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산층은 무엇으로 사는가
'보편적 복지'에 관심 높아져
<위클리경향>
"'당신은 중산층에 속합니까'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을 대강 훑어보고는 '그럭저럭 삽니다' 라며 중산층에 자기를 구겨 넣는다. 하지만 '중산층이 되려면 어떤 요인이 필요합니까'라고 물으면 괴리된 답변이 나온다. 주택의 규모와 현금자산, 교육수준 등을 이야기하다 보면 거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러한 괴리감이 우리 사회 중산층의 문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바탕을 두고 정부가 퍼뜨린 중산층 개념에 대한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이다.
중산층은 한국사회 독특한 개념
신 교수는 "우리가 정의하는 '먹고 살 만한' 중산층이라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중간계급이지만 정부에서는 이 '계급'이라는 말을 정치적으로 쓰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중산층"이라면서 "1960년대 초반에 이 명칭이 나온 이후 수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여전히 실체가 불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자신의 입맛에 맞게 개념을 확대하거나 조정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동기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도 "중산층이라는 용어는 한국사회에서 마르크스주의 계통의 용어가 금기시되는 냉전시대부터 학계·정치계·언론계에서 사용돼 왔으며, 소득·자산·직업·학력 등으로 측정될 수 있는 독특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한국사회의 중산층은 '친여 보수 성향'을 드러냈다. 남은영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중산층은 사회 안정 요소다. 중산층이 많아지면 그만큼 사회 갈등 요인이 줄어들고, 정부 여당 성향이 존재하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중산층을 육성하려 했다"면서 "이런 면에서 그동안 중산층에 대한 연구는 다소 보수적 측면에서 진행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산층은 상당히 주요한 변화를 촉발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게 중론이다. 남 연구원은 "최근 들어 중산층은 정치의식과 사회의식에 있어서 진보적 세력이 많아졌다"면서 "실제로 화이트칼라(사무직)에서 보듯 교육 수준이 높으면 진보의식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 교수 역시 "중산층은 흔히 보수적이고 안정을 희구하는 집단으로 이해돼 왔지만 최근엔 하층에 비해 오히려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면서 "이러한 진보적 성향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객관적 조건보다는 경제적·문화적 수준에 대한 주관적 인식의 요인이 더 중요한 것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뜨거운 공방을 일으키고 있는 '무상급식' 문제가 우리 사회 중산층의 정치적 태도를 보여 주는 사례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보편적 복지'라는 개념이 아직은 생소하지만 서민뿐만 아니라 중산층에도 중요한 '복지 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쿱(iCOOP)생협 회원들이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친환경무상급식운동본부 발족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현재 여당은 전면 무상급식을 반대하고 있으며, 이명박 대통령은 "복지예산을 늘리고 싶어도 북유럽 나라처럼(해서는) 안된다"고 표명했다. 조세부담률이 우리보다 10% 이상 높아 중산층을 축으로 '세금=복지'라는 양방향의 국정 골격이 잡힌 북유럽과, '부자감세'에 발목 잡혀 재정적자는 확대일로이고 4대강 집중 예산으로 복지는 뒷전인 한국 간의 복지 방향에 대한 중산층의 선택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무상급식' 후보 선택 중요한 기준
결국 키는 중산층이 쥐고 있다는 평가가 힘을 얻고 있다. 그동안 '타인을 위해 세금을 낸다'고 여겨 온 월급쟁이나 자영업자들이 '복지 무체감'을 벗고 무상급식을 통해 '세금이 나에게 돌아온다'는 자각 지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3월 말 경향신문과 KSOI의 지방선거 여론조사 결과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후보에 대한 지지 여부'에서 저소득(200만원 이하·53.9%)보다 중간소득(201만~400만원·66.3%), 고소득(401만원 이상·55.7%)에서 '지지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많아 중산층이 무상급식을 후보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초·중등학교 무상급식 전면 실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서 저소득(77.1%), 중간소득(74.2%), 고소득(78.7%)으로 반응해 고소득층이 무상급식 실시에 가장 크게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 결과를 보면 중산층의 경우 야당의 무상급식 이슈에 대항하기 위한 여당의 '무상급식=부자급식'이란 프레임에 공감하지 않고 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이 같은 반응은 중산층의 불안감에서 시작한다. 조동기 교수는 "중산층 위기를 논의하는 맥락에서는 객관적인 규모의 문제보다 사람들이 주관적 측면에서 경험하는 상대적 박탈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2월 닐슨컴퍼니코리아가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국민 3명 가운데 2명(63.3%)이 현재의 경제 위기로 인해 '소득이나 자산이 이전보다 줄었다', 10명 가운데 8명(78.7%)이 '경제 위기로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각각 응답했다. 특히 응답자들은 경제 위기 이후 '교양·오락비'(38.2%), '의복비'(33.5%)를 가장 먼저 줄였지만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식료품비'(39.3%)와 '교육비'(28.1%)는 줄이기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신분 유지나 상승의 유일한 도구인 '교육'에서조차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부유층 진입에 대한 장벽은 높아졌다. 지난 3월 닐슨컴퍼니코리아가 같은 방법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87.5%)이 10년 전에 비해 부유층 진입이 '어려워졌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닐슨컴퍼니코리아 사회공공조사부문 최원석 국장은 "이번 조사를 통해 경제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사회 계층 간 이동의 경직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좀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부의 대물림 현상을 제도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장치도 중요하지만 서민과 중산층에게 성공할 수 있는 균등한 기회를 보장해 주는 정책도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쥔장 생각 :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 높아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 기사의 교수나 연구원들은 정치의식과 사회의식에서 진보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으로 우리나라 중산층의 정치의식이 진보적이 됐다고 판단할 수 없다. 우리나라 중산층의 정치의식, 사회의식이 높았다면 이명박 정부는 결코 들어설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중산층은 정치적으로는 오히려 1990년대에 비해 보수화 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1980년대 사회 민주화를 이끌었던 이른바 386들도 중산층으로 영입되면서 정치적 민주화 보다는 경제적 논리에 밀려 상당부분 보수화됐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다만 이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보편적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는 그동안 보여왔던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경제적 관점으로 전환하면서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됐다고 볼 수 있다.
즉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민주주의를 경험한 중산층은 이후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더우기 두 민주정부 동안 기대했던 개혁에 미치지 못했고, 수구세력의 악다구니 때문에 오히려 혼란정국으로 비춰졌던 정치적 실험에 중산층은 등을 돌렸다. 이에 따라 중산층은 정치적으로 급속히 보수화되면서 경제살리기를 앞세운 MB정부를 택했다. 그 결과 중산층은 MB정부에서 급속히 반동정치를 경험하고 4대강 등 삽질정책에 밀려 복지예산이 삭감되는 어려움을 맞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문화적 수준을 포함한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은 양보할 수 없기에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감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결정할 때 촛불시위로 나타났고, 또 위탁급식으로 인한 불안감이 무상급식에 대해 높은 관심으로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 기사에서 처럼 무상급식을 포함한 사회전반적인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해서 우리 중산층의 정치의식, 사회의식이 높아지고 진보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한 단면만 놓고 판단한 것일 뿐이며 옳다고 할 수 없는 결론이다.
문제는 기사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부의 대물림 현상이 고착화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체제가 왠만한 충격에는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전체적으로 안정화 됐기 때문에 예전처럼 급작스런 신분상승이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경제적으로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중산층이 엷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게다가 부의 대물림이 점차 고착화되고 신분변화는 상승쪽보다는 하향쪽이 심해지고 여간해서는 회복이 어렵다는 것이다. 분배를 강조했던 노무현 정부 때도 양극화 현상을 쉽게 해결하지 못했는데 이명박 정부가 펼치는 삽질 경제정책은 양극화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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