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려 했는데 안 웃어? 대중이 늘 옳다!
[한홍구-서해성의 직설] ‘나는 가수다’로 홍역 치른 김제동 ‘사회사’, 그가 말하는 웃음과 눈물과 미안함
한겨레
김제동씨는 “서민 장사를 하는 것은 아닌지 늘 죄책감과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홍구와 서해성을 향해서는 “먹물들에 대한 반감을 계속 깨달라”고 주문했다.
제44화 지식광대와 대중광대의 만남
아주 특별한 직설이다. <한겨레>의 ‘직설’은 <경향신문> 격주 대담코너인 ‘김제동의 똑똑똑’에 교차 인터뷰를 제안했다. 김제동은 한홍구와 서해성을 인터뷰하고, 한홍구와 서해성은 김제동을 인터뷰한 뒤 같은 날 각 신문의 지면에 싣자고 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김제동은 주중엔 문화방송 <7일간의 기적>과 에스비에스 <밤이면 밤마다> 등 지상파 방송분을 촬영했고, 주말엔 지역을 돌며 토크콘서트를 했다. 한홍구와 서해성은 새 학기 들어 강의와 강연, 각종 스케줄로 정신이 없었다. 열 차례가 넘는 힘겨운 조정을 거친 끝에 마침내 3월23일 오전 9시 반!
하필 김제동이 여론의 집중난타를 당한 다음날이었다. 문화방송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 코너에서 가수 김건모의 재도전을 제안한 일로 인터넷과 트위터는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는 세 시간이 넘는 대담 도중 끊임없이 “미안하다, 죄송하다, 내가 잘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사회자 또는 사회사(司會士)’라고 규정했다. 대학축제 때 ‘겜돌이’라는 상스러운 표현에 저항하여 ‘사회사’로 부를 때까지 무대에 나가지 않은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을 대표할 사회사’라는 상찬이 아깝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 땐 이를 감동적으로 증명했다. 오늘은 ‘사회사 김제동’의 진심이 뭉클하게 다가오는, 웃음과 눈물이 뒤엉킨 직설이다.
김제동(이하 김) 아이고, 에프(F) 주신 교수님하고 앉아 있으려니!(웃음)
한홍구(이하 한) 나도 F 준 학생하고 이렇게 친한 척하기는 처음이네요.(웃음)
서해성(이하 서)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에 대한 시청자들 반발이 센데. F까지는 아니어도.
김 무조건 제 잘못입니다. 보통사람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이었다면 괜찮았을 거라고들 해요. 너무 노래 잘하는 형을 지켜보다 보니 오버를 한 셈이에요. “형 노래 한번 더 시켜주면 안 되냐”고.
서 인기를 먹고 사는 사람들인 만큼, 다시 얼마나 진정성 있게 다가가느냐에 달려 있겠죠. 그래야 김건모뿐 아니라 ‘나가수’에게도 ‘재도전’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요.
한 ‘직설’도 처음에 크게 사고 쳤잖아요.
김 어쨌든, 제 잘못입니다.
‘웃기고 싶다’와 ‘웃기고 자빠졌네’의 차이
서 웃음 주는 사람이 자꾸 잘못했다고 하니, 참… 개그맨과 코미디언의 차이는 뭘까요?
김 웃김으로써 눈물과 웃음을 모두 줄 수 있는 사람이죠. 슬픔의 의미까지 포함됐으면 좋겠죠.
한 ‘버스 차장’이 ‘안내양’이 되고, ‘식모’가 ‘가정부’로 불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개그맨이 되면서 화려해지고 웃음의 템포가 빨라졌지만, 거품 꺼지고 난 다음의 허탈함 같은.
서 전유성을 기점으로 코미디언과 개그가 나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말솜씨 중심에 이전보다 짐짓 현학적으로 바뀌고, 전개가 빨라졌고. 김제동씨는 굳이 말하자면 엠시(MC)에 가까운 건가요?
김 용어 맥락에 갇히고 싶지는 않은데, 개인적으로는 사회자, 또는 사회사(司會士)라고 합니다.
한 사회 보러 나갔다가 못 웃긴 적은 없나요?
김 사회자로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웃기는 것이라기보다 웃겼는데 안 웃었을 때 ‘안 웃기려고 했던 척’하는 거죠.
서 관객의 무심함은 다 광대 탓 아닌가요?
김 “대중이 늘 옳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무대에 설 수 없고 설 이유도 없습니다.
서 김제동에게 웃음이란 무엇이죠?
김 내가 당신을 좋아하고 있음을 원초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당신을 웃기고 싶다’라는 거죠. 싫어하는 사람을 웃기고 싶은 경우는 어디에도 없거든요. 어떤 썰렁한 농담도 가치가 있다는 건, 내가 당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서 고통스러운 웃음도 있어요. 그 사람이 전혀 웃기려고 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웃을 때죠. 엠비!(웃음) 그 양반은 도대체 우리를 웃기려는 의도가 없죠. 그런데 우리는 막 웃어. 이러니 이래저래 ‘전쟁’이 나는 거야.
한 그게 바로 ‘웃기고 자빠졌네’지.(웃음)
김 (서해성의 발가락 양말을 보며) 흰색 발가락 양말을 신고 조문하는 사람을 본 상주가 웃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경우가 가장 웃긴 거거든요. 지하벙커는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 아니겠습니까. 난방 잘된 곳에서 가죽잠바를 입는다거나.(웃음)
한 우리 전통이에요. 박정희 가카께서는 실내에서도 선글라스 안 벗으셨거든.
김 보온병 들고 ‘폭탄’이라거나, 소주병 들고 ‘폭탄주’라고 하는 것. G20 포스터에 쥐 그렸다고 구속영장 청구하자면, 소변금지에 가위 그려 넣은 사람에게도 영장을….(웃음)
서 근래만 해도, 일본에서 원전이 터졌는데 엠비는 원전 준공식 가고, 엄기영씨는 삼척에 원전 짓겠다고 하고. 정말 쓴웃음이 나는 세상이죠.
한 제동씨도 안티가 많았죠?
김 “잘난 척한다” “알고 보니 전문대 출신이구나”. 제가 정확히 미네르바와 일치합니다. 30대 중반의 전문대 출신.
서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 가장 싫어하는 부류군요.(웃음) 학력 별무인 자가 오버한다는 조롱.
김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 노제 사회 제의에 유족 의사가 반영됐다는 말을 듣고 바로 수락했습니다. 전 사회를 보는 기술잡니다. 원수 사이라도 상이 나면 가진 걸 동원해서 그 사람을 보내주는데 이런 게 예의 아닌가요? 그러면 관을 짤 수 있는 사람은… 음 관 장사 때문에 홍역을 좀 치르셨지만(웃음)… 돌아가신 분하고는 모든 은원이 사라져야 합니다.
한 적어도 장례기간만큼은. 모든 은원이 사라진다면 역사학자 밥 굶게 되잖아요.(웃음)
장자연, 그리고 살아서 고통당하는 사람들
김 사회 수락 뒤 십자포화 안티를 맞았습니다. 한쪽에서는 명계남·문성근 같은 훌륭한 사람들을 놔두고 너 따위가! 그러다 노제 끝나고 여론이 바뀌었죠.
한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사회를 봤으니까.
김 정당행사라면 안 갔겠죠. 현 대통령 취임식 사회 보고 전임 대통령 장례 사회를 본 경우는 없을 거예요. 미국 하버드대학에 특강 갔을 때 외국인 학생이 “당신은 취임식 사회잔데 그 대통령이 죽었냐”고 물어요. 다른 대통령이라고 했더니(웃음) 쇼킹하다고 하더군요. 노제 때 사회를 보러 가다가 문득 든 생각은 ‘지금은 슬퍼해야 하는 게 본질’이라는 거였어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고민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지더라고요.
서 다수 대중은 현 정권을 가해자로 여기고 있었죠. 근데 이거 다 기사로 나가도 돼요?
김 이거 아니라도 ‘나가수’ 때문에 잘릴 판입니다(웃음). ‘재도전’을 말한 건 정말 제가 잘못한 거죠!
서 가해자들이 죄의식을 쉽게 벗어나는 방법은 미안한 놈을 재빠르게 공격하는 거예요. 노 전 대통령을 지금도 공격하는 자들의 심리죠.
한 게다가 깔보기까지.
김 깔본 놈이 죽었는데도 영향력을 가지니까 무서워서 그러는 측면이 크죠. 저도 늘 부채의식을 갖고 삽니다. 저도 아저씨를 이용한 관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웃음) 관에 대한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걸로 이해해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절독’까지는 하지 않았지만.(폭소)
한 이거 직설하다가 이렇게 당하기는 정말 처음이네.
서 장자연이라는 배우를… 죽은 다음에 알았습니다. 그 이름이 보통명사가 되고 말았는데, 그가 겪은 끔찍한 일들이 정말 많이 일어나는지.
김 죄송하지만 두 가지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죽어서야 알았다는 말이 가슴에 턱 걸립니다. 지금도 죽지 않고 여러 곳에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보통명사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명사, 대명사, 특정한 어떤 무엇으로 지칭하기엔 감정적으로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
서 보통명사란 그 죽음의 크기를 말하는 거죠.
김 저도 직접적으로 알 길은 없지만… 힘없는 사람들이 기록되는 경우는 죽어야만….
한 실제론 죽어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트위터에 쌍용차 사건을 기억하자고 했는데, 올여름이면 2년이 되네요.
김 첫째 매형이 대우조선에서 철근에 머리를 맞아 돌아가셨습니다. 하관할 때 초등학생인 제가 보상금을 껴안고 있었죠. 그때 회사에서 나온 사람들이 거만한 자세로 이걸로 합의를 보든 말든 하자고 했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아요.
서 쌍용차는 파업 뒤에 벌써 열네 분이 스스로 명을 거두어 들였지요. 국가와 자본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 진행중인 거죠. 힘없는 자의 죽음에 대한 거대한 침묵을 공조하는 사회.
김 그러니까 역사학자나 지식인들이 뭐하고 계시냐는 겁니까. 이제 제가 인터뷰하는 겁니다.(웃음)
한 인터뷰? 이게 인터븁니까 ‘쫑코’지.(웃음)
김 죽어 있는 사람을 통해서 산 자에게 수혜를 줄 수 있는 기록을 남겨야 하지 않습니까? 역사에는 정말로 기록되어야 할 사람들은 늘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F를 받은 학생 입장에서 감히 역사학자들에게 F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한 국정원 과거사위에서 간첩사건을 조사해 보니 억울해 보이는 게 수백 건이었어요. 그나마 추려서 확실히 밝힐 수 있겠다는 사건기록을 복사해온 게 14건인데 방으로 하나였어요. 딱 4건 조사하고 12건은 손도 못 대고 두고 나왔는데 아주 기분 더럽죠.
김 저는, 서민이라는 사람들의 입장을 온전히 이야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죄책감이 있어요. 좋은 차 타고, 좋은 집에 살고. 어느새 기득권 세력이 되지는 않았나.
한 민주화 세력이 집권하고 망하게 된 게 자기들이 엄연히 사회의 기득권자가 됐고 정책결정론자가 됐고 자원을 분배하게 됐는데 약자인 것처럼 생각한 거죠.
서 가령 김제동 사회사가 대중문화권력의 정점에 있다는 걸 부인한다면 겸손이 아니겠죠. 초심으로 돌아가 대중과 한 약속을 환기하는 게 중요한 거고, 또 자신의 대중적 재능을 진정으로 대중을 위해 쓸 때 빛나는 것 아닐까요.
김 ‘나가수’는 제 불찰에서 비롯됐습니다. 역사에서 화가 나는 건, 아무도 잘못했다고 하지 않는다는 거죠. 구제역이 한창일 때 (엠비가) 영국은 얼마를 묻었고 일본은 얼마를 묻었고 하는…. 그 티브이 보면서 든 생각은 ‘왜 내가 이 아침에 재수 없이 깼을까’였죠.(웃음) 그건 영국이나 일본 총리에게 들어야 하는 말이죠. 그러려면 세계를 다스리시든가.(웃음)
서 노제 이후 알 만한 대중들은 김제동을 걱정해왔는데.
김 토크콘서트할 때도 말씀드리는데 “괜찮냐”고 물어보지 마시라, 전 너무 잘 살고 있다, 너무 미안하다. 통장에 있는 돈으로 치면 자본가거든요.
한 자본가는 아니고, 그냥 부자죠.
“힘들다” 하면 안되는데, 그래서 힘들다
▶ 김제동씨는 “서민 장사를 하는 것은 아닌지 늘 죄책감과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홍구와 서해성을 향해서는 “먹물들에 대한 반감을 계속 깨달라”고 주문했다.
김 원래 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손발이 좀 오글거리지만, 기부란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액은 돌아갈 수 없지만. 오늘 두 가지입니다. 제 잘못이다, 그리고 전액은 돌릴 수 없다.(폭소)
서 김제동씨처럼 기부하는 건 결코 아닌데, 정운찬 전 총리가 사과 맺히면 남는 것 좀 나눠먹자고 ‘초과이익공유제’를 말하자, 그마저도 이건희 삼성 회장은 “공산주의 말인지 사회주의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죠. 세금이나 잘 내시지!
김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건 ‘우리말’이라는 거죠.(웃음)
서 코미디언 김형곤씨 생각이 자주 납니다. ‘회장님, 우리 회장님’에서 다들 아는 왕 회장(정주영)을 풍자했는데, 그걸 보며 사람들은 전두환을 함께 떠올릴 수밖에 없었거든요. 코미디의 상당 부분은 서민 위로 역할인데, 요즘 그게 많이 부족해요.
한 서영춘이 그립죠. 서민들의 애환, 권력 풍자, 찌질하고 못난 약간의 비겁함.
김 저도 대통령 만나면 바로 무릎 꿇습니다. 다만 왼쪽 무릎을 미세하게 들겠죠.(웃음) 이런 때일수록 더 많은 개그맨들에게 ‘재도전’ 기회를 주었으면 싶습니다. 개그 프로그램들이 사라지고, 대학로 공연도 그렇고, 웃길 수 있는 기회가 막히고 있습니다.
한 김제동 하면 착한 연예인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부담스럽지는 않나요?
김 대중예술인 중에서 소수를 제외하고는 다들 힘듭니다. 늘 무언가에 억눌려 있습니다. 대중들이 만들어놓은 프레임과 이미지가 있잖아요. 근데 “그게 힘들다”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그게 힘듭니다. 좀 자랑 같지만, 저를 상담한 신경정신과 의사는 “상대방의 감정에 이입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지금까지 상담했던 사람을 통틀어 가장 발달해 있어서 굉장히 힘들 것”이라고 하더군요. 끊임없이 사람들 눈치를 본다는 거죠.
서 오늘 이야기는 김제동 사회사가 ‘나가수’로 겪고 있는 트라우마의 치유 과정이네요.
김 지금 제 정서를 대변하는 것은 죄책감과 미안함입니다. 관 장사를 자꾸 꺼내서 죄송하지만, 서민 장사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것도 그렇고.
한 오히려 서민 장사를 본격적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김 이번에 사건 터지자 노 전 대통령 이야기까지 나오더라고요. “원칙과 상식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노무현 이름에 먹칠을 했다”. 처음 트위터에서 봤을 땐 ‘과하다’라고 생각했는데 몇 시간 있다가 ‘맞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다!’
서 말의 밥상을 차리면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은 대중들에게 늘 단맛만 제공할 수가 없는, ‘운명적’으로 그런 부분이 있죠.
김 이제 말빚, 글빚 지지 않고 살겠다는 말뜻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겠어요.
서 김제동은 말빚에서 벗어나기 어렵죠. 어록이 너무 많아서.(웃음) 가령 ‘사람들은 네잎클로버를 따기 위해 세잎클로버를 밟는다. 세잎클로버 꽃말이 행복이다. 행운을 잡기 위해 수많은 행복을 짓뭉개는 것이다.’ 자기가 내뱉은 말들이 자기 포승이 되리라!(웃음)
김 다시 ‘나가수’ 이야기를 하자면, 행운은 꺾였을지라도 행복은 남아 있지 않나. 미리 매를 맞았으니까…(이때 김영희 피디가 ‘퇴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오랜 침묵 끝에) 정말 죄송하네요. 정말.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왜 반감을 느끼나
한 교차 인터뷰를 해보니까 어떤지?
김 흔히 말하는 ‘먹물들에 대한 반감’이 저에겐 있습니다. 그런 걸 좀 계속해서 깨달라는 거죠.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가진 자의 의무를 말하는데 제발 지들 입으로 귀족이라고 붙이지 마라.(웃음) 때가 되면 우리가 붙여줄게. 오늘 두 분 만나면서 드는 생각은, 이 정도면 제가 자발적으로 먹물이라고 해드릴 수 있지 않은가 하는 겁니다.
서 ‘직설’을 읽으면서 동감 말고 반감 같은 게 있었다면?
김 정말 우리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런 것들이 있었죠. <경향신문>의 ‘똑똑똑’을 보고도 그런 생각을 하셨을 겁니다. 이제 좀 전투의지를 가지고 피아를 명확히 구분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서간 동지들을 봤다는 정도의 느낌이랄까.(웃음) 제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결은 계속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 결을 존중해달라는 게 아니라 “제가 가진 결은 이렇다”라고 좀 떳떳이 고백해야겠다는. 그리고 발가락 양말은 신지 않는 것이 좋겠다.(폭소)
서 김제동씨는 자기 언어를 가진 대중연예인이죠. 배경에는 필시 집요한 독서가 있었겠죠. 그런 대중광대가 우리 곁에 있다는 건 행복한 일입니다.
한 관객들도 다들 줄 타고 싶지만 줄 탈 수 있는 재주 가진 사람은 많지 않죠. 누가 뭐라 씹고 야유해도 광대는 그걸 견디며 재주 부려야죠. 너무 상처받지 말았으면 해요. 우린 계속 제동씨 줄 타는 거 보고 싶으니까.
내가 사과해봐서 아는데?
내상이 깊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화제는 다시 그 얘기로 가 있었다. “모든 게 다 내 잘못입니다.” 결론은 그거였다. 일일이 세어 보진 않았지만 100번은 아니어도 50번은 그 얘길 했다. 그런 인터뷰 말미에 김영희 피디가 ‘나는 가수다’에서 하차하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김제동은 완전 넋이 나갔다. 다음 일정이 정혜신 박사와 만나는 거였는데, 거기 가서 휴지 한 통을 다 쓸 정도로 펑펑 울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상처받은 마음이 바로 마음치료 전문가를 만났다는 거다.
깜냥이 안 되는 낙하산이 ‘나는 사장이다’를 이렇게라도 보여주고 싶었나보다. 그를 사장 자리에 앉힌 분은 “천안함 진실 왜곡한 사람들이 잘못을 ‘고백’ 안 하는 게 더 슬프다”고 하신다. 촛불 1주년 때도 그분은 “근거 없는 유언비어로 미국 쇠고기가 위험하다며 사회를 분열시킨 장본인 중에 사과하고 반성하는 이들이 하나도 없다”고 개탄하셨다. 정말 “맞습니다, 맞고요”다. 딱 한 명 사과하고 반성했으면 되는데, 그분은 확실히 안 하셨으니까. 각하의 “내가 해 봐서 아는데” 시리즈는 이제 ‘고백’ 편이나 ‘사과’ 편까지 나올 기세다. 내리막길 레임덕에 이제 와 새삼 ‘나는 대통령이다’를 보여주려 하니 어떤 대형사고가 생길까 두렵다.
김제동에게 진심을 다하는 반성과 사과가 어떤 것인지를 배웠다. 무대에 서면 이천 개의 얼굴이 하나하나 다 보인다는 사람. 상대방의 감정에 이입하고 공감하는 데 초인적인 능력을 타고났으면서도 늘 노력하는 사람. 같은 말을 수백번 되풀이하는데도 진심이 묻어나는 사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면서 끔찍한 일을 서슴지 않는 자들이 김제동 같은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본인은 좀 괴로워지겠지만 세상은 참 좋아질 텐데, 참 좋아질 텐데, 그렇게 할 방법이 없네…. 한홍구 <사진 왼쪽부터 서해성, 김제동, 한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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