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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령마루

한라의메아리-----/오늘나의하루

by 자청비 2020. 5. 28.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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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일 어찌어찌하다보니 걸어서 도령마루에 오르게 됐다. 요즘은 도령마루라고 하면 아마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제주공항이나 오라로터리에서 신제주로 올라올 때 고개를 올라오면 평지가 나온다. 이 곳이 예전엔 도령마루라고 불렀던 곳이다. 도령마루는 지금은 행정구역상 연동에 속해 있지만 예전엔 오라동에 포함됐다. 신제주는 1970년대 중반부터 신흥도시로 개발되면서 오라동과 노형동 일부를 흡수해 연동이라는 명칭을 갖고 분구되었다. 연동은 당시 오라동 안에 있는 작은 자연마을의 명칭이었다. 신제주 개발을 지시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지나가다 우연히 이름을 듣게 되고 마음에 들어하자 행정동 이름이 연동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제주공항에서 신제주로 이어지는 길은 신제주 개발당시 공항과의 근접성을 높이기 위해 70년대 후반쯤(정확치 않다) 개통된 것이고, 예전엔 노형동에서 제주시내로 가기 위해서는 이 곳 도령마루를 지나 용담동을 거쳐야 소위 '성안'이라는 제주시내 중심가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호동이나 도두동으로  내려간 뒤 용담동을 거쳐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의 연동과 노형동 지역은 제주시 최대의 인구가 밀집한 행정동이지만 신제주가 본격 개발되기 이전에는 제주시내 산간오지였다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았던 곳이다. 그래서 1948년 일어난 제주4.3당시 무릇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아픈 사연이 많다. 특히 70년대 후반 엄혹했던 유신시절 '순이삼촌'이라는 제목으로 첫 4.3소설집을 써낸 현기영의 소설 '도령마루의 까마귀'에는 4.3과 도령마루에 얽힌 이야기가 상세하게 나온다.

신제주가 개발되면서 도령마루는 이름을 잃어버리고 해태동산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버린다. 지금은 해태상이 사라졌지만 신제주 개발당시 누가 기증했는지는 모르지만 해태상을 세워놓아 해태동산이라는 이름으로 한동안 불렀다. 지금도 여전히 도령마루라는 이름보다는 해태동산이나 행정편의에 따라 붙인 7호광장으로 불린다. 제주민예총에서 지난해 이 곳에 해원을 기원하며 방사탑을 쌓아놓았으나 대부분은 이곳에 이런 방사탑이 있는지도 잘 모르고 지나간다. 70여년전 이 곳에서 일어난 비극은 점차 사람들의 기억속에 사라져가고 철따라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들만 무심하게 달려가는 자동차와 관광객을 반기고 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90406032700056?input=1179m

 

제주4·3 학살터 도령모루서 해원상생굿 열려 | 연합뉴스

제주4·3 학살터 도령모루서 해원상생굿 열려, 전지혜기자, 문화뉴스 (송고시간 2019-04-06 12:43)

www.yna.co.kr

https://www.nocutnews.co.kr/news/5141560

 

학살 기억 묻히고 이름마저 빼앗긴 '제주 도령마루'

4.3 당시 60여 명의 무고한 양민이 희생된 제주시 도령마루. 제주국제공항에서 신제주로 나가는 길에 있는 이곳은 현재 그 주위로 왕복 6차선 도로가 깔리면서 사람들의 접근이 어렵다. 특히 이곳

www.nocu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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