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버린 숭례문…디지털로 살아있다 | |
<노컷뉴스> | |
|
'마지막 황손' 이석 "숭례문 화재 보며 대성통곡 했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이슈와 사람] 조선왕조 의친왕의 아들 이석 씨 |
![]()
다”며 “참담한 마음에 밤 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BestNocut_R] 도 없던 곳이었다. 개방을 한다고 할 때 이런 일이 걱정됐었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냥 하나의 장난감 같이 만드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며 한 숨을 내쉬었다. 범의 소행으로 불타 없어져 버렸습니다. 어떤 심정으로 지켜보셨어요? 하고 멋있는 우리의 역사 문화 중에서, 그것도 국보 1호로 만들어진 것이 그렇게 참담한 광경을 볼 때 정말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습니다. 식에... 금방 잊어버리고 금방 무너뜨리고 금방 만들고 이런 지경 속에서 지금 살고 있는데 살아있는 조선 왕조의 고종황제의 손자로서 참담함을 느꼈습니다. 조금 아까 오늘도 숭례문을 지나왔습니다. 가슴이 내려 앉고 당장 뛰어 내려가서 통곡을 하고 싶은데 참고 왔습니다. 있는 ‘칠궁’이라는 장희빈 사당에서 살았습니다. 니다. 그래서 같이 살던 다섯째 형님은 피를 토하고 돌아가시고 저는 미국으로 망명 아닌 망명의 길을 떠났 었습니다. 추억도 좀 있습니까? 시키고 일반인들이 구경도 하고 그랬는데, 처음에는 이게 세상이 변해가고 민주국가가 되고 자유국가가 되 니까 이렇게 마음대로 하는 구나 그랬습니다만 그건 감춰놨어야 돼요. 우리나라 역사는 감춰놔야 해요. 개방 보다는... 왜? 국민 역사의식이 확고해야 그걸 열어놓을 수 있지, 그런 상태에서는 개방되면, 남의 물건을 우 습게 안단 말이에요. 이제 가까이서 볼 수 있겠구나. 그런데 이석 선생께서는 걱정을 하셨었다는 말씀이세요. 어요? 왕에게 막 대들기도 하고 북쪽으로 쳐들어가자고 하고, 중국 사신을 나무라는 걸 봤는데 그 분이 정신이 보 통 분이 아니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너무나 똑똑하시고 영특하셨는데 좀 독특한 성격과 나라를 위하려고 하 니까 그게 나쁘게 역사에 적혀져 있는 거예요. 다가 6.25 동란을 맞은 곳은 안국동 사거리 안동 별궁입니다. 별궁에서 6.25 동란을 맞고, 그 때 아버님은 창 덕궁 낙선재에 계셨고 제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실 때까지 청와대 옆 칠궁에서 있었죠. 서 왕손들이 뛰질 못하게 했어요. 말을 크게 하면 큰일 납니다. 어디서 쌍놈들이 하는 짓을 하냐고 그렇게 야 단을 맞았습니다. 시는 안천 교수라는 분과 제가 운동을 벌였습니다. 처음에는 황실 문화만 보존을 시키자고 했습니다. 왜냐하 면 519년 조선왕조의 문화가 찬란했거든요. 그랬었는데 문화를 살리자고 그랬었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나라 정치가 민주정치에 대통령제이니까 왕 실을 얘기해봐야 특히 공무직에 있는 공무원들은 시대착오적인 거라고 비방을 해요. 왕실을 얘기하지 말라는 거예요. 귀찮으니까. 역사를 모르니까. 그래서 저는 문화 쪽으로만 나가려고 그랬습니다. 르겠습니다. 거예요. 인간 차원을 넘어나서 과연 그 인간을 건드린 게 누구냐. 냐 , 되돌아보라는 경고란 말씀이신데요. 노하우, 기술, 소목장, 대목장이 지금 없다고 그러잖아요. 몇 분 있긴 있다고 하지만 과연 그 기술이 나올까... 그냥 하나의 장난감 같이 만드는 거죠 뭐. 다 개방을 시켜놨었어요. 그런데 지금 가면 장난감 같아요. 사람이 살 수 없게 만들어 놨어요. 고통스러움을 느끼고 계시다는 생각이 드네요. 역사의식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 국민이 합칠 때다, 세계 속에 우리 대한민국이 우뚝 서려면 이제 마 음을 비우고 합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내가 소리를 지르고 다닙니다.
|
역대 대통령 취임식 모습 (0) | 2008.02.25 |
---|---|
캐릭터로 보는 세태 (0) | 2008.02.24 |
무책임한 후손들 門이 사라진 서울 (0) | 2008.02.12 |
오호! 애재라! 숭례문 (0) | 2008.02.11 |
휴대전화 '원조'의 몰락 (0) | 2008.0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