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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마라톤, 그 투쟁과 도전의 역사

건강생활---------/맘대로달리기

by 자청비 2013. 5. 2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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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마라톤, 그 투쟁과 도전의 역사

 

<클럽마라톤 2013>

 

 1967년 보스턴마라톤에 출전한 캐서린 스위처(Kathrine Switzer). 당시 20였던 그녀는 여성 참가가 허용되지 않은 이 대회에 몰래 출전했다가 대회 임원에게 적발돼 레이스를 제지당했으나 당시 동행한 코치 어니 브릭스와 애인 톰 밀러의 도움으로 간신히 완주에 성공했다.

 

각종 스포츠 종목에서 금녀의 벽이 허물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뒤따랐다. 스포츠는 애초에 남성의 힘과 인내를 겨루는 장이었기에 여성이 함께한다는 자체가 터부시되었다. 마라톤과 같이 극한의 체력과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종목에서는 특히 심했다. 스포츠 전문가들은 여성이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은 ‘불가능’ 하며 ‘금지’해야만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오늘날처럼 여자마라톤이 올림픽과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정식종목이 되고, 어느 마라톤대회나 여성 참가가 허용되는 환경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실로 파란만장한 역사가 존재한다. 남성과 같은 주로를 달리고자 했던 여성들이 만들어낸 투쟁과 도전의 역사다.

 

여성마라톤, 투쟁과 도전의 역사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의 스포츠 활동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본 문화는 드물다. 고래로부터 전투와 사냥이 남성들의 몫이었듯이, 그 기술에서 비롯된 스포츠도 어디까지나 남성들의 것이었다. 그래서 과거에는 스포츠에 여성이 참여한다는 것을 신성에 대한 침해로 여기고, 관전의 기회마저 허용하지 않는 시대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 스포츠사는 곧 남성중심 사회에 대한 여성들의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인간 한계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지는 마라톤 종목에서는 이런 ‘투쟁’이 더욱 드라마틱했다. 올림픽이나 권위 있는 대회들은 최고의 신체능력을 가진 남자들이 쓰러질 때까지 달리는 마라톤에 여성이 끼어드는 것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1896년 근대올림픽의 부활과 함께 여성 러너들의 마라톤 도전이 이어졌고 1984년에 이르러 올림픽에 여자마라톤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88년간의 투쟁의 역사가 종지부를 찍게 됐다.

 

숨어서 출발하고 변장까지…눈물겨운 투쟁사

마라톤을 처음 완주한 여성은 스타마티스 로비디(Stamatis Rovithi)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1896년 아테네올림픽이 열리기 1달 전에 그리스 마라톤(지명)과 아테네를 잇는 올림픽 마라톤 코스(40km)를 완주했다. 실제 올림픽에서는 멜포메네(Melpomene)라는 여성이 조직위원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자 선수들과 달렸다. 물론 비공식 참가였다. 멜포메네는 남자 우승자 스피리돈 루이스가 2시간 58분 50초로 골인하고 1시간 30분쯤 지나 경기장에 도착했지만 진행요원들의 저지로 인해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트랙 대신 경기장 밖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4시간 30분 만에 레이스를 마쳤다.

 

여성이 공식적으로 마라톤을 완주한 것은 그로부터 무려 30년 후의 일이다. 1926년 10월 3일 영국에서 열린 한 마라톤대회에서 바이올렛 스피어시(Violet Piercy)라는 여성이 세계 최초의 여성 완주자가 되는 영광을 안았다. 그녀의 기록 3시간 40분 22초의 기록 역시 최초의 여자마라톤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 기록이 깨지기까지는 다시 37년이란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1963년 12월 16일 미국 여서 메리 레퍼(Merry Lepper)가 3시간 37분 07초의 기록을 내며 3분 10여초를 당겼다.

 

이후 마라톤에 도전하고픈 여성들의 반발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1966년 제70회보스턴마라톤에서는 캘리포니아 출신 로베르타 깁(Roberta Louise Gibb)이라는 23세 여성이 번호표를 달지 않고 출전했다. 그녀는 대회 출전을 목표로 꾸준히 훈련하여 참가신청을 했지만 주최 측은 ‘몸이 약한 여자들에게 마라톤은 무리’라는 이유로 신청을 거부했다. 결국 깁은 출발선 근처 숲에 숨어 있다가 출발신호와 함께 다른 주자들 틈에 끼어 달렸고 3시간 21분 25초만에 완주했다. 물론 이 기록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험하기로 유명한 보스턴의 코스에서 세계기록을 뛰어넘은 셈이었다. 당시 500여명의 참가자 중 약 126위로 골인했다고 한다.

 

‘스무살의 반란’ 여성마라톤 문 열다

이듬해인 1967년 보스턴마라톤에는 2명의 여성 참가자가 있었다. 한 명은 2년 연속 완주를 노리는 비공식 참가자 깁이었는데 조직위원회의 단속에 걸려 완주에 실패했다. 다른 한 명은 캐서린 스위처(Kathrine Switzer)라는 20세 여성이었다. 스위처는 여성임을 들키지 않으려고 이니셜을 섞은 ‘KV Switzer’라는 이름으로 신청해 번호표를 달았다. 그러나 그녀도 대회 임원에게 적발돼 레이스를 제지당했고, 당시 동행한 코치 어니 브릭스와 애인 톰 밀러의 도움으로 간신히 완주에 성공했다. 이 사건의 파장은 생각보다 컸다. 번호표를 빼앗으려는 임원과 이를 막으려는 조력자들, 그리고 이를 피해 질주하는 선수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여성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이는 마라톤이 여성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철옹성 같던 문이 열렸다. 1971년 제2회 뉴욕시티마라톤에서 세계 최초로 여성 참가가 허용돼 5명이 참가했고 2명이 완주(모두 2시간 50분대)했다. 이듬해에는 보스턴마라톤도 여성 참가를 허용했고 1974년에는 여자부를 신설하기에 이르렀다. 1973년 10월에는 독일 서부의 발트니엘에서 여성만 참가하는 대회가 최초로 열려 이듬해 국제대회로 규모를 늘리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각종 대회가 여성들의 참가를 허용하는 쪽으로 규정을 바꾸기 시작했다.

 

기회가 늘어나면서 여성마라톤의 기록도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노르웨이의 그레테 바이츠(Grethe Waitz)가 1979년 뉴욕시티마라톤에서 2시간 27분 33초로 여자부 우승을 차지하며 최초로 2시간 30분 벽을 깼다. 이는 자신이 1년 전 같은 대회에서 작성한 2시간 32분 30초의 세계기록을 넘어선 것이었다. 그녀는 이후 1980년(2:25:29)과 1983년(2:25:29)에도 세계기록을 작성해 4번 연속으로 세계기록을 세우는 기염을 토했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1981년  IOC이사회는 여자마라톤을 육상 정식종목으로 결정했고 1984년 LA올림픽부터 적용되었다. 영광의 첫 금메달은 이어 1983년 보스턴마라톤에서 세계기록(2:22:43)을 작성했던 조안 베이노트(Joan Benoit)의 몫으로 돌아갔다(우승기록 2:24:52). 이 기록은 다시 1985년 런던마라톤에서 노르웨이 선수 잉그리드 크리스티안센에 의해 깨졌다(2:21:06). 이후 테글라 로루페(케냐 2:20:43), 다카하시 나오코(일본 2:19:46), 캐서린 은데레바(케냐 2:18:47), 폴라 래드클리프(영국 2:15:25) 등이 여자마라톤 기록을 비약적으로 단축하면서 남자 세계기록에 불과 10여분 차이로 따라붙고 있다.

 

달랑 5명 이름 올린 한국여자마라톤사

우리나라의 여성마라톤 역사는 매우 짧다. 세계의 여자마라톤이 한창 꽃을 피우던 1980년까지 국내에는 여자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대한민국 1호 여자마라토너는 1981년 실업팀 초년차에 마라톤 무대에 데뷔한 임은주 씨다. 삽교고등학교 1학년 시절 멀리뛰기 선수로 운동을 시작한 그녀는 역전경기를 앞둔 모교 남자 육상부에 결원이 생겨 대타로 경기에 출전했다. 그런데 단순히 ‘대타’ 역할만 한 게 아니라 남자들 틈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기량을 보여 중장거리로 전향할 것을 권유받았고 꾸준한 훈련 끝에 3학년 때 장거리로 전문 선수가 됐다.

 

졸업 후 실업팀에 입단한 1981년 여자부가 신설된 조선일보춘천마라톤에서 3시간 16초로 우승하며 한국 최초의 여자마라톤 기록을 세우는 영광을 안았다. 이후 1982년 오사카국제마라톤(2:47:03)과 1983년 해밀턴국제마라톤(2:39:51)에서도 한국기록을 세웠고 1983~1985년 서울국제마라톤 3연패를 달성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한국 마라톤사에 큰 획을 그은 임은주씨는 1992년까지 ‘논노육상팀’트레이너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수원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여자마라톤 선수 층은 예나 지금이나 빈약하기 짝이 없다. 선수도 적지만 기록 단축이 안 되고 있다. 한국기록이 총 8번밖에 작성되지 않았는데 그나마 임은주, 최경자, 김미경, 오미자, 권은주 등 단 5명에 의해 작성된 것들이다. 1997년 권은주의 2시간 26분 12초 이후 긴 침체에 빠져있어 세계기록과 큰 차이가 벌어진 상태다.

 

마스터스에선 ‘스타’ 풍성해 흥미진진

엘리트의 경우와 달리 초창기 마스터스 마라톤 쪽에서는 기록 단축도 활발하고 스타도 많았다. 육상선수 출신 문기숙, 이정숙 씨가 마스터스 1인자 자리를 놓고 경합하는 가운데 동호인 김정옥, 심인숙, 김영아 씨 등이 추격하는 양상이 흥미진진했다. 본인들도 경쟁자가 많아 긴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겠지만 이 동호인 스타들의 존재는 보다 많은 여성들이 마라톤에 뛰어드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오래 단련한 남성 주자들을 가볍게 제치고 마스터스들의 꿈의 기록이라 불리는 Sub-3 기록으로 완주하는 톱클래스 주자들의 모습은 평범한 주부들을 마라톤이란 격한 스포츠로 끌어들였다. 그중에서도 ‘얼짱 마라토너’ 김영아 씨는 동호인들 사이에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끌었다. 작년 9월에는 주부 마라토너 정순연 씨가 2시간 46분 44초로 마스터스최고기록을 세우면서 동호인들의 관심을 한데 모으기도 했다. 최근 들어 마라톤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던 20~30대 여성 직장인들도 대회장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화가 이루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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