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김수업 우리 모임 공동대표
사람 치고 저를 낳아 길러주던 어버이가 난데없이 이웃집 아이를 데려다 금이야 옥이야 사랑을 쏟으면서 저를 못난이라며 버린다면 그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말의 신세가 어버이에게 버림받은 아이와 같다. 우리말은 저를 낳아서 길러주던 겨레에게 오랜 세월 버림받았다. 잘사는 이웃집 중국(당나라) 말을 데려다 금이야 옥이야 사랑하며 신라 왕실이 우리말을 맨 먼저 버렸다. 당나라에 빌붙어 그들과 손잡고 같은 겨레인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뜨린 신라 왕실이 당나라 학교를 본뜬 국학을 세워 당나라 글말(한문)만 가르쳐서 벼슬아치를 만들고, 벼슬자리 이름과 땅 이름을 당나라처럼 바꾸고, 왕실과 벼슬아치는 사람의 이름도 당나라처럼 바꾸면서 맨 먼저 우리말을 버렸다.
신라 왕실을 이어받은 고려 왕실은 당나라를 이어받은 송나라를 받들면서 송나라 글말(한문)을 금이야 옥이야 사랑하며 우리말을 짓밟고 버렸다. 송나라 학교와 같은 학교(국자감)를 세워 송나라 글말만 가르쳐 벼슬아치를 만들고, 우리말과 우리 삶을 버리고 중국말과 중국 삶을 본뜨면서 ‘작은 중국(소중화)’이라 뽐내고 우리말을 업신여기며 버렸다. 고려 왕실을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운 사대부들은 송나라를 이어받은 명나라를 받들면서 우리말을 더욱 짓밟고 내버렸다. 송나라 철학(주자학)을 나라 다스리는 기틀로 삼고 벼슬아치 기르는 학교(향교)를 온 나라 곳곳에 세워 명나라 글말(한문)만 가르쳐 벼슬자리를 맡기면서 우리말을 더럽다며 버렸다.
왕조가 무너지는 틈을 타고 들어온 침략자 일제는 반세기 동안 우리말을 짓밟아 아예 뿌리를 뽑으려고 날뛰었다. 온 나라 구석구석까지 일본식 학교를 세워 일본말을 ‘국어’라고 우기며 가르치고,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어른들에게도 온갖 수단을 다하여 일본말을 가르치며 우리말 뿌리를 뽑고자 설쳤다. 이처럼 우리말은 신라, 고려, 조선에 걸쳐 일천삼백 년 왕조 시대에는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왕조가 무너지자 침략자 일제가 반세기 동안 나라를 빼앗아 다스리는 동안 침략의 앞잡이와 친일 지식인들한테서 버림받았다.
어떤 사람은 내가 이렇게 말하면 나더러 답답하게 속 좁은 사람이라 한다. 세상 어느 겨레가 제 스스로에게서 태어난 말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세상 어느 겨레든 이웃한 겨레의 말을 받아들여 쓰며 살아가지 않는가? 한자말이 들어와서 우리말을 짓밟아 죽인 것이 아니라 우리말을 더욱 넉넉하고 푸짐하게 살려내지 않았는가? 한자말이 들어와서 학문이나 철학이나 사상을 일으켜주지 않았는가? 이러면서 나에게 국수주의자니 민족주의자니 하는 같잖은 소리까지 끌어 붙이려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들이야말로 사실을 모르고 거짓말에 휘둘린 사람들이다. 세상 모든 겨레는 이웃한 겨레들과 서로 말과 삶과 문화를 주고받으며 더욱 좋은 세상을 만들어 살아가는 줄을 나도 잘 안다. 우리 겨레도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가 굳건히 떨치던 그 이전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이웃한 여러 겨레들과 더불어 말과 삶을 서로 주고받으며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뜨린 뒤로 신라와 고려의 왕실과 조선의 지배층은 그런 삶을 살지 못했다. 이웃한 여러 겨레들과 자연스럽게 말과 삶을 서로 주고받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웃들에게는 문을 닫아걸고 스스로 외톨이가 되면서 오직 중국 한족의 당․송․명나라만을 떠받들었다. 게다가 우리말을 건네주지는 못하고 중국 글말을 모셔 들이는 외길에만 빠져 안간힘을 다했다. 그래서 들어온 중국 글말은 하늘같이 떠받들려 일테면 ‘전답’은 ‘논밭’을 쫓아내고 안방을 차지했고, ‘강’은 ‘가람’을 짓밟아 목숨까지 빼앗았다. 이처럼 참혹한 세월을 일천삼백 년이나 견디다 못해 죽어나간 우리말이 얼마나 되는지, 목숨은 간신히 붙었다 하더라도 굶주리고 짓밟히며 얻은 골병이 얼마나 깊은지 아직 우리는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이처럼 슬프고 부끄러운 역사의 속내를 헤아리지 못하고 중국 한자말이 우리말을 푸짐하게 끌어올렸다느니 한문이 있었기에 학문과 사상을 일으켰다느니 하는 소리는 진실을 덮고 거짓을 퍼뜨리는 죄악에 지나지 않는다. 한문 때문에 오히려 우리말의 학문과 사상이 일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한문으로 해놓은 학문이란 것이 중국 아류에서 헤매는 바람에 겨레의 얼만 망가뜨려 놓았다. 이런 흐름은 왕조가 무너진 뒤로 일본과 미국으로 그대로 이어져 우리말 ‘소젖’은 맨 밑에 깔리고, 일본말 ‘우유’가 그 위에 올라앉고, 미국말 ‘밀크’가 다시 그 위에 올라앉았다. 이처럼 뚜렷한 사실을 안타까워할 줄도 모르고 일본말이거나 미국말이거나 모두 모자라는 우리말을 넉넉하고 푸짐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알맹이는 모르고 껍데기만 아는 얼간이와 다를 바가 없다.
짓밟혀 죽기도 하고 깊은 골병이 들기는 했으나 우리말이 오늘까지 살아남은 데는 두 가지 도움이 있었다. 하나는 중국 글말이든 일본 글말이든 그까짓 것들을 거들떠보지 않고 우리말로만 값진 삶을 꿋꿋하게 지키며 살아온 이름 없는 백성들 도움이다. 이름 없는 백성들은 입말만으로 보배로운 삶을 지키고 가꾸면서 놀이말꽃, 노래말꽃, 이야기말꽃을 아름답게 꽃피워 오늘 우리에게까지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또 하나는 우리 입말을 고스란히 적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주 쉬워서 공들여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부려 쓸 수 있는 우리 글자 한글 도움이다. 한글은 지난 오백 년 넘도록 비록 골병 든 우리말이나마 하나하나 붙들어 사라지지 않도록 갈무리해주었고, 아무리 코밑이 바쁜 백성이라도 어깨 너머로 배워서 스스로의 삶을 붙들어 쌓아놓을 수 있도록 연모가 되어 주었다. 이런 두 가지 도움으로 우리말은 중국이나 일본에 물들지 않은 여느 백성의 깨끗한 삶을 한글에 적어 놓아서 남부럽지 않을 만큼 문화유산으로 쌓여 있고, 일본 침략의 이빨이 날카롭던 시절에 주시경 선생의 제자들을 비롯하여 우리말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일어서는 말미를 만들어 주었고, 오늘도 우리가 나날의 삶을 모자람 없이 마음껏 가꾸며 살아갈 수 있도록 숨결 노릇을 해주고 있다.
그런데 침략자 일제를 몰아내는 싸움에 빌미가 잡혀 천년 동안 한 동아리였던 우리 겨레는 두 동강으로 잘렸고, 남북으로 밀어닥친 미국말과 러시아말에게 우리말은 또다시 무참하게 짓밟히는 신세로 떨어졌다. 무엇보다도 남녘의 집권 세력은 세계를 멋대로 주무르려는 미국의 손아귀에서 줄곧 벗어나지 못하여 날이 갈수록 미국말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더구나 21세기로 넘어서면서 세상은 눈에 띄게 나라 사이 울타리를 무너뜨리며 어우러지자, 힘센 미국말의 거친 너울은 막을 길이 없어졌다. 맨 먼저 개인 대기업이 사원을 뽑는 시험에서 ‘영어’를 가장 무겁게 매기더니, 머잖아 국영 기업도 따라 가고, 중소기업도 따라 가고, 국가공무원도 따라 가고, 지방공무원도 따라 가고, 사람을 뽑는 곳이면 어디서나 영어 시험에 죽살이가 달려버렸다. 밥술을 떠먹고 목숨을 건지자면 영어 시험을 거치지 않을 수 없도록 나라꼴이 뒤틀어지니까 영어 시험을 쳐주고 돈을 버는 미국 회사에는 삼백 예순 날 우리나라 젊은이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중학생부터 배우던 영어를 초등학생부터 배우게 하니까 유치원마다 영어를 가르치느라 야단법석이 일어나고, 대학마다 모든 과목을 영어로 강의하도록 온갖 부채질을 해대며 우리 학문을 망가뜨리고, 제주에다 영어를 우리말처럼 쓰면서 살 수 있도록 한다더니 온 나라 지자체들이 다투어 영어를 우리말처럼 쓰는 구역을 만들겠다고 나서고, 차라리 아예 우리나라 모든 국민에게 영어를 우리말처럼 쓰도록 하자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나서서 활개를 치게 되었다.
영어라는 이름의 미국말은 지난 일천삼백 년의 중국 글말이나 반세기의 일본말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상대다. 지난날의 중국 글말은 일천삼백 년을 내리눌렀지만 배우기가 어려워 우리말의 뿌리인 백성을 크게 어쩌지 못했고, 일본말은 뿌리인 백성까지 겨냥하여 날뛰었으나 할퀸 세월이 반세기를 넘기지 않아 깊은 곳까지 파고들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영어라는 이름의 미국말은 우리에게 밀어닥친 세월이 이미 반세기를 훌쩍 넘어섰을 뿐 아니라, 우리말의 터전이며 뿌리인 백성까지 깡그리 싸잡아 뱃속에 들어 있는 태아부터 배우게 하려고 안간힘을 다한다. 무엇보다도 지난날 중국 글말이나 일본말은 우리말의 터전이며 뿌리인 백성들이 달갑게 여기지 않았으나 오늘날 미국말은 모든 백성이 정신없이 안달하며 다투어 배우려고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 이런 백성의 발버둥은 지난날 중국 글말과 일본말을 익혀 쓰던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입고 거드럭거리며 가르쳐준 역사에서 뼈저리게 배운 나머지임을 헤아릴 수 있다. 그만큼 어떤 힘으로도 말리기 어렵다는 사실 또한 헤아리기 어렵지 않다. 그래서 지금 우리말에게 덮친 미국말의 열병은 얼마나 무서운 지경까지 나아가면 그칠 것인지 가늠조차 하기가 어렵다. 끔찍해서 입에 담을 수 없지만 하늘이 돕지 않으면 겨레의 뿌리를 뽑아내고야 말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까지 달려든다.
이처럼 눈앞이 캄캄한 세월을 만나서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을 만들었는데, 아무 한 일도 없이 올해로 벌써 열 돌을 맞았으니 이름이라도 잠시 되새겨보고 싶다. 네 낱말로 이루어진 이름을 우선 두 낱말씩 모아 두 덩이로 나누면, 첫 덩이는 ‘우리말살리는’이다. ‘우리말살리는’이란 무슨 뜻인가? 우리말이 죽었거나 죽을 지경이라는 뜻을 바탕에 깔아놓고, 그렇게 죽었거나 죽을 지경인 우리말을 살리는 일을 해보자는 뜻이다. 내가 앞에서 길게 늘어놓은 이야기는 우리말이 어떻게 죽었으며 얼마나 죽을 지경인가를 더듬어 보느라고 해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서 살리자고 하는 ‘우리말’은 중국 한자말도 아니고, 일본 한자말도 아니고, 영어라는 이름의 미국말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들은 우리말에 들어와서 우리말을 죽였거나 죽이고 있는 무서운 역병들이다. 우리가 살리자고 하는 ‘우리말’은 우리 겨레에게서 움이 트고 싹이 나고 몸집이 자라서 삶을 꽃피우고 지켰으면서도 겨레로부터 버림받고 짓밟힌 토박이말이다. 우리 겨레가 낳아서 길렀으나 지난 일천오백 년 동안 어버이인 겨레에게 버림받았던 불쌍한 우리 토박이말이다. 이런 토박이 우리말을 살리자는 뜻으로 ‘우리말살리는’이라는 말을 이름 앞에 놓았다.
중국말이나 일본말이나 미국말의 태풍이 아무리 거세게 불어 닥치더라도 우리 토박이말, 이미 죽었거나 죽을 지경인 토박이말을 찾아 사랑을 쏟아 살려내면, 그리고 그것을 힘써 가르치며 가꾸어 나간다면 언젠가는 불쌍한 우리말이 깊고 그윽한 옛 모습으로 자랑스럽고 푸짐하게 살아날 것이다. 우리말이 그렇게 살아나면 우리 겨레의 삶도 고구려 백제 신라가 떨치던 그 옛날 이전처럼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드넓은 요하를 중심으로 동아시아를 이끌며 세계의 횃불로 우뚝하던 그날의 삶으로 되살아날 것이다. 우리 토박이말을 푸짐하게 되살려만 놓으면 그때에는 미국말도 좋고, 중국말도 좋고, 인도말도 좋고, 러시아말도 좋고, 스페인말도 좋고, 아랍말도 좋고, 세상 모든 말을 다 배워 잘 쓰면 쓸수록 좋을 것이다. 우리말이 튼튼하고 아름답고 자랑스러우면 그때에는 남의 말을 많이 배워 알면 알수록 그것이 모두 우리말을 살찌우는 거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후손들은 부디 그런 세상에서 자랑스럽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자는 뜻으로 ‘우리말살리는’이라는 말을 이름 앞에 놓았다.
뒤 덩이 ‘겨레모임’이란 무슨 뜻인가? 이미 죽었거나 지금 죽을 지경에 허덕이는 우리말을 살려내자면 온 겨레가 모두 함께 손잡고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말은 대한민국에서 살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살든, 중국에서 살든, 러시아에서 살든, 미국에서 살든, 일본에서 살든, 세상 어디에서 살든 우리 온 겨레가 쓰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 온 겨레 안에서도 이미 토박이말을 넉넉히 부려 아름답게 쓸 줄 아는 사람이든, 태어나 살면서 배운 그대로 한자말과 서양말 투성이로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든, 남의 나라에 태어나 살면서 배운 중국말이나 일본말이나 미국말이나 러시아말로 사는 사람이든, 모두 함께 손잡고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모임에 회원으로 들어오고, 회보에 글을 쓰고, 운영위원으로 심부름하는 사람도 온 겨레에서 골고루 빠짐없이 들어와 모였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북녘에 사는 사람이나, 다른 나라에 나가서 사는 사람이나, 북녘을 떠나 남녘에 오신 새터민이나 모두 함께 손잡고 우리말 살리는 일에 나섰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이 갑자기 이루어질 수는 없지만 그런 날이 오도록 문을 열어놓고 우리 모두 힘과 슬기를 모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 겨레 사람은 세상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살더라도 모두 우리 토박이말을 아름답게 부려 쓸 줄 아는 그날을 앞당겨야 한다는 뜻으로 ‘겨레모임’이라는 말을 이름 끝에 놓았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이 올해로 열 돌을 맞아서 지난날을 돌아보지만 마음이 조금도 기쁘지 않다. 우리말을 살리자는 뜻이 이루어지기는커녕 갈수록 허물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천오백 년에 걸쳐 죽었거나 죽을 지경에 이른 우리말을 손바닥 뒤집듯이 살려내리라 믿었던가? 백 년이 걸리든 천 년이 걸리든 끝까지 살려내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나섰던 걸음이 아니던가? 우리 겨레에게 버림받아 죽었거나 죽을 지경에 이른 불쌍한 우리말을 이제라도 우리가 따뜻한 품안에 끌어안고 뜨거운 마음으로 사랑해주자는 뜻으로 나섰던 걸음이 아니었던가?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이라고 지은 이름의 참뜻을 되새기며 백 년이든 천 년이든 지치지 말고 걸어가자고 다짐하고 싶다. 우리말에 쏟아 붓고 싶은 우리의 사랑이 그만큼 뜨겁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우리 모임에서 펴내는 ‘우리말 우리얼’에라도 이제부터는 어떻게든지 죽었거나 죽을 지경인 우리 토박이말을 찾아서 살려 쓰는 글들로 가득 채우도록 힘써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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