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일으키는 건 생각이 아니라 마음”
ㆍ김여진의 소통법, 인터넷 오염시키는 '악플'에 가볍게 응수
주간경향 932호
연기파 배우 김여진이 하고 싶은 배역은 '미친년'이다. 조선 중기 시인 허난설헌이나 일제시대 서양화가 나혜석과 같은 유명인도 있지만 그 시대에 누구도 하지 않은 짓을 하다가 꺾여버린 이름 없는 여성의 세계에 빠져보고 싶다는 얘기다. 박용모 전 한나라당 정책자문위원이 붙인 '악플'을 그는 이렇게 긍정적으로 자기 내면에 녹이고 있었다.
SNS를 통해 젊은 세대의 깊은 공감을 자아내고 있는 그의 독특한 소통법은 인터넷을 오염시키는 언어폭력, 일종의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를 가능한 한 자제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박 전 위원이 그의 트윗에 '미친년'이라고 댓글을 달자 그는 '맞을지도'라고 리트윗했다. 그러면서 한술 더 떴다. "별일은 아니고 웃어넘길 일이다. 트워터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사고치신 그분이 걱정될 정도다. 우리가 정작 들어야 할 사과는 따로 있다. 웃어넘기면 안 되는."
"저를 미워해도 상처받지 않아요"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한 패션 칼럼니스트 황의건씨와 트위터에서 주고받은 공방은 '김여진식 소통언어'의 진수라고 할 만하다. 황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연예 뉴스에는 한 번도 못 나온 대신 9시 뉴스에 매일 나오는 그 밥집 아줌마처럼 생긴 여진족 여자. 토 쏠려서 조금 전에 소화제 한 병 마셨다"라고 썼다. 그는 "국밥집 아줌마라니 영광이다. …당신이 그동안 국밥집 아줌마와 뜨지 못한 배우들과 시위하는 사람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했는지 잘 알겠다. 그 차별의 마음을 말이다. 그래도 당신이 차별받을 때는 함께 싸워드리겠다"라고 맞받았다.
그와 뜻을 같이하는 '날라리 외부세력'의 탄생 배경도 비슷하다. 홍익대 총학생회가 청소노동자를 돕는 사람과 단체에게 '외부세력' 운운한 데서 비롯됐다. 그는 이때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던 홍익대 총학생회장에게 오히려 블로그를 통해 "밥이나 먹자"고 위로했다.
자칫 가식이나 위선처럼 보일 수도 있는 그의 이런 어법이 통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법하다. 그는 인터뷰 내내 헤이트 스피치라고 할 수 있는 표현이나 극언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내면이 담금질돼 있고, 그래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너 왜 이쁘지도 않고 뜨지도 않고 유명하지도 않은 애가 그렇게 나대니? 이거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 많~아요. 저를 미워하는 줄은 알겠고, 그건 그쪽 자유인데, 그 때문에 제가 화가 나거나 상처받지는 않아요. 왜냐면 그건 그 사람의 생각이고 그 말 속에 들어 있는 그 사람 마음이에요. 열등감이고 약점이에요. 그러니까 아주 가볍게, 농담처럼 받아내는 거죠."
다른 사람의 말을 빌리거나 논리적으로 공박하는 어법을 사용하지 않는 그의 소통법이 통할 때는 그 스스로도 깜짝깜짝 놀란다고 한다.
"연기를 해서 그럴 수 있고, 법륜 스님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에게 배운 것일 수 있어요.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거죠. 논리적으로 이겨서 상대방을 변하게 할 수 없어요. 정말 변화를 일으키는 건 생각이 아니라 마음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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