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래자랑>송해 할아버지 우리마을 오셨네 | ||||||||||
[매거진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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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참 많은 일이 일어났다. ‘서울의 봄’이 수많은 꽃 같은 이들의 목숨과 함께 졌고, 그 일의 주동자는 대통령이 되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니 어쩌면 필연적으로 그해부터 국내 대중문화는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컬러 TV가 시판되었고, 우울한 대중들은 대중문화 속으로 도피하며 현실의 시름을 달랬다.
때는 1980년이었다. 우연히도, 아니 어쩌면 상징적이게도 TV 드라마와 예능 부분에서 최장수 방영 기록을 지닌 두 프로그램이 바로 그해 시작되었다. 두 프로그램 제목의 첫 글자는 당시 대통령의 성과 같았고, 근원적 고향 풍경의 재현으로 위안의 판타지를 제공하는 성격 또한 유사했다.
하지만 MBC <전원일기>가 과거형이 되는 동안 KBS <전국노래자랑>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로써 <전국노래자랑>은 80년대의 특별한 역사 속에서 본격적으로 부상한 우리 대중문화사의 태생적 기능을 내재한 가장 상징적 프로그램이자 그것을 현재까지 변치 않고 수행하는 거의 유일한 오락 프로그램이 되었다. 진솔한 삶에 기반한 ‘정’과 ‘흥’
<전국노래자랑>의 진정한 생명력은 급변하는 트렌드 가운데서도 한결 같이 우리 대중문화의 가장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기능을 유지해왔다는 데 있다. 즐거움과 위안이라는 그 근본 정서는 모던하고 화려한 오늘의 버라이어티 세계에서 역으로 ‘오락’의 가장 본질적인 성격을 환기시킨다. 요컨대 <전국노래자랑>은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근본적인 미덕을 가장 간결한 형식 안에 담아내는 프로그램이다. 그것은 ‘정’과 ‘흥’으로 요약되는 주축 정서 구조를 통해서 재현된다. ‘정’이 감동의 코드라면, ‘흥’은 웃음의 코드다. 진행자 송해와 일반인 출연자들 사이의 정겨운 토크와 흥겨운 노래 경연이라는 간단한 포맷으로 이루어진 <전국노래자랑>은 주로 전자에서는 감동을, 후자에서는 웃음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그 감동과 웃음은 모두 소박하고 평범한 대중적 삶의 진솔한 리얼리티에 기반하고 있다.
가령 제각각의 사연을 지닌 출연자들과 송해의 토크는 몇 마디 대화만으로 간단한 내러티브를 형성한다. 장애인 아버지를 모시고 나온 딸, 아버지의 대를 이어 출연한 아들, 삶의 자신감을 얻기 위해 도전한 출연자 등 소소한 일화들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 그것은 고스란히 우리네 보통 사람들 인생살이의 축약된 풍경으로 다가와 공감과 감동을 전해준다. 출연자들의 끼와 재능의 경연장인 공연 부분에서도 웃음의 코드는 역시 그 평범함과 친숙함에서 온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출연자들의 혼신을 다한 그러나 어딘가 어설픈 무대 매너, ‘땡’ 소리에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 “~동에서 온 ~입니다”라는 그 특유의 인사말, 휘날리는 플랜카드의 응원 문구 등이 그렇다. 그 모든 웃음과 감동의 주인공들은 유행코드로서 ‘쌩얼’이 아니라 평범한 삶의 흔적, 그 주름마저 정겨운 맨얼굴들이다. 열린 프레임안에서 돋보이는 어우러짐의 미학
<전국노래자랑>은 공개방송 특유의 열린 축제 분위기를 지닌다. 그리고 이를 TV 화면에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열린 프레임을 지향하고 있다. 프로그램 속에서 그러한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는 순간은 출연자와 그의 노래에 맞춰 춤추는 관객들의 모습을 함께 잡아내는 특유의 장면들에서다. 이는 출연자와 관객의 경계를 없애고 모두가 즐기는 이 프로그램의 참여적 성격을 강화한다.
출연자가 노래하는 동안 그와 대등한 비중으로 카메라에 담기는 다양한 표정들의 관객은 이미 또 다른 출연진이다. 송해가 진행 중일 때도 열린 프레임은 유지된다. 출연자들은 호들갑스럽게 프레임 안으로 등장했다가 퇴장하곤 한다. 진행자와 출연진의 위계마저 희미해지는 순간들이다. <전국노래자랑>의 열린 프레임은 이 프로그램의 핵심적 성격인 어우러짐의 미학을 가시화하는 장치다.
최근 ‘경남 거창군’ 편에서 같은 방송사 <해피 선데이>의 ‘1박 2일’ 팀의 특별 출연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던 것은 <전국노래자랑>의 이 같은 성격 때문이다. 무대를 오르내리고 관객석을 이리저리 지나가며 인사를 나누는 ‘1박 2일’ 팀의 모습은 경계 없고 위계 없는 열린 프로그램으로서 <전국노래자랑>의 일면을 보여준다. 종종 무대 위에서 일반 출연진처럼 직접 노래를 부르는 송해의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국노래자랑>은 어디서든 자리만 펴면 판이 벌어지고, 누구나 돌아가며 한 곡조씩만 뽑아도 축제가 되는 우리의 놀이문화, 그 소박하고 열린 분위기를 별다른 효과 없이 간단하게 보여준다. ‘고향 없는 세대’들을 위한 영원한 오락 프로그램
의문 하나. 같은 해 태어났고 핵심적 성격이 유사했으며 향유층도 겹쳤던 <전원일기>와 <전국노래자랑>은 왜 시제의 운명이 바뀐 것일까. 두 프로그램은 장르는 달랐지만 그 태생 초기부터 근본적으로 대중들에게 일종의 상상적 공동체로서 원형적 고향 이미지라는 위로의 판타지를 제공함으로써 분열과 상실의 상처를 치유하는 기능을 했다.
그리고 대중문화의 중심이 수도권과 새로운 젊은 세대로 옮겨가자 프로그램 재현의 토대인 지역 문화가 주변화 됨에 따라 그 보편적 정서와 별개로 그들이 재현하는 이미지는 필연적으로 낡은 것이 되어 갔다. 둘의 운명은 여기서 갈린다. 근원적 고향을 상징적으로 매개하는 드라마 <전원일기>는 차츰 과거형이 되어갔으나 전국 팔도를 유랑하며 지역 공동체의 살아있는 현장을 전하는 <전국노래자랑>은 그 리얼리티로 인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진행자 송해는 그 자체로 이 프로그램의 근본적 성격을 말해주는 하나의 아이콘이다. 국내 방송 최고령 MC이자 실향민인 그는 <전국노래자랑>에 내재된 근원적 향수의 정서를 전하는 상징적 존재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대중매체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국내 최고 MC 강호동, 유재석의 반대 좌표에 위치한 인물이다. 강호동, 유재석이 현대 예능 프로그램의 트렌드를 주도한다면 송해는 트렌드와 상관없이 서민적이고 보편적인 정서를 전달한다. 그것은 분명 주류 문화에서는 좀 비켜서 있더라도 새로움의 속도전에 지친 ‘고향 없는 세대’들의 시대인 2008년에 이 프로그램의 생명력이 여전한 까닭을 말해준다.
그리하여 이 모든 성격들은 <전국노래자랑>의 핵심 요소인 뽕짝의 ‘네 박자’ 속에 흥겹게 어우러진다. 주류 음악사에서 주변화 되었지만 대중들의 질박한 삶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어 가장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는 뽕짝처럼 <전국노래자랑> 역시 대중들 한가운데는 아니지만 그 곁의 한자리를 28년 간 꾸준히 지켜 왔다. <전국노래자랑>은 그 자체로 우리 대중문화의 역사인 동시에 여전히 생생한 현주소다. (글) 김선영 (TV평론가 · t-view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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