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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메이션 영화 \'라따뚜이\'에 등장하는 쥐 캐릭터들. |
올해는 쥐의 해인 무자(戊子)년 이름값을 하려는 걸까. 올들어 쥐와 관련된 뉴스들이 잇따라 터지고 있다. 새우깡에서 생쥐 머리로 추정되는 이물질이 나와 국민들을 충격에 몰아넣었다. '생쥐깡' 파문이 한창이던 지난달 22일 변도윤 여성부 장관은 업무 보고 자리에서 "과거 노동부에서 직원들에게 들은 얘기인데 생쥐를 튀겨 먹으면 좋다고…"라는 황당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켰다. 생쥐깡 공포가 채 가시기도 전에 미국산 냉동야채에서 쥐로 추정되는 이물질까지 발견됐다. 이 같은 국내 분위기와 달리 외국에서는 미키마우스 탄생 8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이벤트가 열리고 캐릭터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쥐는 무조건 싫다
음식물에서 이물질이 발견된 뉴스가 전해진 것은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것이 쥐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주는 충격은 공황에 가까운 것이었다. 미키 마우스가 아무리 귀엽고 라따뚜이가 아무리 요리를 잘해도 시궁창에서 기어나온 회색쥐가 예뻐보이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왜 쥐에 기겁하는 것일까.
동물들을 무서워 하는 심리를 '동물형 공포증'(zoophobia)라고 한다. 파충류, 벌레, 고양이, 곤충 등에 대한 공포도 있지만 그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겪는 증상이 쥐 공포증이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동물형 공포증은 다른 공포증에 비해 일찍 시작돼 대체로 아동기에 발병한다고 한다. 한번 공포가 조건반응으로 형성되고 나면 그것을 없애기는 매우 어렵다.
현대인의 생활 패턴으로 볼 때 쥐는 사람에게 실제적으로 큰 위협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쥐에 대한 공포심은 무의식에 각인된 심리적 반응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간과 쥐는 오랜 기간 동일한 정주 환경 아래 공존해 왔는데, 제한된 식량과 공간을 놓고 필연적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곡식을 훔치고 질병을 옮기는 쥐에 대한 혐오감이 공포 반응으로 잠재됐다는 해석.
◆인류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
쥐의 생존력과 번식력은 놀랍다. 전세계 포유동물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숫자가 많고 치명적인 방사선에 노출돼도 죽지 않으며, 물만 마시고도 한달 이상을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한쌍만 있으면 1년 후에 1천250마리로 번식할 수 있다.
요즘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는 쥐떼의 공포가 휩쓸고 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쥐만 1천만 마리 이상으로 추정되며, 이 숫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쥐에 물리는 환자가 매년 100~200명가량 발생하고, 각종 쥐가 옮기는 전염병에 감염된 환자는 매년 1천명을 헤아린다.
중국 대륙도 쥐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해 여름에는 중국 제2의 담수호인 둥팅후 일대에 쥐떼 20억 마리가 등장했다. 폭우 때문에 수위가 올라가자 쥐들이 쥐구멍을 포기하고 도망쳐 논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굶주린 쥐떼에 고양이가 잡아먹히는 어이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양쯔강 등 중국 주요 하천의 출발지인 칭짱(티베트) 고원도 쥐떼로 몸살을 앓고 있다. 1990년 이후 전체 풀밭의 3분의 1이 쥐 먹이로 사라지면서 고원이 아예 사막으로 바뀌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한해에 8천400여만 마리의 쥐를 잡기도 했다.
◆쥐와의 전쟁은 현재 진행형
쥐는 분변으로 음식물을 오염시키고 전염병을 유발하며 유행성 출혈열, 랩토스피아, 서교열 등 병원체를 옮기고 전선을 갉아 합선사고로 화재를 유발하기도 한다. 중세 유럽을 휩쓴 흑사병 공포가 끝났다 해서 쥐의 공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인류는 쥐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시민들이 음식물을 무심코 버리거나 비둘기에게 주는 음식물은 쥐들의 먹이가 된다. 경남 양산시는 지난해 12월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매개 역할을 하는 쥐 잡기에 나섰다. 충남 공주시는 재래시장 상인들의 건강을 위해 '쥐 잡기운동'에 나섰다.
반면 베트남에서는 쥐고기 인기가 상종가라고 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곡식을 먹고 사는 쥐가 다른 동물에 비해 깨끗하다고 여긴다고 한다. 게다가 조류 인플루엔자 때문에 닭 오리 고기를 구하기 힘들고 돼지고기나 소고기는 너무 비싸서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쥐고기가 각광을 받고 있다. 베트남에서 쥐고기 가격은 작년에 비해 2, 3배 올라서 1kg당 2, 3달러에 거래된다고 한다.
지난 2004년 뉴욕의 뒷골목에 사는 쥐들을 1년간 관찰한 내용을 책으로 써낸 로버트 설리반은 이렇게 말했다. "쥐들은 우리의 서식지에 살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기를 원치 않지만, 쥐들은 인간 세계를 비추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다. 쥐가 있다는 것은 사람이 주위 어딘가에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