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입’을 열면 미국은 ‘이’를 간다
경향신문
내부고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지난 22일 공개한 39만여건의 이라크전 관련 기밀문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미군의 이라크전 수행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사망 관련 자료들이다. 미군이 민간인 사망자를 파악하지 않는다는 그동안의 주장과 달리 자세히 파악해온 사실이 처음으로 드러났다. 특히 미군의 검문소가 주된 민간인 학살의 장소가 됐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 검문소가 민간인 대학살 장소로 = 기밀문서를 위키리크스로부터 사전에 입수해 10주 동안 분석해온 알자지라 방송에 따르면 2004년 1월부터 2010년 1월 이라크 내 검문소에서만 1만4000건의 총격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민간인 681명이 사망했다. 대부분 정지 수신호를 알아보지 못한 운전자들이 차량을 멈추지 않자 차량폭탄테러를 우려한 미군의 발포로 벌어진 참사들이다. 많은 경우가 수니파 지역에서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임신한 부인이나 가족을 병원으로 이송하는 차량을 향해서도 총을 겨눈 경우다. 2006년 5월 수도 바그다드 북쪽 110㎞ 떨어진 사마라에 있는 산부인과 병원으로 가던 임신부 나히바 자심(35)과 삼촌은 물론 뱃속의 아기까지 미군의 총격으로 숨졌다.
2005년 9월 수도 바그다드 남부 무사이브 근처의 검문소에서도 미군 2명이 정지 신호를 무시한 차량을 향해 총격을 퍼부어 남녀 성인 2명이 숨지고, 6살·9살 아이는 다쳤다. 그해 10월 바그다드의 한 검문소에서도 미군 총격으로 아이 2명이 숨지고 다른 아이와 여성 1명은 다쳤다. 6월14일 이라크 중부 라마디 근처의 허리케인 포인트 기지의 검문소에서도 어린이 2명과 어른 5명이 숨졌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민간인 오인 살해 뒤 미군이 거짓으로 보고한 점이다. 2007년 7월 바그다드에서 미군은 검은색 BMW 차량이 정지 신호를 무시하자 기관총 세례를 퍼부었다. 차량 안엔 성인 남녀 2명과 아이 2명이 있었다. 미군은 사후 보고서에서 차량 안에 탄약이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탑승자가 누구였으며 왜 탄약 차량으로 판단했는지에 대한 조사 없이 사건을 서둘러 종결했다.
◇ 이라크 보안군의 수감자 학대와 미군의 침묵 = 알자지라의 분석에 따르면 이라크 보안군이 수감자에 대해 자행한 학대행위는 1000건이 넘는다. 수백명이 감옥 안에서 학대와 고문을 당했으며, 수감자 사망 보고만 6건이나 됐다. 수감자들이 당한 고문의 형태는 구타와 불고문, 채찍질, 전기고문, 성적 학대 등 다양했다. 한 수감자는 교도관들에 의해 손가락이 잘리고 몸에 산성 용액이 뿌려지는 고문을 당했다. 한 미군은 바그다드 수용소에서 수감자 95명이 한방에서 눈가리개를 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으며, 이들의 몸에서는 담뱃불 자국이 발견됐다.
미군은 이런 행태를 상관에 제대로 알리지 않고, 보고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조사가 필요치 않다는 식으로 적극적인 대응을 회피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6년 6월 말 이후 보고된 이라크 보안군의 수감자 학대 건은 이라크가 주권국가가 된 이후여서 간여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미군의 처사는 유엔 고문방지협약을 위배했다는 지적을 면하기는 어렵다고 알자지라 방송은 지적했다. 미국은 1994년 이 협약에 비준했으며, 비준 국가는 고문이 우려되는 곳으로 수감자를 이송해서는 안된다.
◇ 이란의 이라크 반군 지원 및 커지는 이란의 영향력 = 이란 혁명수비대의 핵심부대인 쿠드스가 이라크 반군 세력을 저격수로 훈련시키고 이라크 관리 암살을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2003년 미군 침공과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로 이란이 이라크에 비해 월등한 군사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AP통신은 지적했다. 2003년 이라크전 개시 당시 이란이 보유한 탱크는 1565대로 이라크의 2200대보다 적었지만, 최근엔 1613대로 이라크의 149대보다 10배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전쟁기밀 폭로 연발 위키리크스는>
연합뉴스
국가 안보의 적인가, 진실을 밝히는 등대인가? 아프가니스탄 전쟁 기밀에 이어 이라크전 기밀문건을 대거 폭로한 '위키리크스(Wikileaks.org)'는 정부와 기업의 비윤리적 행위를 알리겠다는 목적으로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설립된 내부고발 전문 사이트다. 해커 출신의 줄리언 어샌지(39 · 사진)에 의해 2007년 공식 출범한 위키리크스는 아프리카 연안에서 유독물질 투기 관련 메모, 영국 인종차별 정당의 당원 명부, 미군의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 운영세칙 등을 일반에 공개했다.
이밖에 케냐 경찰과 신흥종교 사이언톨로지의 비리, 아이슬란드 금융위기 등도 위키리크스의 레이더망을 비켜가지 못했다. 지난 4월에는 미군 아파치 헬기가 외국인 기자 등 민간인 12명을 사살하는 동영상을 공개해 충격을 던졌다. 특히 지난 7월에는 미국의 아프간전과 관련한 기밀문서 7만7천건을 공개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위키리크스는 12명의 전임 자원봉사자로 이뤄진 핵심 그룹에 의해 운영되며 암호화와 프로그래밍, 보도자료 작성 등에 대한 조언자가 전 세계에 걸쳐 800명~1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키리크스는 특수 암호 프로그램을 이용해 정보 제공자의 신상을 익명으로 철저히 보호한다고 강조하면서 기밀정보를 모은다. 또 스웨덴과 벨기에처럼 기밀 공개시 법적 보호를 받기에 용이한 몇몇 국가에서 서버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정확한 운영 체계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 사이트는 "일반에 중요한 뉴스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라면서 원문 자료 공개를 통해 '진실'을 알린다고 밝혔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다. 미국과 영국 정부 등은 군사 기밀 폭로가 동맹군 병사는 물론 민간인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한다며 위키리크스가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맹비난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무분별한 정보 공개에 따른 프라이버시 침해를 우려한다.
그러나 내부 정보 공개의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하는 이들도 많다. 아이슬란드의 한 언론 전문가는 AFP 통신과 인터뷰에서 "이같은 (기밀)문서 폭로는 전 세계 정부와 당국에 압력으로 작용하고, 많은 측면에서 투명성을 높인다"고 말했다. 또한 기밀 정보를 얻는 언론계에서는 위키리크스가 '폭로 제조기'로 환영받고 있다. 심지어 위키리크스가 내부고발자와 기존 매체를 전문적으로 연계시키면서 언론에 지각변동을 일으킨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한편, 위키리크스가 22일 공개한 이라크전 기밀문서 39만1천832건 중에는 미국 정부와 계약을 체결한 민간 보안업체들이 가담해 전쟁에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내용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문건을 분석한 뉴욕타임스(NYT)는 2004년 12월22일 '커스터 배틀즈'라는 미군 하청업체 차량이 민간인들을 향해 총격을 가한 사건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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