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정부 ‘잃어버린 10년’ 독단에 빠졌다
ㆍ경제·외교·남북관계…반사 이익 정치에 함몰ㆍ과거정책 부정하다 따라하기…국정실패 자인
정부·여당이 ‘잃어버린 10년’의 ‘도그마’(독단)에 빠져들고 있다. 이명박 정부 초기 제기한 ‘한·미동맹 붕괴론’ 수준에서 이제는 남북관계 경색 등 외교·안보정책 전반과 경기침체, 쇠고기협상, 심지어 법질서 문제까지 ‘잃어버린 10년’의 그늘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다. 대선·총선을 앞둔 ‘선거 구호’였던 것이 국정위기 타개의 한 축으로 고착되는 흐름이다. 여전히 ‘반(反)노무현 정서’에 기댄 ‘반사이익의 정치’에 빠져 있는 셈이다.
◇ 양태=여권의 ‘잃어버린 10년’ 공세는 가히 전방위의 양상이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지난 22일 국회 긴급현안질의 답변에서 최근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간 성장잠재력 훼손을 지목했다. “문민정부 때 성장잠재력이 7.5%였으나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는 성장률이 4%대로 반토막이 났다”는 것이다.
이튿날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도 현 정부의 최대 실책으로 비판받는 ‘고환율·고물가’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들어오기 전부터 경상수지 적자가 나타나 환율이 올라가기 시작했다”고 원인을 참여정부 시절로 돌렸다.
대북정책 실패와 그로 인한 정보력 부재도 마찬가지다. 당정은 지난 20일 고위당정회의에서 “금강산 사건에 대한 정부의 초기 대응 소홀에는 지난 10년간 정부의 대북정보 수집라인이 완전히 무너진 데 원인이 있다”(차명진 대변인)고 결론 내렸다. 21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과 한 총리는 재차 “금강산 사태에 제대로 된 대응을 못한 것은 좌파정권 10년간 햇볕정책을 기화로 우리 정보기관들의 대북 첩보전력을 약화시킨 데 원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쇠고기 정국 수습도 책임 떠넘기기의 방향이다. 쇠고기 국정조사가 예정된 가운데 한나라당은 연일 ‘참여정부 시절 사실상 30개월 이상 쇠고기 개방에 합의했다’는 자료들을 재탕·삼탕 내놓고 있다. 이른바 “참여정부가 세운 쇠고기 협상은 국제수역사무국(OIE) 규정이 확정되면 거기에 따르기로 한 것이었다. 그 조건이 성취되어 그 일정대로 한 것”(이명박 대통령)이라는 ‘설거지론’의 재확인이다. 심지어 ‘촛불’도 “지난 10년 동안 모든 사회부문과 집단의 욕구가 제한없이 분출됐고, 무질서와 불법시위와 파업으로 한 해에 지불하는 사회적 비용이 12조원”(지난 14일 홍준표 원내대표 교섭단체 대표연설)이라고 이전 정부를 탓하고 나섰다.
◇ 배경과 문제점=이 같은 ‘김대중·노무현 때리기’는 보수 지지층 결집과 복원이라는 정치적 의도와 무관치 않다. 쇠고기 파동을 겪으면서 보수 지지층마저 냉소적으로 돌아서면서 ‘식물정권’의 위기에 빠졌다는 판단 때문이다. “당장은 보수 지지층 복원이 우선”(청와대 관계자)이라는 토로는 그래서다. 그 가장 손쉬운 선택이 집권의 큰 힘이 됐던 ‘반노무현 정서’에 기대는 것인 셈이다.
문제는 이런 편가르기가 가져올 분열이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숙제의 하나로 꼽히는 국민 통합과는 정반대로 가는 상황인 때문이다. 보수진영에서조차 우려하는 이유다. 보수진영의 싱크탱크인 한반도선진화재단이 최근 세미나에서 이명박 정부의 실패의 원인으로 “시대 변화와 동떨어진 독주형 리더십”(윤여준 전 의원)을 지목하면서, “관용과 포용,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 발휘”(한국외대 황성돈 교수)를 난국 타개의 한 요소로 충고한 것이 단적인 예다.
한층 더 직접적인 문제는 국정의 단절과 국가 시스템의 위기다. 쇠고기·금강산 문제 대응과정에서 나타난 우왕좌왕하는 난맥상은 대표적인 사례다. 표면적인 ‘잃어버린 10년’ 주장과 달리 최근 청와대가 국가위기상황센터와 청와대 수석급 홍보기획관을 신설하고, 국무총리 권한과 위상 강화, 총리 주재 국가정책조정회의 정례화 등 다시 이전 정부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상황은 그간 국정 난맥상을 자인한 것이자, ‘잃어버린 10년’을 스스로 부정하는 증좌로 읽힌다.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