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그렇게 달리냐고 묻는다면? | |
[서평]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달리기> | |
출발 현장인 해남 땅끝전망대와 정확히 중간 지점인 충주시, 완주 지점인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각각 주자들의 땀에 절은 사투를 지켜보았다. 이 대회 참가자 중 한 명은 강원도 횡성 부근 국도상에서 야간에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하기도 했다.
왜 이들은 이렇듯 때론 목숨까지 위태로운 622km 거리를 7일 동안 계속 달리는 걸까? 가까이서 지켜 본 이들의 마라톤에는 '인간체력의 한계 시험과 극복'이라는 표피적인 이유를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시집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송경태 지음, 청동거울 펴냄)은 세계4대 극한 마라톤(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에 도전하는 한 시각장애인 울트라 마라토너의 도전과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대 나이에 군대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해 1급 시각장애인이 된 저자가 숱한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이어가는 삶에 대한 희망과 도전을 담은 시집이다.
자살을 마음 먹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장애를 당한 저자가 남다른 삶의 투지와 의욕으로 일어날 수 있었던 힘 가운데 하나는 마라톤이었다. 저자는 걷기부터 시작해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고, 나아가 국토를 종단하고, 사하라사막과 고비사막까지 달리면서 삶에 대한 애정과 희망을 말한다.
저자는 '장애의 몸으로 가장 밑바닥에서 부대끼며 살다 보니 때로는 포기하고 싶었다. 이것을 이겨내게 한 힘은 바로 나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었다'고 말한다. 빛을 볼 수 없는 어둡고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준 것은 바로 저자의 꿈이었다.
저자는 장애인으로서 겪는 숱한 주위의 편견과 차별들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담아내기도 한다. 그 굵고 속깊은 아픔과 안타까움들은 압축된 짧은 시어로 담담하게 표출된다. 어렵고 현란한 시어가 아니라 누구든 쉽게 시인의 '마음 바코드'를 읽어낼 수 있는 간결한 문장들이다.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울트라 마라토너들은 모두 시인이 된다는 속설이 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육체적 고통과 극한의 상황에서 소멸되고 남는 것은 결국 '정신적인 사리'다. 마치 고승들이 열반에 들어 그 육신이 불에 태워지면 마지막으로 남는 한 줌의 사리처럼.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포레스트는 사랑하는 제니와 헤어진 후 무려 3년 2개월 14일 16시간 동안 미국 대륙을 달린다. 포레스트는 자신이 그토록 달린 이유에 대해 담담하게 말한다.
"엄마는 항상 이렇게 말했어요. 과거를 옮길 수만 있다면 뒤에 두라고. 그것이 내가 뛰는 이유의 전부 같아요."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 첫날 제일 먼저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저자. 1급 시각 장애에도 불구하고 마라톤과 생의 달리기를 결코 멈추지 않는 시인의 의지와 도전은 '현실에 안주하거나 게으른' 독자에게 크나큰 동기를 준다.
달리기를 사랑한 여인의 마지막 1년의 기록
최근 불치병에 걸린 미국의 한 대학 교수의 마지막 강의가 유튜브 동영상으로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시한부 삶을 사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답지 않게 학생들에게 용기를 주는 유머가 넘치는 강의는 무척 감동스러웠다. 죽음을 뛰어넘은 용기와 그 초연한 자세.
만일 우리 앞에 죽음이 시한부로 놓여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까? 쉬운 질문이지만 대답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이라는 시험지의 선택이 아닌 필수 문제다. 사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시한부 삶인 췌장암 선고를 받고 수술 후 완쾌한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는 한때 죽음에 직면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사회진출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죽음이야말로 삶의 가장 훌륭한 발명품이다. 우리에게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남의 인생을 사느라 삶을 낭비하지 마라.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 낸 결과물에 불과한 도그마에 갇혀있지 마라. 타인의 견해가 당신 내면의 목소리를 삼키지 못하게 하라. 자신의 가슴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져라."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달리기>(달리 웨이크필드 지음, 랜덤하우스 펴냄)는 한창 나이인 서른 셋에 갑자기 찾아온 불치병 탓에 죽음과 사투를 벌인 한 여성의 마지막 일 년의 기록이다.
달시 웨이크필드는 대학강사인 서른 셋의 '팔팔한' 아가씨다. 평소에 수영과 자전거, 달리기로 체력을 다진 그녀는 이상형 남성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활달한 성격이다. 또 정자은행을 통해 아기를 가지고 싶어하는 전향(?)적인 성격.
어느 때부턴가 즐기던 달리기가 힘들어 지고 걸을 때 가끔 넘어지는 현상이 벌어지면서 그녀에게 점차 'ALS'(근위축성측삭경화증, 일명 루게릭병)라는 불치병이 다가온다. 평소에 채식주의자에 운동으로 다져진 그녀의 몸에 병이 생긴다는 것은 그것도 불치병으로 알려진 루게릭병이 발병한 것은 그녀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비록 이해할 수 없는 일일지라도 그것이 운명이고 현실이라면 피할 수 없는 것. 이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녀는 뜻밖에 평소 바라던 두 가지 소망을 이루게 된다. 루게릭병을 진단받고도 아이를 가지기 원했던 저자는 정자은행을 통해 결국 소중한 아이를 얻는다.
불치병에 걸리고도 아이 낳기를 소원했던 저자나 그것을 용인해 주고 축하해 주는 주변 사람들, 말없이 옆에서 보호해 주고 지켜주는 동반자 스티브의 존재는 우리 사회 시각으로 보면 다소 이질적일 수도 있다.
그래도 저자인 달시가 남긴 일 년간의 기록에서 죽음 앞에서도 진한 모성애와 죽음에 초연해지는 자세, 지난 삶에 대한 애정을 배울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삶에 고난이나 불행이 밀려들 때 그것을 부인하며 밀쳐내려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믿기지 않는 불치병 앞에서 저자는 '왜 내게 이러한 고통을?'이라는 질문을 수없이 되뇐다. 루게릭병 진단 이후 시인 '릴케'의 글은 저자인 달시의 남은 삶의 지표가 된다.
마음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거든 인내심을 가지고 그 일 때문에 생기는 질문들을 사랑하도록 노력하라. 지금 당장은 답을 찾으려고 애쓰지 말라. 질문을 껴안지 않는 한 답을 찾을 수 없다. 지금은 그저 살아가라. 지금은 그저 질문을 껴안으라.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달리기>는 루게릭이라는 불치병으로 결국 세상을 떠난 저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일 년간의 기록이다. 평소 달리기를 좋아했던 저자. 몸의 근력이 점차 약화되면서 죽어가는 불치병에 걸렸으면서도 생애 '마지막 가장 아름다운'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던 삶의 역주(力走), 그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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