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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버린 숭례문…디지털로 살아있다

세상보기---------/현대사회 흐름

by 자청비 2008. 2. 14.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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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버린 숭례문…디지털로 살아있다

 

<노컷뉴스>

 

 

 

 

'마지막 황손' 이석 "숭례문 화재 보며 대성통곡 했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이슈와 사람] 조선왕조 의친왕의 아들 이석 씨



조선왕조 의친왕의 아들 이석 씨가 숭례문 화재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1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이슈와 사람>에 출연한 이석 씨는 “숭례문이 불타는 장면을 보며 대성통곡했

다”며 “참담한 마음에 밤 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BestNocut_R] 
1979년 마흔 한 살이 되던 해까지 청와대 옆 ‘칠궁(七宮)’에 살았던 이석 씨는 “당시 숭례문은 감히 가볼 수

도 없던 곳이었다. 개방을 한다고 할 때 이런 일이 걱정됐었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숭례문 복원 문제에 관해 이석 씨는 “과연 6백 년 전에 만들었던 노하우, 기술이 나올 수 있을지... 그

냥 하나의 장난감 같이 만드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며 한 숨을 내쉬었다.

현재 전주대 사학과 겸임교수로 전주에 살고 있는 이석 씨는 몇 해 전부터 황실문화 복원운동을 하고 있다.

<이하 인터뷰 전문>

- 김현정 / <이슈와사람 진행> : 안녕하세요?

= 이석 / (조선 마지막 황손) : 안녕하십니까?

- 숭례문이 조선 개국의 상징이면서 610년 동안 그 자리에서 궂은 일, 좋은 일 다 겪어왔었는데 한낱 방화

의 소행으로 불타 없어져 버렸습니다. 어떤 심정으로 지켜보셨어요?

= 마음이 참담하고 밤새도록 잠을 못 잤습니다.

- 그 장면은 내내 보셨습니까?

= 네, 화면으로 5시간을 계속 봤습니다. 우리 민족이 단군 5천년 역사에 조선왕조 519년이 지나가면서 찬란

하고 멋있는 우리의 역사 문화 중에서, 그것도 국보 1호로 만들어진 것이 그렇게 참담한 광경을 볼 때 정말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습니다.

땅바닥을 치고 울었습니다. 도대체 이게 있을 수 있을 법한 일입니까? 우리 국민들이 불감증에 역사 불의

식에... 금방 잊어버리고 금방 무너뜨리고 금방 만들고 이런 지경 속에서 지금 살고 있는데 살아있는 조선

왕조의 고종황제의 손자로서 참담함을 느꼈습니다. 조금 아까 오늘도 숭례문을 지나왔습니다. 가슴이 내려

앉고 당장 뛰어 내려가서 통곡을 하고 싶은데 참고 왔습니다.

- 국민들 다 지금 선대에 뵐 면목이 없습니다만 이석 선생께서는 더 면목이 없다는 생각이 드셨을 것 같아요.

= 그렇죠.

- 어릴 적에 이 석 선생께서는 궁궐에 사시지 않았습니까? 언제까지 사셨어요?

= 그럼요. 궁궐에서 태어나고, 1979년까지 살았습니다. 나이가 마흔 한 살 때까지. 서울 종로구 청와대 옆에

있는 ‘칠궁’이라는 장희빈 사당에서 살았습니다.

- 어떻게 나오시게 된 거죠?

= 그러다가 10.26 사태 나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시자 전두환 정권에서 헌병 트럭으로 저희를 몰아냈습

니다. 그래서 같이 살던 다섯째 형님은 피를 토하고 돌아가시고 저는 미국으로 망명 아닌 망명의 길을 떠났

었습니다.

- 그럼 마흔 살 되실 때까지 궁궐에 사셨으니까 추억이 여러 가지 있으실 것 같은데요, 혹시 숭례문에 대한

억도 좀 있습니까?

= 숭례문은 감히 그 쪽으로 가지도 못했습니다. 그 때는 또 잠가 놨었잖아요. 그러다가 2~3년 전에 오픈을

시키고 일반인들이 구경도 하고 그랬는데, 처음에는 이게 세상이 변해가고 민주국가가 되고 자유국가가 되

니까 이렇게 마음대로 하는 구나 그랬습니다만 그건 감춰놨어야 돼요. 우리나라 역사는 감춰놔야 해요. 개방

보다는... 왜? 국민 역사의식이 확고해야 그걸 열어놓을 수 있지, 그런 상태에서는 개방되면, 남의 물건을 우

습게 안단 말이에요.

- 개방했을 때 그러니까 좀 걱정을 하셨던 거군요.

= 걱정을 했죠.

- 그 부분이 그러잖아도 논란이 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개방했을 때 많은 분들이 좋아하셨습니다.

이제 가까이서 볼 수 있겠구나. 그런데 이석 선생께서는 걱정을 하셨었다는 말씀이세요.

= 네.

- 당시 숭례문 현판 같은 걸 보면서 이 현판이 양녕대군이 쓰신 것이다 이런 얘기들도 어르신께 듣고 그러셨

요?

= 네, 양녕대군에서 요즘 TV 드라마에서도 나옵니다만 너무나 대단하신 영특한 왕자셨어요. 그래서 태종대

왕에게 막 대들기도 하고 북쪽으로 쳐들어가자고 하고, 중국 사신을 나무라는 걸 봤는데 그 분이 정신이 보

통 분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왕조가 519년을 물러갔지만 요즘 역사에 나오는 연산군 할아버님, 광해군 할아버님 이런 임금님들이

역사 속에서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너무나 똑똑하시고 영특하셨는데 좀 독특한 성격과 나라를 위하려고 하

니까 그게 나쁘게 역사에 적혀져 있는 거예요.

- 그런가요. 어쨌든 그 양녕대군이 쓰신 현판이 떨어져 나가는 모습 보면서...

=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땅을 치고 통곡했습니다.

- 경복궁, 창덕궁 이런 궁에서 사실 때의 추억도 많으시겠어요. 어떤 게 기억나세요?

= 제가 1941년에 처음 태어난 곳이 안국동 사거리에서 내려가면 사동궁이라는 데예요. 사동궁에서 태어났

다가 6.25 동란을 맞은 곳은 안국동 사거리 안동 별궁입니다. 별궁에서 6.25 동란을 맞고, 그 때 아버님은 창

덕궁 낙선재에 계셨고 제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실 때까지 청와대 옆 칠궁에서 있었죠.

- 상궁들과 놀던 기억이라든지 이런 게 혹시 나십니까?

= 어렸을 때는 상궁들이 한 40~50명 됐었어요. 무수리까지 해서 노인들, 나인들이 있고 그랬습니다. 그래

서 왕손들이 뛰질 못하게 했어요. 말을 크게 하면 큰일 납니다. 어디서 쌍놈들이 하는 짓을 하냐고 그렇게 야

단을 맞았습니다.

- 언젠가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황실을 좀 복원하고 싶다. 이게 무슨 계획인가요?

= 저희가 미국에서 돌아온 게 지금 18년째입니다. 그런데 저를 가까이 하시는 교육대학교의 대학원장을 하

시는 안천 교수라는 분과 제가 운동을 벌였습니다. 처음에는 황실 문화만 보존을 시키자고 했습니다. 왜냐하

면 519년 조선왕조의 문화가 찬란했거든요.

그것이 35년 동안 일본인들 때문에 완전히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죠. 좋은 문화는 다 자기네들이 갖고 가고.

그랬었는데 문화를 살리자고 그랬었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나라 정치가 민주정치에 대통령제이니까 왕

실을 얘기해봐야 특히 공무직에 있는 공무원들은 시대착오적인 거라고 비방을 해요. 왕실을 얘기하지 말라는

거예요. 귀찮으니까. 역사를 모르니까. 그래서 저는 문화 쪽으로만 나가려고 그랬습니다.

- 그럼 황실 복원하자는 운동까지 하고 계신 마당에 숭례문을 이렇게 태워먹었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

겠습니다.

= 글쎄 말입니다. 개인이, 70이 다 된 머리가 허연 노인이 그렇게 했다면 이건 하늘의 벌입니다. 하늘이 잘못한

거예요. 인간 차원을 넘어나서 과연 그 인간을 건드린 게 누구냐.

- 말하자면 하늘에서 경고를 주시는 것 같다. 우리가 너무나 우리 문화, 우리 것을 소중히 안 하고 있는 게 아니

냐 , 되돌아보라는 경고란 말씀이신데요.

= 하늘에서 경종을 울린 것입니다.

- 숭례문 복원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데 이 부분에 있어서도 의견이 있으신가요?

= 과연 6백 년 전에 만든, 1394년에 시작해서 98년에 됐다고 역사에 나오는데 과연 6백 년 전에 만들었던

노하우, 기술, 소목장, 대목장이 지금 없다고 그러잖아요. 몇 분 있긴 있다고 하지만 과연 그 기술이 나올까...

그냥 하나의 장난감 같이 만드는 거죠 뭐.

제가 6.25 때 아버님과 같이 있었던 낙선재도 이방자 비전하가 돌아가신 다음 거기를 일본식이라고 해서

다 개방을 시켜놨었어요. 그런데 지금 가면 장난감 같아요. 사람이 살 수 없게 만들어 놨어요.

- 지금 어느 국민이 답답하지 않을 사람이 없겠습니다만 이석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까 답답함을 넘어서

고통스러움을 느끼고 계시다는 생각이 드네요.

= 네, 그래서 제가 전국을 다니면서 역사 강의를 합니다. 한 시간씩. 엊그제도 울산 경찰청에 가서 경찰들한테

역사의식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 국민이 합칠 때다, 세계 속에 우리 대한민국이 우뚝 서려면 이제 마

음을 비우고 합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내가 소리를 지르고 다닙니다.

- 말씀 고맙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황손 이석 선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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