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탐욕스런 조중동’ 경고했건만…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공안통치 유혹 우려…DJ 서거 때는 '마음의 빚' 전하기도
미디어오늘
“이른바 미디어 관련법 등 다수의 힘으로 관철시키려는 이른바 MB법들이 국민의 합의로 처리되도록 결단하여 주십시오. 더 이상 탐욕스런 조·중·동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2011년 12월 30일 새벽 별세한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힘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한국사회 민주주의를 걱정하며 ‘고언’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이다. 평생을 재야 민주화운동과 한국사회 약자를 위한 정책을 위해 고민해온 그의 삶은 블로그에 연재하던 ‘김근태의 요즘 생각’에 그대로 녹아 있다.
◀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64세 일기로 타계했다. 권양숙 여사가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조문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CBS노컷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이 끝나고 며칠 후인 2009년 6월 2일 김근태 상임고문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긴급 호소문을 전했다. 김근태 상임고문은 ‘탐욕스런 조중동’이라고 표현하면서 대통령이 휘둘려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김근태 상임고문은 “전임 대통령조차 정치보복의 대상이 되어버린 극단적인 상황, 조·중·동과 검찰에게 참을 수 없는 조롱과 야유를 받아야 했던 사람, 투신 말고 다른 탈출구를 선택할 수 없는 처지에 내몰린 사람”이라며 “부엉이바위에 선 노무현 대통령님의 짙은 외로움이 바로 국민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김근태 상임고문은 “솔직히 말하면 마음으로는 당신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면서도 국민의 선택이 민주주의 최종판결이라는 믿음 때문에 마음으로부터 대통령으로 인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김근태 상임고문은 이렇게 호소했다. “민주주의자의 한 사람으로서 호소합니다. 대통령님은 합법적으로 선출된 정권입니다. 과거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독재와는 다른 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통령님께서 국민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공안통치의 유혹에 빠지면 무서운 재난이 우리를 덮칠 것입니다. 나는 그것이 두렵습니다.”
김근태 상임고문의 경고에도 이명박 정부의 ‘공안통치’는 이어졌다. 탐욕스런 조중동에 휘둘려선 안 된다면서 미디어법 여야 합의처리를 제안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두 달 만에 한나라당은 재투표․대리투표라는 ‘불법행위’를 통해 7월 22일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실행에 옮겼다. 지금 논란이 되는 ‘조중동 종편’이 바로 그 ‘불법행위’의 부산물이다.
김근태 상임고문은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해 ‘바른 말’을 하는 인물이었지만, 김근태 정치의 기본은 원칙과 진정성, 그로 말미암은 ‘따뜻한 정치’다. 실제로 ‘김근태의 요즘생각’에는 정치도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글이 많이 담겨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호소부터 정치인을 떠나 ‘인간 김근태’의 마음을 느끼게 하는 글도 담겨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인 2009년 8월 20일 ‘김근태의 요즘생각’에는 안타까움과 존경의 마음이 어우러진 그의 심경이 그대로 묻어난다.
김근태 상임고문은 “이제 분노한다는 표현도 더 이상 할 수가 없습니다. 가슴 아픈 눈물도 흘릴 수가 없습니다. 시청 앞 분향소에서 슬픔에 겨운 시민들을 만나는 일이 이렇게 죄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당신에게 빚을 졌습니다”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 민주주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많은 사람은 김근태 상임고문에게 빚을 졌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모두가 빚을 졌다고 말했다. 김대중과 김근태는 삶의 궤적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정치 지도자들이었다. 한반도 평화라는 공통분모가 그렇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실천이 그렇다. 김근태 상임고문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당신에게서 떠나지 않았던 민주주의! 죽음으로 다시 시작되는 민족화해의 길! 온 힘을 다해, 거꾸로 가는 역사를 막아내겠습니다. 당신과 함께 이루었던 민주세력의 대연합, 정권교체의 역사를 다시 이루어 내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김근태 상임고문 본인도 불편한 몸이었지만, ‘민주주의’를 다짐 또 다짐했다.
▶ 민주화의 대부'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폐혈증으로 타계한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조문객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CBS노컷뉴스
김근태 상임고문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그에 못지않은 관심을 받을만한 인물이다. 그의 별세 소식에 정치인들과 일반인들이 앞을 다투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그를 조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빈소를 찾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우리 모두 이렇게 보내드리기에는 너무 많은 마음의 빚을 졌다”고 말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봉하마을의 권양숙 여사와 함께 김근태 상임고문 빈소를 찾아 김근태 상임고문 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했다.
한편, ‘김근태 계열’로 분류되던 정봉주 17대 국회의원은 감옥에서 별세 소식을 전해 듣고 큰 충격에 빠졌다. 정봉주 전 의원을 면회하고 돌아온 안민석 통합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김근태 의장님 소식에 사모님 붙잡고 펑펑 우셨습니다”라는 내용을 남겼다. 김근태 상임고문의 최측근이었던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운 별이 졌다. 김근태의 깃발은 내려지지만 수백수천만의 가슴속에 해방의 횃불로 타오른다. 그의 이름은 민주주의!. 역사의 심장에 새긴다.”
언론인이 인정한 김근태 ‘진정성의 힘’
[기자칼럼] 민주화운동 상징, 추모열기 확산…“2012년을 점령하라” 재조명
미디어오늘
“정부와 여당의 기류가 '대화에 의한 해결'로 가닥을 잡은 것은 전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근태 의장 두 사람 덕분이다. 아니, 열흘이 지난 지금도, '광야'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장내'에서는 김근태 의장이 각각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편집국장을 지냈던 성한용 선임기자는 2006년 10월21일자 지면에 <김근태가 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북한 핵실험으로 ‘대북 강경론’이 득세할 때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호소했던 인물, 당시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에 대한 내용이다. 정치인 김근태의 매력은 ‘진정성’이다. 말을 잘하고, 좋은 정책을 내놓고, 탄탄한 조직을 관리하는 정치인들은 많아도 ‘진정성’을 인정받는 정치인은 참 드물다. 정치인 가운데 김근태는 ‘진정성의 힘’으로 세상을 살았던 인물이다.
◀ 한겨레 2006년 10월 21일자 19면.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이끌다 모진 고문을 당했다. 평생을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다. 평범한 이들은 몸이 많이 아프면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면 되지만, 김근태에게 수술은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전기고문을 기다리던 악몽 같은 그 시절의 생각이 떠올려진다는 그 느낌을 일반인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정치인 김근태는 참여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과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냈고 2011년 12월 30일 새벽 별세하기 전까지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한반도재단 이사장으로 있었다. 김근태 한반도재단 이사장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2012년 4월 총선 이후 그는 ‘국회의장’ 0순위 후보로 이름을 올렸을지도 모른다. 여야 정치인 두루 그에게 빚을 졌기 때문이다. 아니 국민 모두는 그에게 빚을 졌는지 모른다.
김근태가 없었다면 그가 독재정권과 맞서 생명을 건 투쟁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군사정권이 대물림되면서 정부 비판자들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는 세상이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끔찍한 세상에 민주화라는 ‘희망’의 씨앗을 전한 인물이 바로 김근태 이사장이다. 김근태 이사장은 언론인들이 인정하는 정치인이다. 정치인이 언론인들에게 인정받기론 선거에 당선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든 일이다.
정치인의 겉과 속을 들여다보는 언론인들의 시선은 까칠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진보성향 언론사 언론인이건 보수성향 언론사 언론인이건 김근태 이사장의 ‘진정성’은 인정했다. 2001년 말 ‘2002년 대선’을 앞두고 기자들에게 대통령감이 누구인지 물어봤을 때 1등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고, 2등은 김근태 이사장이었다. 언론자유 신장에 기여할 후보는 누구인지를 묻자 김근태 이사장이 1등이었다. 언론인들의 기대가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김근태 이사장은 화려한 말솜씨나 그럴 듯한 언론플레이를 잘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일반인들에게 김근태 이사장은 매력적인 인물로 비치지 않았을지 모르나 그는 기자들이 인정한 인물이다.
▶ 지난 2008년 4월 서울 도봉구에서 18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던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유세 모습.
그의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온오프라인에서 추모열기가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통합당은 12월 30일 올해 마지막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김근태 이사장을 추모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민주통합당 최고위원회 참석자들은 검은색 정장에 검은 넥타이 등을 착용하고 추모의 뜻을 전했다. 유시민 통합진보당의 누나이기도 한 유시춘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은 참석자를 대표해 조사를 통해 “국가 폭력과 고문이 없는 하늘에서 평안하시길 바란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원혜영 민주통합당 대표는 “김근태 상임고문이 혹독한 고문으로 몸에 몹쓸 병마가 심어졌지만 이 땅에는 민주주의가 싹텄다”면서 김근태 상임고문의 뜻을 받들어서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호선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김근태 이사장님은 독재에 맞선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서셨고 한국정치에 새바람을 일으킨 정치개혁의 선구자셨다”면서 “다시 한 번 김 이사장님의 영전에 머리 숙이며 그분의 뜻처럼 한반도에 평화와 복지가 넘쳐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고 말했다. 문부식 진보신당 대변인은 “오래 전 작고한 고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한국 민주주의의 '희망의 근거'를 마련하려 일생을 기울였던 그 노고를, 드물게 지녔던 인간의 품격을, 이 차가운 겨울의 쓸쓸함을,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근태 이사장은 병마와 싸우며 마지막 남은 생명의 불꽃을 지켜야 하는 그 순간까지 한국사회를 걱정했던 인물이다. 김근태 이사장이 10월 18일 자신의 블로그에 남겼던 <2012년을 점령하라>는 칼럼이 다시 조명 받고 있다. 김근태 이사장은 “흔한 말로 정치권의 위기, 야당의 위기, 민주당의 위기라고 한다. 그러나 비난은 비난일 뿐 비난이 승리는 아니다”라면서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치 무관심과 정치 혐오는 기득권과 반칙의 세상을 공고히 해주는 자양분이다. 국민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높일 때, 기득권 정치의 카르텔은 깨질 수 있다. 김근태 이사장은 서슬 퍼런 독재정권에 맞서서 이 땅에 민주주의 씨앗을 뿌린 인물이다. 우리는 그 열매를 공유하고 있다.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느끼는 그 열매가 김근태와 같은 수많은 사람의 피와 눈물로 얻어진 결과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얘기다.
'고문기술자'는 사람들을 설교하겠다고 다니고, 민주화의 큰 별은 세상을 떠난 너무도 시린 겨울이지만 김근태 이사장이 살아남은 이들에게 바라는 점은 좌절은 아닐 것이다. 김근태 이사장은 <2012년을 점령하라>는 칼럼에서 이러한 메시지를 전했다. "운 좋게 내년 2012년에 두 번의 기회가 있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한다."
"고인 신념은 평화… 그가 아름다웠던 이유"
한국일보
"여러분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 가슴 속에 여러분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생전의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한 말이다. 고인이 세상을 뜬 지 나흘째인 2일 오후7시 서울 명동성당 문화관 꼬스트홀에선 일반 시민과 정치인 등 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문화제 마지막 순서로 고인의 생전 영상이 음성과 함께 나오자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무대 뒤편엔 민주화청년운동연합(민청련)의 상징인 두꺼비 옆에서 부인 인재근 여사와 어깨동무를 한 채 왼쪽 손을 높이 치켜든 김 고문이 그려진 현수막이 내걸렸다. 장소가 비좁아 미처 들어가지 못한 500여명은 스크린이 설치된 야외에서 촛불을 들었다.
경기 수원에서 온 오모(43)씨는 "1980년대 거리에서 저는 시위생, 고인은 연사로 집회에 참석했다"며 "고인은 우리 세대에게 언제나 큰 형님이고 가장이었다"고 말했다. 배우 권해효씨의 사회로 진행된 문화제에선 문성근 국민의명령 대표, 임수경씨가 추모시를 낭송하고,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이계안 전 의원 등이 추모사를 했다. 꽃다지, 장사익, 권진원, 김원중, 노래를 찾는 사람들, 우리나라, 안치환 등의 추모 공연도 이어졌다.
유가족 대표로 참석한 인재근씨는 "(남편은)하늘나라로 가면서 다행히 비밀병기인 나를 남겨두고 갔다. 그가 하늘나라에서 '인재근을 남겨놓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그가 남긴 마지막 말 '2012년을 점령하라'는 그 뜻을 이어받아 앞장 서서 열심히 싸우겠다"고 했다.
앞서 오후 5시 명동성당 본당에선 추모 미사가 열렸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집전으로 열린 미사엔 유가족 신도 일반시민 정치인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미사 강론을 맡은 함세웅 신부는 "83년 민청련 결성은 목숨을 건 결단이었고, 그 때문에 김근태 형제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무서운 전기고문을 여러 차례 받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가 추구했던 가치는 평화 정의 지혜인데, 평화를 정의 앞에 놓은 것에 고인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의 행동 지향과 목적이 바로 평화였던 것"이라고 했다.
조문 마지막 날인 이날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도 일반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 단위 조문객들이 특히 눈에 띄었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김병연(47)씨는 초등학생인 아들 윤서(10)군과 함께 빈소를 찾아 "민주화 투쟁을 하던 80년대보다 오히려 민주화 이후 삶이 더 기억에 남는 분이었다"며 "끝까지 같은 마음으로 사셨던 김 고문처럼 아들에게도 자기 신념을 굽히지 않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고 말했다.
빈소엔 임채정 전 국회의장, 손숙 전 환경부 장관,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 이인제 자유선진당 의원, 안상수 진영 한나라당 의원,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 배은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등이 찾았다. 장례위원회 측은 오후 7시 현재 누적 조문객이 3만7,000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한편 장례위 관계자는 "오후 2시 15분쯤 북측이 민족화해협의회와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 명의로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실을 통해 유가족에게 애도의 뜻을 전달해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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