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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문학기행 이틀째날

한라의메아리-----/오늘나의하루

by 자청비 2016. 5. 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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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짐을 챙겨 출발했다. 왜 진주에서 숙박했는지 의구심을 가지며 통영으로 향했다. 통영에 도착하자마자 해장국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충렬사로 향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곳이다. 9시가 채 안된 시간이어서 주차장에도 충렬사 매표관리소에도 관리인이 안나왔다. 충렬사 곳곳을 살피며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위하던 장군의 혼을 기렸다. 밖으로 나와 백석의 시비도 확인했다. 함경도가 고향인 백석이 사랑하는 연인 박경련을 보기 위해 천리길을 마다않고 달려왔건만 만나지 못해 상심한 마음을 나타냈다. 멀리 보이던 서포루에도 올랐다. 통영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때까지만 해도 오후에 엄청 고생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백석이 사모했던 박경련을 찾아 통영까지 내려왔으나 결국 만나지 못하고 충렬사 계단에 앉아 '통영2'를 남겼다. 많은 여자들이 그리워했다는 백석이었지만 그는 박경련을 찾아 세번이나 내려왔고 한번도 뜻을 이루지 못한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박경리기념관으로 향했다. 통영에서 통영대교를 건너 예전엔 섬이었던 곳으로 들어와 한참을 간 끝에 박경리기념관에 도착했다. 박경리 선생의 묘소도 가까이에 있다. 당초 통영시는 노후의 박경리 선생을 통영으로 모셔 여생을 보내도록 할 예정이었으나 2008년에 선생이 사망하자 이곳에 묘소를 마련하고 박경리기념관을 만들어 2010년 4월에 개관했다. 그리고 해마다 선생의 돌아가신 날에는 추모문학제를 마련하고 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말이 가슴애 새겨진다. 이승을 떠날 때 갖고 가야 할 짐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이승에서 해야 할 일은 모두 다 했다는 말뜻은 필생의 역작이 되버린 토지의 완성을 뜻하는 것일까? 아니면 젊은 시절의 한많았던 삶을 이제는 모두 풀었다는 뜻일까?




박경리기념관을 나와 김춘수유품전시관으로 향했다. 한시대를 풍미했던 시인이지만 전시관은 소박했다. 2층에 마련된 그의 안방모습과 서재공간에서 선생의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남긴 작품 '꽃'으로 시라는 것을 알기 시작했고, 그의 무의미시론은 현대시사에 역사로 남아 있다.





윤이상기념관으로 향했다. 동백림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한동안 입국이 금지되기도 했던 비운의 세계적인 작곡가이다. 기념관은 여느 기념관처럼 선생의 이름이 입구나 벽면에 새겨졌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찾아볼 수가 없었다. 기념관 바깥을 돌아가며 찾아보았지만 외벽엔 없고 건물 옆 벽면에 자그맣게 한 시인이 쓴 자그마한 액자속에 '윤이상 그가 여기 있다'라는 제목으로 시한편이 새겨져 이곳이 윤이상기념관임을 알게 하고 있다.




윤이상 기념관에서 나와 통영의 맛집이라는 용궁해물탕을 먹으러 갔다. 빈자리가 없어 40여분을 기다린 끝에 간신히 자리를 차지해서 맛볼 수 있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청마문학관으로 향했다. '행복' '깃발' 등 수많은 시를 낳은 유치환선생의 기념관과 생가를 옮겨놓은 곳이다. 가는 길은 제법 붐볐다. 점심식사후의 당초 목적지는 문화마당 강구안이었으나 그 일대에 워낙 차가 밀려 목적지를 급변경했다. 문화마당 강구안은 거북선이 있는 곳이다. 중앙전통시장과 맛물려 있어 차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 곳을 지나 청마문학관에서 여유롭게 청마의 작품과 옮겨놓은 그의 생가를 둘러보며 청마의 문학세계를 떠올려보았다. 관념시라는 독특한 시세계를 구축하였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그의 시는 그다지 본받을 것이 못된다는 생각이다. 




이후 일정은 엉망이 되버렸다. 동피랑 벽화마을을 보고 시간이 되면 서피랑 박경리 생가를 둘러볼 예정이었다. 동피랑으로 향했지만 입구 근처에 차를 댈 곳이 없다. 복잡한 중앙전통시장 주변을 한바퀴 돌았지만 차를 댈 곳이 마땅치 않았다. 결국 시간만 허비한채 서피랑 박경리 생가를 떠올렸다. 오전에 서포루에 올라간 때 찾았어야 했는데 거기에서 가깝다는 사실을 박경리기념관에 가고 나서야 알아서 속으로만 아쉬움만 달래야 했다. 하지만 이제 다시 서피랑에 가서 박경리 생가를 찾는 것도 만만치 않다. 네비에 나오지 않아서다. 결국 가까운데 있을 것 같은 유치환 거리를 가보기로 했지만 여기도 네비에 나와 있지 않다. 이곳 주민에게 물어봐도 잘 모른다는 답이 되돌아왔다. 잠깐 찾아보다가 다시 전통시장길로 들어서는 바람에 길이 막혀 허덕이다가 결국 더 찾다가는 공항가는 길이 조바심길이 될 것 같아 모두 접었다. 그리고는 김해공항으로 항했다. 거제도와 부산 가덕도을 잇는 거가대교와 해저 30미터까지 내려간다는 해저터널을 지나 부산으로 들어왔다. 중간에 고속도로휴게소에서 잠깐 쉰 것 뿐인데 부산으로 들어오니 구간구간 차가 막혔다. 다행히 공항가는 길은 막히지 않아서 제시간에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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