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전문대' 미네르바 VS '서울대' 강만수
'학벌'에 집착하는 '아마추어'들
[프레시안]
지난 8일 검찰은 인터넷경제논객 '미네르바'로 추정되는 30대 남성을 긴급 체포했다. 아직 그가 '미네르바'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미 여론은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발칵 뒤집힌 상태다.
그의 체포가 불러온 논란거리는 한두 개가 아니다. 검찰은 그가 인터넷에 올린 글을 두고 허위사실 유포 혐의를 적용했다. 여론을 길들이고 비판에 재갈을 물리는 '공안 정국'이 본격화됐다는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검찰이 언론에 흘린 첫 번째 정보는 그가 공업고등학교를 나와 경제학과 관계없는 전문대를 졸업했고, 무직이라는 점이었다.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은 즉시 확대 재생산에 나섰다. 기사 제목은 관점을 명확히 드러냈다. "미네르바는 전문대졸업 무직 30세男" (<동아일보>), "실체 드러난 '경제 대통령' 가짜에 놀아난 대한민국" (<중앙일보>) 등 보수 언론은 그의 학력과 경력에 초점을 맞췄다.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미네르바와 신정아의 가면무도회'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서 "저는 뭔가 이상하다는 감을 잡았었다"면서 "저는 분명 미네르바가 '아마츄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미네르바의 '학력' 하나만 보고도 그를 얼마나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인지 알 수 있다는 논조는 기사 곳곳에 배어 있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 허가 찔린 건 누리꾼이 아니라 경제 관료와 경제 학계였다.
미네르바의 글 하나하나에 전사회적 이목이 쏠렸던 이유를 다시 짚어보자. 그의 글이 주목을 받았던 건 실물 경제에 대한 그의 예측이 맞아떨어지면서였다. 미네르바 사태는 학벌이 실력과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또 한 번 드러냈다. '전문대' 출신이라는 미네르바의 글이 해외 언론에서 '온라인 노스트라다무스'로 불리며 주목받는 동안 '서울대 법대'를 나오고 '미국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은 강만수 장관은 세계적인 비웃음을 받았다.
<로이터>는 한국 경제의 위기와 신뢰도 추락을 보도하며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판한 농담인 '리·만 브러더스(LeeMan Brothers)'이란 신조어를 소개했다.
검찰이 미네르바의 구직 활동을 도와주고 있다는 우스갯 소리도 나온다. 만약 그가 정말 미네르바라면 독학으로 실물 경제를 정확히 예측한 보기 드문 인재인 셈이다. 그러나 지금 조·중·동을 위시한 언론 매체는 이런 사실을 외면한 채 미네르바의 집 주변을 탐문하고 주변인들을 쫓아다니며 그가 얼마나 '괴짜'인지 보여주는 데 혈안이 돼 있다.
미네르바의 학력을 두고 조롱을 일삼는 보수 언론의 행태는 학벌주의에 찌든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그리고 어쩌면 '학력'과 '학연'에 기대 살아온 기자들 인식의 한계일 것이다. 그건 과거 신정아 씨의 학력 위조 사건에서 그들이 쏟아냈던 가십 기사의 수준과도 다르지 않다. 신 씨의 '학력'을 믿고 그를 미술계의 '신데렐라'로 만들었던 건 바로 그 언론들이었다.
현 정부는 언제나 경쟁을 통해 당당히 실력을 드러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보수의 관점이라고 했다. 또 그것은 교사를 해직하면서까지 일제고사를 강행하고, 학교 정보를 공개하고 고교 선택제를 추진하는 현 정부 '교육 개혁'의 중심 철학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혼란스럽다. 그 어느 경제학자보다 정확한 전망을 한 미네르바가 바로 그들에 의해 '가짜' 전문가로 호도되는 상황이. 모든 경제 지표가 악화하는 데도 잘못한 것이 없다는 강만수 장관이 '진짜'라고 불리는 이 현실이. 덧붙여, 국내 유수의 명문대를 나온 전여옥 의원의 맞춤법은 하루빨리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나길 바란다.
진중권 "미네르바, 기는 만수 위에 나는 백수"
"지하벙커 첫 작품이 미네르바 체포?…세계적 코미디"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9일, 진보신당 홈페이지를 통해 검찰이 인터넷 경제논객인 ‘미네르바’로 추정되는 네티즌을 긴급 체포해 수사하고 있는 것에 대해 “지하벙커 첫 작품이 ‘미네르바 긴급체포’라니, 전 세계가 웃을 코미디”라고 비판했다.
진 교수는 “검찰의 발표를 믿는다면 어느 30대 백수의 경제예측이 한나라당 경제수장보다 더 정확하다는 얘기”라며 “‘기는 만수 위에 뛰는 백수가 있다’는 것이 이 나라의 현재 상태”라고 말했다. 또한 “이번 사건의 핵심은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가 훼손되었다는 데에 있다”고 지적했다.
진 교수는 특히 “이번 사건은 앞으로 인터넷 모욕죄가 도입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미리 보여주는 아주 훌륭한 사례”라며 “인터넷에 올린 글 중에서 몇 가지 크고 작은 실수들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긴급체포’되고, 구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완전 전체주의 경찰국가의 상황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진중권 교수 글 전문
만수보다 더 정확한 예측으로 인기를 끌었던 미네르바가 30대의 백수라고 하네요. 검찰의 발표를 믿는다면, 어느 30대 백수의 경제 예측이 한나라의 경제수장보다 더 정확했다는 얘기가 되지요. 한 마디로 기는 만수 위에 뛰는 백수가 있다는 것이 이 나라의 현재 상태가 아닐까 합니다.
어쨌든 지하 벙커에 비상상황실 차려놓고 처음 선보인 작품이 고작 '미네르바 긴급체포'라니, 전 세계에서 웃을 코미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경제 살린답시고 전쟁상황실 차려놓고 일개 네티즌에게 선전포고나 하고 있으니….
미네르바가 구사한 용어들이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쓰기 어려운 것이라고 하나, 사실 전문가 뺨치는 아마추어가 넘치는 곳이 또한 인터넷이지요. 외려 언론에서 추측하던 그런 프로필을 가진 사람이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쓴다는 것이 외려 비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정체를 놓고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 의심의 바탕에는 학벌주의 코드가 깔려 있는 것 같아 좀 불편합니다.) 역시 사건의 핵심은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가 훼손되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경제 몌측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요. 한때는 그의 예측이 틀렸다는 이유로 잡아넣겠다고 하더니, 그게 여의치 않자 이번에는 허위사실 유포로 걸어 버렸네요. 국회에서 장관이 사법처리 가능성을 운운한 이후로, 미네르바가 평정심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한 동안 그가 쓴 것이라고 믿기 힘든 격앙된 글들을 올리더니, 결국 결정적인 실수를 했지요. 하지만 본인이 그 실수를 인정하고 글을 삭제하고 사과까지 했는데도 '긴급체포'를 당하는 게 이 나라의 상황입니다.
이번 사건은 앞으로 인터넷 모욕죄가 도입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미리 보여주는 아주 훌륭한 사례입니다. 고소, 고발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검찰에서 선제적으로 수사를 들어갔습니다. 인터넷에 올린 글들을 모아 뜯어보면, 그 중에서 몇 가지 크고 작은 실수들을 발견할 수 있겠지요. 그것만으로도 '긴급체포'되고, 구속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정부, 여당, 여당 의원들에 대해 입을 벙긋거렸다가는 긴급체포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완전 전체주의 경찰국가의 상황이 되는 거죠.
미네르바의 글 때문에 자살한 연예인이 있나요? 미네르바의 글 때문에 피해를 본 투자자가 있나요? 미네르바의 글 때문에 모욕 당하고, 명예를 훼손당한 시민이 있나요? 없습니다. 그냥 정부 여당의 기분을 나쁘게 했을 뿐이지요. 사이버 모욕죄가 누구를 보호하는 법인지, 여기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 법이 도입되면, 앞으로 미네르바 긴급체포와 같은 사태는 아마도 인터넷의 일상이 될 겁니다. 청와대 비판한 누구 긴급체포... 재경부 비판한 누구 긴급체포... 긴급체포, 긴급체포, 긴급체포….
민심이 떠난 정권에게 시민들 입 막는 것만큼 '긴급'한 일이 또 있겠습니까? 그건 그렇고 경제 살린답시고 왜 땅굴로 기어 들어갑니까? 무슨 설치류 월동 경제 합니까?
미네르바 사태로 논객 잠적… ‘칠링 효과’
[쿠키뉴스]
인터넷 논객들이 사라지고 있다. 인터넷 경제 대통령으로 불렸던 '미네르바'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여파로 사이버 논객들이 종적을 감추거나 게시글을 삭제하는 등 충격파가 나타나고 있다. 법적 책임을 물림으로써 언론 행위를 잠재우는 '위축효과(chilling effect)'가 사이버상에서도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 '필립피셔'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던 사이버 논객은 9일 그동안 자신이 쓴 글을 모두 삭제하고 블로그 문을 닫았다. 미네르바를 자신의 지인이라고 소개한 'readme'도 "어느 불쌍한 젊은이가 미네르바로 날조됐다"고 주장하며 일부 게시물을 삭제했다. '필립피셔'와 'readme'는 아고라에서 미네르바 못지않은 유명세를 누렸던 논객들로 미네르바 체포 이후 잔뜩 몸을 사리고 있다. 이들을 포함한 많은 아고라 논객들도 일시적으로 활동을 중단하거나 서둘러 글을 내리고 있다.
정부의 공권력 행사로 인해 각종 현안에 대한 난상토론이 이어졌던 인터넷 여론광장도 위축됐다. 대다수 네티즌은 "미네르바가 체포될 줄은 몰랐다"거나 "무서워서 글 못 쓰겠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단순히 '인터넷 언론 재갈 물리기' 차원을 넘어 향후 정부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과 감시기능 위축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 사이버 고수들이 활약했던 아고라가 진보세력의 무대로 인식돼 왔기에 검찰이 경제토론방을 무력화하기 위해 미네르바를 긴급 체포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김창남 교수는 "미네르바 사건으로 인터넷 여론에 겁주기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며 "무엇보다 미네르바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정당한지 의문이 든다"고 비판했다. 여당인 한나라당의 이한구 의원 역시 라디오 인터뷰에서 미네르바 사법처리에 대해 법률 요건을 신중히 따져야 할 것이라고 밝혀 미네르바 구속의 적절성 여부를 둘러싼 논쟁은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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