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건강한 개인주의자가 행복하다
<한국일보>
"집단의 요구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여라"
뿔난 엄마의 '주부 휴가'에 시청자들 대리만족
자유감 늘려주는 개인주의적 성향은 행복의 원동력
얼마 전 '뿔난 엄마'가 갑자기 가족으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하며 가출하는 내용의 TV 연속극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김혜자가 역을 맡았던 이 어머니의 캐릭터는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면서 살아 온 '보통 어머니'다.
한국의 수많은 어머니들처럼 남편과 자식을 위해 한평생 참고, 희생하고, 밥을 해 주면서 살아 온 것의 그녀 인생의 요약본이다. 그녀는 항상 자기보다는 가족을 우선시하면서 모든 어려움을 견뎌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삶을 뒤집어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을 가진 뒤 어머니 역할에 사표를 던지고 대문을 나선다.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휴가를 내고 읽고 싶었던 책도 보고, 자고 싶은 시간에 자고, 먹고 싶은 시간에 먹으며 평생 동안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만끽한다. 집에 남은 가족들을 다소 안쓰럽게 생각하면서도 이 어머니의 '반란'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낀 시청자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는 연속극 속의 가상 현실에 그칠 수 있다. 또 실제로 가족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오는, 아늑한 둥지 역할을 할 때도 많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뿔난 엄마'시나리오에 공감한 이유는 개인의 선택과 의지를 집단의 안녕과 이상 앞에서 양보해야 하는 경우가 우리 일상에도 가득하기 때문이다.
정당하게 쉴 수 있는 주말에 친구를 만나 즐기고 싶지만 회사 야유회에 가야만 되는 상황. 개인적으로는 음악을 공부하고 싶지만 결국은 가족과 선생님의 뜻에 맞춰 의대에 진학하게 되는 수재 등. '뿔난 엄마'처럼 우리들도 갇혀 살고 있다.
내가 속한 집단의 요구에 맞추어 사는 것이 우리는 '옳은 삶'또는 타인으로부터 칭송을 받을 만한 삶이라고 배워 왔다. 하지만 우리의 언행 중 타인들로부터 평가를 받는 비중이 지나치게 커지면 점진적으로 우리 삶의 주인이 자신이 아닌 타인이 돼버리고 만다. 심리적인 자유감도 서서히 박탈된다. 이런 삶의 틀 안에서 개인적 행복을 성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심리적 자유감은 행복과 직결된다. 국가 간의 행복지수를 비교해 보면 이 관계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가장 중시하는 개인주의적 국가일수록 행복 수준이 높다.
미국이나 북유럽 국가들의 행복 지수가 높은 이유를 경제적 여유에서 찾기 쉽지만 실제로는 두 가지 사이에 직접적 상관 관계는 거의 없다. 사실은 경제적 풍요를 토대로 형성된 개인주의적 사회철학이 행복의 직접적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나 일본 같은 유교권 국가들은 비약적 경제발전을 이뤄 냈지만 아직도 과도한 집단주의 문화를 갖고 있다. 때문에 두 나라의 행복 수준은 세계 주요 국가들의 평균 수준을 밑돈다. 경제적 부유가 아니라 개인주의적 사고와 생활 습성이 행복의 열쇠를 쥐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하는 대목이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행복감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주의가 안착된 문화에서는 말 그대로 각 개인의 고유한 생각과 선택에 굉장한 힘을 실어 준다. 자기의 가치와 생각이 다수의 사람들과 다르다고 해서 크게 위축되거나 주눅들지 않는다.
다르다는 것을 틀린 것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어느 정도 타인의 평가와 시선에 얽매이지는 않는 여유와 자유로움을 갖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내가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알게 된 한'펑크'족 여학생의 행태는 정신적 자유의 진면목을 보여 줬다. 이 학생의 패션은 단연 눈에 띄었다. 가죽 바지와 부츠, 문신과 코고리는 기본이었다. 어떤 날은 초록색 머리를 하고 강의실에 나타났다.
이 학생은 종종 초등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일을 했는데 어느 날 꼬마들이 "왜 누나는 매일 남자처럼 옷을 입고 다녀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녀의 대답은 걸작이었다. "내가 남자들처럼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이 내 패션을 따라 하는 거야." 과연 우리는 이런 여유와 당당함을 가지고 살아왔는가.
이 학생이 지금은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자기 삶의 주도권을 자신이 쥐고 살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어려운 순간들이 있겠지만 그에게는 행복한 시간이 더 많을 것 같다.
이런 자유로움을 누리지 못하면 끝없이 우리의 삶은 세상에 끌려 다닌다. 나의 고유한 즐거움과 열정에서 행복을 찾지 않고 다수가 근거 없이 만든 행복의 지침들을 맹신하게 된다.
더 좋은 차를 사야 할 것 같고, 내 아이도 유학을 보내야 할 것 같고, 더 젊어 보여야 행복할 것 같다. 이렇게 끌려 다니는 인생은 행복이 아닌 허무와 탈진으로 종영된다.
마지막으로 개인주의의 오명을 우리가 조금 벗겨 주는 것이 좋겠다. 개인주의라고 하면 우리는 독단과 이기심을 연상하도록 교육받았던 것 같은데 틀린 생각이다. 자기의 가족만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징그러운 이기심은 집단주의적인 사고에서 출발한다.
개인주의, 집단주의 양쪽 모두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건강한 개인주의가 결핍되면 행복과의 거리는 멀어진다. 세상의 중심이 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과대망상이지만 나의 신념과 느낌이 내 삶의 중심축이 돼야 한다는 믿음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만 행복에 대한 근거 없는 외부 소문들로부터 자유롭게 되고 진정한 '나의' 행복을 키우는 데 전념할 수 있다. 행복을 가져오는 자양분인 개인의 자유감을 늘려 준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개인주의는 충분히 매력적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