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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 페란테, 나폴리 4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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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21. 3. 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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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작가’ 엘레나 페란테, 나폴리 4부작

 

 

『나폴리 4부작』은 나폴리의 서민층 주거 지역 출신인 두 소녀 레누와 릴라가 1950년대부터 60여년 이어 온 우정과 갈등, 경쟁과 협력의 파노라마에 이탈리아의 굴곡진 현대사를 포개 놓은 대하소설이다.  1권 『나의 눈부신 친구』는 주인공 엘레나와 릴라의 유년기, 2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청년기, 3권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4권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는 장년기를 따라 흐른다. 둘 다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결혼·불륜·이혼·출산·육아를 힘들게 헤쳐나간다. 페란테는 ‘온건한’ 페미니스트다.

 

성실한 모범생 레누와 ‘못된 아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강력한 개성을 지닌 릴라는 자석의 양극처럼 서로에게 이끌린다. 레누가 고향을 떠나 대학에 진학하고 작가로 이름을 알리는 반면, 나폴리에 남은 릴라는 공장 노동자가 되어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가는 다시 컴퓨터 전문가로 승승장구한다. 그런가 하면 두 주인공은 연애와 결혼에서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심지어는 한 남자를 놓고 뺏고 빼앗기는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페란테는 빈곤이 초래한 계급 문제와 젠더 문제를 부각시키는 한편 여성들의 우정의 공동체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에필로그-반환’의 핵심은 어쩌면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비록 가상 인물들이긴 하지만, 60년 우정을 자랑하는 엘레나와 릴라는 증발 사건을 계기로 각자 진정한 마음의 평화와 자유를 얻었을까. 4권에서 끝에서 두 번째 문장은 다음과 같다. “소설과 달리 진짜 인생은 일단 지나간 후에는 명확해지기보다 모호해지는 법이다.”

 

 

한겨레<2020-09-24>는 엘레나페란테가 <나폴리> 4부작 이후 펴낸 <어른들의 거짓된 삶>을 소개하면서 그와의 서면인터뷰를 게재했다.

 

원문보기  www.hani.co.kr/arti/culture/book/960723.html#csidxcbe1e00c2274124a4b451b20784e30a

 

1. 나폴리 사투리의 문학적 힘
-당신의 소설에서 나폴리 사투리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등장인물에게 사투리는 가장 자연스러운 소통 수단이죠. 하지만 실제 소설에서 인물들은 사투리를 쓰지 않습니다. ‘사투리로 말했다’는 문장으로 표현될 뿐이지요. 집필하면서 머릿속으로는 등장인물들의 사투리가 들리는데 그것을 이탈리아 표준어로 ‘번역’할 때가 있지 않나요?_브라질 인트린세카 출판사, 번역가 마르셀루 리누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부자연스러운 번역이죠. 만족스럽지 않은 번역입니다. 제 말의 의미를 설명하려면 제가 창조한 화자들의 본질을 설명해드릴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작품의 ‘목소리’는 여성의 것입니다. 제 소설의 화자는 모두 나폴리 출신 여성이고 사투리에 익숙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교육 수준이 높으며 나폴리를 떠난 지 오래됐고 각자의 경험으로 인해 나폴리 사투리를 폭력적이고 음란한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여성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성의 ‘글’이라고 해야겠죠. 델리아, 올가, 레다, 레누는 글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때 이들이 사용하는 표준어는 고향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막입니다. 이들에게 표준어는 도피·해방·성장의 언어입니다.
나폴리 사투리는 유년 시절과 사춘기 시절 그들의 자아 형성에 기여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고통을 주었습니다. 이들은 사투리를 기반으로 하는 환경에 맞서기 위해 표준어를 바탕으로 한 언어체계를 만들었습니다. 감정적인 기반이 강한 사투리에 비해 이들이 만들어낸 표준어 언어체계는 연약합니다. 주인공이 위기에 처할 때, 표준어를 압도하는 거친 사투리가 튀어나옵니다. 제 작품에서 표준어가 사투리에 자리를 내어주는 순간은 과거와 현재가 불안과 고통 속에 뒤섞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저는 사투리를 흉내 내지 않습니다. 간헐천에서 물줄기가 솟아나는 것처럼 갑작스럽게 분출되도록 놔둘 뿐이지요.”


2. 자아를 잃어버릴 각오를 함으로써 더 나은 자아를 창출해낸다
-당신의 전작들에서는 한 인물이 여성 해방과 여권 신장을 이루는 데 한평생 혹은 수십 년이 소요됩니다. 그에 비해 『어른들의 거짓된 삶』에서 조반나는 놀랄 정도로 짧은 기간에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고 패턴화된 일상에서 벗어나죠. 이러한 변화는 조반나라는 인물에 국한된 것인가요 아니면 세대 변화의 결과인가요? 즉 우리 어머니 세대 여성들의 야망과 노력이 우리 세대에 와서 여권 신장이라는 결실을 맺은 것인가요?_헝가리 파크스 퍼블리싱 출판사, 번역가 키라이 킨거 율리어
“조반나는 릴라와 레누와 매우 다릅니다. 조반나는 종교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환경에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소녀입니다. 조반나의 부모님은 둘 다 교사이고 자기 딸이 교양 있고 독립적이며 자유롭고 자긍심이 강한 여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어떤 작은 사건으로 인해서 조반나를 위해 준비된 기반이 흔들리고 조반나는 이러한 현상을 거짓된 환경에서 비롯된 부패한 결실이라고 생각하죠.
그때부터 조반나는 그동안 자기가 받았던 교육의 흔적을 지워버리려고 몸부림칩니다. 순수하게 오직 육체적 욕구만을 남기려 합니다. 레누와 릴라도 그들의 몸에서 고향 동네의 흔적을 지우려 합니다. 하지만 실질적·관념적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구를 스스로 힘겹게 만들어야 했던 이들과는 달리 조반나의 손에는 이미 그 도구가 쥐어져 있습니다. 단지 그 도구를 자신에게 준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용할 뿐이지요. 조반나는 빈손으로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토록 빠르고 단호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미 형성된 자아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자아를 잃어버릴 각오를 하지 않으면 더 나은 자아를 형성할 수 없으니까요.”


3. 마초적인 기준으로 여성들을 길들이는 남성들
-‘페란테의 남성’들은 여성들에 비해서 비교적 단순하고 단조롭게 느껴지는 면이 있습니다. 남성 인물 중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거나 애착을 느끼는 인물이 있나요?_한국 도서출판 한길사, 번역가 김지우
“<나의 눈부신 친구>의 엔초입니다. 저는 사려 깊게 여성을 도움으로써 자신의 힘을 드러내는 남성을 좋아합니다. 지나치게 느끼하게 굴거나 특별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묵묵히 도움을 주는 남성이 좋습니다. 가장 수준 높은 남성의 지성과 사랑의 결과물은 여성에 대한 진정한 이해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 수준에 도달하는 남성들은 극히 일부입니다. 요즘 SNS나 TV에서 여성들을 천박하게 공격하는 거칠고 폭력적인 남성들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직장동료나 학교 동창들처럼 제대로 배운 남성들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다수 남성은 아직도 여성을 귀여운 애완동물 취급합니다. 그들은 함께 놀고 싶을 때나 여성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죠.
그보다는 적지만 표면적이나마 ‘여성의 친구’ 역할을 하는 방법을 배운 남성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여성들에게 구원받는 방법을 가르치려 듭니다. 하지만 여성이 자기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순간 교양이라는 얄팍한 가면에 금이 가고 숨겨져 있던 꼰대 기질이 드러나죠. 마초적인 기준으로 여성들을 길들이려는 남성들은 재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믿을 만한 남성은 릴라의 충직한 동반자 엔초뿐입니다. 물론 이런 남성도 언젠가는 지쳐서 떠날 수 있죠. 하지만 적어도 좋은 추억 정도는 간직할 수 있으니까요.”


4. ‘나의 진정한 도시’는 나폴리
-당신은 인간이 어느 정도 ‘나폴리를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즉 인간이 어디까지 자신의 근본과 타고난 운명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_이스라엘 예루살렘 아드라바 서점, 서점인 에스티 브레즈네르
“우선 떠남은 근본을 거스르는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오히려 진정한 자아를 찾으려면 근본에서 출발해야 하며 이를 성장의 기반으로 삼아야 합니다. 방랑을 통해서 우리의 몸은 물건이 잔뜩 쌓인 창고가 됩니다. 원래 있던 물건 위에 새로운 물건이 계속해서 쌓이는 거죠. 물건들은 서로 뒤섞이면서 변화하고 합쳐집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아가 풍성해지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빈곤해지기도 하죠.
그러나 고향의 중요성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고향은 인간이 최초로 겪는 경험들이 쌓이는 곳입니다. 처음 눈을 뜨고 처음 상상을 하고 처음 자신을 표현하는 장소입니다. 그곳에서 형성된 바탕이 탄탄할수록 다른 장소에서 더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나의 진정한 도시’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나폴리뿐입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타향에서 타지인들과 부딪혀보지 않았다면 수줍게나마 ‘나’를 표현하기 시작한 곳이 다름 아닌 나폴리였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폴리야말로 나의 유일하고도 진정한 도시라고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5. 교훈적인 소설은 독자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당신의 모든 소설에서 남녀 관계는 연약하거나 불행하게 묘사되는 반면 여성 간의 관계는 건설적으로 묘사됩니다. 작가이자 독자로서 상대적으로 ‘행복한’ 남녀 관계에 관해 이야기해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혹시 그런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와닿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나요?_크로아티아 프로필 출판사, 번역가 아나 바두리나
“현실을 교훈적으로 풀이한 소설은 독자의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라는 표현처럼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에서 행복이 시작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행복한 커플에 대한 이야기를 쓸 수도 있겠죠. 제 주변에도 그런 커플들이 많으니까요. 실제로 언젠가 너무나도 불행한 여자가 행복한 노부부인 자기 부모의 뒤를 캐는 내용의 소설을 구상한 적도 있답니다. 추리 소설 형식으로요. 물론 여기서 이 소설의 줄거리를 지루하게 늘어놓을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상대적으로 행복한 남녀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당신의 표현이 제가 구상했던 소설을 완벽하게 요약하고 있다고만 해두죠. 저는 ‘상대적으로’라는 수식어가 없으면 행복에 대한 소설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한’이라는 수식어를 굳이 따옴표 사이에 넣은 이유를 이야기하는 거죠.”


6. 내가 사랑하는 글로 나의 이야기를 쓴다
-이탈리아는 당신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당신의 소설의 배경은 등장인물과 줄거리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_캐나다 퀘벡 레그제드르 서점, 서점인 오드레 마르텔(갈리마르 출판사)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은 대부분 이탈리아에서 일어났습니다. 이탈리아에는 제게 소중한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저의 첫 언어도 이탈리아어죠. 이탈리아어는 제가 처음으로 읽고 쓰고 말하게 된 언어입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평범한 일상이 지겨웠습니다. 그래서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 라틴 아메리카와 같은 타국에서 이야기 소재를 찾았죠. 나의 집, 나의 동네, 나의 언어(표준어든 사투리든)가 아닙니다. 저는 지역성과 이탈리아성을 지우고 장소가 불명확한 이국적인 이야기를 즐겨 썼습니다. 이탈리아에 관한 특성들을 참기 힘들었고 이야기를 만드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시절 저는 이탈리아 문학에 대한 열정이 없었습니다. 이탈리아 문학 작품을 읽을 때도 도시, 인물, 사투리 등 이탈리아성을 교묘하게 우회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선호했죠. 하지만 그것은 유치한 태도였고 스무 살 이후부터는 그런 생각에서 벗어났습니다. 제 문학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나서는 이탈리아 문학에 서서히 관심이 생겼습니다. 저는 제 성장을 위해서 인상 깊었던 이탈리아 문학 작품들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 후 저는 소설로 쓰기에는 지나치게 지역적이고 국가적이고 나폴리적이고 여성적이고 사적이라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나만의 이야기가 내가 사랑하는 글과 이상적으로 결합할 때 설득력 있는 글이 된다는 사실을 압니다. 지금 이곳에서, 내가 잘 아는 환경을 배경으로, 시대와 국가에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문학 작품들을 읽으면서 습득한 능력을 바탕으로 썼을 때 설득력 있는 글이 탄생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가 매듭으로 묶어서 때로는 조이고 때로는 풀어주지 않으면 공허한 인물이 될 뿐입니다.”


7. 어른들은 거짓말을 일종의 도구로 사용한다
-<어른들의 거짓된 삶>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정말로 어른들이 상습적으로 자신의 삶을 기만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타인과 자식들과 자기 스스로에게까지요?_노르웨이 놀리 뉘에 산비카 서점, 서점인 디나 보르예
“어린 시절 저는 거짓말쟁이였습니다. 부모님께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항상 혼나곤 했죠. 부끄러운 일을 몇 차례 경험한 후에 14살 때쯤 되어서야 비로소 정신 차려야겠다고 마음먹고 거짓말을 그만두었습니다. 하지만 제 유치한 거짓말은 상상력의 결과물이었던 것에 비해 거짓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어른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타인과 자기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제 눈에 어른들은 존재의 일관성을 유지해 그 의미를 찾고 타인과 비교당하는 것을 견디고 자식들에게 권위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일종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조반나의 이야기는 사춘기 시절에 제가 느꼈던 어른들의 위선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8. ‘경계의 해체’는 또 다른 존재가 되는 것
-‘경계의 해체’는 <나의 눈부신 친구>의 주요 키워드입니다. 릴라의 표현을 빌리면 ‘경계의 해체’란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에 자신이 다른 사람, 물건, 숫자, 글자 따위의 경계를 파괴하며 그 속으로 이전되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렇다면 조반나도 일종의 ‘경계의 해체’를 겪는다고 봐도 될까요? 릴라처럼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가족의 민낯을 가리고 있던 ‘완벽’의 베일이 걷히고 새로운 자아가 형성되는 순간을 기점으로 영구적인 ‘경계의 해체’ 상태로 들어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요?_그리스 파타키스 출판사, 번역가 데메트라 도치
“그렇습니다. 당신의 질문을 읽고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군요.
릴라의 경우 ‘경계의 해체’를 육체적인 반응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일종의 병리학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죠. 릴라에게 ‘경계의 해체’는 지진과 같습니다. 그 진원지에는 오감의 마비가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조반나는 레누와 더 비슷합니다.
레누는 릴라가 사용한 표현을 자기 나름대로 바꿔서 더 은유적으로 만들죠. 레누에게 ‘경계의 해체’는 몸부림입니다. 고향 동네 밖으로 영역을 확장해 경계를 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죠. 고통스럽지만 당당하게 베일을 찢어버리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릴라는 ‘경계의 해체’의 징후에 신체적으로 압도당합니다. 그 징후가 너무나 폭력적이어서 병에 걸립니다. 이에 비해 레누와 조반나가 겪는 ‘경계의 해체’는 은유적인 현상에 가깝습니다. 은유는 덜 고통스럽죠.”


9. 나는 나폴리를 보고 나폴리는 나를 본다
-당신은 왜 다시 나폴리를 배경으로 신작을 집필했나요? 당신은 왜 계속해서 나폴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요? 나폴리의 어떤 특성 때문인가요? 향후 다른 장소를 배경으로 작품을 쓸 의향이 있나요? 그것이 나폴리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는 것보다 쉬울까요 어려울까요?_덴마크 프레데리치아 빌룬스 보그한델 서점, 서점인 엘사 빌룬
“세상의 모든 장소가 소설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그곳을 잘 알고 있느냐는 것이죠. 장소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으면 피상적인 이야기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저는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제가 방문한 도시들에 대해 메모도 많이 해두었고요. 예컨대 코펜하겐 같은 도시가 그렇습니다. 그동안 정리해둔 메모를 참고하면 소설 한 권은 충분히 나올 것입니다. 이미 제가 좋아하는 또 다른 도시인 토리노를 소설의 배경으로 삼은 바 있죠.
하지만 그런 도시들은 제가 속한 곳이 아닙니다. 저는 그 도시들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메모를 남기고 글을 씁니다. 나폴리는 다릅니다. 나폴리는 이미 제 일부분이고 저 역시 나폴리의 일부분입니다. 나폴리에 대해서는 어떠한 관점을 형성할 필요가 없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관점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제가 계속 나폴리에 대해 글을 쓰는 이유는 나폴리를 제대로 보고, 제 자아를 제대로 보고, 나폴리가 명확하게 저를 보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10. 상승과 하강, 추락과 비상은 나의 모든 소설의 주제다
-나폴리는 쉽지 않은 도시입니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말입니다. 그런 나폴리는 언제나 당신 작품의 주인공이었죠. <어른들의 거짓된 삶>에서 나폴리는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나뉩니다. 이 소설에서 당신은 윗동네와 아랫동네라는 상반된 두 세계를 연결하려고 했나요?_중국 상하이99 출판사, 번역가 천잉
“저는 언제나 ‘상하’의 대비라는 주제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상승과 하강, 추락과 비상은 제 모든 소설의 주제를 요약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상부와 하부’의 관계는 제 신작의 핵심적인 주제입니다.
나폴리에는 정말로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윗동네’(Rione Alto)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산 지아코모 데이 카프리라는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야 하죠. 제가 이번 소설의 배경을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나누어 설정한 이유는 나폴리에 실존하는 지명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조반나의 아버지 안드레아가 자기 가족들과 ‘윗동네’에 살면서 ‘아랫동네’에 속하는 자신의 근본을 지우려 한다는 점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반항심으로 가득한 사춘기 소녀 조반나는 자기 아버지가 그어놓은 경계에서 인위적인 면을 발견하죠. 조반나는 아버지가 구축한 질서를 붕괴하고 위아래를 뒤섞어놓습니다. 그 과정에서 조반나는 스스로 온갖 비윤리적인 요소과 아름다움과 추함, 새로움과 낡음, 섬세함과 투박함이 뒤섞인 혼합의 장이 됩니다. 그런 식으로 조반나는 두 세계를 구분하려 했던 지식인 아버지의 집착을 보란 듯이 조롱하는 것입니다.”


11. 언제나, 늘 놀라운 소설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릴라와 레누에게 <작은 아씨들>은 중요한 작품입니다. 당신도 사춘기 시절 인상 깊게 읽은 소설과 등장인물이 있나요?_독일 베를린 단테 커넥션 서점, 주인 겸 사서 슈테파니 헤체
“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려면 길고 지루한 책 목록을 나열해야 할 것입니다. 어린 시절 저는 여성들이 거칠고 불공평한 세상에서 불행한 삶을 살며 불륜을 저지르거나 규율을 어기거나 유령을 목격하는 종류의 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12살에서 16살 사이에 저는 제목에 여자 이름이 들어가는 소설을 미친 듯이 찾았습니다. <몰 플랜더스> <제인 에어> <테스> <에피 브레스트> <마담 보바리> <안나 카레니나>와 같은 책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마르고 닳도록 읽은 소설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입니다. <폭풍의 언덕>은 지금 읽어도 놀라운 작품입니다. 밑도 끝도 없이 사랑의 아름다운 면과 끔찍한 면을 뒤섞는 그녀의 필력이 놀랍습니다. <폭풍의 언덕>의 캐서린은 사랑스럽기만 한 여성 캐릭터를 만들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따금 다시 읽어볼 만한 작품입니다.”


12. 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 나의 감정이
-‘나폴리 4부작’과 <어른들의 거짓된 삶>의 인물들 가운데 작가로서 감정이입을 하는 인물이 있나요?_스웨덴 아카데미 서점, 서점인 모니카 린드크비스트
“이 질문에 대해서는 뻔한 답변을 할 수밖에 없군요. 저는 제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합니다. 남성들에게도요. 그들 모두에게 제 일부분이 투영되어 있으니까요.
우리는 타인의 외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면까지 잘 알 수 있는 건 오직 자기 자신뿐이죠. 타인을 관찰하고 몸짓이나 표정의 의미를 짚어내고 걸음걸이의 특성과 화법, 시선을 읽어내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지만 타인의 마음속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작가는 심리학 교과서처럼 등장인물의 심리를 단순화하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은 힘든 일이죠. 가진 도구라고는 머리밖에 없는데 그곳에서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약간의 진실을 뽑아내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문학 작품에서 타인의 내면 묘사는 언제나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종종 지나치게 선형적이고 지나치게 일관적이며 지나치게 논리적인 결과물이 나오곤 하죠. 생생한 상상력으로 풍성하게 만든 집요한 분석의 결과물입니다.
하지만 감정이입이 되는 인물을 한 명 뽑아달라고 하셨으니 그에 부응하는 답을 드려야겠죠. 적어도 지금은 <어른들의 거짓된 삶>의 빅토리아 고모가 가진 여러 가지 특징이 마음에 듭니다. 물론 빅토리아는 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그녀를 창조한 작가라는 사실이 만족스럽답니다.”


13. 에마의 불편한 마음과 나의 불안감의 결과
-<어른들의 거짓된 삶>에서 조반나에게 큰 충격을 준 안드레아의 말이 <보바리 부인>에 등장하는 에마 보바리의 생각에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지 (…저 아이는 어쩌면 이렇게 못생겼을까) 묻고 싶습니다. <프란투말리아>에서 당신은 언젠가 이 내용을 다루고 싶다고 했죠. 그것이 과연 여성의 문장인지 알고 싶다고 했어요._포르투갈 헬로지우 다구아 출판사, 번역가 마르가리다 페리키투
“맞습니다. 하지만 그 문장을 단순히 문학적으로만 인용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에마의 말이 나 자신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부모님이 내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까지 싫어한다면 얼마나 끔찍할까?’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조반나라는 인물은 에마의 불편한 마음과 저의 불안감의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죠. 적어도 부분적으로는요.
어머니가 ‘저 아이는 어쩌면 이렇게 못생겼을까’라는 말을 정말로 자식에게 할 수 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에마처럼 경박한 어머니에게서 나온 말이라 할지라도요. 실제 <어른들의 거짓된 삶>에서 저는 아버지의 입을 빌렸습니다. 하지만 그때 조반나의 어머니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남편의 말을 부정하지도 않죠.”


14. 나는 나폴리 사람들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나폴리는 <어른들의 거짓된 삶>을 포함한 당신의 모든 작품에서 또 하나의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나폴리는 당신에게 무엇을 상징하나요? 나폴리 경관, 나폴리 사람들, 나폴리 사투리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시칠리아 사투리와 표준어를 섞어서 소설을 쓴 안드레아 카밀레리(Andrea Camilleri)처럼 실제로 사투리와 표준어를 혼용할 생각은 없나요?_러시아 코퍼스 출판사, 번역가 안나 얌폴스카야
“나폴리는 문학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 명료하게 정의 내리기 힘든 매우 복합적인 도시입니다. 나폴리는 저의 도시이자 제 선조들의 도시입니다. 나폴리는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경험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들의 목소리를 제 기억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들의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사투리 없는 나폴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나폴리 사람들은 모두 사회계층에 상관없이 사투리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저는 다양한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줄 알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층민이 쓰는 나폴리 사투리를 최고급 문학적 소양의 증거인 것처럼 사용하는 부유하고 교양 있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끝까지 사투리를 사용하는 데 익숙해지지 못했습니다. 거친 사투리에도 매력적인 사투리에도요.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한 가지만 이야기해드리죠. 사실 이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 불안감에 시달렸습니다. 라틴어나 그리스어를 이탈리아어로 번역하거나 1500년대 이탈리아 고어로 지은 시를 현대 이탈리아어로 번역할 때마다 저는 항상 마음이 급했습니다. 과제물이 너무 많아서 오후 내내 해도 시간이 모자라 가끔은 정신이 혼미해지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그 많은 언어가 시간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수많은 목소리로 이루어진 강물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제 머릿속은 산 자와 죽은 자들이 한꺼번에 떠들어대는 극장이 되었죠. 그들의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굉음은 저를 한없이 지치게 했습니다.
언젠가부터 그런 망상에 빠지지 않게 되었지만 나폴리 사투리를 들을 때면 사춘기 시절의 망상이 아직도 되살아나곤 합니다. 나폴리 사투리의 청각적 효과는 엄청납니다. 나폴리 사투리는 어마어마한 감정적 폭발력을 잠재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언어를 알파벳 안에 가두는 실수를 범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은 호랑이를 우리에 가두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글을 쓰는 내내 저는 나폴리 사투리를 의식하고 감시합니다. 불안감을 이겨내고 나폴리 사투리를 활용합니다. 그럴 때 나폴리 사투리의 아이러니하고 비극적이고 감성적이고 밝은 측면은 배제하려 합니다. 그보다는 거칠고 풍자적이면서 여성들에게 위협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편을 선호합니다.”


15. 친구와 더불어 나는 변한다
-우정이 사람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_루마니아 슈테판 옥타비안 이오시프 서점(브라쇼브 소재), 서점인 이오아나 제나이다 로타리우
“친구 한 명으로 인해 사람이 변하지는 않지만 친구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과정에서 함께 변화한다고 생각합니다.”


16. 나는 모든 폭력을 고발한다
-‘나폴리 4부작’ 제4권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에서 당신은 인간의 폭력성의 보편성에 대한 주제를 다루며 아랍 세계와 이슬람 문화권을 언급합니다. 레누의 딸 데데의 남편은 이란 출신이고 그들이 낳은 아들의 이름은 하미드입니다. 당신이 다음 작품에서 현재 이슬람과 서방국가 간의 대립과 인종차별주의, 테러리즘, 이민, 이슬람 공포증(islamophobia)과 같은 동시대의 정치 문제를 다루기를 기대해도 될까요?
당신은 인류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인 9·11 테러 사건도 언급했습니다. 혹시 그 사건을 ‘경계의 해체’의 실례로 간주하나요? 사람들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광경을 목격할 정도로 릴라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나폴리 지진과 쌍둥이 빌딩의 붕괴 사이에 시각적인 연관성이 있나요? ‘경계의 해체’는 폭력적인 변신(metamorphosis)의 은유인가요?_레바논 다르 알아답 출판사, 번역가 무아위야 압둘마지드
“‘경계의 해체’에 대해서 다시 설명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그렇습니다. ‘경계의 해체’는 폭력과 관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과 사물을 구성하는 경계를 파괴할 정도로 통제할 수 없는 힘의 결과이지요. 자기 자신과 타인의 정체성을 가둬놓았던 인공적인 경계가 갑자기 불명확해지는 순간 릴라는 끔찍한 파멸과 자기 파괴적 광경을 목격합니다. ‘경계의 해체’가 문맥상으로 그와는 다른 의미로 쓰일 때도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 진실이 밝혀지는 상황을 나타내거나 인물의 성장을 의미하기도 하죠. 하지만 그런 의미로 쓰일 때조차 기본적으로 단절, 상처, 폭발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은 분열로 가득합니다. 폭력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수사학적으로도요. 저는 이미 폭력에 대해서 충분히 썼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은 아마도 아닐 것 같다는 것입니다. 저는 테러리즘, 인종차별, 이슬람 공포증에 대한 작품을 쓸 계획이 없습니다.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결말에서 그런 주제를 언급한 것은 레누의 세계가 그녀의 딸과 사위와 손자들을 통해서 얼마나 확장되었는지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었습니다. 이들의 환경은 나폴리 시골 동네가 아니라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광활한 지구입니다.
제가 얼마나 폭력을 싫어하는지는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할 것입니다. 특히 약한 자들에 대한 폭력에 대해서요. 강자가 약자에게 행사하는 폭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약자가 약자에게 행사하는 폭력,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행사하는 폭력과 같이 당위성이 있는 폭력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것입니다.
인간은 흉포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종교와 끔찍한 역사가 주는 경고, 철학, 과학, 문학, 선과 미의 위험한 연관성과 결투부터 전쟁까지 모든 형태의 갈등과 같은 철저하게 남성적인 규제를 통해 이러한 인간의 야만성을 길들이려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모순적인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예를 들면 전쟁이 끝나면 이른바 ‘전범’들에게 벌을 내립니다. 하지만 전쟁 자체가 끔찍한 범죄인데 전쟁 범죄를 심판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합니다. 평화로워야 할 인권 분야도 끊임없는 투쟁의 장이지요. 누군가는 인권을 끊임없이 침해하고 누군가는 인권은 지키기 위해 싸웁니다. 국가가 폭력을 독점한다지만 이는 사실이 아닐뿐더러 국가 역시 이를 남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공권력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전통이 가장 깊게 뿌리내린 국가에서조차요.
여성도 예외가 아닙니다. 여성도 폭력의 주체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성은 역사적으로 남성의 폭력에 노출되었고 남성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방식에서 소외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폭력을 비폭력적으로 영원히 제거할 수 있는 것은 남성이 아닌 여성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남성에게 인정받는 것과 주체적인 여성 해방을 혼동해서 우리 스스로 남성의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전통에 대한 그럴듯한 변명과 규칙에 익숙해지는 것은 피해야겠죠.”


17. 책이 출간되는 순간 나와 작품은 독립적인 관계
-당신은 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미셸 오바마나 마돈나 같은 유명인이 있는가 하면 중국에 사는 회사원, 터키에 사는 10대 소녀도 당신의 책을 읽죠. 이처럼 다양한 국적과 문화권에 속하는 독자 모두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은 당신 소설이 진정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현실은 소설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나요?_이탈리아 투틸리브리 서점, 서점인 엔차 캄피노
“글쓰기는 매우 사적인 행위입니다. 저는 언제나 제 자신을 위해 글을 썼습니다. 실제로 많은 글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제 책상 서랍 속에 간직하고 있죠. 하지만 일단 글을 발표하기로 결정하면 저는 그 글이 최대한 저에게서 멀리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많은 곳을 여행하고 제가 쓴 언어와는 다른 언어로 번역되기를 바랍니다. 제 시선이 닿지 않는 곳까지 가기를 원합니다. 책, 연극, 영화, 드라마, 만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형태가 변화하기를 바랍니다.
예전부터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제 글은 제 손에서 탄생하는 순간에는 수줍어하지만, 책으로 출간되는 순간 야심이 많아지고 뻔뻔해집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저와 제 작품을 동일시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저는 제 책처럼 과시하는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제 책이 어디로 가든 저는 제가 원하는 글을 쓸 것입니다. 글을 쓰고 싶을 때 제 방식대로요. 책이 출간되고 판매되는 순간 저와 제 작품은 독립적인 관계가 됩니다.”


18. 나의 친구여, 나의 연인이여!
-당신의 작품 속 등장 인물들은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개인적으로 남성인 친구와 연인 중에서 누구를 곁에 두고 싶으신가요?_스페인 마드리드 라파엘 알베르티 서점, 서점인 롤라 라룸베
“진정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연인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이런 관계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젊을 때는 더 그렇죠. 하지만 서로 좀더 성숙해지고 운이 좋으면 친구 같은 연인 관계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고전문학 서간집을 읽다 보면 연인을 ‘나의 친구여’라고 부르는 문장이 종종 나오는데, 저는 그 표현을 좋아합니다. 기사문학에서 연인을 ‘나의 누이여’라고 부르는 표현도 마음에 들어요. 저는 이러한 문장을 육체적 욕망이 거세된 표현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19. 레누와 릴라는 유령일 뿐
-릴라와 레누는 어떻게 당신을 찾아왔나요? 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셨나요? 당신의 개인적인 이야기 중에서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로마 같은 도시가 아닌 나폴리에서 산다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나폴리는 왜 특별한가요?_핀란드 수오말라이넨 서점
“소설에 등장하는 다른 모든 인물과 마찬가지로 레누와 릴라도 유령일 뿐입니다. 처음에 이들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거나 세상을 떠나버린 주변 사람들과 닮은,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환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환영을 짧은 문장으로 붙잡고, 공책에 담아두었다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다시 읽어보는 것입니다.
문장에 힘이 있으면 환영은 다시 등장할 테고 작가는 또 다른 글을 덧붙여 이들을 붙잡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단어들이 힘을 얻으면 희미했던 환영에 살과 뼈가 생기고 형태가 뚜렷해지면서 꽁무니에 집과 거리와 풍경과 나폴리를 끌고 옵니다. 그 모든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줄거리를 가지고 옵니다. 그러다 보면 환영에게 온기가 도는데 그 순간 오직 저만이 그 규정할 수 없는 환영에 정의를 내리고 진짜 생명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지 못할 때가 많죠. 종종 환영들은 때와 장소를 잘못 선택하거나 불안정합니다. 그런 경우 글은 거짓되고 공허한 단어의 나열일 뿐인 문장이 되고 도시 역시 이름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그런 밋밋한 문장에서는 나폴리가 로마 같은 도시와 무엇이 다른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20. 건널목 하나만 건너도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사람
-당신의 소설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은 성인이 되면 고향을 떠납니다. 고향을 떠나는 것이 인물의 성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나요?_리투아니아 알마 리테라 서점, 번역가 이에바 마제이카이테
“‘떠남’은 매우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행위는 아닙니다. 레누는 떠나고 릴라는 평생 나폴리에 머무르지만 두 인물 모두 수많은 경험을 통해 성장합니다.
전에도 말했듯이 저는 레누의 선택에 더 공감합니다.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머무름’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 장소에 머무름으로써 우리들의 자아가 황폐해지지 않는 것이지요. 저는 건널목 하나만 건너도 놀라운 모험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릴라를 그런 인물로 상상했습니다.”


21. 나의 글쓰기는 극심한 고통
-왜 당신은 언제나 아픈 과거로 돌아가나요? 글쓰기는 당신에게 치유의 과정인가요? 이탈리아 공교육 문학 수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동시대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한다고 생각하나요? 이탈리아 공교육은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당신은 그중에서 어떤 가치에 공감하나요?_불가리아 콜리브리 출판사, 번역가 이보 욘코프
“저는 단 한 번도 글쓰기를 치유의 수단으로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제게 글쓰기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칼로 상처를 헤집는 것과 같은 행위입니다. 극심한 고통을 유발할 수 있는 행위이지요. 저는 도착지에 무사히 도달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비행 내내 괴로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계속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 여행객의 심정으로 글을 씁니다. 비행기가 착륙하는 순간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는데도 행복해하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공교육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요즘 교육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습니다. 제가 어릴 때 학교 수업은 위대한 문학 작품을 지겨운 점수 따기 대상으로 바꾸어놓았죠. 어른이 되어 다시 읽어보니 그때 배웠던 글은 모두 놀라운 작품들이었습니다. 학창 시절 문학 수업은 상상력을 짓밟고 작품에 몰입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딱딱한 수식어나 미사여구로 정의를 내려 문장이 가진 매력을 없애버렸죠. 그러고 나면 페이지 위에 남는 것은 무미건조한 단어의 조합일 뿐이고 그런 수업을 받은 학생들은 커서 허풍쟁이밖에 되지 못할 것입니다.”


22. 나의 모든 소설은 사춘기를 다룬다
-어느 때보다 민감한 사춘기 소녀 조반나는 누군가에게 주워 담지 못할 말을 듣고 이를 계기로 수많은 일을 겪게 됩니다. 사춘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시절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아니면 사춘기 시절 몰래 엿들었으면 좋았을 것 같은 말이 있나요? 미리 알았다면 현재 삶에 변화를 주었을 법한 이야기 말입니다. 예를 들면 과거의 나에게 어떤 일을 더 빨리 하도록 자신감과 용기를 북돋아주거나,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현재 후회하는 일을 하지 않도록 과거의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말입니다._영국 세븐 오크스 서점, 서점인 플러 싱클레어
“이미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사춘기 시절은 더욱 그렇죠. 저는 매우 힘든 사춘기를 보냈습니다. 그 시절은 시간이 멈춘 것 같았죠. 그래서 저는 어른이 된 후에도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함부로 ‘지금 참 좋을 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는 친구들에게도요. 저는 사춘기는 빨리 끝날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좋아합니다. 아마 제 소설에서 사춘기 시절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작품은 없을 것입니다. 그 시기는 천둥 번개와 태풍이 몰아치고 배가 난파하는 격변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사춘기 소녀는 거의 어른이지만 아직 어린아이기도 하죠. 신체적으로도 변화에 변화를 거듭합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말투조차 찾기 힘든 시기입니다. 때로는 아이처럼 말하고 때로는 다 큰 여성처럼 말한 뒤 두 경우 모두 수치심을 느끼죠. 현실에서는 과거를 바꿀 수 없지만, 소설에서 사춘기 시절은 마르지 않는 소재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사춘기 시절의 파편은 제자리를 찾고 매 순간에 합당한 의미가 부여됩니다. 글쓰기를 통해 그 숨 막힐 듯 정지된 시기를 성인의 관점에서 재조망하는 순간 시간은 다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23. 남성들은 ‘여성 소설’을 읽지 않으려 한다
-우선 ‘나폴리 4부작’을 정말 즐겁게 읽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저희 서점을 방문하는 모든 고객에게 이 책을 권했습니다. 하지만 제 추천을 받고 실제로 책을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이었습니다. <나의 눈부신 친구>는 여성 소설로 분류되니까요.
당신의 소설의 관점은 분명 여성의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성 독자들만을 위한 작품은 아니죠.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왜 남성들은 여성의 관점으로 쓴 소설에 관심이 없을까요? 오랜 시간 동안 역사와 인간의 삶과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남성에 의해서 서술되었습니다. 여성의 세계를 보다 풍성하고 다양하게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_바르셀로나 카탈루냐 레스폴사다 서점, 서점인 페르난데스 빌랴레트, 코로 다발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좋을까요? 일반 남성들은 여성의 이야기를 읽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죠. 교양 있는 남성도 별다를 바 없습니다. 당신 말처럼 ‘여성들을 위한 소설’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여성 소설’이란 표현으로 남성들은 그들의 권위가 실추되는 것을 막으려는 듯합니다. 또 보편성을 오직 남성만의 것으로 보이게 만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여성적인 것은 보편적이 될 수 없는 것처럼요. 남성이 쓴 소설은 남녀 모두가 읽을 수 있지만, 여성은 여성 독자들을 위한 책밖에 쓸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이것은 남성이 여성을 자신들보다 못한 존재로 생각한다는 증거입니다. 가끔은 여성조차 스스로 이러한 남성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가만히 두면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 나오는 이피게네이아처럼 “여자 천 명보다 남자 한 명을 살리는 것이 낫다”고 외칠 지경입니다.
여성은 남성에게 세상을 자기중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재능이 있다고 교육받았습니다. 남성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전 인류를 대상으로 글을 씁니다. 그 작품이 위대하든, 별 볼 일 없든, 하찮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남성은 자신의 독자들을 화성인과 금성인으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남성은 자기들은 뭐든지 다 할 수 있지만 여성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남성의 재능과 지성은 장점이고 여성의 재능과 지성은 결점이라고 합니다. 위대한 작가인 보들레르조차도 여성의 아름다움은 지성을 겸비하지 않을수록 오래간다고 했죠. 보들레르의 위대함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그는 지적인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동성애자뿐이라는 도발적인 말까지 했습니다.
물론 그동안 세상이 변했습니다. 지금도 변하고 있고요. 하지만 변화는 매우 더디고 아직 미흡합니다. 요즘도 제가 사람들이 위대한 문학이라고 칭하는 문학은 보편적인 문학이 아니라 남성 문학이라고 하면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를 교양 없는 여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제 말은 사실입니다.”


24. 코로나19 사태로 더 명령받는 여성들
-당신의 작품은 직업을 통한 여성 해방이라는 아주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코로나19는 여성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어서 여성의 권리가 퇴보할까요? 작가로서 이러한 주제에 관심이 있나요?_폴란드 바르사바 코렉티 서점, 서점인 마우고자타 자비에스카
“저는 아직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불과 몇주 만에 원래부터 좋지 않았던 사회적 약자들의 상황이 너무나 쉽게 악화되었고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혼란스럽습니다. 저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를 두렵게 한 것은 시스템의 취약성입니다. 저는 아직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래서 제 의견을 명확하게 설명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불과 몇달 만에 모든 것이 재정립되었고, 갑자기 ‘복종’이 인류 최대의 가치로 등극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은 평소보다 더 많은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오랜 전통에 따라 여성들은 자기 일은 잠시 제쳐놓고 가족의 생존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너무나 과한 요구를 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채 집에 처박혀 가족을 먹이고, 지키고, 돌보고, 보호하고 있습니다. 식량, 물, 집, 약과 같은 일차원적인 필요 앞에 여성의 권리는 일보 후퇴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바이러스보다는 공포의 확산이 어떻게 여성을 변화시키는지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 상황이 어떻게 여성의 진화된 권리 요구와 고상한 욕망을 무력화했는지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표면적으로나마 경제, 사회, 문화 시스템이 견고하던 시절에 여성이 이루고자 했던 모든 것은 무의미해졌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 역시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을 더 정리해야 합니다. 우선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여성 문제에 주목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성 문제는 미국의 흑인 인권 문제, 전쟁 난민 문제와 같은 무게로 다루어져야 합니다.”


25. 작가는 타인과 끊임없이 부딪쳐야 한다
-저는 나폴리의 매력에 빠져 두 번이나 나폴리를 방문했습니다. 덕분에 ‘나폴리 4부작’의 이야기는 나폴리에서의 제 개인적인 경험과 공존하고 때로는 서로 뒤섞이기도 합니다. 소설에 나오는 수많은 등장인물처럼요. 나폴리를 묘사할 때 다양한 등장인물을 어떻게 활용했나요? 주인공이 아닌 소설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 중에서 당신이 가장 가깝게 느끼는 인물이 있나요?_벨기에 위트레흐트 데 위트레흐체 부켄바르 서점, 서점인 팀 판덴후트
“각자 자신의 시선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선 속에는 소설을 비롯한 다른 매체들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시선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누구든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을 표현할 수 있죠.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의 시선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수없이 많습니다. 선조들과 지역적 특성, 역사, 철학, 과학, 독서, 구전 문학 기술과 기록 문학, 평소에 쓰는 수많은 상투적인 문구가 작가의 시선에 영향을 줍니다. 작가는 무엇보다 타인과 끊임없이 부딪치면서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을 예측하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말하기 힘든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에 합당한 단어를 찾아야 합니다.
나폴리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도 작가는 자기도 모르게 이런 모든 요소의 영향을 받습니다. 비단 나폴리뿐만이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단순한 대상을 묘사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모든 요소가 서로 뒤섞이고 부서지고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현실보다 더 많은 진실을 담고 있는 가상의 세계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그 누구도 보지 못하는 그런 진실을 담은 세계 말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정말로 그런 결과를 달성했는지 작가 스스로는 알 수 없습니다. 소설이 성공했다고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닙니다. 펜을 놓는 순간 작가는 비중 없는 주변 인물보다 소설에 대한 영향력이 없어집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작가로서 가장 동질감을 느끼는 인물은 솔라라 형제의 어머니입니다. 그녀는 동네 사람들이 진 빚을 기록한 빨간 장부 덕분에 온 동네를 마음대로 주무르지만 실은 볼품 없고 왜소한 나이든 여인일 뿐이죠. 소설 속에서는 더위에 지쳐 부채질하는 모습으로 아주 잠시 등장하지만 저는 제가 그녀처럼 느껴집니다.”


26. 여성의 글쓰기, 여성 문학은 더 시도되어야 한다
-‘여성 문학’이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_오스트레일리아 리딩스 빅토리아 서점
“당신의 질문에서부터 시작해보죠. ‘여성 문학’이라는 표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 표현을 신중하게 사용한다면요. ‘여성’이란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여성이 하는 말과 여성이 쓰는 글에는 여성의 인장이 찍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것은 온전한 사실이 아닙니다. 여성이 자기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도구는 남성 중심으로 구성된 역사의 산물입니다. 남성 중심의 문법과 문장구조와 단어입니다. ‘여성’이라는 수식어마저 남성 중심적인 함의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문학도 마찬가지죠.
여성 문학은 남성 문학의 전통 속에서 힘겹게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정체성을 인정받고 계보를 찾고 젠더 문제에 대해서 논하고 기존의 틀 안에서 거부할 수 없는 성적인 욕망에 대해서 논할 때도요. 그렇다면 여성은 남성의 포로 같은 존재인 걸까요? 여성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자 하는 언어 속에 갇힌 존재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성이 계속해서 자신을 표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수많은 노력과 시행착오를 수반하는 과정입니다. 사회가 많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제대로 여성의 모습을 보고, 제대로 여성의 목소리를 듣고, 진정으로 여성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가정하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경험을 샐러드를 뒤섞듯 수없이 뒤섞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듣기에도 놀라운 목소리가 나올 것입니다. 작은 틈이나 쓰레기 더미에서 우리 스스로 놀랄 만한 예상치 못한 글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27. 내 글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까지 당신 작품의 화자들은 성인이었습니다. 레다, 올가, 델리아가 그랬죠. 또는 레누처럼 어린 화자가 성장해서 과거를 서술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조반나의 경우에는 왜 이런 방식에 변화를 주었나요?_슬로바키아 이나크베 출판사, 번역가 이바나 도브라코보바
“특별히 변화를 준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기존의 작품들과 다른 점은 있지만요. 저는 소설 속 조반나에게 1인칭 화자 시점을 부여하는 이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소설의 도입부를 찬찬히 읽어보세요. 제가 몹시 아끼는 구절입니다.
‘내 글은 혼란일 뿐, 이야기가 제대로 전개되고 있는지, 그저 구원 없이 일그러진 고통의 나열일 뿐인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지금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이마저도.’
여기서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이’에 주목해주세요.
제 작품 속 화자들은 자신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들은 소설 진행 시점에서 이미 많이 지난 상태로 과거 일을 서술하기 때문에 과거 자신의 모습을 기억해내려고 노력합니다. 조반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사건이 일어난 지 한참 후에 이 일에 대한 글을 쓰고 있고 그러므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새로운 점은 이 소설에서 ‘글 쓰는 이’는 반드시 조반나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죠.”


28. 내 글에 손대려는 편집자와는 일하지 않는다
-당신의 작업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원고를 쓰면서 수정을 많이 하나요? 만약 그렇다면 주로 어떤 수정을 하죠? 본인을 자신이 쓴 글의 훌륭한 편집자라고 생각하나요? 선택한 단어나 표현을 자주 바꾸는 편인가요?_미국 유로파 에디션스 출판사, 번역가 앤 골드스타인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에서 초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입니다. 지나치게 많은 내용을 담고 있고 어수선할지라도요. 초안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은 정말이지 기운 빠지고 힘겹습니다. 시작과 끝이 있고 생명력이 느껴지는 글을 얻기 위해 저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습니다. 저는 아직 확실한 형태가 없는 존재를 미행하며 느릿느릿 이야기의 윤곽을 잡아갑니다. 물론 가끔 원고를 다시 읽을 필요도 없이 실을 뽑아내듯 글을 써 내려갈 때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죠. 그보다는 매일 몇 줄 안 되는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치면서 글을 써나갑니다.
갑자기 쓰던 글에 정이 뚝 떨어져서 펜을 놓아버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힘든 경우라서 굳이 여기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군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 준비 과정의 결과물이 좋아야만 진정한 글쓰기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초안을 끝내면 저는 처음부터 다시 손을 봅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글에 손을 많이 댑니다. 문단을 통째로 지워버리기도 하고 이야기 전개를 바꾸고 인물의 성격까지 바꿔버립니다. 일단 눈으로 읽어야 떠올릴 수 있는 장면과 필요한 내용을 덧붙이기도 하고 앞서 언급만 하고 지나갔던 에피소드를 더 발전시키기도 합니다. 사건들을 재배치하기도 하고 초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삭제했던 페이지에서 다시 필요한 부분을 복구할 때도 많습니다. 그런 글이 섬세함은 떨어져도 더 직관적이기 때문이죠.
이 과정은 그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은 저만의 작업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주의 깊은 독자의 시선이 필요할 때가 옵니다. 하지만 이들은 잘못된 연대 배열이나 반복, 이해하기 힘든 표현과 같이 부주의로 인한 실수에만 집중해서 신경을 써주어야 합니다.
저는 제 글을 평범하게 만드는 조언을 두려워합니다. 이런 식의 표현은 쓰지 않는다느니 구두점이 제대로 안 찍혔다느니 그런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느니 적절치 않은 표현이라느니 결말이 마음에 안 든다느니 이렇게 써야 더 좋은 글이라는 등의 조언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더 좋은 글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의미죠? 저는 현재 통용되는 미적 기준을 지키기를 종용하는 편집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편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행을 따라 비문을 허용하는 편집도 마찬가지고요. 편집자가 ‘당신의 글에는 좋은 부분도 있지만, 우리 함께 손을 더 보도록 해요’라고 한다면 원고를 회수해야 합니다. ‘우리’라는 1인칭 복수를 주어로 썼다는 사실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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