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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 잊히지 않는 오늘

한라의메아리-----/주저리주저리

by 자청비 2008. 10. 3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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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의 상징성, 잊히지 않는 오늘… 왜일까?

 

<한국일보>

 

 

따지고 보면 아무 날도 아니다. 기념일도 아니고 명절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그냥 보내면 어쩐지 서운한 날. 누구든 이날엔 달력을 보며 가만히 읊조린다. "아, 시월의 마지막 날이네." 그리곤 누군가 이 밤을 함께할 사람을 찾아 헤맨다.


서양인들에게 시월의 마지막 밤은 죽은 영혼이 되살아나는 야단법석 축제의 날(할로윈 데이)지만, 대한민국의 대다수 성인 남녀들에게 이 밤은 쓸쓸한 고독과 옛 사랑이 쓰나미처럼 범람하는 추억의 밤이다.

할리우드의 고독한 반항아, 리버 피닉스가 죽은 날이기도 한 10월 31일. 도대체 어떤 날이기에 한국인들은 이 날을 기리는 것일까. 어떻게 시월의 마지막 날은 한국인의 집단감성을 건드렸는가.

시월의 마지막 밤이 1982년 MBC 가요대상을 받은 이용의 히트곡 '잊혀진 계절'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노래 가사에 날짜가 들어간 유행가는 부지기수다. 015B의 '5월 12일'이나 엄정화의 '1996년 10월 16일 날씨 맑음' 같은 노래는 아예 날짜를 제목으로 전면에 내세웠다.

"12월 9월 목요일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 하루를 보냈다"로 시작하는 버즈의 '일기'도 있다. 하지만 이 곡들은 결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노래한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능가하지 못한다.

그날들은 '잊혀진 계절'이 포착한, 시월의 마지막 밤만이 강력하게 환기할 수 있는 어떤 독특한 정서를 구비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인 손택수씨는 '시월의 마지막 밤'이라는 언어의 물질성에서 그 의미를 찾았다.

바슐라르의 말처럼 본래 반쯤만 열린 존재인 인간은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로서의 근원적인 고독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일상에 쫓겨 자신의 결핍과 쓸쓸함과 실존적 고독을 망각한 채 살아간다.

가을은 모든 것이 사라져가는 소멸의 시간. 잊고 있던 '소멸해가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날이 바로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혼자 보내기엔 벅찬, 누군가 이마를 맞댈 사람이 간절해지는 시간대.

본래 '잊혀진 계절'의 가사는 '9월의 마지막 밤'이었다가 음반 발매 시기가 늦춰지면서 '10월의 마지막 밤'으로 바뀌었다. 이 노래 가사가 9월의 마지막 밤이었어도 우리는 이 날을 기렸을까. 손 시인은 단호히 아니라고 말했다.

10월이라는 숫자의 어감이 스산하고 쓸쓸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달리 9는 소멸보다는 생성, 무르익음, 풍요와 관계되기 때문이다. 30도 뭔가 꽉 찬 완결의 느낌을 주는 데 반해 31은 꽉 찬 것이 기울어가는 느낌, 완숙을 넘어 쇠퇴해가는 어감을 풍긴다.

정승혜 영화사 아침 대표도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시월의 마지막 밤이라고 하면 추운 11월을 눈 앞에 두고 있어서인지 왠지 쓸쓸한 느낌이 있다"며 "계절적으로 가을이라는 낭만의 시기에서 겨울이라는 차가운 현실로 넘어가는 기로에 선 느낌"이라고 말했다.

화려했던 여름이 끝나고 황량한 겨울로 넘어가는 이 시기가 사람의 마음을 가난하게 만드는 데다 그 쓸쓸함은 뭔가 따뜻한 것, 기대고 싶은 것을 찾게 만든다는 것.

화려한 여름 휴가철과 겨울의 축제라고 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사이의 공백이 너무 길다는 것도 시월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고 싶게 만드는 한 요인이다. 추석이 있다곤 해도 그건 가족들을 위한 의례일 뿐 젊은 영혼들을 위한 축제는 아니다.

여름 휴가에서 크리스마스까지의 팍팍한 가을날들. 그렇다. 시월의 마지막 밤은 외로운 마음을 뉘일 데 없는 가련한 영혼들을 위한 늦가을의 쓸쓸한 축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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