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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산천단에서

한라의메아리-----/오늘나의하루

by 자청비 2011. 5. 15.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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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제주시 아라동 산천단山天壇을 갔다. 왜? 쑥캐러…. 어머니가 쑥을 써야겠다며 아내에게 함께 쑥 캐러가자고 하자 지리에 약한 아내가 내개 운전기사를 요청해왔다. 쩝~ 별로 바쁜 일도 없어서 모른척 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차에서 기다리면서 책을 읽을 요량으로 책 한권 들고 운전기사 역할을 했다. 그리하여 모처럼 산천단안에서 1시간 가량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산천단을 많이 스쳐지나쳐가긴 했지만 이 안에서 머물렀던 기회는 별로 흔치 않았다.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마 6~7년전쯤 일제동굴을 취재할 때 잠깐 들렀던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모처럼 들른 산천단내에는 깨끗이 정리돼 있다.

 

워낙 오래된 산천단 곰솔은 수령이 오래된데다 가지가 워낙 커져서 지지대를 받쳐 쓰러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곳 산천단 곰솔은 천연기념물 제160호로  지정된 유명한 나무다.  제주시 곰솔은 우리나라 곰솔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나무로 알려져 있으며 전부 8그루로 키가 19~22m, 가슴높이의 둘레 3~6m로 수령이 500~600년으로 추정된다. 이 곳에서 산신제를 지내면서 이 일대가 신성한 구역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곰솔 거목들이 지금까지 보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산천단은 옛부터 산천제山天祭를 비롯하여 여러 제사를 봉행했던 유서깊은 곳이다. 1470년 목사 이약동이 세운 한라산신묘를 비롯하여 농사의 재해예방을 기원하는 포신묘가 있었으며 가뭄이 심할 때는 기우제를 올리던 터이기도 했다. 또 이 일대에 소림천 소림과원 소림사와 함께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어 이름높은 명소이기도 했다.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산신제는 한라산 정상에서 치러왔으나 산신제로 인하여 제물을 지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얼어죽거나 부상을 당하는 등 인명피해가 발생함은 물론 날씨가 사나워 올라갈 수 없는 날이 많으므로 1470년 이약동 목사가 산천단에 제단을 마련해 산신제를 지내기 시작했다.

 

목사牧使 이약동李約東(1416년~1493년)은 남해 현령 덕손의 아들로 경북 금산군 하노촌에서 태어났다. 1451년(문종1년) 35세에 제주목사로 왔다가 1473년(성종4년) 8월에 떠났다. 재임하는 동안 관리들의 민폐를 근절시킴과 아울러 세금과 공물을 줄여 백성들의 괴로움을 덜어주는등 선정을 베풀었다. 고려시대부터 한라산 정상에서 치러오던 산신제로 인하여 얼어죽고 부상을 당하는 등 인명 피해가 많음에 따라 이곳으로 묘단을 옮기어 제를 지내게 하였는데 산천단이란 이름도 이때 생겨나게 됐다. 제주를 떠난 다음에는 조정의 높은 벼슬을 두루 지내다가 75세에 기로사에 들어갔다. 이듬해 모든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은거하다가 78세로 세상을 마칠 때까지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등 다섯 임금을 섬기면서  40년간 봉직했으며 조정에서는 평점이란 시호를 내리고 그 뒤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산천단내 한 쪽 구석에는 바람카페라는 이름의 조그만 카페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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