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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대학살의 역사 1

또다른공간-------/알아두면좋다

by 자청비 2005. 10. 22.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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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톨로메오 대학살

◀ 영화 "여왕 마고"로도 유명한 이 대학살 사건은, 영화에서는 6000여 명, 어떤 역사책에는 1만여 명으로까지 기록되고 있다.  프랑스에서 위그노 전쟁이 전개되고 있던 1572년 예수의 열두제자중 하나인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의 밤에 일어난 대학살 사건이다. 

 

16세기의 프랑스는 가톨릭을 믿는 프랑스 본토와 개신교를 믿는 변방의 나바르라는 나라로 분열되어, 36년간 ‘위그노 전쟁’(1562-1598년)으로 피를 흘렸다. 당신 개신교, 프로테스탄트들은 프랑스에서 ‘위그노’라 불렸다.

 

샤를르 9세가 통치하는 프랑스의 실권자는 샤를르의 어머니 카트린 드 메디치(Catherine de Medicis)였다. 나바르는 젊은 왕 앙리 드 부르봉이 통치하고 있었다. 희대의 악녀로 알려진 카트린 드 메디치(Catherine de Medicis). 그녀는 카톨릭의 권력에 대항하는 수많은 정적들을 죽였으며, 그 유명한 바르톨로메오 대학살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앙리의 어머니 잔느 역시 과거 카트린에 의해 독살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카트린은 자신이 편애하는 아들 앙주에게 평화로운 나라를 물려주고자, 딸 마고와 나바르의 왕 앙리와의 정략결혼을 추진한다. 결혼식을 앞두고 앙리는 카트린에게 독살된 것으로 알고 있는 어머니 잔느를 추모하는 검은 상복을 입은 채, 마고와 결혼하기 위해 개신교도들과 함께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다. 그러나 결혼식을 몇시간 앞둔 8월 24일 새벽, 카트린은 기즈가(家)와 공모하여 위그노파에 대한 학살을 단행한다. 기대했던 화려한 결혼식은 순식간에 ‘유혈의 결혼식’이 되었다. 파리에 이어 지방에서도 위그노파에 대한 무서운 학살이 진행됐다. 왕이었던 샤를르 9세가 학살 금지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그해 10월까지 유혈사태는 지속되었다.

 

카드린 드메디치의 모습 ▶

 

영화 "여왕 마고"로도 유명한 이 대학살 사건은, 영화에서는 6000여 명, 어떤 역사책에는 1만여 명으로 기록되고 있다. 카트린이 갑자기 자기 친딸의 결혼식장을 피바다로 만들어 버린 이유는 석연치 않다. 가장 유력한 설에 의하면 열렬한 카톨릭 광신자였던 카트린이 교황의 사주를 받아 대표적인 위그노인 콜리니라는 인물을 암살하기 위해 시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콜리니만 죽이면 암살 음모가 탄로날까봐 위그노들이 많이 모인 결혼식 날 폭동이 일어난 것처럼 해서 무더기로 학살했다는 것이다. 즉 이 설에 의하면, 카트린은 콜리니 한명을 성공적으로 죽이기 위해 자신의 딸과 신교 위그노들의 왕 앙리의 결혼식을 개최하고 그날 콜리니를 비롯한 위그노들이 잔뜩 모였을 때, 전부 한꺼번에 몰살시켰다는 것이다. 사람 하나 죽이려고 만명을 살육했다는 아주 어처구니 없는 스토리다.

 

대학살의 미끼가 된 앙리는 자신의 동료들이 전부 죽임을 당한 후 3년 반 동안 프랑스에 볼모로 잡힌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앙리는 프랑스 왕위 계승자가 되고, 1598년 프랑스 국왕 앙리4세가 된다. 그는 위그노였지만 즉위하자마자 지긋지긋한 종교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4월 13일에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낭트칙령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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