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에게 권력을, 'Power to the people 2010'
-[연출의 변] 다시 공연을 준비하며
탁현민(공연연출가, 한양대 겸임교수)
<출처:사람사는세상 http://www.knowhow.or.kr/>
지난해 여름, 뜨겁고 잔혹했던 시간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연출했던 노무현 대통령 추모공연 <다시, 바람이 분다>의 연출노트를 꺼내 보았습니다. 노트 앞장에는 짧은 한마디가 쓰여 있었습니다. '잊지 말자.' 다시 공연을 준비하며 저의 고민은 내내 이것이었습니다.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또 '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를 말입니다.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나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의 시간도 있었고, 뜨거운 후회의 시간도 있었고,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사뭇 냉정하게 잊어서는 안되는 가치에 대해서, 가만히 생각해보는 시간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분노보다, 후회보다, 희망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잊지 않는 것,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잊지 말자' 그리고 '기억하자'. 그것은 다만 추모공연을 연출했던 어느 연출가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500만의 추모시민 모두가 그러한 생각을 거쳤고 그러한 시간을 보냈을 터입니다. 하지만 어느새 기억하려 애써 봐도 자꾸만 희미해져가는 그날의 감정들에 대해 고민스러운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잊지 말자.' 저는 그때 무엇을 잊지 않기 위해 그런 말을 써놓은 것이었을까요? 분명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단지 그것을 잊지 말자는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의 죽음이 비극적이었던 것은, 그가 단지 한 명의 자연인으로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의 죽음을 요구했던 분명한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단지 노무현의 죽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죽음이었고, 민주주의 죽음이었고, 저항의 죽음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자는 것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그의 죽음은 저항의 죽음이었다
또 다시 공연을 준비하면서, 예상대로 이전의 공연보다 더 어려워진 현실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과 1년 사이에 변화치고는 너무나 많이 그리고 너무나 절망적으로 변해버린 상황은 단지 추모공연을 준비하는 일조차도 이러한데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오죽할까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리고 공연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출연진 문제, 장소 문제, 그리고 여러 불편부당한 제약은 당연히 겪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쯤은 걱정 '꺼리'도 안될 정도로 맷집이 좋아졌습니다. 바다는 어민이 지키고, 산과 강은 신부님과 스님들이 지키고, 거리는 촛불 든 시민들이 지키고 있는지 이미 오래입니다. 때 아닌 의병활동에 심신이 피곤하지만 공연장 정도는 제가 지켜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1차 라인업에 들어가 있는 모든 출연자들도 마찬가지고, 각 지역에서 공연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공연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가수들과 접촉하고 부탁하고 사정했지만 결국 우리들과 함께 하는 가수들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들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한편으론 아쉽지만 그러나 한편으론 무엇보다 든든하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이번에도 공연은 준비되고 있습니다. 연출가가 있고 가수가 있고, 노무현재단이 있습니다. 어렵지만 장소도 하나씩 확정되고 있으며 구성도 끝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해야 할 어려움이야 당하면 그만이지만 무엇보다 큰 걱정은 공연의 안쪽이 아니라 공연의 바깥쪽입니다. 무대가 아니라 객석입니다. 그것이 이 공연이 결코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공연이 아니라 무대에서 객석을 바라보는 자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수들이 관객을 바라보기 위해 모이는 자리
노무현 대통령 서거1주기 추모공연 <Power to the people 2010>은 관객이 가수들의 노래를 듣기 위해 모이는 자리가 아니라, 가수들이 관객을 바라보기 위해 모이는 자리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모이는 자리입니다. 눈부신 조명이나 호화로운 세트, 화려한 출연진을 보기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모이는 이유는, 그리고 우리가 함께 노래하는 이유는, 그런 것에 있지 않음이 분명합니다.
그의 죽음으로 저항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일이 아닙니다. 비록 추모공연으로 이미 죽은 그를 되살릴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의 죽음을 우리들의 삶으로 바꾸어 놓을 수는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단지 하나의 공연에 모여, 노래하고 흐느끼는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음악으로는 세상이 바뀌지도 않고,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관객 여러분, 아니 내 뜨거운 왼쪽과 오른쪽의 어깨를 맞댈 여러분, 우리는 음악으로 그리고 이번 공연으로 우리들을 바꾸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 기억해내야 할 것을 떠올리며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 냈을 때, 그때부터가 시민이 권력을 가지게 되는 순간일 것입니다. 5월 한달, Power to the people의 선언에 관객으로 주인공으로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지난 1년 우연찮게 저는 그 복잡한 감정의 흐름 속에서 서 있었습니다. 공연을 통해 분노와 후회, 결단과 희망을 담아내려 했습니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연출가의 시점이 아니라. 객석에 자리한 관객의 시선으로 공연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때의 추모공연과 이어서 열렸던 노무현재단 출범축하 공연내용이 만약 감동적이었다면 까닭은 거기에 있는 것이고, 아니었다 해도 마찬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연출가가 연출적 시점을 버리고 오로지 관객의 시점만으로 공연을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디테일과 장식의 유혹을 버리기도 쉽지 않은 일이거니와 무엇보다 공연의 흐름과 고저를 조절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1주기 추모 콘서트 “Power To The People 2010”
노무현 대통령님을 추모하는 콘서트가 전국 5대 도시를 순회하면서 5월 주말을 수놓습니다. YB(윤도현밴드), 강산에, 안치환과 자유, 노찾사, 두 번째 달, 윈디시티, 이한철밴드, 우리나라, 피아 등이 출연할 예정입니다. 또한 지역별로는 대규모 시민합창단이 만들어져 시민들이 꾸미는 무대도 함께 선보입니다.
특히 2009년 재단출범 축하 콘서트에서 선보여 호평 받았던 ‘명사 프로젝트 밴드’가 시즌2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요 명사(명단 추후 공개)들로 구성된 프로젝트 밴드는 잘 알려진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무대에 올라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밴드 멤버로 변신해 그동안 갈고 닦은 연주와 노래로 시민들과 어울릴 예정입니다. 이번 추모콘서트는 ‘유료’ 공연입니다. 그러나 티켓을 발매하지는 않습니다. ‘자발적 유료’ 공연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으로 티켓을 구입해 주시면 됩니다. 여러분의 정성이 더욱 풍성한 공연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신지 벌써 1주기가 됐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실감나지 않습니다. 여전히 경남 봉하마을에 가면 언제든지 만나뵐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마음 뿐이고 아직까지 한번도 봉하마을엔 가보지 못했답니다. 천안함 사고 직후 청와대 벙커에서 긴급 안보회의를 개최했다고 하자 곧바로 '노무현 대통령이었다면…'을 떠올렸습니다. 군대라는 곳엔 가보지도 않은 XX들이 앉아서 안보를 논하면서 허둥대고 있으니 헛웃음만 날 뿐입니다. 우리의 노간지는 군복 입은 사진도 참 위풍당당했는데 … 며칠전엔 천안함 사고가 김대중 노무현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얼빠진 ㄴ이 아직도 있더군요. 즈그들은 아무것도 한 일도 없고,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입니다. 2년이 지나도록 그네들이 한 일이라곤 뉴스개그프로그램, 시트콤을 막론하고 즈그들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교체하거나 경고하고, 즈그들이 그렇게 비판했던 코드인사는 남은 임기도 무시한채 내쫓아서라도 단행하고, 요즘엔 4대강을 파서 미꾸라지 물흐리듯 물을 흐려놓고 있고, 미래의 대한민국을 내다본 세종시 추진계획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았을 뿐입니다. 이럴수록 떠오르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 뿐입니다. 다시한번 노무현 대통령의 영상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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