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MBC 내일 뉴스도 알고 있다?
[한겨레21 제834호]
삼성 직원이 문화방송 내부 정보망 들여다본 의혹 제기돼…
문화방송 자체 감사 결과 정보 제공 의심 직원에게 대기발령, 회사·노조 모두 “명확한 진상 규명” 강조
» 삼성은 정말 문화방송 내부 정보망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었을까? 서울 서초동 삼성 본사(왼쪽)와 서울 여의도동 문화방송 본사.
나도 모르게 내 집에 살다시피 하며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또 하나의 가족’이 존재한다면? 그렇게 몰래 챙긴 정보를 이용해 집안의 대소사에 은밀하게 관여한다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을 것이다. 아직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이와 유사한 일의 일단이 드러났다. 언론계와 법조계 인사들을 스카우트해 정보력을 키워온 삼성은, 방송사 가운데 삼성에 비판의 날을 세워온 문화방송을 가족처럼 곁에 두고 지켜보고 싶어했을지도 모른다. 상대방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그런데 최근 문화방송이 내부의 민감한 정보 누출에 대한 감사를 벌였더니, 그 끝에 삼성이 있었다.
두 달 여 동안 감사를 벌인 문화방송은, 뉴스시스템을 관리해온 A씨가 2007년 회사를 떠나 삼성으로 자리를 옮긴 전직 기자 B씨(삼성경제연구소 근무)에게 정보를 유출한 정황을 포착했다.
프로그램 내용 올리자 삼성에서 전화
문화방송 감사실은 지난 8월부터 직원들을 상대로 감사를 벌였다.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언론사의 속성상 보안이 생명인데, 언제부턴가 지속적으로 정보가 샜기 때문이다. 그것도 뉴스 제작과 보도에 이용되는 ‘뉴스시스템’(취재 내용·기사·뉴스 큐시트·편집회의 결과 등을 공유하는 내부 정보망)에 올려진 핵심 정보였다. 이런 식이다. 삼성을 취재하고 삼성을 보도하기로 결정하면 삼성 임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구체적인 보도 시간과 보도 내용까지, 뉴스시스템을 보지 않고서는 알기 힘든 내용도 있었다고 문화방송 관계자는 전했다.
문화방송의 한 직원은 “몇 달 전 삼성을 비판하는 내용의 프로그램을 준비하던 제작진이 방송 내용을 내부 정보망에 올린 뒤 삼성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어떤 내용인지 대충 들었는데 비판 수위를 낮춰달라’는 내용이어서 담당 데스크가 황당해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말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단순한 의심에서 ‘범인 색출’로 경계의 수준을 높이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8월8일 개각을 앞두고 보도국 기자들이 인선 예상 명단을 취재해 뉴스시스템에 올린 내용이 증권가 정보지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실렸다. 기자들이 문제를 제기했고 보도국장은 감사실에 진상 파악을 요구했다.
“퇴사한 뒤 얼마 동안 (문화방송 재직 때 쓰다가) 살아 있는 아이디로 가끔 뉴스시스템에 접속했다. 12년 동안이나 회사를 다녔기 때문에 동료들 소식이 궁금해 경조사 위주로 봤고, 회사가 돌아가는 내용도 봤지만 곧 닫혀서(해당 아이디로 접속이 안 됨을 뜻함) 그 뒤론 못 봤다.” -B씨
두 달 여 동안 감사를 벌인 문화방송은, 내부 정보망 담당자인 A씨가 2007년 회사를 떠나 삼성으로 자리를 옮긴 전직 기자 B씨(삼성경제연구소 근무)에게 정보를 유출한 정황을 포착했다. <한겨레21> 취재에 응한 다수의 문화방송 직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A씨가 뉴스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는 아이디를 B씨에게 전달했고 삼성 쪽에서 그 아이디로 접속한 흔적이 발견됐다고 한다. 또 A씨가 지난해 여름 문화방송의 내부정보를 정리해 B씨에게 보낸 전자우편이 감사 과정에서 적발된 것으로 전해졌다.
문화방송은 이런 감사 결과를 바탕으로 10월28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A씨에게 대기발령을 내렸다. 조만간 다시 회의를 열어 최종 징계 수준을 결정할 방침이다. 문화방송 노조 관계자는 “해임을 전제로 한 대기발령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A씨는 감사실 조사에서 결백을 주장하면서 검찰 수사를 요청했다고 한다.
» 문화방송 〈PD수첩〉의 ‘광우병 쇠고기’ 보도와 관련해 지난해 4월8일 검찰이 문화방송 본사를 압수수색하려 하자 직원들이 막고 있다. 문화방송은 최근 감사에서 직원이 삼성 쪽에 내부 정보를 유출한 의혹을 캤지만, 이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할 경우 〈PD수첩〉 사건 때처럼 불똥이 엉뚱한 데로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접속은 했으나 보지는 않았다?
문화방송은 이 대목에서 딜레마에 빠졌다. 회사에서 벌어진 비리라도 자체적으로 조사하기에는 통신비밀보호법 등의 제약이 있다. 명확하게 진상을 규명하려면 검찰 수사를 의뢰해야 하는데, 문화방송과 검찰의 최근 관계를 고려하면 빈대를 잡으려다 집을 태울 수도 있다. 검찰이 정보 누출 수사를 빌미로 문화방송의 서버와 컴퓨터를 압수수색하면 더 민감한 정보들이 유출돼 정치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 광우병 보도와 관련해 〈PD수첩〉을 수사할 때의 검찰을 떠올리면 이런 우려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당시 검찰은 문화방송 압수수색을 시도했으며, 수사와 무관하게 한 작가의 사적인 전자우편 내용까지 언론에 공개했다. 이번 사건의 전말에 밝은 노조 쪽 인사는 “A씨, 그리고 그와 연관된 이들도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겨레21>은 사건 당사자들을 직접 취재했다. A씨는 10월29일 전화 통화에서 “(자신의 일을 보도할 경우)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감사를 받은 사실, 징계 등과 관련한 질문에 일절 답변을 하지 않았다. 문화방송 감사 결과 정보 누출에 연루된 것으로 파악된 삼성경제연구소 B씨는 내부 정보망 접속과 A씨 접촉 사실을 일부 인정했다. 그는 <한겨레21>과의 전화 통화에서 “퇴사한 뒤 얼마 동안 (문화방송 재직 때 쓰다가) 살아 있는 아이디로 가끔 뉴스시스템에 접속했다. 12년 동안이나 회사를 다녔기 때문에 동료들 소식이 궁금해 경조사 위주로 봤고, 회사가 돌아가는 내용도 봤지만 곧 닫혀서(해당 아이디로 접속이 안 됨을 뜻함) 그 뒤론 못 봤다”고 말했다. ‘뉴스시스템에 접속했지만 기사나 기타 정보는 안 봤다는 건 이해되지 않는다’는 지적에는 “연구소에 있는 내가 굳이 내용을 볼 만한 것도 아니고…”라고 답했다. 문화방송의 감사 결과에 관해 묻자, 그는 “A씨에게 뉴스시스템에 접속이 가능한 아이디를 받은 적이 없고, 1년 전쯤 취직할 곳을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이메일로 한 차례 받은 것 말고는 그와 거의 연락이 없었다”고 말했다.
문화방송 사상 최악의 정보 누출 사건
그러면 문화방송 감사실은 생사람을 잡고 있는 것일까? 기자 출신의 B씨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무엇을 ‘연구·조정’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사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가 소속된 연구조정실은 일반 기업체의 기획·홍보·인사·총무 기능이 복합된 곳이다. 이 때문에 어느 부서보다 모기업인 삼성그룹과의 교류가 많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한 인사는 “일반 기업이 자회사에 ‘오더’를 할 때 기획실을 통하는 것처럼 삼성 전략기획실의 ‘오더’는 연구조정실로 내려온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A씨를 통해 어떤 정보가 누출됐는지, 그 정보가 B씨에게 전달됐는지, 전달됐다면 어떻게 활용됐는지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하지만 B씨 직무의 특성상 취득한 정보가 있을 때는 이를 윗선에 보고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가능성은 문화방송 기자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뒷받침된다. B씨는 삼성경제연구소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친정’ 식구들을 꾸준히 만나면서 챙겼다고 한다. 보도국의 한 기자는 “B씨는 우리 기자에게 필요한 삼성 쪽 취재원을 소개해주기도 하고, 술자리도 연결해주곤 했다”고 말했다. 문화방송 기자로 근무하다 삼성경제연구소로 간 뒤, 문화방송 기자 등을 상대로 삼성그룹 전반과 관련한 홍보·언론대응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이하 생략>
“시민들이 삼성을 너무 짝사랑하고 있어요”
[한겨레 제834호]
삼성 비자금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길었던 3년…
김상조 교수와 함께 ‘삼성공화국’을 극복할 시민의 불매운동을 토론하다
» 김용철 변호사(왼쪽)가 삼성 비자금을 폭로한 지 3년이 된 지난 10월28일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과 만나 ‘삼성 사태, 그 이후’에 대해 대담했다.
숨가쁜 3년이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와 특검, 기소와 유죄판결 등 굵직한 사건들이 이어졌다. 이제 김 변호사는 삼성 고위 임원에서 중증장애인에게 ‘법과 사회’ 과목을 가르치는 야학 교사이자 철학과 석사과정을 밟는 학생이 됐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그룹 회장직을 사임한 뒤 단독 특별사면을 받고 다시 ‘왕좌’에 복귀했다. 모두 2007년 10월29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김 변호사의 이름으로 개설된 50억원의 삼성그룹 차명계좌를 폭로하면서 비롯된 일들이다. 김용철 변호사와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경제학과 교수)이 10월28일 만나 ‘삼성 사태, 그 이후’를 돌아봤다.
김상조 3년 전 삼성 비자금을 고발한 용기 있는 행동이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용철 불행한 일은 통제될 수 없는 권력체계가 생긴 것입니다. 사실 특검이나 수사·재판으로 통제할 수 없는 권력이 생겼다는 것을 검증하고 말았죠.
김상조 앞으로 모든 기업이 비자금 사건에 대해 ‘삼성처럼만 대우해달라’고 할 것 같습니다. 삼성 수사 결과는 법체계를 비롯해 우리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용철 탈세만 봐도 (4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액수입니다. 전무후무한 대형 사건인데도 불구속 수사를 했고, 자식에게 거대한 부와 권력을 물려주는 절차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거나 많은 증거가 조작됐다는 등 절차적 문제에 애써 눈감았습니다. 반면 요즘 수사를 보면 사주부터 구속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보통 사주가 구속되면 수사가 끝나는데, 사주부터 구속하고 수사를 시작하더군요. (웃음)
김상조 하하, 삼성 특검 때는 주변부터 수사하고 몸통에 접근하겠다고 했죠. 최근 3개 그룹에서 비자금 문제가 나오는데, 이런 문제가 왜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나요.
김용철 범죄가 없어질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선진국에서는 제대로 된 처벌을 하죠. 삼성은 비자금에 대해 선친에게 몰래 물려받은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상속세 시효는 넘었고, 차명계좌를 관리해 양도소득세를 포탈(임직원들이 이건희 회장에게서 차명계좌를 받아 얻은 소득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은 것)한 데 대한 세금만 내고 말았습니다. 굉장히 좋은 선례가 됐죠. ‘문제가 되면 세금만 내면 된다. 뺏기는 일은 없다’는 식이죠. 잘은 모르지만 현재 다른 그룹들도 똑같이 해명할 것입니다.
김상조 CJ그룹도 (비자금에 대해) 그랬고, 한화그룹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김용철 일종의 ‘야전교범’이 돼버렸죠. (삼성그룹이) 저렇게 처리하고 (검찰과 법원이) 저렇게 대응하면 당연히 (다른 기업들도) 계속 비자금을 만들죠.
김상조 최근 그룹 수사를 보면 처음에는 ‘공정한 사회’를 위해 기업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로비 대상이 야당인 기업을 상대로 수사하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한 자리에서 ‘공정한 사회는 공무원이 정하는 사회다’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공무원 또는 권력을 가진 분들이 법이라는 도구를 자신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행사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수사하면 법 집행에 대한 국민이나 기업들의 불신을 자초하는 길로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용철 만일 하명 수사거나 그런 의도를 가진 수사라면 (검찰이) 그나마 철저히 했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칼날(의 방향)은 또 바뀔 테니까요. 칼질한 사람은 그 칼에 또 자기가 다쳐요.
김상조 한화그룹은 대한생명을, 태광그룹은 티브로드를, C&그룹은 워크아웃 기업들을 인수해 성장했습니다. 국내에서 기업이 인수·합병으로 규모를 빠른 시간에 확장할 때 여전히 로비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비자금이 필요하고, 다시 기업이 어려워지면 무마하기 위해 비자금이 필요한 식입니다. 시장 질서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게 비자금 조성이 필요한 원인으로 생각됩니다.
김용철 국가의 통제 기능이나 언론의 감시 기능이 무력합니다. 요즘 강연에 가면 불매나 투자 거부 얘기를 합니다. 현실성 얘기가 나오지만, 시민이나 투자자가 요식 측면에서라도 (견제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과거 외신기자클럽이 주최한 비공식 간담회에서 ‘한국 사회에 큰 폐해를 끼치는 기업에 유럽 연기금 등이 투자하는 것은 일종의 범죄를 공모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수주의적으로 보면 매국노 발언일 수 있지만 말입니다.
김상조 삼성의 이익을 훼손하면 매국노라는 인식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삼성공화국’(김상조 교수는 공화국 대신 왕국·제국이 더 적당한 표현이라고 수정했다)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만들어내는 ‘삼성에 좋은 것이 한국에 좋은 것’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죠. 삼성그룹은 외환위기 이후 경쟁 그룹뿐만 아니라 국가권력에 의해서도 견제가 불가능한 존재가 됐습니다. 이는 한국 경제의 역동성(다이내믹스)뿐만 아니라 사회의 위계질서를 위협하는 심각한 요소가 됐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하나 삼성그룹이 놀라운 경영성과를 얻은 데는 임직원의 노력과 함께 환율정책, 공정거래 정책 등 국가의 정책을 왜곡함으로써 생기는 부당한 이익도 상당합니다. 특히 최근 이슈가 된, 중소기업의 피해를 양산하는 삼성 특유의 하도급관계에서 비롯된 결과가 함께 있습니다.
김용철 삼성전자 생산공장이 70% 이상 외국에 있어 국부 창출도 많지 않죠. 또 금융 쪽을 보면 시장점유율 50%가 넘는 계열사가 많습니다. 삼성카드는 (소비자에게) 포인트를 많이 줘 많이들 사용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따져보면 가맹점 수수료가 다른 카드사보다 1% 이상 높습니다. 포인트 가맹점은 거기서 1.5% 또 높아요. 영세가맹점이 부가세 10%와 카드수수료 5.1% 등을 줍니다. 그 수수료를 받고 (삼성카드는) 소비자에게 0.5~0.7%를 돌려줍니다. 되짚어보면 시민들이 더 도와줘야 할 영세가맹점에서 고리를 뜯는 것에 협조하는 것입니다. 또 삼성화재가 비자금을 만들기 위해 고객에게 돌려줘야 할 렌트카 비용을 떼먹었는데도 시장점유율이 50%가 넘습니다(삼성특검은 삼성화재가 자동차 사고 피해자들이 렌트카 비용을 받을 수 있는데도 관련 조항을 잘 알지 못해 청구하지 않은 것을 따로 모아 차명계좌로 빼돌리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시민들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상조 시민들이 이런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개선하기 위한 노력에 작으나마 참여하는 것이 근본적인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의 행동과 인식을 바꾸는 방법은 의무감을 강조하는 것보다, 그것을 하면 경제적 이득 또는 불이익을 받게 하는 게 기본적인 것 같습니다. 삼성을 비롯한 기업들도 그렇고 정부와 언론 등도 현재 상태가 지속되면 결국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확실한 방법입니다. 북한의 3대 세습 체제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만큼, 삼성그룹 역시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김용철 3대뿐만 아니라 4대, 5대까지 갈 수도 있습니다. 세습이 악이라고 판단할 순 없습니다. 다만 상응하는 책임을 지고 절차를 거치고 상응하는 권한만 행사해야 합니다. 삼성그룹이 독주·질주하는 동안 그들은 이익을 위해 국가기관의 기능을 순치·왜곡하려고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 그동안 자라나는 세대가 취업난 등 치열한 경쟁을 치르면서 ‘세상이 그런 거 아니냐’는 의식이 팽배해지는, 그런 살맛 안 나는 세상이 돼버릴까 걱정됩니다.
김상조 삼성전자 세금(2009년 기준)을 보면 법인세율이 22%인데, 실제로 내는 실효 법인세율은 11%에 불과합니다. 법인세법에 정해진 것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반면 중소기업은 명목세율은 낮지만 실제 법인세율은 훨씬 높습니다. 이처럼 조세정책을 비롯한 모든 정책이 대기업에 편향된 상황에서 과연 삼성이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에 서민이 이익을 볼 수 있는지, 좀더 정확한 사실관계를 가지고 삼성을 바라봐야 합니다.
김용철 시민들이 삼성을 너무 짝사랑하고 있어요. 증오까지는 아니더라도 냉철하게 대해야 합니다.
김상조 정부가 지난 8월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을 비롯해 ‘가신’들을 사면했습니다. 연말에는 전략기획실이 어떤 형태로든 부활하는 등 3년 전 모습으로 돌아갈 전망입니다.
김용철 회장실·비서실·전략기획실 등은 전부 책임을 지는 조직이 아닙니다. 제가 있을 때도 문서상이든 구두상이든 결재를 하는 등 흔적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조직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렇다고 저분들이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언론에 각종 협찬을 제공합니다. 법률가로서 보면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며 협찬하는 것은 일종의 배임수증죄가 아닌가 싶습니다. 문제는 어느 언론이든지 특히 그나마 (삼성그룹을) 견제·감시할 수 있는 진보 쪽 언론이 가장 경제력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더 강해져야 합니다.
김상조 최근 ‘재벌의 언론지배에 관한 보고서’를 냈는데, 과거 <한겨레> <경향신문>의 삼성전자 광고물량을 1로 하면 <한국일보>가 약간 많고,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두 배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김 변호사 사건 이후 <한겨레> <경향신문>은 완전히 X축에 붙어 있고(0에 가깝다는 뜻), <한국일보>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차이도 벌어졌습니다. 광고비를 통해 선택하고 배제하는 전략을 노골화한 것이죠. 또 광고비가 월별로 갑자기 튀어오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는 이건희 회장 사면, 경영 복귀 등이 있었습니다. 이는 삼성이 광고비로 언론을 통제 대상으로 삼고, 김 변호사나 시민단체가 얘기하는 것은 아예 무시하는 전략을 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이하생략>
비자금이 양심선언을 이겼다
[한겨레21 제834호]
삼성 비자금 면죄부 받은 뒤 대기업들의 삼성 따라하기…
차명거래 근절할 금융실명법 개정 시급해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09년 8월14일 유죄선고를 받고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을 나서고 있다.
“요즘 대기업들의 관심은 온통 다음 사정 대상에 내가 들어가느냐, 아니냐에 쏠려 있어요.”
‘추가사정설’에 시달리고 있는 한 10대 그룹 고위 임원의 하소연이다. 신한·한화·태광·C&그룹 등 4개 대기업이 이미 검찰 조사를 받고 있고, L그룹과 C그룹 등 서너 개 그룹이 추가 사정 후보로 지목되면서 재계는 사정 한파에 꽁꽁 얼어붙었다. 추가사정설이 돌고 있는 대기업들은 손사래를 치기에 바쁘다. 일부는 자기 대신 다른 대기업을 유력한 수사 대상으로 지목하는 낯뜨거운 모습까지 보인다. 추가사정설이 도는 또 다른 10대 그룹의 한 임원은 “검찰에 알아보니 우리는 아닌 게 확인됐다”면서 “조사 대상으로 유력한 모 그룹이 의도적으로 우리 이름을 퍼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도 비자금 정리 않고 뭐했습니까”
이런 대기업들의 모습을 지켜보면 자연스레 의문이 들게 된다. “아, 그렇게 무서워하고 떨면서, 지금까지 비자금과 차명계좌를 깨끗이 정리하지 않고 뭐하고 있었습니까?” 바로 3년 전인 2007년 10월29일, 김용철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변호사)의 양심고백을 계기로 삼성 비자금 사건이 시작됐다. 삼성이 그룹 창립 이후 최대 위기를 맞으며 결국 이건희 회장 등 그룹 고위 임원들의 동반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를 선언하는 것을 모두들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그 직전에는 현대기아차그룹의 정몽구 회장 역시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 수감되는 등 곤혹을 치렀다.
“차명계좌가 드러나도 세금만 내면 끝이고 안 드러나면 더욱 좋은데, 어느 기업이 차명계좌를 스스로 없애겠습니까?” -4대 그룹의 한 고위 임원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신한·한화·태광·C& 등 4인방은 예외 없이 비자금 조성과 차명계좌 운용 혐의를 받고 있다. 신한금융 라응찬 회장은 박연차씨에게 건넨 50억원이 차명계좌로 조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당의 신건 의원은 “라 회장의 50억원은 1982년 신한은행 설립 당시 재일동포 출자금에 대한 배당금을 관리해오던 1천여 개 차명계좌에 들어 있던 비자금의 일부로, 전체 차명계좌의 비자금 규모가 수백억원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화그룹은 계열사인 한화증권이 김승연 회장의 돈으로 추정되는 수백억원을 전·현직 임직원 이름으로 된 차명계좌 수십 개에 나눠 관리해온 혐의가 드러났다. 태광그룹의 이호진 회장은 부친인 고 이임룡 창업주가 남긴 태광산업 주식을 차명계좌로 운영하며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사업 확장을 위해 정·관계를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편 혐의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차명 부동산 의혹까지 불거졌다. 의혹을 처음 제기한 박윤배 서울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전체 비자금 규모를 1조원대로 추정한다. 총수인 임병석 회장이 지난 10월23일 분식회계를 통해 거액을 부당하게 대출받은 혐의로 구속된 C&그룹도 1천억원대의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고 있다.
추가사정설에 시달리는 L그룹과 C그룹 역시 비자금과 차명계좌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L그룹은 건설 계열사가 국세청의 특별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건설사는 공사비를 실제보다 부풀리는 등 다양한 수법을 동원해 기업들이 비자금을 조성하는 단골 창구로 알려졌다. C그룹은 3년 전 그룹 회장의 차명재산 운용이 드러났고, 지난해에는 재판 과정에서 국세청으로부터 이와 관련해 1700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한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4대 그룹 한 계열사 대표의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다. “현실적으로 (비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느 기업이나 정도의 문제 아니겠나.”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대기업의 주된 비자금 사용처는 정·관계 로비와 총수 일가의 재산 불리기다. 로비 목적은 사업 확장과 인·허가 취득, 기업 인수, 유리한 방향으로의 법령 개정, 불법 대출 성사 등 다양하다. 로비 대상으로 의심되는 곳도 청와대, 금융감독기구, 국세청, 방송통신위원회, 검찰, 국회, 언론 등 전방위적이다.
삼성 비자금 사건 당시 한 경제신문의 논설위원은 칼럼에서 “한국 같은 약탈적 규제 천국에서는 삼성 비자금은 정당방위”라고 주장했다. ‘조폭’과도 같은 권력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무사하지 못하니, 기업이 살기 위해 비자금을 만드는 것은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혐의가 일부 드러난 태광과 C&의 사례만 봐도 ‘비자금=정당방위’라는 주장은 논거가 빈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용철 변호사는 “형법상 정당방위는 현재의 급박한 위난을 벗어나기 위한 경우에 한해 인정된다”면서 “대기업의 비자금은 대부분 총수의 사업을 키우고, 재산을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됐으니 정당방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일부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보험용’ 성격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법행위로 인한 처벌을 면하기 위한 로비는 정당방위로 인정될 수 없다. 영세 노점상이 조폭의 위협에 직면해 자릿세 명목으로 강제적으로 금품을 상납하는 경우와 대기업의 비자금 및 로비는 엄연히 다르다.
» 최근 기업에 대한 사정이 잇따르고 있지만 적절한 처벌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월27일 서울 장교동 한화 호텔앤드리조트 본사에서 회계장부 등을 압수해 나오는 검찰 직원들.
비자금 만들지 않으면 바보?
“차명계좌가 드러나도 세금만 내면 끝이고 안 드러나면 더욱 좋은데, 어느 기업이 차명계좌를 스스로 없애겠습니까?” 4대 그룹의 한 고위 임원이 기자에게 솔직히 털어놓은 얘기는 비자금과 차명계좌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를 더 명확히 보여준다. 인간은 인센티브를 좇는 동물이다. 아무리 비자금과 차명계좌를 통해 얻는 과실이 달콤해도 만에 하나 드러났을 경우 치르는 대가가 그 과실보다 크다면 비자금과 차명계좌 관행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비자금과 차명계좌를 통해 얻는 과실은 큰데, 그것이 드러났을 때 치르는 대가는 크지 않다. 그러니 비자금과 차명계좌를 활용하지 않는 사람만 바보가 된다.
삼성 비자금 사건은 치명적으로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 삼성특검은 이건희 회장이 임직원 명의의 1199개 차명계좌로 4조5천억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운용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고 이병철 회장이 물려준 미신고 재산이라는 삼성의 변명을 그대로 수용했다. 결국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서만 기소하고, 정작 중요한 비자금의 조성과 사용처에 대한 수사는 형식에 그쳐, 모든 것을 의혹의 구덩이에 묻어버렸다. 이러다 보니 삼성이 비자금 사건으로 오히려 득을 보았다는 역설까지 제기되는 게 현실이다. 4대 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4조원이 넘는 차명재산이 약간의 세금과 벌금만 내고 양성화됐고, 3세로의 경영권 세습에도 사실상 면죄부가 주어지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삼성에서 분리된 CJ그룹과 신세계그룹도 삼성 비자금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차명계좌를 이용해 상속증여세를 탈루하거나 총수의 개인자금을 운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선대 회장의 상속재산이라고 주장했고, 검찰과 국세청은 이 변명을 그대로 용인했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한화그룹이 차명계좌에 대해 선대 회장에게서 물려받은 돈을 관리하던 계좌라고 삼성을 흉내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화의 한 임원은 “검찰이 밝혀냈다는 차명계좌 50~60개는 우리가 검찰에 자진 제출한 것으로 선대 회장의 비실명 상속재산”이라며 “검찰 수사가 삼성 사건 때와 형평성을 잃은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신한·한화·태광·C& 등에서 불거진 비자금 사건은 차명계좌를 이용한 각종 불법이 여전히 만연해 있으며, 차명계좌 근절을 위한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경제학과 교수)은 “이미 3년 전 삼성특검을 통해, 또 삼성과 유사하게 차명계좌를 관리해온 CJ와 신세계의 예를 통해 금융실명제의 허점이 드러났음에도, 아직까지 관련 법제도가 정비되지 않고 있는 것은 정부의 책임 방기”라고 지적했다. ‘공정사회’를 최우선 국정 과제로 표방한 이명박 정부도 뒤늦게 비자금과 차명계좌 근절을 위한 제도적 개선안 마련에 시동을 걸고 나섰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0월28일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차명계좌 문제와 관련해 “정부는 금융실명제 시행의 문제점과 보완점을 엮어서 대안을 마련 중이며, 나중에 적절한 시점에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10월2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차명계좌를 뿌리 뽑겠다”고 밝혔다.
차명거래자 처벌 않는 금융실명법
현행 ‘금융실명제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이하 금융실명법)에서는 실명거래 의무를 위반한 금융기관이나 직원에 대해서만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을 뿐, 실제 예금주나 이름을 빌려준 사람에게는 처벌이나 과징금 부과를 규정한 조항이 없다. 그동안 삼성그룹이나 CJ, 신세계 등에서 차명계좌를 이용해 상속증여세를 탈루하거나 총수의 개인자금을 운용한 사실이 밝혀졌지만 금융실명법 위반으로 처벌받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현재 국회에는 박선숙 민주당 의원과 주광덕 한나라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금융실명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박 의원은 차명거래자에 대해 계좌자산의 30%를 과징금으로 부과하고 최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주 의원의 개정안은 차명계좌를 대여하거나 알선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금융 당국은 개선안 마련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자칫 국민 생활이 크게 불편해질 수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한 예로 가족 간의 거래나 동창회처럼 계좌 명의자와 자금 소유자가 합의한 거래 등 선의의 차명거래를 악성 차명거래와 구분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 모든 차명거래에 대해 처벌하겠다고 나섰다간 자칫 모든 국민을 범죄자로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금융위의 김주현 사무처장은 “차명거래 중에는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부분이 있고 사회적으로 문제 삼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 혼재됐는데, 그 구분이 쉽지 않아 일률적으로 금지하면 사회적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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