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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인, 처녀

한글사랑---------/우리말바루기

by 자청비 2010. 2. 1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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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중심 사고에서 나온 성차별적 단어들

 

 

남편이 죽고 홀로 남은 여성을 가리켜 흔히 '미망인'이라고 지칭한다. 같은 의미의 '과부'가 약간 낮춤의 의미가 있다면 '미망인'은 높임의 뜻이 있다. 아무나 미망인이라고 하지는 않는 걸 보면 그렇다. 미망인으로 불리는 이들의 남편은 대개 사회적으로 이름이 있었거나 공헌을 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높인다는 취지에서 쓰는 '미망인' 의 사전적 의미는 섬뜩하다. '아직(未) 따라 죽지(亡) 못한 사람(人)'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뜻만 놓고 본다면 다분히 중심적인 시각에서 나온 말이 아닐 수 없다. 남성에게 딸려 있어 주체적이지 않은 여성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대표적인 성차별적 표현으로 거론되곤 한다. 이 말은 역사적으로 춘추좌씨전-장공편에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나라 문왕이 죽은 뒤 '영윤'이 문왕의 부인을 유혹하기 위해 만(萬)이라는 문무 열병식을 열었다. '영윤'은 당시 정치를 하는 최고 직위였다. 열병식 소식을 들은 문왕의 부인이 이렇게 말했다. "이 열병식은 군사를 조련할 때만 벌였다. 영윤은 원수를 갚는데 힘쓰지 않고 '미망인(未亡人)곁에서 이러고 있으니 괴이하다"


이렇듯 미망인은 일인칭으로 쓰이던 말이다. 그러다 남편을 잃은 여성을 가리키는 삼인칭 용어가 됐다. 그러나 본래 지니고 있던 의미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아직 남편을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붙어 다닌다. '미망인'에 상대되는 말은 없다. 부인이 죽은 남성을 별도로 가리켜 표현하지는 않는다. 여성에게만 붙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성차별적으로 비치기도 한다.


'미망인'은 '부인' 혹은 문맥상 '홀로 된'으로 풀어 써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떠나 보내는 미망인 이희호 여사는 고개를 숙인 채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냈다." "폐암으로 사망한 스튜어스 헤스의 미망인에게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여기 보이는 미망인은 모두 부인이라고 표현하면 족하다. "젊은 나이에 미망인이 된 어머니 안나와 함께 1862년 태국에 발을 디딘다" 이 문장에서는 '미망인이 된' 대신 '홀로 된'이라고 해도 된다.


이같은 남성중심적인 용어가 또 있다. '처녀'는 결혼하지 않은 성년여성을 뜻한다. 그런데 '처녀'는 다양한 합성어들을 만들어 내면서 본래 뜻과 다른 어감을 나타낸다. 처음으로 지었거나 발표한 문학, 예술작품을 가리켜 흔히 '처녀작'이라고 표현한다.


"제임스 존스의 처녀작이자 출세작인 '지상에서 영원으로', 리처드슨의 처녀작이자 서구 근대소설의 효시로 …' 이렇듯 '처녀작'의 '처녀'는 본래 지닌 뜻이 아니다.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순결'의 듯이 있다. '처녀작'은 여성의 순결을 강조한 말이 된다. 반면 결혼하지 않은 성년 남성을 뜻하는 '총각'은 이런 식으로 쓰이지 않는다. 본래 의미로만 쓰인다. 그러고 보면 '처녀작'은 남성의 시각에서 나온 말이다.


"그 잣나무 숲은 '처녀림 그대로 자라난 야생의 숲'은 아니었던 것이다." '처녀림'은 아무도 손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숲이다. '처녀림'도 여성의 순결을 드러낸다. '처녀림'대신 '원시림'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이런 성차별적 표현을 반성하고 중립적인 표현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전에는 수컷에 의한 수정없이 새롱누 개체를 만드는 생식방법을 가리키는 말로 '처녀생식'이 많이 쓰였다. 그러나 지금은 '단성생식'이란 표현으로 대체돼 주로 쓰인다.

 

<신문과 방송 1월호 - 바른 말 좋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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