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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순력에 나서다

한라의메아리-----/오늘나의하루

by 자청비 2019. 11. 10.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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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순력에 나서다...한번쯤 탐라순력도를 따라 제주도를 한바퀴 돌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혼자 할 수는 없는 일이고 생각만 갖고 있었는데 마침 문화유산답사회에서 그러한 기회를 마련했다. 그동안 이 모임에 참여해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참석을 못하다가 탐라순력 공지를 보고 만사 제쳐놓고 참석했다. 앞으로 몇차례에 걸쳐 답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이날은 관덕정을 포함한 제주목관아와 용연, (건입포구는 시간상 생략) 화북진, 조천진, 별방진 까지 둘러볼 수 있었다. 화북진만 제외하면 개별적으로는 모두 몇차례씩 가본 적이 있지만 탐라순력도를 펼쳐놓고 보니 1700년대 당시 풍경을 보는 듯 하여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오늘 둘러본 순력도는 한라장촉. 승보시사. 제주전최. 제주사회. 공마봉진. 제주양로. 감굴봉진. 귤림풍악. 제주조점. 병담범주. 건포배은. 화북성조. 호연금서. 조천조점. 김녕관굴. 별방조점. 별방시사가 되는 셈이다. 앞으로 유익한 시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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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순력도는 조선시대 이형상 제주목사가 재임 당시 제주도를 동-남-서-북으로 한 달 간 걸쳐 순력(巡歷)하고 돌아와서 그간의 여러 가지 상황들을 28폭의 그림에 담아낸 총 41면으로 된 도첩(圖帖)으로, 채색화이자 기록화이다.

 

순력(巡歷)이란 본래 관찰사가 도내의 각 고을을 순회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당시 제주목은 전라도관찰사 관할이었지만 해마다 2차례씩 관찰사가 직접 제주에 내려와 삼읍을 순력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전라도관찰사를 대신해서 제주목사가 매년 봄, 가을 두 차례 제주 삼읍인 제주목·대정현·정의현을 순력하여야 했다.

이 예에 따라 제주목사 이형상은 1702년(숙종 28) 가을 순력을 음력 10월 29일 출발하여 11월 19일까지 21일 동안 실시하였다. 이형상은 제주도 관내를 순회하면서 자연, 역사, 산물, 풍속 등을 화공 김남길(金南吉)로 하여금 40폭의 채색화로 그리게 하였던 것이다.


『탐라순력도』는 순력의 내용을 담은 각 행사 장면 28도(圖), 평상시의 행사 모습을 담은 11도, 제주도와 주변 도서의 지도인 「한라장촉(漢拏壯囑)」 1도, 「호연금서(浩然琴書)」1도 등 총 41도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서문 2면을 넣고 화첩(畵帖)은 오씨노인(吳老筆)에게 청하여 비단으로 장식하여 만들어 ‘『탐라순력도』’라 명명하였다.

이형상 자신은 매 그림의 상단에 네 자로 제목을 달고 하단에 설명을 첨가하였다. 『탐라순력도』의 완성 시기는 서문 말미에 나왔듯이 1703년 5월 13일인데, 이형상 제주목사는 이보다 앞서 1703년 3월에 파직당한다. 따라서 이형상 목사는 자신의 파직 사실을 그 해 5월 초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탐라순력도』는 가로 35㎝ × 세로 55㎝ 크기의 장지(壯紙) 위에 가로 29.5㎝ × 30.5㎝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상단에는 가로 29.5㎝ × 세로 3.7㎝의 난을 만들어 네 글자로 제목을 달았다. 그림의 하단에는 가로 29.5㎝ × 세로 12.8㎝ 크기의 난을 좌우로 이등분하여 우측 칸에 그림과 관련된 내용을 기록하였다. 이형상의 종손으로 경상북도 영천시에 거주하는 이수창(李秀昌)이 소장해 오다가 1998년 12월에 제주시청에서 3억 원에 매입, 소장하고 있다. 현재 보물 제652-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형상의 『남환박물』과 함께 조선 제주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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