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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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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21. 5. 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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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초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이민진 작가가 강연하는 내용을 보게 됐다. 그 때는 이민진 작가가 누구인지 몰랐다. 다만 유튜브를 보면서 화려한 말솜씨와 자연스러운 웃음, 그리고 한국에 대한 애정 등이 묻어나는 걸 느꼈다. 그래서 이민진 작가가 강연하는 유튜브 2~3개를 더 보고 나서야 그가 피친코라는 책을 썼고, 그 책이 미국내에서 굉장한 인기를 끌면서, 이런 저런 강연에 많이 다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심지어 어느 강연에서는 사회자가 파친코의 등장인물중 하나인 '고한수'를 언급하며 진정한 히어로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파친코? 파친코라면 일본의 대표적 게임산업인데...? 그게 재일교포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내용이 궁금해졌다. 소설 파친코를 치고 검색해봤다. 정보가 좌르륵 쏟아진다. 2017년에 미국에서 출간되고 2018년에 국내에서도 번역본이 나오면서 일간신문에도 많이 소개된 걸 알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소설 파친코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부랴부랴 인터넷 주문을 넣어 설연휴 직전에 책을 받았다. 코로나로 여기저기 다니지도 못하고 긴긴 설 연휴동안 뭘하며 지내나 고심하던 차에 읽을거리가 생겼다는 것에 사뭇 기분이 좋았다.

 

원서에 비해 번역서의 책표지는 살짝 실망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런 감정을 무시하고 책장을 열 때는 설렘이 있었다. 그런데 책장을 덮고 나니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우선 4대에 걸친 대하소설을 이렇게 쉽게 풀어냈다는 작가의 역량에 감탄했다. 물론 몇 군데 약간 어색한 부분도 있다고 느꼈지만 재미작가라는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영어로 쓰인 소설을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부산 사투리를 살려 낸 번역작가의 역량에도 감탄했다. 나는 혹시 원서에도 지역 방언을 어떤 식으로든 담아냈을까 하는 의문- 혹시 미국내 어느 특정지역 방언을 많이 쓴다든지 하는 식으로 - 을 가졌으나 나중에 원서를 읽은 사람에게 물어보니 원서에서는 달리 방언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고 했다.

 

파친코가 다룬 것은 일제치하의 어려웠던 삶, 한국인의 근면성, 자식이나 가족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모성애, 자신을 지켜줬던 남편에 대한 존경 등이다.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디아스포라(diaspora)이다.

 

디아스포라란 흩어짐, 이산(離散)이라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나온 말로, 팔레스타인을 떠나 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이르던 말이다. 요즘은 여러 가지 외부적 환경으로 인해 자국을 떠나 외국에 흩어져 나름대로 조그만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 및 공동체를 지칭하는 단어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디아스포라는 신중하게 써야 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디아스포라에 담겨진 의미는 우선 조국을 잃고 자신들의 터전에서 강제로 내쫓긴 사람들이다. 그리고 타의에 의해 현지 문화에 포용되지 못하고 배척당한 채 자신들만의 문화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물론 여기에는 자의에 의해 현지 문화에 동화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경우도 포함된다고 하겠다.

 

바로 일제시대 때 조국을 잃고, 살기 위해 일본에 넘어가거나 강제징용, 정신대 등으로 억지로 끌려갔다가 현지에 눌러 앉은 재일동포도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일제에서 해방된 뒤에도 일본에 귀화하지 않는 한 철저한 차별과 멸시 속에 지내야 했고, 한국인(조선인이라고 해야 할까)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 그들만의 문화를 형성하며 살아왔다.

 

재일동포의 디아스포라에 대한 이야기는 심포지엄이나 칼럼 등을 통해 몇 번 접한 적이 있지만 문학으로 만난 적은 별로 기억이 없다. 권희로의 총기 인질극 사건, 재일한국인 지문등록 등 갖가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재일동포의 처우개선 사안이 쟁점이 됐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소설로도 많이 나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블로거가 천학해서 읽지 못했을 것이다.(이 글을 쓰면서 검색해보니 2018년도에 재일디아스포라 문학선집이 나와 있다) 하지만 이같이 4대에 걸친 대하소설처럼 출간한 것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민진의 파친코는 매우 감명깊게 다가왔다. 재미교포로서 이민자의 서러움에 대한 이해도 더 깊었을 것이다. 진작에 국내에서 이같은 깊이 있는 장편이 나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한편으론 이 소설이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데 대해 ?”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디아스포라는 백인 주류사회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들의 눈에는 변방인 한국의 문제이고 재일한국인의 처한 환경에 대한 문제는 그들에게 전혀 관심사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파친코에 열광하는 것일까. 인간본연의 문제이기 때문에? 백인문화에 식상한 백인들이 색다름(이색적인 것)을 추구해서? 최근 세계무대 곳곳에서 모습을 내비치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 때문에? 알 수 없다. 다만 이민진이라는 작가가 한일관계와 재일한국인의 문제에 대해 미국사회에 질문을 던졌고 그것에 미국인들이 열광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서 이에 대한 해결책이 나오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에게 화두를 던졌고 그들이 반응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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