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한 일간신문에 어느 시인이 이 시를 소개한 후 인터넷에 급격히 퍼지기 시작한 시다. 나도 우연히 서핑하다가 이 시를 발견하고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쓰봉'이라는 말에 끌려 이 시를 읽다가 채 다 읽지 못하고 눈에 가득 눈물이 고여버렸다. 비록 이같은 경험을 한 적은 없지만 어머니의 마음과 투병의 고통을 이해하고 이 땅에서 평생 붙잡고 있었던 고생을 놓아버린데 대한 안타까움 때문일까. 며칠 있으면 어버이날이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이 시를 올려놓는다. - 어버이날에 부쳐
쓰봉 속 십만원
“벗어놓은 쓰봉 속주머니에 십만원이 있다”
병원에 입원하자마자 무슨 큰 비밀이라도 일러주듯이
엄마는 누나에게 말했다
속곳 깊숙이 감춰놓은 빳빳한 엄마 재산 십만원
만원은 손주들 오면 주고 싶었고
만원은 누나 반찬값 없을 때 내놓고 싶었고
나머지는 약값 모자랄 때 쓰려 했던
엄마 전 재산 십만원
그것마저 다 쓰지 못하고
침대에 사지가 묶인 채 온몸을 찡그리며
통증에 몸을 떨었다 한 달 보름
꽉 깨문 엄마의 이빨이 하나씩 부러져나갔다
우리는 손쓸 수도 없는 엄마의 고통과 불행이 아프고 슬퍼
밤늦도록 병원 근처에서
엄마의 십만원보다 더 많이 술만 마셨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고참이 된 누나가 지쳐가던
성탄절 저녁
엄마는 비로소 이 세상의 고통을 놓으셨다
평생 이 땅에서 붙잡고 있던 고생을 놓으셨다
고통도 오래되면 솜처럼 가벼워진다고
사면의 어둠 뚫고 저기 엄마가 날아간다
쓰봉 속 십만원 물고
겨울하늘 훨훨 새가 날아간다
- 권대웅(1962~ )시집<조금 쓸쓸했던 생의 한때>
가을날의 단상 (0) | 2013.11.05 |
---|---|
짧은 인생 길게 사는 법 (0) | 2013.05.16 |
미안한 말이지만 백마 탄 왕자님은 없다 (0) | 2013.03.05 |
나는 배웠다 (0) | 2012.10.05 |
할머니와 운전기사 (0) | 2011.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