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 입구에 노 대통령의 귀향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널려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을 하루 앞둔 24일, 봉하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사저 공사 현장 옆에 세워진 화이트보도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하고픈 말'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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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굽이치고 좌우 물길을 바꾸어 가면서 흐른다. 어떤 강도 똑바로 흐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떤 강도 바다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종료 몇시간을 앞둔 24일 오후 청화대에서 가진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행한 발언이다.
노무현은 정말 사심없는 대통령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 모 일간지에서 노대통령을 잘못 뽑았다는 응답이 48% 정도 였다는 여론조사가 있었지만 글쓴이는 노무현 대통령을 정말 잘 뽑았다는 생각이다. 다만 시대가 그를 이해해주지 못했거나 그가 너무 앞서 살았기 때문에 성공한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23일 밤 방영됐던 MBC스페셜 '대통령으로 산다는 것'에서 "성공하는 대통령이 어떤 모습이냐"는 질문에 노 대통령은 "개인의 개성과 대통령직이 딱 들어맞지 않으면 5년간 불편할 뿐"이라며 "누구에게나 100% 다 맞지는 않겠지만 저는 그게 맞지 않아 고생을 많이 한 대통령"이라고 자평했다.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수평적 사고를 가졌던 노무현은 여전히 권위적 수직적 사고를 필요로하는 우리나라의 대통령체계에 어울리지 않았던 것 같다.
노무현은 과거 수직적 권위주의를 허물고 새로운 형태의 대통령 리더십을 선보이며 원칙과 신뢰의 새로운 정치를 시작했다. 하지만 보수 기득권세력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한마디 말로 논의자체를 거부했다. 그리하여 토론과 협력으로 극단적 대립을 피하면서 우리나라의 정치수준을 한단계 높이고자 했던 그의 소망은 5년내내 기득권세력의 반발에 부딪치면서 좌절했다. 그러나 전혀 무의미한 시도는 아니었으며, 그가 뿌린 씨앗은 앞으로 우리나라 정치의 토양을 더욱 민주주의답게 하는데 한몫할 것으로 예상해본다.
물건너 촌놈인데다 촌에서 별로 벗어나 본 적 없는 글쓴이가 노무현을 잘 알리가 만무하다. 개인적으로 만난 적도 없고 '노사모'도 아니어서 그와 직접 대면할 기회도 없었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 접한 그의 정치역정을 보면서 진실성이 느껴졌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번쯤은 나라를 맡겨도 될 것 같다는 믿음을 가졌다.
글쓴이가 노무현이라는 이름 석자를 처음 들은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듯이 1990년대 이뤄졌던 5공청문회에서였다. 대부분 청문위원들이 쩔쩔 맬때 그는 논리적이고 송곳같은 질문으로 5공 주역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그러나 이후 그의 정치역정은 가시밭길이었다. 자신의 소신을 지키려는 우직스러움으로 숱한 좌절을 겪었다. 얼마든지 피해 돌아갈 수 있었는데도 그는 항상 원칙과 소신을 지키고자 정공법을 택했다. 그래서 '바보 노무현'이라는 말이 나왔다.
2002년 대선결과가 발표되는 날, 시내 한 식당에서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친구모임이 있었다. 그 식당에서 오후 6시가 되자마자 발표된 출구조사결과를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지금껏 수차례 대선 투표를 치르면서 그날처럼 마음이 두근거렸던 적이 없다. 어떤 때는 자포자기한 채, 어떤 때는 약간 기대하면서 대선 투표를 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정말 강한 기대를 하면서 투표를 했다. 그리고 그 기대대로 이뤄졌던 것이다. 그 해 월드컵 4강과 대선결과에 대한 기쁨이 잠시나마 세상살이로 인한 피곤함을 덜기도 했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훨씬 험난했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태도 빚어졌다. 노무현은 대통령 취임 이후 기존 질서의 변혁을 추진하면서 광범위한 토론을 주도했다. 또 스스로 권력을 내놓으면서 권력에 의해 국가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였다. 학력도 별볼일 없고 우리 사회의 주류세력도 아니었던 그를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보수기득권 세력들은 취임하자마자 노골적으로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고, 끝내 탄핵사태를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이후 탄핵 역풍을 맞은 보수기득권 세력들은 이전과는 달리 교묘하게 노무현 탓을 조장했다. 그 와중에도 노무현은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사회적 갈등을 줄이기 위해 보수기득권층 끌어안기에 나섰고,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대연정이었다. 하지만 야당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임기내내 모든 잘못은 노무현 탓으로 조장했다. 마침내 그러한 노력이 성공을 거둬 참여정부 후반이 되면서 일반 서민들도 뭐하나 잘못되면 모든 게 노무현 탓으로 몰아부칠 수 있었다. 이천화재도 노무현 때문이었고, 숭례문 화재도 노무현 때문이었다. 게다가 참여정부 동안 경제지표가 이전에 비해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보수기득권 세력의 경제위기론은 먹혀들었고, '잃어버린 10년'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는 국민들에게 먹혔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번 대통령선거였다.
물론 참여정부 출범 초기 기대와는 달리 개혁정권의 역사적 의미를 퇴색시킨 부분도 있다. 이는 전적으로 노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적지 않다. 경제정책의 상당부분을 시장원리에 맡겨버림으로써 부동산 정책에 실패하고,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의 증가, 사회적 양극화 현상 등을 악화시켰다. 이로 인해 상당수 사람들이 참여정부에게서 등을 돌리게 됐다. 또 어설픈 386인사의 기용으로 갖가지 불필요한 구설을 초래했고, 전체 386의 실패로 인용됨으로써 보수기득권층에게 세대교체의 명분을 피하게 만들어줬다. 이밖에 한미 FTA체결, 이라크 파병 등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국가적인 이유로 추진이 불가피했지만 진보세력으로부터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숱한 논란속에서도 노 대통령은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행정수도 이전과 수도권 공기업 이전에 필요한 혁신도시 건설, 제주 4·3 등 왜곡된 과거사를 바로잡기 위한 과거사 정리 등을 과감하게 추진했다. 노무현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무엇보다도 노무현은 건국이후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였던 권위주의를 헐어내기 시작했고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인식도 변화시켜 놓았다.
이제 노 대통령은 몇시간 뒤면 퇴임한다. 그는 퇴임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로 여행을 꼽았다. 그동안 시장, 극장 등 사람들이 항상 잘 다니는 곳을 가고 싶었는데 못가는게 제일 답답했다는 그는 다른 역대 대통령과는 달리 고향마을에서 마을사람들과 정말 편하게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이제 승부의 대척점에 서게 되지 않고 편안하게 뉴스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정말 마음이 편안하다는 그는 전혀 아쉬움없이 홀가분하게 청와대를 나설 수 있는 행복한 대통령이다.
'대통령'이라는 거대한 직함보다 그저 '인간'이라는 보통명사가 잘 어울리던 사람. 바로 노무현이다. 그의 믿음처럼 그에 대한 평가는 훗날 사가(史家)들에 의해 재정립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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