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친화기업의 재발견] “회사 다니려면 가정에 신경 꺼”
유형별로 본 가족 ‘불(不)’친화경영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08호(11.06.01일자) 기사입니다]
출산휴가를 다녀온 지 3개월이 지난 김지연 씨(가명)는 오늘도 오전 8시 30분까지 회사에 출근한다. 업무가 시작되면 김 씨는 사무실에서 '투명인간'이 된다. 바쁘게 돌아가는 사무실 안에서 김 씨에게 주어진 일은 없다. 김 씨는 저녁까지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퇴근 시간에 맞춰 퇴근한다. 다행히 아직 책상은 없어지지 않았다.
김 씨는 원래 주변 동료들 사이에서 맡은 일을 잘하기로 인정받았던 직원이었다. 하지만 결혼 후 임신하고부터 직장 상사의 눈길이 달라졌다. 배가 불러오던 어느 날 소속부서의 부장은 김 씨를 따로 불러 "이제 출근하기도 힘들 텐데 집에서 쉬지"라며 은근히 사퇴를 압박했다. 날이 갈수록 사퇴 압박은 심해졌고, 하루는 임원이 직접 김 씨를 불러 사퇴를 권고했다. 김 씨는 회사 측으로부터 끈질긴 사퇴 압박을 받았지만 굴하지 않고 회사를 다녔다. 출산예정일이 다가오면서 하던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출산휴가를 떠났다. 출산휴가 중에도 몇 차례 사퇴 압박을 받았지만, 다시 돌아가 일을 잘하면 받아줄 거란 기대도 있었다. 그리고 복귀 후 3개월이 지난 현재 김 씨에게는 여전히 아무 일도 주어지지 않는다. 참고로 김 씨가 다니는 회사는 시가총액 30위 이내의 대기업이다.
유형 ①
임신하면 퇴사 압박
매경이코노미 취재 결과 중소기업은 물론 국내 상당수의 대기업이 임신한 여성에게 퇴사를 압박했다. 노동 상담을 주로 하는 박문배 노무사는 "임신한 여성에게 퇴사를 압박하는 기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는다. 법을 어겨도 처벌이 약하다. 부당해고에 해당되는 기간은 출산휴가 전후 30일간인데, 부당해고로 인정받아도 1000만원 이내 벌금에 불과하다. 실제로 벌금을 내는 경우도 드물다"고 밝혔다. 임신한 여성에 대한 퇴사 압박이 저출산의 주범이라는 관측도 많다. 박 노무사는 "임신하면 회사를 나가야 하는 직장이 많은데 누가 애를 낳겠느냐"고 반문했다. 한국의 출산율은 지난해 부부당 1.22명으로 전 세계 186개국 가운데 184위를 차지했다.
중소기업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송미선 씨(가명·30)가 다니는 회사는 직원 100여명, 연매출 200억원에 달하는 부품제조기업이다. 송 씨는 "사무직에 근무하는 여성이 10여명이지만 대부분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여성이다. 출산휴가를 다녀와 계속 회사를 다니는 여성은 아무도 없다"고 밝혔다. 송 씨 역시 "늦어도 2~3년 내에 임신 계획이 있는데 일을 안 할 순 없고, 여러모로 고민이 많다"고 밝혔다.
공공기관도 다르지 않다. 장애인을 돕는 성격을 지닌 한 협회는 여사원이 결혼하면 퇴사를 당연시한다. 한 여자 대리는 직장 상사에게 "어차피 여자는 일을 오래 안 할 거 아니냐. 결혼했으면 그만둬라"라는 식의 압박을 받았다. 머지않아 그 직원은 퇴사했다. 한 직원은 "이 협회는 여성에게 퇴사 압박은 물론 승진 기회도 차단한다"고 전했다.
유형 ②
출산휴가 중인 간호사의 근무부서 바꿔놓기남성이 많은 직장이 열악하다면 여성이 많은 직장은 어떨까. 오히려 여성이 대부분인 직장에서는 임신 순서를 둘러싼 갈등이 심하다. 80여명의 간호사가 근무하는 경기도의 한 병원에서는 간호사 연차별로 임신 순서가 정해져 있다. 이 병원에 근무했던 박소은 씨(가명)는 "처음 병원에 들어왔을 때부터 임신 기간이 겹치지 않게 하라는 말을 선배에게 많이 들었다. 기간이 겹치면 업무 공백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암묵적으로 정해진 임신 순서를 깨는 사람에겐 근무부서를 바꿔서 불이익을 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박 씨는 "출산휴가를 다녀오니 응급실로 보내버린 사례도 있다. 갑자기 일이 바뀌고, 야간근무가 많아져 애를 키우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병원 측의 소극적인 태도다. 박 씨는 "임신이 꼭 계획적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내부 직원 조율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 병원이 앞장서 출산과 육아를 지원하고 불이익을 받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유형 ③
연차수당을 안 주기 위한 꼼수
건설회사에 10년 이상 재직한 박민수 씨(가명)는 공식적으로 1년에 20일 이상(법정최소기간 18일)의 연차휴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연차휴가는 여름휴가 단 5일뿐이다. 그렇다면 사용하지 못한 연차휴가를 수당으로 받을 수 있을까. 박 씨는 주5일 근무제가 적용된 2009년부터 연차수당을 받지 못했다. 회사가 11월에 남은 연차휴가를 모두 사용하라고 공고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아무도 연차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공고는 전혀 의미가 없다. 연차휴가를 못 쓰면 수당이라도 줘야 하는데 구성원 모두 연차수당을 못 받고 있다"며 "미리 공고를 하면 수당을 안 줘도 합법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딱히 대처할 방법도 없다"고 전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연차수당은 노동자에게 주어진 권리다. 하지만 기업이 근로자에게 연차수당을 주지 않는 이유는 법적인 맹점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61조에 따르면 "사용자가 연차휴가 사용을 촉진하는 조치를 취할 경우 사용하지 않은 휴가에 대해 보상할 의무가 없다"고 명시돼 있다. 반면 조계수 노무사는 "기업이 근로기준법 61조를 내세워 연차수당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위법"이라고 말했다. 위법인 이유는 단순하다. 근로기준법 60조 7항에는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사용하지 못한 휴가는 소멸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조 노무사는 "휴가를 사용 못 하는 분위기는 분명 기업의 귀책사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입증하려면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유형 ④
주말마다 회사 행사에 동원
2007년 배임·횡령 혐의로 대법원에서 '사회공헌' 판결을 받은 한 재벌 총수는 그 이후로 사회공헌활동(CSR)을 강화했다. 문제는 이 사회공헌활동이 직원들에게 전가돼 주말에 자주 회사 일로 불려 다닌다는 점이다. 이 기업은 공식적으로 반기마다 한 번씩 주말에 단합대회를 한다. 또한 분기마다 개인당 9시간씩 사회공헌활동을 해야 한다. 사회공헌활동으로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옷을 나눠주거나, 산에서 쓰레기를 줍는 일 등을 한다. 게다가 팀별로 주말에 등산을 가거나, 야유회를 가는 일정도 잦다. 이 기업에 근무하는 오현수 씨(가명)는 "일이 많아서 주말에 근무하는 것 외에 사회봉사, 단합대회 등으로 평균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주말을 회사에 반납한다.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나, 친척의 돌잔치, 환갑 등의 행사가 있어도 빠지기 어려운 분위기"라며 "심지어는 회사 앞에서 시위하는 노조를 막는 인력으로 주말에 동원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유형 ⑤
야근을 밥 먹듯이 하지만 야근수당은…
김경욱 씨(가명)는 대졸 공채로 2007년 국내 한 철강사에 입사했다. 처음에는 3000만원대 중반의 연봉에 그룹의 주력사를 다닌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그런 마음가짐은 오래가지 않았다. 공식적인 출근 시간은 8시 30분이었지만 7시 30분에 나오는 것이 암묵적인 분위기였다. 퇴근도 7시로 명시됐지만 저녁을 먹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와 일하는 게 일상이었다. 퇴근은 일찍 끝나야 9시였고 10시, 11시에 끝나는 경우도 많았다. 매일 야근을 반복했지만, 야근수당은 한 푼도 기대할 수 없었다. 연봉계약을 할 때 1년에 500여시간의 야근을 하는 것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한 달에 1~2회는 주말에도 출근했다. 그러나 특근수당도 없었다. 특근수당 역시 연봉에 포함돼 있었다. 김 씨는 결국 입사한 지 3년 만에 사표를 냈다. 일에 파묻혀 가정을 거의 돌보지 못하는 생활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별을 보고 출근해서 별을 보며 퇴근하는 생활 때문에 가족들과 얼굴을 맞댈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아내와의 관계도 소원해지고 육아도 도울 수 없었다. 내가 일하는 기계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김 씨는 H건설전문업체로 직장을 옮겼다. 연봉은 적어졌지만, 퇴근 시간이 빨라졌고 야근수당도 받을 수 있게 됐다.
성공한 여성 임원의 고백
"가정 포기하고 밤 11시까지 일했다"
국내 대기업에서 여성 임원은 극히 드물다. 삼성그룹의 여성 임원은 이부진 사장, 이서현 부사장을 포함해 총 34명이다. 전체 임직원 19만 3000명의 0.017%에 불과하다. LG그룹은 전체 계열사를 포함해 여성 임원이 14명이다. 과거 국내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근무한 정은정 씨(가명)는 "임원이 될 수 있었던 건 오전 8시부터 밤 10~11시까지 남자들과 똑같이 일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 씨는 대기업의 임원이면서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성장하기까지 단 한 번도 학교에 가본 적이 없었다. 정 씨는 "아이들이 사실상 스스로 컸다. 요즘 사교육에 신경 쓰는 엄마들처럼 관심을 갖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 씨가 과장, 부장으로 승진하는 여성 후배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정 씨는 "우리 때보다는 일하면서 가정에 신경 쓸 수 있는 여건이 나아졌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요즘은 사교육이 더 중요해지면서 엄마가 일을 하면 애들이 소외된다고 생각하는 후배들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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