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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트레킹에 나서다2

한라의메아리-----/바람속의탐라

by 자청비 2008. 7. 19.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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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정상을 지나 평지로 내려왔다가 다시 분화구내로 조금 들어가니 용암협곡이 탐방객을 맞이한다. 밖은 뙤약볕이 내리쬐는 밝은 대낮인데 이 곳은 어두컴컴하다. 용암이 스쳐지나가면서 좁은 계곡을 만들어냈다. 너무 작은 것이 아쉽다.  

 

숯가마터이다. 이 숯가마터는 정확히 언제부터 언제까지 이용됐는지 마을주민들도 아는 사람이 없다. 다만 일제시대 이전부터 있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숯 제조 방식이 제주의 고유방식과는 달라 이 숯가마터의 주인은 제주사람은 아니었던 듯 하다. 아니면 이 일대에 주둔했던 일본군이 숯이 필요해 이 것을 활용했는지도 모른다. 이 일대는 일제시대 당시 일본군 108여단의 주둔지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일본군이 파놓은 진지동굴(갱도진지)이다. 깊이는 10여m에 지나지 않아 파다가 포기한 듯 싶다. 아니면 이렇게 소규모 동굴진지에 분대규모로 은신해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다른 대규모 동굴진지에 비해선 매우 작은 것이긴 하다. 이 곳엔 이렇게 일본군이 파놓은 진지동굴이 10여곳에 이른다. 

 

땀을 뻘뻘 흘리며 숲 속을 지나가다 갑자기 시원함을 느껴 발길을 멈춘다. 주위엔 수증기가 가득하고 비가 내리지도 않았는데 근처 이끼와 나무잎엔 물방울이 맺혀 있다. 이 주위엔 땅 속 용암동굴의 공기가 나오는 곳이 있다. 그래서 이 주변엔 여름이면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고 한다. 행여 나무 한 포기 풀한포기 다치게 해 이같은 자연의 신비가 사라질까 두려워진다.

 

냉암골과 화산탄을 지나니 길이 매우 좁아진다. 엎드려서 걸어야 할 정도로 잡목림으로 우거져 있다. 이같은 길을 탐방객들이 좀 편하자고 낫을 들고 헤쳐버리는 우를 저지르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일제시대 이곳에 주둔했던 일본군이 냈던 병참도로라고 한다. 작은 손수레 하나가 다닐 수 있는 길이다. 제주의 중산간 지역엔 하치마키도로라는 것이 있다. 순환도로라는 의미다. 일제말기 미군의 제주상륙에 대비해 제주에서 '결7호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옥쇄전략을 수행하려던 일본군이 군수품 보급 및 병력 이동 등을 위해 한라산을 중심으로 빙 돌아가면서 냈던 병참도로다. 그와 마찬가지로 차가 들어올 수 없는 이같은 숲속에는 작은 병참도로로 필요했다. 오른쪽 옆에 하얀 것은 병참도로를 안내하는 팻말이다.

 

용암함몰구다. 왼쪽 낭떠러지에는 용암분화구이고  오른쪽 낭떠러지에는 당초 용암이 흘러 동굴을 형성했다가 함몰되면서 생긴 곳이다. 사진상으로는 원근감이 없어 정확히 낭떠러지 기분이 안나는 것 같다. 사진실력이 없어서 그런건가?

 

여기도 앞서 지난 것과 같은 냉암골이다. 이곳을 지나다보면 갑자기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작은 의자 하나 갖다 놓고 책이나 읽었으면 좋겠다. 

 

이 오름엔 지금은 울울창창한 삼나무림과 편백림 등으로 뒤덮여 있지만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마을주민들은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이 곳에 밭을 만들어 갖가지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저 돌담은  밭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수직으로 이뤄진 천연 용암동굴이다.  깊이가 대략 35m정도라고 한다. 이 밑으로 용암동굴이 뻗어있는 셈이다. 천연동굴이지만 이 용암동굴에도 4.3의 아픈 비극이 숨어 있다. 바로 제주의 소설가 오성찬씨의 '단추와 허리띠'의 소재다. 도내 모 4.3유족단체 회장의 가슴아픈 이야기이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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