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서점의 죽음

세상보기---------/현대사회 흐름

by 자청비 2013. 1. 8. 08:37

본문

신림동 고시촌 상징 ‘광장서적’ 부도

경향신문 2013-01-07

ㆍ1억6천만원 상당 어음 못 막아
ㆍ개점 35년 만에 폐점 위기 놓여

1980년대 대학가의 대표적 사회과학서점인 ‘광장서적’이 부도를 맞았다. 학생·재야 운동권의 근거지이자 서울 신림동 고시촌과 함께했던 광장서적이 문 닫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광장서적은 지난해 12월31일자로 돌아온 1억6000여만원 상당의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처리됐다. 7일 찾은 광장서적 입구에는 ‘내부 사정으로 인하여 당분간 휴업합니다. 빠른 시일 내 정상영업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이 적힌 A4 용지가 붙어 있었다. 광장서적이 인근에서 운영 중인 ‘광장문구’ 역시 ‘공사 중’이라는 안내표지가 붙었다.

광장서적은 1978년 처음 문을 열었다. 이해찬 전 민주통합당 대표가 원주인이었다. 1980년대에는 ‘빨간 책’이라고 불리던 운동권 서적을 판매하는 사회과학서점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이런 이유로 당시 주요 고객들은 학생·재야 운동권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이들의 ‘아지트’가 됐다. 광장서적은 이들에게 활동비를 지원하는 역할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장서적은 1988년 이 전 대표가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치권에 입문하면서부터는 동생 해만씨(56)가 주인이 됐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운동권 서적들은 각종 고시 수험서들로 대체됐다. 고시 관련 정보가 몰렸고, 고시생들은 이곳에서 만나 서로 교류를 하기도 했다. 부도 소식에 1980년대 학번들, 고시생들은 안타까워했다. 신림동 고시생 김모씨는 “대학에 다닐 때는 책도 사고 동기들끼리 만나는 ‘만남의 광장’이었다”면서 “시험 준비를 하면서 도움도 많이 받았는데 없어질 수도 있다니 아쉽다”고 말했다.

광장서적이 사라질 위기에 놓이면서 대표적인 사회과학서점은 이제 남아 있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김문수 경기지사가 1981년 열었던 ‘대학서점’, 김부겸 전 의원이 냈던 ‘백두서점’, 이치범 전 환경부 장관의 ‘전야’ 등 서울대 인근에 산재해 있던 사회과학서점들은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뒤다.

 

서점의 죽음 

송 재 소 (성균관대 명예교수) 


지난 달 모 일간지에는 우리나라 서점의 실태를 조사한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 의하면 한국출판연구소에 의뢰해 전국 249개 시‧군‧구의 서점을 조사한 결과, 경북 영양군을 비롯한 4개 군은 서점이 하나도 없는 ‘서점 사망 지역’이고, 강원도 고성군을 비롯한 30곳은 서점이 1개 뿐인 이른바 ‘서점 멸종 위기 지역’으로 파악되었다. 대도시도 예외가 아니어서 인구 5만 명당 서점이 1개 미만인 지역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역시 한국출판연구소 자료에 의하면 1997년에 전국 5407개에 달하던 서점이 2011년에는 1752개로 줄었다고 하니 이대로 가다가는 머지않아 정말 서점이 ‘멸종’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추억 속으로 사라져가는 서점들…

서점의 위기를 실감할 수 있는 곳이 대학가이다. 대학가에 한 두 개씩 있었던 서점들이 문을 닫고 지금은 그 자리에 미용실, 술집, PC방, 양장점들이 들어서고 있다. 대학가가 이럴진댄 다른 곳은 말 할 필요도 없다. 한가하게 구경하고 책을 고를 수 있는 동내서점이 사라진 지는 오래 되었다. 한 때 호황을 누리던 온라인 서점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른바 5대 온라인 서점 중에서 대교리브로가 이미 폐업을 선언했고 나머지 온라인 서점의 폐업도 시간문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서점은 책을 판매하는 곳이다. 서점이 사라진다는 것은 책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이란 무엇인가?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의 가장 뛰어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는 데카르트의 말이나 “책 속에는 모든 과거의 영혼이 가로 누워있다”는 카알라일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책은 인간의 영혼을 살찌우는 가장 훌륭한 반려자이다. 중국 송나라의 정치가이자 문학가인 왕안석(王安石)도 이런 시를 남겼다.

 

               가난한 자, 책으로 인하여 부유해지고     貧者因書富
               부유한 자, 책으로 인하여 귀해지며        富者因書貴
               어리석은 자, 책을 얻어 현명해지고        愚者得書賢
               현명한 자, 책으로 인하여 이로워지니     賢者因書利
               책 읽어 영화 누리는 것 보았지              只見讀書榮
               책 읽어 실패하는 건 보지 못했네           不見讀書墜

 

책을 잃으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비밀도 잃을 것

책을 다소 공리적으로 평가한 느낌이 있긴 하지만, 그것을 읽음으로써 “부유해지고 귀해지며 현명해지고 이로워지는” 책을 사람들은 왜 멀리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책의 죽음을 부채질하는 가장 강력한 도전자는 인터넷이 아닐까? 사람들은 인터넷이 책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터넷은 단편적인 지식을 사냥하는 데에는 더없이 좋은 도구이지만 그곳은 지혜는 없고 지식만 가득한 공간이다. 또한 서점에서 향기를 풍기며 은근한 눈짓을 던지는 종이책의 다정함이 인터넷에는 없다. 인터넷을 통하여 과연 우리는 “과거의 가장 뛰어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겠는가?

 

지난 연말의 치열했던 대통령 선거 때 어느 후보도 독서의 중요성을 말하지 않았고, 죽어가는 서점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지 않았다. 서점은 살아 있어야 한다. 서점은 우리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서점이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정신적 풍요를 느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시내버스에 국고보조금을 지급하듯이 서점에도 일정액의 국고보조금을 지급하라는 것이다. 또 하나 국제 슬로우시티 본부에, 반드시 종이책을 파는 서점이 있어야 할 것을 지정 요건에 추가하기를 제안한다. 서점이야말로 ‘느리지만 멋진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최적의 요건이 아니겠는가.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