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행복은 지금, 여기에
<한국일보>
새해를 맞을 때마다 TV영상을 통해 한 번쯤 보게 되는 장면이 있다. 수만 개의 도미노 조각들이 순서대로 쓰러져가다 새해 연도의 네 자리 숫자를 마지막에 멋지게 무너뜨리는 장면이다. 숨 가쁘게 끝나버리는 현란한 도미노 쇼는 수백 시간의 구상과 준비를 통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 도미노 쇼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도미노 쇼의 클라이맥스와 같은 멋진 장면을 우리도 각자의 인생 속에 그려보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대부분의 현재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며 살아간다. '멋진 장면'은 큰 부자가 되는 것일 수도 있고, 고위관직에 오르는 것일 수도 있다. 상당수의 한국 부모들은 자식이 명문대학에 입학하는 모습을 그려볼 수도 있다.
이렇게 마음속에 그리는 장면을 위해 지금 놀고, 돈 쓰고, 자고 싶어도 공부하고, 아끼고, 일하도록 스스로를 채찍하고 훈련시킨다. 한 마디로 미래를 위해 살아가는 모습이다. 분명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인데 행복의 관점에서 과연 현명하다고 할 수 있을까.
수만 개의 도미노 조각을 쌓는 사람들은 그 과정 자체가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에 그 일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만약 그 준비 과정이 한없이 짜증스러운데도 오직 그 절정의 순간만을 위해 수백 시간을 투자한 것이라면 그것은 우매한 행동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오직 미래의 구체적인 성취를 위해 현재 삶의 대부분을 희생시키고 있다면 그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프랑스 사상가 라로쉬푸코가 지적했듯이 인생의 어떠한 긍정적인 사건도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의 행복을 가져오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생각해보자. 만약 우리가 현재 누릴 수 있는 10만큼의 행복을 희생해서 미래에 20만큼의 행복을 돌려 받게 된다면 먼 훗날을 위해 오늘을 희생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라로쉬푸코의 지적대로 미래의 사건이 가져오는 실제 행복감이 우리 기대보다 항상 적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평생 놀지 않고 일만 하여 얻은 성공 뒤의 행복감이 기대한 20이 아니라 5 밖에 되지 않는다면 행복의 기반을 미래에서 현재로 더 옮겨 놓아야 한다.
최근 심리학 연구들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왜 과장된 기대를 하는가를 설명해준다. 크게 두 가지 이유다. 첫째 처음에는 시끄럽던 소음도 얼마 후 더 이상 느끼지 못하듯이 우리는 변화에 금방 익숙해진다.
회사에서의 승진을 예로 든다면 우리는 그 소식을 듣게 되는 순간의 짜릿함에 주목하지 그 짜릿한 즐거움이 일주일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는 사실은 고려하지 않는다. 모든 상황에 빨리 적응 해버리는 인간의 속성을 간과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과장된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미래에 대한 상상이 항상 어설프기 때문이다. 좋은 일은 생각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가져오고, 나쁜 일은 뜻밖의 행운을 가져올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존 스타인벡의 '진주'라는 소설이 있다. 전갈에 쏘인 아들의 치료비를 걱정하던 키노라는 주인공은 어느 날 '달만큼 멋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키노 가족을 위협하자 키노 가족은 밤에 마을에서 도망친다. 추격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키노가 급히 총을 쏘는데, 그만 자기 아들이 맞고 쓰러진다. 행운이 이처럼 항상 비극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단순한 상상과는 달리 좋은 일이 다른 나쁜 일과 뒤엉켜 상쇄되는 것이 현실이 펼쳐내는 미래의 모습이다.
물론 아무 계획도 꿈도 없이 순간의 쾌락에 묻혀 사는 것이 행복이란 뜻은 아니다. 현재와 미래에 균형 있게 인생을 투자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래의 행복을 '한 방'에 보장하는 대단한 사건은 아무리 찾아도 없다. 그런데도 많은 한국인들은 미래에 시선을 두고 지나치게 현재를 희생하며 살아가고 있다.
중고교 학창 시절은 오직 대학을 위해, 대학은 취업을 위해, 중년은 또 노년을 준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식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미래를 위한 계획과 꿈들을 척척 이룬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현재의 작은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그 속에서 행복을 음미하는 비결을 터득한 사람들이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에 한국의 조기유학 열기를 다룬 기사가 실렸다. 행간에 담겨있는 기자의 의문은 왜 한국에서는 좋은 대학 졸업장 하나를 위해 그렇게까지 온 가족들이 현재를 희생하며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목전의 행복을 보지 못하고 그것을 먼 미래에서 찾는 사람에게는 행복이 영원히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소홀히 해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현재(present)라는 영어 단어가 '선물'이란 뜻으로도 쓰이는 이유는 아마 그 속에 담겨 있는 행복의 양이 과거나 미래의 것보다 크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의 꽃은 바로 지금, 여기에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팀 윌슨 교수 이메일 인터뷰 |
오바마시대와 한국 7 (0) | 2009.02.16 |
---|---|
'충분한 민주주의'이뤘다는 주장은 반민주적 (0) | 2009.02.14 |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일것인가 (0) | 2009.02.11 |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 전략 (0) | 2009.02.11 |
건강한 개인주의자가 행복하다 (0) | 2009.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