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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님 제삿날

세상보기---------/사람 사는 세상

by 자청비 2008. 8. 26.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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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8년 8월 24일 이오덕 선생의 제삿날을 맞아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운영위원들이 무덤에 다녀온 후 우리말 우리얼(http://cafe.daum.net/malel) 운영자가 보내온 편지글이다.

 

이오덕 선생의 참교육을 실천하는 ‘이오덕 학교’
아버지의 삶과 교육사상을 이어가는 효자 이정우.

 

 

충북 충주시 신리면 광월리 산골에 가면 ‘이오덕 학교’ (043-844-6622)가 있다. 이 학교는 아동문학가요, 교육개혁운동가이며 우리말과 얼을 지키고 살리는 일을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하다가 2002년에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의 정신과 삶을 실천하는 대안학교다. 지금 이 학교에는 학생 5명과 선생님 세 명이 있고, 교장은 이오덕 선생의 큰아들인 이정우(61)님이다.


이오덕 선생의 제삿날인 2008년 8월 24일,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운영위원들이 이오덕 선생의 묘소에 찾아갔다. 5년 전 돌아가셨을 때 찾아가고 처음이다. 그런데 5년 만에 몰라보게 변한 무덤 주변 모습에 모두 깜짝 놀랐다. 입구에 ‘이오덕 학교’란 간판이 있고 학교버스도 있으며, 큰 새집이 여러 채 있었다.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이오덕 선생의 큰아들인 이정우님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오덕 선생의 ‘참교육’ 사상을 이어서 실천하려고 ‘대안학교’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정우 교장은 누구인가? 이오덕 선생의 큰아들로서 대학은 다니지 않았지만 많은 책을 읽어서 대학교수보다도 아는 게 많은 지식인이고 교육자요 주관이 뚜렷한 참된 사람이다. 덥수룩한 수염에 검은 얼굴인 농사꾼이고, 학교 건물도 손수 설계하고 지은 재주꾼이며, 보기 드문 효자다. 아버지인 이오덕 선생의 살아계실 때도 그분의 삶과 정신을 누구보다다 잘 알고 받든 아들이며 그 정신을 이어서 실천하려는 후계자이기도 하다. 당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아버지의 ‘참교육으로 가는 길’이란 꿈을 이루려고 애쓰는 한국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화환이나 조의금을 받지 않고, 혹시 우편으로 보낸 조의금도 반환하느라고 우편료가 30만 원이나 든 사람, 조용하게 장사를 치르려고 방송에 바로 보도하지 못하게 한 사람이다.

 

그럼 이오덕 선생은 누구인가? 일제가 망하던 1945년에 국민학교 선생으로 시작해서 경남 지역 농촌과 산골학교만 다니며 바른 글쓰기 교육을 통해서 참된 교육을 실천하려고 애쓴 교육자이다. 그는 말과 글을 통해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려고 애썼으며 우리말과 얼을 지켜서 잘 사는 나라를 만들려고 우리말 살리는 운동을 한 문화운동가이도 하다. 이분도 대학은 나오지 않았지만 대학을 나온 많은 한국인이 배우고 우러러보는 참된 한국인이다. 그는 2003년 78살에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만든 한국글쓰기연구회와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어린이도서연구회, 마주이야기연구소, 어린이문학회의 회원들이 그의 정신과 교육 철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 ‘이오덕 학교란 어떤 학교인가? 이오덕 선생의 큰아들인 이정우 선생이 아버지 살아 계실 때 모시던 터에 2만여 평의 논밭과 산을 구입하고 집을 지어 만든 참살이 대안학교다. 이오덕은 우리 아이들이 잘못된 교육환경에 시달리는 걸 안타깝게 여기고, 참교육을 외쳤고, 잘못된 글쓰기 교육을 바로 세우려고 무척 애썼다. 많이 배웠다는 자들이 아이들을 그런 입시경쟁사회에 몰아놓고 들볶는 걸 마땅치 않게 생각했다. 우리말보다 남의 말을 더 받들고, 엄청난 사교육비에 시달리는 학부모들도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래서 이오덕 선생은 얼빠진 이 나라의 지도층과 많이 싸웠지만 그 아들인 이정우 교장은 그런 제도권 교육에서 해방된 학교를 스스로 만들어 참된 사람, 바르게 자라는 한국인과 세계인을 길러보려고 아름답고 따뜻한 대안학교를 만들었다.

 

우리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놀며 어떻게 사는 건지 농사일을 도우며 배우고, 닭과 토끼에게 먹이를 주면서, 조랑말도 타보라고 키우고 있다. 사슴과 돼지와 오리와 개도 기르는 실습학교다. 밭과 논과 산으로 둘러싸인 학교에서 우리가 먹는 게 어떻게 나오고 이 땅에 어떤 풀과 벌레가 있는지 살면서 배우는 학교다. 머리가 노랗고 코가 큰 외국인 영어 선생도 없고, 과외나 학원공부가 없어도 애들이 착하고 똑똑하게 튼튼하게 자라는 학교다.

 

선생님이 부모님이고 친구도 되며, 친구들과 놀면서 말과 글을 배우고 참된 삶을 익힌다. 과학과 산수 교과서는 제도권 교과서를 쓰지만 나머지는 스스로 만든 책이다. 이곳은 이오덕 선생이 살던 곳이기도 하지만 권정생 시인도 살던 곳이다. 여기엔 이오덕 선생과 권정생 선생이 읽던 책과 지은 책이 산더미처럼 싸여 있으며 두 분의 시비도 있다. 언덕을 오르다가 목이 마르면 골짜기에 흐르는 물도 마시고 도토리도 주어서 가축에게 주기도 한다.

 

이정우 교장은 “ 이 학교에 들어오려면 먼저 부모가 이오덕의 삶과 정신을 알고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3학년 이하 어린이만 받는다. 3년 전에 문을 열고 고학년과 고등학생도 받아봤는데 기존 교육에 물들어서 바른 새 교육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 때에 와서 선생님과 먹고 자고 선생님이 하는 일을 돕기도 하고 함께 놀면서 자연스럽게 참된 사람으로 키우려고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지금 ‘이오덕 학교’엔 아직 학생이 5명이지만 앞으로 진짜 아이들이 많이 모일 거로 보인다.

 

이오덕 선생은 복도 많은 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이오덕 선생 무덤에 절을 했다. 그냥 마셔도 아무 탈이 안 나는 맑은 물이 흐르고 따뜻한 교실과 선생님이 있고, 친 할아버지 같은 교장 선생님이 학생들을 위해 땀 흘리는 아름답고 깨끗한 ‘이오덕 학교’가 낙원처럼 보였다.

 

제 나라의 말은 우습게 여기며 미국말에 미쳐서 날뛰는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도지사나 구청장과 교장들보다도 이정우 농부 교장이 더 우러러 보였다. 그리고 저런 효자를 두고 가신 이오덕 선생이 복이 많은 사람이고, 많은 후계자를 두고 가신 그분이 훌륭한 분임을 다시 느꼈다. 어제 서울 어떤 호텔에서 장관과 국어교육자들이 모여 거창하게 치른 행사보다도 오늘 이오덕님 무덤과 ‘이오덕 학교’ 방문이 더 보람차고 큰 감동을 준 하루였다. 이 학교가 잘되어서 이오덕의 참교육과 ‘삶을 통한 글쓰기 교육’이 빛나고 이 학교에서 우리말과 얼을 지키는 참된 한국인이 많이 나오길 간절히 바라고 빈다.

<사진출처:http://blog.daum.net/yiha59/13688223?nil_profile=tot&srchid=IIMbNs2K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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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 약력

아동문학가·평론가. 경상북도 청송(靑松) 출생. 영덕농업보습학교를 거쳐 교육계에 들어가 어린이 글짓기 지도교사, 초등학교 교장 등을 지냈다.

 

1971년 동화 <꿩>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하였다. 73년 동시집 《까만새》에서 농촌 어린이의 참된 모습을 사실주의 시각으로 표현하면서, 민중문학적 의식을 나타낸 아동문학의 서민문학론을 주창하였다.

 

한국아동문학상·단재상 등을 받았다. 저서에 동시집 《별들의 합창(1966)》 《탱자나무울타리(1969)》 《개구리 울던 마을(1981)》, 동화집 《종달새 우는 아침(1987)》, 수필집 《거꾸로 사는 재미 (1980)》, 글짓기 지도서 《글짓기 교육의 이론과 실제(1965)》, 어린이글 모음집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농촌 아이들의 산문집(1979)》등과 그 밖에《시정신과 유희정신(1977)》《우리글 바로 쓰기》《이오덕 교육일기》 등이 있다.

 

 

아빠’라는 말

이오덕

 

 ‘아빠’라는 말은 젖을 먹고 있는 아기가 아버지를 부르는 말이다. 아빠· 빠빠·파파 등으로 우리 나라뿐 아니라 모든 나라의 유아어(乳兒語)로 공통되게 쓰인다.‘엄마’도 마찬가지다. 엄마·마마·맘마 등으로 쓰이는 세계 공통의 유아어는 어머니와 함께 젖, 또는 먹을 것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그러니까 이 아빠, 엄마란 말은 젖먹이때(乳兒期)를 벗어나면 당연히 쓰지 않게 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도록 모든 나라의 부모들은 가르쳐 오고 있다. 즉 자기들의 모국어를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아버지, 어머니라는 말은 어린이가 학교에 취학했을 때 선생님들이 교육 목표에 따라 비로소 가르치는 말이 아니다. 학교조차 없었던 까마득한 그 옛날부터 부모들이 가정에서 젖먹이 아기들에게 가르쳐왔던 가장 기본적이고 순수한 우리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대다수의 우리 부모들은 이 순수한 우리 말을 아기들에게 가르치기를 포기해 버렸다.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마땅히 가르쳐야 할 말을 가르칠 줄 모르게 된 것이다. 아마 8․15 이후, 특히 60년대부터 그랬다고 본다. 어찌어찌해서 돈 좀 모아 양옥에서 양식 맛까지 보니 그만 말도 남의 나라 투를 닮고 싶어하는 정신의 타락 현상이 나타난 것 같다. 정작 남의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이래서 서울의 부모들이 쓰는 말을 이제는 시골 사람들도 따르게 되었다.


  무지한 부모들은 젖먹이 아기들의 혀짤배기 말을 언제까지나 쓰도록, 그 말을 흉내내어 보인다. 어린이들은 아버지, 어머니란 말을 할 줄 모르고, 국민학교에 들어가 교과서로써 처음으로 그 말을 읽고 외고 해도 입말로는 할 줄 모르고, 중고등학생이 되어도, 대학생이 되어도‘아빠’라고 말한다. 세계의 그 어느 나라 대학생이 젖먹이 말로 부모를 부를까? 혀짤배기 말을 흉내내면서 아기 같은 심리 상태로 퇴영해 버린 이 땅의 부모들!


  어린 아기로 퇴영한 어른은 그 아기보다 훨씬 못하고 타락한 존재가 된다. 오늘날 이 땅의 교육 부재(敎育不在) 상황은 인간으로서 퇴영해 버린 이러한 부모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발목이 졸리고 답답해서 신지 않겠다고 하는 두꺼운 양말을 억지로 신기고, 사치한 옷을 입히고 화장까지 시켜 좋아하는 부모들은, 점수 따기와 학원 공부로 아이들을 채찍질하고 있다. 새벽에 학교로 가서 밤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중고등학생, 잠을 못 자고 숙제를 하는 국민학생, 그들이 하고 있는 공부가 과연 사람 되자는 공부일까? 지난해에는 드디어 한 어린 학생이 반장 선거에서 낙선되었다고 자살을 했다. 올해 어린이 날에는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호텔 같은 데 데리고 가서 몇만 원짜리 음식을 사 먹이고 호화판 놀이를 하게 했다. 여기에다 온갖 유해 식품을 끊임없이 먹이고, 저질 만화·텔레비전·전자 오락들 속에 방치된 어린이들을 생각할 때, 나는 우리 나라의 모든 부모들에게 도대체 아이들을 어떻게 할 작정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을 병들게 하는 이 모든 부모들의 무지한 짓이, 혀짤배기 말만 어느 때까지나 쓰게 하는 국적 불명의 퇴영한‘아빠 빠빠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어린이는 결코 어른의 장난감일 수 없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의견을 낸다. 우선 이‘아빠’란 말을 각 가정에서 바로잡아 보자는 것이다. 아이들한테 아버지라 말하라고 하면 부끄럽다, 정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한다. 안 쓰던 말을 쓰자니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어떤 특별한 날을 잡아 말을 바꾸도록 하면 좋겠다. 가령 어린이나 부모의 생일날이라든지, 어버이나 어린이날, 또는 설날도 좋은 기회다. 그런 날을 잡아서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면 어렵지 않게 고쳐질 것이다. 어린이를 사람답게 키워 가려면 무엇보다도 이런 말을 바로 쓰는 교육부터 가정에서, 학교에서 해야 하리라 믿는다.

― 1986. 5 「삼성」 『삶·문학·교육』 종로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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