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 전략
<한국일보>
"긍정적인 아이가 창의력 높아… 먼저 부모부터 행복하라"
행복한 감정 자주 느낄수록 두뇌 '균형 발달'
심화학습 아닌 선행학습 강요는 역효과 불러
연세대 김은주교수(교육대학원)
"30개월 유아가 한글을 깨우친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에 두 자릿수 덧셈을 풀 수 있다" "중학생이 토플 만점을 받는다"
특별한 영재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조기교육과 선행학습이 휩쓸고 있는 우리의 교육현장에서 더 이상 화젯거리도 되지 않는 보통 아이들의 얘기다.
우리나라의 열성 부모들은 억지로 아이가 공부하도록 밀어붙이면서 '아이가 지금 당장 행복하지는 않아도 성적만 올라가면 훗날 저절로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행복은 성적 순'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최근의 과학적 연구 결과는 이 같은 상식을 뒤집는다. 성공하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이다.
행복한 아이가 성공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행복한 아이들의 뇌가 균형 있게 발달한다. 우리의 머리에는 생각과 감정을 각각 다루는 뇌가 있는데 이 두 부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달한다. 감정의 뇌가 행복감을 자주 느끼면 생각의 뇌가 더욱 활성화되고 잘 발달한다.
확장과 수립이론을 제안한 미시건 대학의 바바라 프레드릭슨 교수도 긍정적 정서를 충분히 경험하는 사람들의 사고작용과 창의성이 활발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어린 시절 느낀 긍정적 정서는 훗날 지적ㆍ사회적ㆍ신체적 자산이 된다. 반면 부정적 정서를 경험한 사람은 스스로 요새를 만들고 자신의 능력을 키울 기회를 차단한다.
아이들에게 학습을 강요하여 생기는 폐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아이는 배우는 즐거움을 잃게 된다. 일단 아이가 학습에 흥미를 잃으면 이후에는 여간해서는 흥미를 회복하기 어렵다. 공부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면 기계적 암기는 해내지만 창의력이나 응용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최근의 뇌 연구들도 과도한 조기교육의 폐해를 보여준다. 서울대 의대 서유헌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 뇌의 회로는 엉성하고 가늘다. 그래서 어려운 내용을 입력하면 과부하가 일어나서 과잉학습장애증후근과 같은 스트레스 증세가 나타난다. 이는 마치 가느다란 전선에 과도한 전류를 흘려보내면 과부하때문에 불이 일어나는 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또한 강제 학습은 아이들에게 스트레스,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을 유발하여 감정의 뇌를 위축시킨다. 위축된 감정의 뇌는 다시 생각의 뇌를 억제함으로써 소수의 세포들만이 기억과정에 관여해 공부 효율이 낮아진다.
게다가 사람은 본래 남으로부터 강요된 일을 좋아하지 않는 심리를 갖고 태어났다. 로체스터 대학의 에드워드 디치와 리차드 라이언이 제시한 자기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 따르면 사람은 가장 기본적인 심리 욕구인 자율성을 충족시켜야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자율성은 자신의 목표를 스스로 세우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자신의 과제를 선택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행복감이 낮아지고, 성취도 저조한 것이다.
이화여대 김아영 교수도 우리나라에서 중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자율성은 초등학생 때보다 도리어 퇴보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으면서 학교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자율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사람은 행복하지 못하다. 실제로 엄마들이 상담하는 내용 중 심각한 사례로는 평소 모범적이었던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이제부터 아무 것도 안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너무나 공부 잘하고 착한 아이였는데... 갑자기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 특히 엄마하고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겠다면서 버티고 있어요. 학원은 물론이고 학교도 안가요. 말이라도 시켜보려고 하면 노려보면서 대답도 안해요."
이와 같이 안타까운 상황은 지속적으로 강요된 교육이 빚어낸 결과이다. 자율성이 계속 충족되지 않으니까 참고 또 참던 아이가 어느 순간 튕겨나가게 된 것이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을 행복하고 일도 잘 해내는 사람으로 키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많은 부모들은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 것을 장애물 없이 안락하게 키우는 것으로 잘못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어려움을 견디어내며 도전적 과제들을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과제를 해결하는 즐거움을 맛본 아이들의 행복감은 더욱 커진다. 행복감이 커지면 아이들은 더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는 순환의 과정을 거친다.
"저는 스케이팅을 사랑하지만, 연습할 때는 힘들고 눈물 나는 시간이 더 많아요. 하지만 연습 중에 가장 아름다운 자세가 나왔다고 스스로 믿는 순간에는 발끝에서부터 쾌감이 와요. 연기가 끝나고 '그래 잘했어'라는 생각이 들 때는 정말 날아갈 것 같지요." 연습벌레로 불리는 김연아 선수의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할 일은 그들의 발달 수준에 적합한 과제를 '선택'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초등학생에게 미적분을 풀라고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 이상 우리의 아이들을 과도한 선행학습의 피해자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제대로 된 심화학습이 아닌 지금의 선행학습은 소모적 경쟁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는 지혜를 모아서 우리의 아이들을 '행복해서 자신의 일을 잘할 수밖에 없는 아이'로 키울 때다. 우리는 할 수 있다.
행복한 아이 만들기 5대 지침
우리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자유방임을 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억지로 공부하도록 강요해서 될 일도 아니다. 행복한 아이 만들기는 고난도 작업이다. 현명한 전략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 전략 지침 5가지를 소개한다.
1. 우선 부모부터 행복하라.
행복은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부모가 불만에 가득 차 있고 부정적 정서를 갖고 있는데 아이는 행복해지기를 바랄 수는 없다. 부모가 웃는 모습이라도 자주 보이면 효과적이다. 아이와의 커뮤니케이션(의사 소통)은 특히 중요하다.
아이 앞에서 부정적 단어, 경멸하거나 억압하는 말투를 쓰는 것은 금물이다. 예를 들어 "네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시험 못 보기만 해봐" 하는 식의 표현을 써서는 안된다.
2. 아이의 자율성을 높여주라.
자기결정성 이론에 따르면 아이의 자율성이 높아지면 행복감이 높아진다. 많은 연구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되, 섣불리 정답을 줘서는 안된다.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 한다. 아이를 강압적으로 통제하기 보다는 선택과 융통성을 주는 게 바람직하다.
3. 아이가 잘하는 것을 찾으라.
아이가 진정으로 좋아하면서 잘하는 것을 찾기 위하여 부모는 아이를 통찰력 있게 관찰하고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 많은 교사들은 아이들이 흥미를 갖는 게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실험을 해보면 교사들이 흥미롭다고 하는 것과 아이들이 흥미롭다고 하는 것은 50% 정도 밖에 겹치지 않는다. 그만큼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채기는 어려운 일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관심을 갖는 분야에서는 질문도 많이 하고, 손놀림이 매우 빨라지는 등의 특성을 나타낸다.
4. 칭찬을 효과적으로 하라.
칭찬의 중요성은 누구나 잘 안다. 그러나 칭찬도 효과적으로 해야 한다. 아이에게 섣불리 "1등을 하면 자전거 사줄 게" 하는 식의 물질적 보상을 약속하는 것은 금물이다.
아이는 나름대로 학습에 흥미를 갖고 공부하다가도, 솔깃한 물질적 보상이 나타나면 그때부터는 상때문에 공부하게 된다. "네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보니 엄마는 흐뭇하다"하는 식으로 아이의 노력에 대해서 언급하는 칭찬이 바람직하다.
5. 어려운 과정은 함께 공감해주라.
아이가 흥미를 갖고 시작한 일도 시간이 흐를수록 어려운 과정에 도달한다. 이럴 때 아이의 관점에서 문제를 들여다보면서 아이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이를 격려한다고 "이거 별로 어려운 것 아니야. 쉬운 거야 열심히 해봐" 하는 식으로 말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오히려 아이가 '쉬운 문제라는데 나에게는 왜 이렇게 어렵지'라고 생각하면서 지레 포기할 수 있다. "그래... 어렵겠구나. 이건 매우 어려운 문제지만 그동안 배운 걸 열심히 잘 들여다보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야. 열심히 해보자." 라고 말해주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자율성 부여 Yes 방임은 No”
美로체스터大 디치 교수 인터뷰
자기결정성 이론의 창시자인 에드워드 디치(Edward Deci)교수는 "자율성은 아이 스스로가 과제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무엇이나 해주는 게 자율성은 아니다"고 말했다.
미국 로체스터 대학의 디치 교수는 지난 주 필자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자유방임'과 '자율성'은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 흔히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면 공부를 덜하게 되고 성취도도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걱정합니다. 이 같은 부모들의 우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무엇이나 해주는 것이 자율성이라고 생각한다면 현실에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자율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자율성을 부여하자는 게 교사나 부모의 역할을 무시하자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자율성은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는 것이지만, 아이가 무엇이건 선택하는 대로 방임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자율성은 일정한 구조를 갖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에 대해서 명확한 기대를 갖게 하고, 적절한 도전의식을 지니게 하며, 자신이 어디까지 향상되고 있는지를 점검 받을 수 있도록 해야 자율성이 유지됩니다.
이러한 틀 속에서 아이가 스스로 흥미를 느끼거나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과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유를 줘야 합니다. 자율성은 아이 스스로가 자신에게 중요하면서도 가치가 있는 과제가 무엇인지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특히 아이들이 선택한 과제를 더욱 잘 학습할 수 있도록 부모가 적절히 지원해준다면 아이들은 훨씬 더 깊게 공부하게 되고 심리적으로도 잘 적응하게 될 것입니다. 억지로 공부시키면 아이는 '배우는 즐거움'(love of learning)과 심리적 행복을 잃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