근 불어닥친 미국발 경제 위기는 기류 변화를 불러왔다. 무한경쟁을 지향하는 자유화와 시장원리의 확산을 최선으로 여겨온 게 세계화라면 이를 재고해야 한다는 요구다.
이번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지난 10년간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보려는 유럽연합(EU), 중국, 남미 등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으며 오히려 완전한 탈미(脫美)가 요원하다는 사실을 또다시 절감케 한 것도 하나의 배경으로 해석된다. 이는 지난해와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다. 포럼은 지난해 신흥시장의 성장이 세계경제를 견인할 것으로 예측했고 경제 전망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견해가 주를 이뤘다.
포럼은 이번 회의에서 미국의 신용경색과 고유가, 기후변화, 에너지 문제 등에 대해 공동 대처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 위기로 초래된 세계경제 침체 조짐을 떨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포럼 첫날부터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내놓은 긴급 금리 인하조치에 대해 비난이 쏟아졌다.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은 “상황을 엉망으로 만든 장본인은 미국 경제정책을 결정한 사람들”이라며 벤 버냉키 FRB 의장에게 화살을 돌렸다.
![]() |
§ 8회 맞은 다보스 ‘맞불 포럼’ WSF
세계사회포럼(WSF)은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의 ‘안티 테제’를 표방한다. WEF에 참석한 선진국 지도자들이 개발도상국과 민중들의 현실을 간과한 채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고 비판하며 반세계화와 반신자유주의를 핵심 기치로 내걸었다.
세계사회포럼은 다보스포럼을 압박하기 위해 2001년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시작, 매년 WEF와 같은 기간에 열린다. 북반구와 남반구간 격차 등 세계화가 낳은 여러 폐해를 비롯해 환경보호와 지속가능한 개발, 성·인종 차별의 철폐 등을 화두로 각종 세미나와 토론회, 퍼포먼스 등을 개최한다.
WSF는 이제 반세계화 운동 진영의 축제이자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했다. 국제금융기구(IMF), 세계무역기구(WTO) 등 신자유주의 체제를 주도하는 국제기구들을 비판하며 개도국 부채 탕감이나 국제투기자본 규제를 위한 ‘토빈세’ 제정 등을 널리 공론화했다.
1~3회 그리고 5회 WSF는 포르투알레그레에서, 2004년 4회는 인도 뭄바이에서 개최됐다. 2006년에는 베네수엘라와 말리, 파키스탄 3개국에서 동시 진행됐으며 지난해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렸다.
8회를 맞은 2008 세계사회포럼은 예년과 달리 참가국별로 진행된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공통 의제를 빼고는 나라마다 차별화된 세부행사를 준비했다. 26일은 ‘세계공동행동의 날’로 선포해 각국에서 전쟁과 신자유주의, 인종주의와 가부장제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다.
세계사회포럼이 또 하나의 형식적인 연례 이벤트로 굳어졌고, 비싼 비용 때문에 농민이나 노동자, 빈민들의 폭넓은 참여가 어렵다는 지적에 따른 변화다.
팔레스타인은 가자지구 봉쇄조치로 숨진 이들을 추모하는 행사를, 이라크는 전쟁에 반대하는 비폭력 캠페인을 개최할 예정이다. 한국은 30여개 단체가 참가해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 빈곤의 여성화, 기후변화 등에 대해 토론한다.
"영원한 이방인" 추성훈 (0) | 2008.02.23 |
---|---|
"빈민돕는 창조적 자본주의" 주장 (0) | 2008.01.25 |
최초로 에베레스트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 경 숨져 (0) | 2008.01.11 |
역사에 남은 거짓말쟁이들 (0) | 2007.12.02 |
서울대 경제학부 김수행 교수 (0) | 2007.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