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귄트 모음곡 제 1, 2번
페르귄트는 노르웨이에서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나오는 젊은 남자 주인공이다. 그 전설을 바탕으로 하여 입센은 연극을 썼다. 주인공 페르귄트는 지혜와 힘은 있지만 의지가 약하여 공상에 빠지기 쉬운 젊은이로 순진한 약혼녀인 솔베이지를 남겨 놓은 채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세계를 방랑한다. 그러한 그가 여행길에 오를 때부터 귀향까지 그린 것이 <페르귄트>의 이야기다.
노르웨이의 대문호 입센은 자신의 극작품 페르귄트에 쓸 음악을 그리그에게 의뢰한다. 입센의 의뢰를 받은 그리그는 고향 베르겐으로 돌아온 1874년부터 이듬해에 걸쳐서 각 막의 전주곡, 무곡, 독창곡, 합창곡 등 전 23곡으로 구성된 극음악 <페르귄트>를 작곡했다.
1876년 오슬로에서 초연된 이 극은 크게 호평을 받았다. 초연 후 그리그는 극음악 중에서 극의 흐름에 관계없이 4곡을 골라 제1모음곡 작품 46을 만들었고, 이후 다시 4곡을 더 골라 제2모음곡 작품 55를 만들었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자주 듣고 있는 2개의 모음곡 <페르귄트>이다.
제1모음곡은 〈아침〉·〈오제의 죽음〉·〈아니트라의 춤〉·〈산의 마왕의 전당에서〉로 구성되어 있고, 제2모음곡은 〈잉글리드의 탄식〉·〈아라비아의 춤〉·〈페르귄트의 귀향〉·〈솔베이지의 노래〉로 구성되어 있다.
아프리카로 건너간 페르귄트가 모로코 해안에서 맞이한 아침의 정경을 그린 제1번 최초의 곡 '아침'은 CM에서도 많이 쓰였고, 두번째 페르귄트의 어머니가 숨을 거두는 장면에서 흐르는 '모세의 죽음'은 장례식에서도 흔히 쓰였다. 그리고 모음곡 제2번의 마지막 곡 '솔베이지의 노래'도 누구나 한번쯤은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그의 감상적이면서도 향수를 자아내는 멜로디는 연주회의 프로그램에 채택되는 경우도 많다.
그리그 (노르웨이 작곡가, 1843-1907, Grieg, Edvard Hagerup)
아름다운 자연에 에워싸인 노르웨이 제2의도시 베르겐에서 태어난 에드바르 하게루프 그리그는 노르웨이의 국민적인 작곡가이고 또한 그 섬세하고 아름다운 멜로디 때문에 '북유럽의 쇼팽'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그가 남긴 작품에는 고향 베르겐을 비롯한 노르웨이의 자연과 숨결이 느껴진다. 그는 자신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노르웨이의 자연, 민중의 생활, 역사 그리고 민중의 시를 그리는 것이 내 일생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에게 피아노의 초보를 배운 그리그는 노르웨이 출신의 국제적 바이올리니스트인 부르에게 인정을 받고 독일의 라이프치이 음악원에서 입학하지만 결국은 베르겐으로 돌아가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서 데뷔한다. 그리고 한 때 덴마크의 코펜하겐과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 등에서도 생활을 했지만 31세부터 죽을 때까지 베르겐에서 살았다.
원래 스코틀랜드 출신인 그리그(예전에는 Greig) 가문은 그의 할아버지 때 쿨로뎅 전투 후에 노르웨이로 이민하였다. 아버지 알렉산더는 베르겐 주재 영국영사였고, 어머니 게신 하게루프는 노르웨이의 안정된 가문에서 태어나 함부르크에서 음악을 배웠다. 6세 때부터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으며 1858년 바이올린의 거장 올레 불의 추천으로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들어가 멘델스존과 슈만 풍의 음악 전통에 영향을 받았다. 이 시기에 늑막염을 심하게 앓았으며 끝내 완전히 치유하지 못했다.
1863년 코펜하겐으로 가서 1864년 노르웨이의 젊은 민족주의 음악 작곡가 리카르트 노르로크와 사귀면서 음악적으로 발전했다. "그를 통해 북부의 민속 가락과 내 자신의 특성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고 그리그는 말한 바 있다. 1864~65년 겨울, 스칸디나비아의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설립한 코펜하겐 음악협회 '외테르프'의 창립회원이 되었다.
1867년 사촌 누이동생 니나 하게루프와 결혼했고, 그녀는 그리그의 가곡에 대한 권위있는 해석가가 되었다. 1865~66년, 1869~70년 겨울을 로마에서 보내던 중, 그의 피아노 협주곡에 열광적 찬사를 보낸 리스트와 입센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1866년 크리스티아니아(지금의 오슬로)에 정착하여 노르웨이 정부의 종신연금(1,600크로나)을 받기 시작한 1874년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1885년 베르겐 근방에 '트롤드하우겐'이라는 집을 지었다.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스칸디나비아·유럽·영국에서 연주 여행을 가졌으며, 1888년 런던에서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을 스스로 연주했다(→ 민속음악).
노르웨이의 민속 전통에 뿌리를 둔 그리그의 음악은 섬세한 서정 감각으로 유명하다. 1867~1901년 사이에 10집으로 된 피아노곡 〈서정 소곡집 Lyriske Stykker〉을 작곡했다. 활기찬 리듬은 민요와 연관이 깊으며, 화성법은 후기 낭만주의 양식에서 발전한 새로운 것이었다. 〈피아노 협주곡〉 작품 16과 〈현악 4중주 G단조〉 작품 27, 바이올린 소나타 및 피아노 소나타 각각 3곡 등 일부 작품에서 자유 소나타 형식을 썼다. 피아노를 위한 〈발라드〉 작품 24는 노르웨이의 민속 선율에 바탕을 둔 변주곡이다.
가장 사랑받는 곡은 〈페르 귄트 모음곡 Peer Gynt〉 작품 23과 〈홀베르그 모음곡 Holberg〉 작품 40이다. 노르웨이의 춤과 노래를 편곡한 작품 17, 작품 66과 특히 〈노르웨이 농민 춤곡 슬로터〉 작품 72는 리듬과 화성에 대한 그의 예리한 감각을 보여준다. 성악곡은 A. O. 비녜의 가사에 곡을 붙인 작품 33과 시가 〈산의 요정 Haugtussa〉 작품 67이 있는데, 이 작품들에서 그리그는 시의 정서를 그대로 음악으로 표현했다.
차이코프스키/잠자는 숲 속의 미녀 (0) | 2009.09.13 |
---|---|
가을을 맞이하는 클래식 (0) | 2009.09.05 |
편하게 즐기는 클래식 (0) | 2009.08.26 |
피아노 연주곡 모음 (0) | 2009.08.26 |
슈베르트 연가곡집 '겨울나그네' (0) | 2009.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