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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고도 슬픈 광우병 희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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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10. 1. 31.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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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고도 슬픈 광우병 희비극

 

[한겨레21 2010.01.28. 제796호]


 
〈PD수첩〉 사건 1심 재판부
“진실이라 믿을 만한 근거 있고 주무부처 책임자는 명예훼손 해당되지 않아”

2008년 4월29일 밤 11시15분,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이 시작됐다. 이후 40여 분에 걸친 〈PD수첩〉 방송은 예전과 다름없었다. 늘 그렇듯 민감한 주제를 다뤘다. 과거 제작진들이 그랬듯 관련자들을 직접 만나 꼼꼼히 취재했다. 막판까지 편집 시간이 부족했다. 모든 것이 평소와 같았다. 그러나 방송이 끝났을 때, 모든 것이 달라졌다. 

 

▲ 지난 1월2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판결을 내린 직후 김형태 변호사, 송일준 PD, 김보슬 PD(앞줄 오른쪽부터)가 법정을 나서고 있다.


아레사 빈슨, 알고도 그랬다?


〈PD수첩〉에 대한 공격은 미국 현지 취재 내용을 번역한 정지민씨로부터 시작됐다. 정씨는 “〈PD수첩〉 제작진이 ‘다우너’를 광우병 소로 몰아갔다”는 취지로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과 인터뷰했다. 2008년 6월 한 달 동안, 3개 신문은 〈PD수첩〉이 왜곡·선동 보도를 했다는 기사를 37건이나 집중적으로 내보냈다. 대부분 정씨를 주요 취재원으로 삼았다.

 

관련 보도가 쏟아지자 한나라당은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검찰은 2008년 6월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검찰은 제작진의 집을 수색하고, 긴급 체포하고, 오랏줄로 묶어 이송하고, 개인 전자우편을 압수해 언론에 흘렸다. 2009년 12월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조능희 책임PD와 김보슬 PD, 김은희 작가에게 각각 징역 3년, 송일준·이춘근 PD에게 각각 징역 2년을 구형했다.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였다.

 

지난 1월20일, 〈PD수첩〉 제작진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은 번역자 정씨, 조·중·동, 한나라당, 검찰로 이어진 ‘의도적 왜곡 보도론’을 기각한 결과다. 명예훼손 혐의의 쟁점은 두 가지다. 거짓인 줄 알면서도 명예를 훼손하려고 의도적으로 왜곡 보도했는지, 정운천 전 장관과 민동석 전 농업통상정책관이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지 등이다.

 

검찰 등은 “다우너 소가 광우병에 걸렸다고 보도한 것은 허위”라고 주장했다. 이 대목은 〈PD수첩〉의 관련 프로그램에서 이미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PD수첩〉은 “주저앉는 소가 광우병에 걸린 것인지는 단정할 수 없다. 광우병에 걸리지 않은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왜 주저앉는 것인지) 정확히 진단하기 전에 도축돼버렸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재판부 역시 “주저앉는 증상이 광우병의 징후일 수 있다며 다우너 소의 도축을 미국이 금지한 것으로 보아… (다우너 소를) ‘광우병 의심소’라고 보도한 것이 허위 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PD수첩〉에 등장하는 아레사 빈슨의 사망 원인도 법적 쟁점이 됐다. 검찰은 아레사 빈슨이 ‘인간광우병’이 아닌 다른 병으로 사망했음을 알면서도 〈PD수첩〉이 왜곡 보도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당시 아레사 빈슨을 치료한 병원은 인간광우병 의심 진단을 내렸다. 미국 언론도 아레사 빈슨이 인간광우병 의심 환자라고 크게 보도했다.

 

훗날 정밀 부검 결과, 아레사 빈슨의 사인이 급성 베르니케 뇌병변인 것으로 밝혀졌지만, 〈PD수첩〉 취재 당시에는 그를 인간광우병 환자로 볼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재판부는 “인간광우병 의심 진단을 받고 사망했으므로, 방송 이후 실제 사인이 급성 베르니케 뇌병변으로 밝혀졌다고 하여, 보도 내용을 허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언론 보도는 여러 제약 속에 이뤄진다. 사실 취재를 가로막는 장벽들이 있다. 모든 사실을 완벽하게 확인할 때까지 보도를 미뤄야 한다면, 언론의 감시 기능은 크게 위축된다. 이 때문에 취재 당시 사실이라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면, 관련 보도의 잘못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게 역대 재판의 주된 판례다.


조·중·동이 인터뷰한 번역자의 말 뒤집기    
 

▶ 지난 2008년 4월29일 방송된 의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

 
보도의 구체적 잘못은 정정 또는 반론 보도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을 문제 삼아 언론인을 처벌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민사 재판부가 〈PD수첩〉에 대해 일부 정정·반론 보도를 판결한 반면, 이번 형사 재판부가 “보도 내용을 허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결한 것도 그런 이유다. 민사 재판부는 구체적 사실의 세세한 잘못을 따지지만, 형사 재판부는 언론 보도 전체의 진실성을 따진다. 이번 1심 재판부는 〈PD수첩〉의 보도가 대체로 진실에 부합하고, 진실이라 믿을 만한 근거를 갖고 이뤄졌음을 확인했다.

 

번역 자막을 의도적으로 왜곡했는지도 쟁점이 됐다. 이번 판결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기도 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증인 정지민의 증언을 믿지 아니한다”고 밝혔다. “정씨의 진술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을 직접 경험한 것처럼 주장하거나, 검찰 조사 당시 했던 진술을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법정에 이르러 번복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2008년 7월15일, 〈PD수첩〉은 스스로 잘못된 번역에 대한 사과와 해명 방송을 했다. 민사재판 1심 판결이 내려지기 전의 일이다. “우리 딸이 걸렸을 수도 있는(could possibly have) 병”을 “우리 딸이 걸렸던 병”이라고 썼다. “의사들은 (인간광우병에) 걸렸다고 의심한다(Doctors suspect)”라고 할 것을 “의사들에 따르면 (인간광우병에) 걸렸다고 한다”라고 자막을 내보냈다. “우리 딸이 인간광우병에 걸렸다면(if she contracted it) 그 이유를 모르겠다”가 정확한데 “우리 딸이 어떻게 광우병에 걸렸는지 모르겠다”고 처리했다. 이런 번역 오류가 ‘의도를 갖고 사실을 왜곡한’ 결정적 근거라고 정씨는 주장했고, 조·중·동은 이를 그대로 보도했으며, 그 논리대로 검찰은 기소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잘못된 번역의 책임이 오히려 정씨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정씨가) 번역한 내용 그대로 실제 방송에 보도됐고, 다른 제작진이 편집 과정에서 번역을 바꾸거나 고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번역의 오류를 저지른 것은 정씨 본인이라는 이야기다.

 

정씨는 조·중·동 등과의 인터뷰에서 “아레사 빈슨이 위절제술 후유증으로 사망했을 수 있으며, (이를 추정할 근거로) 비타민 처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취재 원본 테이프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없었다. 결국 지난해 10월 법정에서 정씨는 “(그런 내용이) 없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며 기존 주장을 뒤집었다. 검찰 기소를 지탱했던 유일한 밑돌이 무너진 것이다. 이 대목에 이르러 〈PD수첩〉에 대한 검찰 수사는 한 편의 ‘희극’이 됐다.


“문제점 비판일 뿐 판매 업무 방해 아냐”


오역 논란은 ‘희극’으로 끝났지만, 검찰 기소의 또 다른 축을 이루는 명예훼손 혐의는 하나의 ‘비극’이다. 정부 당국자가 정책을 비판하는 보도 때문에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검찰에 고소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PD수첩〉을 고소한 정운천 전 장관, 민동석 전 농업통상정책관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보도에 등장한 두 사람은 ‘자연인’이 아니라 주무부처의 책임자로서 등장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정성에 관해 의구심을 가질 만한 충분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고, 과학적 연구결과 등 상당한 근거를 갖고 협상의 결과 및 그 문제점을 비판했다”며 “정책 비판 행위는 언론의 자유에 속하는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업무방해 혐의 역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보도를 통해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여부 및 쇠고기 수입협상의 문제점을 비판하였던 것이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여 판매하는 업무를 방해하려는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와 관련해 고전적인 판례가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1964년에 판결한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이다. “공적 관심사에 대한 토론은 규제되지 않아야 하고, 활기에 넘쳐야 하고, 널리 열려 있어야 하며, 그런 토론에는 정부나 공무원에 대한 강력하고 격렬하며 때로는 불쾌할 정도로 날카로운 공격이 포함된다. 자유로운 토론에는 때로는 잘못된 표현도 불가피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숨쉴 공간이 필요한 이상 잘못된 표현도 보호되어야만 한다.”

 

이번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PD수첩〉 보도의 정당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국민의 생명 및 건강에 관련되는 정부 정책이라면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정부 정책이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충분하고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 그 시정을 촉구하는 감시와 비판 행위는 언론 자유의 중요한 내용이다.”

 

조능희 책임PD는 <한겨레21>과의 전화 통화에서 “검찰이 기소하는 순간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언론플레이를 통해 〈PD수첩〉을 궁지에 몰아넣은 검찰이 마지막 순간 불기소 처분을 내린다면 법정에서 진실을 밝힐 기회조차 사라질 것이라 염려했다는 것이다. “정씨의 입에만 기대는 검찰은 그렇다 치자. 아무리 〈PD수첩〉이 미워도 언론 자유의 본바탕마저 부정하면서 (검찰 주장을) 그대로 받아쓰는 조·중·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PD수첩〉 게시판(imbc.com/broad/tv/culture/pd/index.html)에 이번 판결문을 그대로 올려두었다. 언론 보도에 나오지 않은 실체적 진실이 거기에 모두 있다. 관심 있는 분들이 꼭 읽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진정한 승자는 정부라는 역설


이번 재판을 통해 언론 자유의 가치가 확인된 것일까. 검찰이 항소했으므로 2심, 3심 등이 남아 있다. 재판부의 ‘상식적 판단’이 어떻게 변모할지 더 지켜봐야 한다. 최종심까지 1심 판결의 뼈대가 지켜진다 해도 검찰의 애초 의도는 대부분 성공했다. 공적 관심사에 대한 토론은 권력기관의 감시와 통제 아래 규제받고 있으며 이미 활기를 잃었다. 정부에 대한 강력하고 날카로운 공격은 봉쇄당했고, 표현의 자유를 호흡할 만한 공간은 더 이상 보장받지 못한다. 번역의 사소한 잘못을 트집 잡은 데서 시작한 이번 소송은 웃기고도 슬픈 희비극이다. 진정한 승자는 정부다. 언론은 침묵하고, 집회는 봉쇄당하고, 반대자들은 검찰에 불려가고 있다. 재판 결과에 상관없이 이명박 정부는 이루려 한 것을 모두 이뤘다.

 

1심 판결 이후 〈PD수첩〉 제작진은 아직 소주 한잔 함께 나누지 못했다. 저마다 바쁘다. 조능희 책임PD는 요즘 아침방송 외주 프로그램 관리를 맡고 있다. 송일준 PD와 이춘근 PD는 세계 곳곳을 누비는 시사 프로그램 〈W〉를 맡았다. 김보슬 PD는 작고 소소한 의문을 해결하는 교양 프로 <자체발광>에 발령받았다. 김은희 작가는 〈MBC 스페셜〉팀에서 일하고 있다. 조능희 PD는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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