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글에는 다음의 대목이 보입니다. ‘집안에서 한바탕 난리를 친 김첨지는 풀대님으로 사립짝을 나선다.” 여기서 ’대님’은 한복 바지의 끝 부분 즉, 바짓부리를 동여매는 끈을 말하는데 ’풀대님’은 바지를 입고 대님을 매지 않은 차림을 뜻합니다. 대님을 매지 않으면 바짓부리가 바닥에 질질 끌리게 되고, 맵시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편함이나 맵시보다는 풀대님 차림은 예의와 격식에 어긋나는, 조금 이상한 짓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풀대님 차림‘은 어지간히 경황이 없는 상태나 예의 없는 차림새를 빗대는 말입니다.
옷에 관한 말로 한 번도 빨지 않은 새 옷은 ‘진솔’,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은 ‘오지랖’, 여자가 장식으로 어깨에 걸치는 목도리, 즉 숄은 ‘어깨걸이’, 주로 형제끼리 옷을 물려가며 입는 일은 ‘옷물림’, 여러 옷감 조각을 붙여 기워서 지은 옷은 ‘쥐대기옷’이라고 합니다.
참고 :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 박남일,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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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191. 사치의 상징이었던 가죽으로 만든 갖옷 (2005/01/06)
우리나라도 예전에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방한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갖저고리, 갖두루마기로 아울러 ‘갖옷’이라 했는데 한자말로 초구(貂裘), 초복(貂服)이라고 합니다. 부여시대는 여우, 너구리, 검은 원숭이의 가죽을 썼으며, 쥐, 양, 표범, 담비, 소, 개 따위의 가죽이 쓰였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중종 13년(1518년)에 “담비가죽으로 만든 웃옷이 없는 사람은 문족회(門族會:한 집안의 모임)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다행히 임금이 못하게 하여 이 폐습이 그전 같지는 않다.” 또는 같은 책 중종 9년에 “갖옷을 입지 못하게 함은 사치를 금하고 백성의 고생을 줄이고자 하는 것”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조선시대에는 가죽옷이 사치의 상징이었으며, 이 풍조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은 가죽옷이나 모피를 누구나 쉽게 입지만 동물의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좋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